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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43화 (243/257)

243화.

무림맹의 등장까지는 그다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원래 무협지라면 대부분 무림맹이라는 정파 연합 단체 설정이 있었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역시 대체로 무림맹 소속이었다. 오히려 기존의 ‘백협맹’이 〈귀환영웅〉에서만 볼 수 있던 무림맹 대체 단체였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 이마저도 주인공 모용서가 썩어 빠진 정파를 처단하고 새로운 정의의 기준이 되는 ‘무림맹’을 세운다는 추켜세우기식의 연출을 위해 집어넣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곤륜파는 중원에서 멀다고는 하나 변방의 마지막 도가 문파 같은 세력이고, 나라연천금강이라는 현경의 고수까지 있으니 무림맹이 어떻게든 연을 만들기 위해 손을 뻗을 만도 했다.

문제는 무림맹이 보낸 사자가 다름 아닌 하오문의 소문주 임사영, 초윤의 제자라는 점이었다.

“하오문 또한 무림맹에 속하게 되었느냐?”

“네! 단 형이 무림맹을 발의할 때 같이 이름을 올렸어요. ‘정사파 상관없이 결집한다’는 의미가 보여야 하니 꼭 창단 일원으로 있어야 한다고 바쁘게 일하던데.”

“무림맹은 언제 생겼지?”

“이제 일 년 조금 안 된 것 같아요. 아, 본부는 섬서성에 있어요.”

원래 〈귀환영웅〉에서는 하오문이 무림맹에 안 들어가지 않았나? 초윤은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떠올렸다.

하오문주 희, 다시 말해 황자로서 왕의 지위를 지닌 희가 다른 번듯한 문파도 아닌 하오문을 제 둥지로 고른 데엔 이유가 있었다. 관무불가침(官武不可侵), 즉 관아와 무림은 서로를 침범할 수 없다는 무협 소설의 가장 기본적이고 편리한 설정 아래 황족인 희의 행동에는 자연히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무림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들통난다면 조약을 어긴 셈이 되고, 이는 곧 무림인들이 들고 일어나는 결과를 불러올 테니 남몰래 민생을 돌보려 했을 뿐이라고 우길 수 있는 하오문밖에 선택지가 없었을 터였다. 이제껏 하오문은 상업과 공업, 유흥업과 용역산업을 업으로 삼은 민간인이 조합원의 8할을 이뤄 왔으니 무림에는 반 발짝만 걸쳤다며 발뺌할 수도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무림맹에 소속된다면 상황이 달라졌다. 무림맹은 이름부터가 오리발을 내밀기엔 틀려먹은 단체였다. 원작의 희는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무림맹을 세우는 모용서를 뒤에서 돕긴 했어도 가입은 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반발이 컸을 텐데.”

“어우, 엄청났죠. 특히 화산파가 정말 싫어했어요. 새 무림맹이 자리 잡은 곳이 화산파 인근인데, 하오문이 무림맹의 일원이 되면 허구한 날 사파의 잡배들이 섬서성에 발 들이는 모습을 봐야 하지 않느냐는 둥, 하오문을 시작으로 온갖 무뢰배들이 무림맹의 이름을 얻고 무인이라 자칭할 텐데 어떻게 할 거냐는 둥……. 여기 오기 전에 무림맹 친선 비무도 있었거든요. 거기서도 얼마나 싸웠는지.”

“화산파?”

속세와 떨어져 살아온 초윤의 기억 속엔 유명우밖에 없었다. 원작에선 그나마 주인공의 든든한 동료였던 배화구검 구양선이 화산파의 위상을 세웠는데, 그는 이미 오래전에 사천당가의 무사가 되었으니 화산에는 이제 마땅한 인재가 없을 터였다.

그래도 무림맹의 일원이 되었다니 문파 내의 마교도는 싹 잡아낸 모양이구나. 해발고도 710장 위에 콕 박혀 살면서 부귀영화를 탐내는 애들은 다 치웠나 보다. 그러지도 않고서 내 애들이 소속된 하오문을 욕한 거라면 좀 열받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다분한 악감을 품은 초윤이 물어보았다.

“화산파에 숨어든 마교의 뿌리는 다 뽑아내고 가맹했더냐?”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니지, 스승님이면 모르실 리가 없나.”

“그들의 고독은 제거하기 어려웠을 터인데, 모용서가 힘을 썼느냐?”

초윤은 모용서가 화산파 장로들의 단전에 웅크려 있던 고독을 제거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물었다. 화산파는 여타 무협지들이 대체로 그렇듯 화산파의 무사가 주인공이 아니라면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 문파였지만, 검술이 뛰어나고 자존심과 유대감이 강하다는 설정만큼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통용되었다. 드높은 산에 고립된 채 모여 사는 성질 때문인 듯했는데, 그러한 탓인지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모용서의 말을 믿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내며 무력적인 위협까지 가해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여타 정파 문파와는 다르게 화산파의 무사들은 보급형 무인 캐릭터치곤 꽤 강했다. 모용서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했고, 매화 모양의 검기를 피워 내는 등 묘사에 공을 들인 티가 났다.

