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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42화 (242/257)

242화.

『 하지만 너희들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깔보고 싶었다면 강인한 내 아이들로 그만해야지, 초면의 객을 세워 놓고 무엇 하는 짓이냐? 그마저도 꼴사납게 졌으면 승복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

『 자견자불명(自見者不明), 자시자불창(自是者不彰), 자벌자무공(自伐者無功), 자긍자불장(自矜者不長)이 무색하구나.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의 반절만이라도 떼어 남을 위하는 데에 써 보아라. 장문인이 너희 꼴을 보시면 통탄스러워서 내 앞에 낯을 못 드시겠다. 』

담배를 한 모금 더 마신 나라연이 연기를 뱉으며 쯧쯧 혀를 찼다. 한참 어리고 미숙한 것들을 힘으로 찍어 눌러 위계를 잡으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이렇게 을러 봤자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할 리도 없었다. 지금은 머리를 수그리고 요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 경외시는 곧 추태를 보였다는 분노가 되어 수하들을 향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손님에게 진검을 들이댄 일은 과했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라연은 이만 본론을 꺼냈다.

『 운궁에 계신 손님은 네 분이다. 얼마 전 구명을 요청하는 서신을 받아 이곳으로 모셔 왔다. 그중 한 분의 용태가 위중하여 운궁의 처치를 받느라 체류하시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

『 ……그렇다면 곁에 계신 분이. 』

『 위중하신 분 하나, 그분의 곁에서 시중을 드느라 바깥출입이 어려우신 분 하나, 방금 너희들이 들입다 덤벼든 분 하나까지 하여 넷 중에 셋이 검문에 오갈 수 없게 되셨으니 남은 한 분이시다. 장문인의 앞까지 조심히 모시고, 또 극진히 대접하여 돌아오시게 해라. 』

건조하게 타박한 나라연이 한 손으로 사영의 등을 감싸 앞으로 나오게 했다. 깜빡이며 나라연과 운유를 번갈아 본 사영은 냉랭한 분위기에 걸맞게 진지한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나라연이 태연한 얼굴과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문주. 곤륜파는 다섯 봉우리에 맞추어 나뉘어 있고, 각 문주는 본인의 지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오.”

“예, 궁주님. 유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섯 지파를 하나의 곤륜파로 아우르는 장문인을 무시할 순 없지. 난 운궁의 궁주지만 곤륜파의 장문인은 아니오. 다시 말해 ‘곤륜파’와 ‘무림맹’ 사이의 일을 상의하고 싶다면 특채로 이 자리에 앉은 나 대신 장문인에게 가야 한다는 말이야.”

사영의 머리가 팽팽히 돌아갔다. 그러니까 내 선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니 장문인에게 가서 직접 무림맹의 출범을 전하고 입맹을 권유하라는 뜻 같은데…….

아, 이는 무언의 허락이다. 속뜻을 알아차리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라연천금강이 아무리 운궁주에 불과하다고 해도 활불은 곤륜파에서 부정할 수 없이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검문의 무사들을 보면 외경의 대상이었고, 도가를 따르는 곤륜파의 특채를 받을 만큼 예외의 인물이었다.

‘운궁’이 아닌 ‘곤륜파’의 입맹을 말했으니 장문인과 독대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하지만 이만한 위세를 지닌 나라연천금강이 자신의 선에서 거절을 표했다면, 사영은 장문인은커녕 다른 지파의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얌전히 식객으로 머무르다 하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연이 직접 다리를 놓아 주었으니, 이젠 곤륜파의 장문인이 ‘곤륜파’의 입맹을 꺼려 해도 ‘운궁’의 도움은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라연은 이를 전하기 위해 각 지파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봉우리에 독단적인 권력을 지녔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그리고 활불 나라연천금강의 지지만 확보한다면 임무는 성공이나 다름없다.

사영은 기분만큼 활짝 웃는 대신 기쁜 티를 내며 나라연천금강에게 포권을 취했다. 감사를 가득 담은 씩씩한 목소리로 당신의 뜻을 이해했다는 기색을 물씬 보였다.

“예, 궁주님.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분들을 따라 가면 장문인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이놈들, 그러니까 검문의 문주가 이번 대의 장문인이오. 가서 신원을 알리고, 그대의 스승에 관한 이야기는…… 그대가 알아서 할 테고. 뭐, 소문주가 잘하는 일을 하시오.”

나라연이 사영의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리며 운유에게 무어라 말을 전했다. 그러자 검문의 무사들이 일제히 포권을 풀고 돌아갈 채비를 하며 모여 섰다. 사영은 그들의 뒤를 따르며 중원의 언어로 연신 깍듯이 잘 부탁한다 말하고, 돌아보며 나라연에게 다시 감사를 전했다.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 나라연은 이만 운궁으로 들어가며 큰 목소리로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어디 있었는지도 모를 검은 그림자가 나라연의 곁에 사사삭 다가섰다.

정문을 나서기 전 시선을 조금 들어 보니 가림천이 내려진 창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자수가 놓인 두꺼운 천의 귀퉁이를 조금 들춘 흰 손끝이 보였다. 사영은 그를 향해 마구 팔을 흔들고 금방 다녀오겠다며 소리쳤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던 손이 살짝 까딱이며 사영을 배웅했다.

사영은 그제야 활짝 웃곤 나는 듯한 걸음으로 운궁을 나섰다. 모든 조건이 갖춰졌으니 이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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