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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39화 (239/257)

239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 검문 이 자식들 별것도 아니네! 야! 이따위 실력으로 그동안 우리 운궁한테 깝쳤냐 ?』

『 이따위 실력? 네놈들이 이긴 것도 아니면서 유세 떨기는! 』

『 임 대협은 우리 운궁의 손님이거든! 즉 이 비무는 궁극적으로 운궁의 승리라고 볼 수 있지! 』

『 궁극이라는 단어는 어제 배웠지? 』

『 검문 저 자식들 태청용형검이니 뭐니 하며 콧대 빳빳하게 들고 다니더니 별로 강하지도 않네! 』

『 길상다길! 그건 아예 곤륜파의 무공을 욕보이는 말이잖아! 너도 같은 문파인 건 마찬가지야, 등신아! 』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사현은 반쯤 울고 반쯤은 웃는 얼굴로 도를 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앞에 나동그라진 채 얼빠진 얼굴로 하늘을 보고 있던 무인이 벌떡 일어나 경악과 화가 뒤섞인 얼굴로 사현을 바라보았다. 사현의 표정이 좀 더 울상에 가까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 수련이고 뭐고 스승님 방에 있는 따끈한 화로 옆에서 참파나 더 주워 먹을걸. 절절한 회한의 눈물을 삼키고 있는데, 눈치 없는 운궁의 제자들이 사현의 뒤에서 낄낄 웃으며 검문의 도사들을 손가락질했다.

『 방금 그거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이었냐? 용은 무슨 지렁이나 죽이면 다행이지! 』

『 거 맨날 중원의 애송이들은 진정한 전쟁을 모르느니 어쨌느니 말했으면서 이십 초 만에 나동그라졌네? 지들도 전쟁 나가 본 적 없으면서 나댄다 했다. 그러면서 우리 운궁이 뭐가 어째? 우리 궁주님 앞에서는 입도 벙긋 못하는 것들이! 』

『 네 이놈들! 아무리 분파가 다르다곤 하나, 배분 상 사숙이나 다름없는 내 앞에서 어찌 이리 망발을 지껄이더냐! 』

사현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과 어조에서 이것이 야유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쏟아지는 비아냥을 견디지 못한 검문의 도사 중 연령이 가장 높아 보이는 한 사람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령했다. 하지만 나라연의 일갈에 익숙한 운궁의 제자들은 그의 호통을 귓등으로 넘기며 입술을 비죽이고 어깨를 으쓱였다.

얼굴이 점점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검문의 도사들과 조소를 숨길 생각도 없는 운궁의 무사들 사이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된 사현은 연신 눈물만 삼켰다. 그러니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모자란 재능을 스승의 보살핌과 타고난 노력가 기질로 충당해 꽃피운 사현은 규칙적이고 꾸준한 수행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해 뜨는 시간에 일어나 꼭 몸을 단련해야 했고, 빈 시간마다 도를 휘둘러야 했다. 심상으로만 수련할 수 있는 경지가 되어서도 사현은 육체를 쓰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사막을 종단하는 수준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디에서든 스스로 약속한 만큼의 훈련을 해냈다.

이는 곤륜파에 오게 된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늦게 잠들어 일찍 일어난 사현은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 문파든 고유 무공을 단련하는 모습을 외부인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 산의 중턱으로 내려가 할 일을 마치고 올라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막 동이 트는 시각에 바깥으로 나오자 운궁의 제자들이 건물 밑에서 곧장 기초 수련을 하고 있었다. 산봉우리라서 지형이 협소하다 보니 연무장을 따로 만드는 대신 궁 앞의 널찍한 공간을 비워 제자들의 단련에 쓰는 듯했다.

단체로 줄 맞추어 선 채 절도 있는 낙안권(落雁拳)의 초식을 이어 나가는 사람들 중엔 사막에서 추격당하던 임 남매를 도와 이곳까지 데려와 준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바로 차인단파와 차인강파 형제, 그리고 길상다길이이었는데, 그들과 고된 여정을 함께 했던 사현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떨결에 포권을 취하고 소리 없이 살갑게 웃었다.

그들의 막무가내 친화력과 호방함을 얕본 행위였다.

저쪽도 수련 중이니까 눈인사만 하고 말겠지, 하던 사현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임사현을 본 세 명의 남성은 그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환성을 질렀다. 그러자 훈련을 지도하던 사람도, 그리고 함께 단련하던 사람들도 다 같이 사현을 돌아보며 흥분에 겨워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고함을 질렀다.