물론 당연하게도 모용서가 압도적으로 이긴 뒤 모든 일을 해결하고 위대하다며 칭송받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치트키를 쓰든 회귀를 하든 모용서가 더욱 강해질수록 사영이와 사현이의 안전이 보장되니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사현이의 반응이 조금 애매했다. 사현이는 빈 주머니를 곱게 접어 품에 넣은 뒤 떨떠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어음…… 아니요. 고독은 제거했고, 끄나풀도 확보했다고 듣긴 했는데…… 서하가 한 일은 아니에요.”

“그러면?”

또 다른 신흥강자가 나타났나? 주인공 일행 중에 그만큼 내공을 다룰 줄 아는 애가 누구 있었지? 초윤은 오래된 무협지 독자로서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사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사현이는 입을 열긴커녕 미묘한 표정으로 초윤의 옆을 힐끔거렸다. 그 눈길을 따라가니, 이젠 초윤의 옆머리를 조심히 끌어와 삭삭 빗고 있는 천오가 보였다.

설마? 초윤의 내적인 턱이 뚝 떨어졌다. 두 명분의 시선을 받은 천오는 여전히 스승의 머리카락에만 집중하며 담백하게 말했다.

“제가 했습니다, 스승님.”

“……네가?”

“예. 일전에 스승님께서 고독을 제거하는 법을 한 번 보여 주신 적이 있어 실수 없이 행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언제?

아! 초윤이 소리 없이 탄성을 뱉었다. 유명우를 상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떠올리기 쉬웠다. 백호철의 뇌에 있던 고독을 애들 앞에서 터트린 적이 있었지.

아니, 근데…… 그건 단전이 아니라 머리에 있던 거잖아.

너는 열한 살이었고…… 어떻게 하는 건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잖아.

그때 딱 한 번 봤잖아…….

초윤은 입을 다물고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어린아이가 내 행동을 보고 배운다는 점이 두려워 몸가짐을 항상 조심하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천오의 행적은 그것과는 별개로 이유 모를 무서움이 살짝 있었다. 비유하자면 지난날의 내 모든 언행이 철저히 기록되고 분석된 느낌이었고, 천오는 그것을 모조리 체화한 사람 같았다. 그저 카피캣이나 무공에 관한 재능이라고 하기엔 천오의 두 눈에 늘 넘실거리는 기묘한 강박과 집착이 초윤에게 자꾸만 불안을 안겨 주는 듯했다.

아니, 괜한 생각이다. 초윤은 술렁이는 가슴을 빠르게 다잡았다. 천하제일의 천고기재를 자신 같은 범재가 키우게 되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적인 마음을 제외하면 굉장히 잘한 일이었다. 그만큼 천오가 타고난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었고, 못 본 사이 더욱 눈부시게 개화했다는 증거였다. 초윤은 손을 뻗어 꿇어앉은 천오의 무릎을 가만히 도닥였다.

“잘했다.”

“……예, 스승님.”

“네게 쉽사리 단전을 맡길 리 없었을 텐데, 어찌 설득했느냐?”

“들어가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천용혈(天容穴)을 잡고 들어 올린 뒤 곧장 혈도를 점했습니다.”

뭐?

초윤은 곧장 사현을 바라보았다. 사현이는 스승님의 시선을 피하며 어설프게 웃었다. 천용혈이라면 목에 있는 혈 자리잖아. 그럼 그냥 냅다 저벅저벅 들어가선 화산파의 일각을 책임지는 장로의 멱살, 아니, 숨통을 틀어잡고 휙 들어서 무림인의 생명인 단전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댔다는 뜻이잖아.

이래서 사현이의 표정이 이상했구나! 이래서 사람 말을 하는 흉수니 뭐니 각박한 소리만 들었고! 마교를 그렇게나 잡고 다녔으면서 저승사자 같은 별호나 붙고!

심지어 작중에서 고독에 당한 장로는 한 명이 아니었다. 열 명 남짓인가 하는 이들 중 삼 할이 고독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들 모두에게 그런 식으로 굴었다면 무림맹이고 뭐고 하오문과 화산파가 정면승부를 벌인다는 전개가 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초윤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가만히 사현을 바라보았다. 천오는 스승의 착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엉키거나 흐트러진 곳 없이 부드러워진 흰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에 감고 가만히 매만질 뿐이었다.

사현이는 초윤을 향해 돌아앉아선 멋쩍게 웃었다.

“그…… 천오한테는 분명 확인만 해보라고 부탁했는데, 애가 그 자리에서 고독을 그냥 다 잡고 원흉 되는 사람을 무림맹까지 끌고 갔더라고요……. 누나는 한참 하오문 일로 바빴고, 저는 서하랑 안휘성에서 강시를 잡느라 미처…… 막질 못했어요. 천오가 또 일행을 붙여도 싫다고 없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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