『 이쪽이 내가 어제 말한 임 대협이라고! 몸이 진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장난 아니야. 그 마교의 추격조 셋이 동시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는데, 이 한 손으로 빡! 어? 이랬다고. 두 손도 아니고 한 손으로 도를 잡고 딱! 이렇게 진각을 내디디면서 장장 세 방향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한 번에 막는데 그 풍압이 느껴졌다니까? 바람이 확 불어서 머리카락이 이렇게 뒤로 팍, 소리도 이렇게 쩡! 했다고. 』

『 아, 웃기지 마. 다길이 새끼 허언을 우리가 한두 번 듣냐? 』

『 아니, 그런데 저건 과장 아니야. 나도 몇 번 봤다. 막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받아서 밀어 내시더라고. 그냥 한순간에 튕겨 내는 것도 아니고 힘으로 쭉 눌러서 밀치시던데 아주 쪽도 못 쓰더라. 야, 여기 중원말 가능한 새끼 없냐? 오신 김에 평소 운동 어떻게 하시는지 좀 물어보자. 』

『 난 주먹 쓰시는 걸 봤는데 이걸 이렇게 잡고 마교 놈들 턱주가리에 꽂아 넣으니까 그냥 정신을 못 차리고 한 방에 나가떨어지더라고. 이 골격을 봐. 팔 길고 손 큰 게 그냥 권법을 위한 무골이라니까? 지금이라도 운궁에 입문하시라 하면 안 되냐? 말 잘하는 놈 하나가 가서 궁주님께 조르면 안 돼? 』

『 우와, 임 대협. 어깨 한 번만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이쪽 말을 못하시나. 야! 중원어로 어깨가 뭐냐? 』

“예, 예?”

덩치 큰 사내들이 우글우글 다가와 사현을 둘러싸고 왁자지껄 소란을 피웠다. 그러던 중 서툴게라도 중원어를 구사할 수 있는 길상다길이 사현에게 ‘팔, 만지다, 괜찮아요?’ 같은 말을 했고, 경황없는 사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현의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자, 근력 운동에 일평생을 바쳐 온 이들이 저마다 앞다투어 사현의 잘 키운 근육을 더듬고 감탄했다. 난데없이 승모근과 광배근부터 종아리의 비복근까지 남의 손에 맡기게 된 사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하얗게 질린 채 온몸을 내어 주었다. 석상을 만지면 복을 받는단 미신을 믿는 사람들처럼 한참 사현을 만지작거리며 찬탄하던 사내들은 다시 한순간에 우르르 물러나선 제각기 자기 몸을 확인했다. 그중에는 이 추운 눈밭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통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근육이 잘 보이는 자세를 보란 듯 취하는 이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무언가 단단히 당한 기분이었다. 사현은 황당하다 못해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쉬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하북팽가와 모용세가의 친우들과 함께 중원 곳곳의 여러 문파를 다녀봤지만 이런 환대는 처음이라 머리가 다 얼얼했다. 하도 기가 막혀 쩍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사현은 삐걱삐걱 흐트러진 의관을 정리했다.

난장판이 된 연무장에서 사현의 곁에 남아 있던 차인강파가 말했다.

“임 대협, 고맙습니다. 운궁은 임 대협을 좋아합니다. 추위에도 끄떡없는 강인한 사람.”

“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니, 추워 죽겠는데……. 사현은 코를 훌쩍 삼키며 차인강파를 돌아보고 반사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사실 방금 일어난 폭풍 같은 일에 비하면 추위는 별것도 아니었지만, 사현은 자신을 도운 사람들에게 무례하다며 언성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창피스럽고 어이없었지만 이는 얼마든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차인강파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임 대협, 아침 수련하십니까?”

“예, 제가 연무장에 있으면 방해될 것 같아, 곤륜산의 빼어난 경관도 눈에 담을 겸 나가서 단련하고 오려 합니다.”

“사막에서부터 기대했습니다. 임 대협과 비무. 곤륜산의 다른 봉우리에 도문(刀門)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되지 않습니다. 도문과 비무.”

“어…….”

곤륜파가 곤륜산의 다섯 봉우리에 세워진 각기 다른 지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주로 쓰는 무공에 따라 검문, 도문, 선문, 비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 운궁이었는데, 강파가 언급한 도문이 이것을 칭하는 듯했다.

그러면 곤륜도문과의 비무는 별로 기대되지 않지만, 나와의 비무는 이전부터 기대했다는 뜻인가? 사현은 그의 말을 짜 맞추어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는 무공을 익힌 새로운 사람들과의 비무라니, 향상심과 탐구심이 강한 사현에겐 오히려 더 좋은 일이었다.

“연습 비무라면 도리어 제 쪽에서 청해야 할 일입니다. 곤륜파의 무공이 이 설산처럼 굳건하고 고강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구해도 되겠습니까?”

“임 대협은 강합니다. 운궁의 제자들 기쁩니다. 지금 하시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언제든지 불러 주셔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요.”

“감사합니다.”

나름 정중하게 마주 인사한 차인강파는 문도들을 돌아보자마자 태도가 바뀌었다. 강파가 사현을 가리키며 흥분에 겨워 무어라 말하자 각자 속성 근력 운동을 하고 있던 운궁의 제자들이 또 와르르 다가와선 아우성을 쳤다. 사현은 그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누나 밑에서 구른 눈치로 오가는 맥락은 파악할 수 있었다. 나도 비무에 참가하겠다, 너는 안 된다, 왜 안 되냐, 우리 중에 가장 강한 놈만 골라 보자, 당연히 내가 아니냐,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럼 이참에 우리부터 한 명 남을 때까지 싸워 보자. 대충 이런 대화를 매우 시끄럽고 열성적으로 하는 듯했다.

그리고 운궁 문도들 사이의 서열 정리는 눈 깜짝할 사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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