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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49화 (249/257)

249화.

내 아이들도 내가 사라졌을 때 이렇게 울다가 결국은 찾아온 걸까? 눈을 뜨자마자 눈물을 흘리고 있던 천오와 자신을 보자마자 오열하던 남매가 차례로 떠올랐다. 타고난 울음 끝이 짧아 금방 그치고 의젓한 태도를 보여 주긴 했지만 그마저도 쇠약해진 스승을 향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침묵하고 보여 주지 않았던 모습을 엿본 것만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초윤은 허벅지 위에 모아 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머무적대는 초윤의 손을 함께 바라보고 있던 천오가 동시에 시선을 들어 눈이 마주쳤다.

잠시 훌쩍거리며 감정을 삭이던 설린이 말을 이어 갔다. 초윤은 뜨거운 쇠에 덴 듯 화들짝 놀라며 다시 제갈설린을 보았다.

“한동안은 정말 행방을 찾는 데에만 급급하였사옵니다……. 그러다가 보다 못한 하오문주께서 소문주님의 행선지와 목적을 알려 주셨고, 저는 다급히 뒤쫓아 왔사옵니다.”

“이곳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사막까지 건널 요량이었느냐?”

“제 걸음과 소문주님의 걸음은 차이가 크니, 곤륜산맥 근방에서 한 달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면 직접 신강으로 넘어가려 했사옵니다.”

“그 넓고 척박한 땅에서 무엇을 어찌하려고.”

“…….”

잠시 조용해진 설린이 젖은 손수건을 가만히 쥐어뜯었다. 초윤은 얇은 그늘을 얼굴에 드리운 제갈설린을 묵묵히 하나씩 살펴보았다. 어렸을 때처럼 얌전히 빗어 내린 머리는 눈보라에 휩쓸려 엉켜 있었고, 별처럼 마냥 반짝거리던 총명한 두 눈은 이제 밤하늘을 담은 우물 같았다. 얼굴에선 여전히 앳된 티가 났지만 곧게 편 등에는 이전까진 없던 자신심이 묻어났으며, 곱고 부드럽기만 했던 손끝은 굳은살이 박이고 갈라져서 손수건에 거칠게 긁혔다.

……자랐다. 초윤은 생각했다.

많이 달라졌다. 초윤이 실감했다.

천오에게선, 그리고 임 남매에게선 변하지 않은 부분을 찾아낼 때마다 이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익숙한 요소는 발견할수록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그러자 신경은 자연스레 기척 없이 서 있는 천오에게 쏠렸다. 흑색 무복으로 꽁꽁 감싼 육신의 경도나 숨을 쉴 때마다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흉통의 부피. 뒷짐 진 손등에 도드라졌을 혈관과 뼈, 그리고 고개 들어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무겁게 초윤을 짓누르는 두 눈.

무던히 보아 넘기려고 했던, 낯을 익히고 적응하려 했던 천오의 변화가 세밀하게 인식에 따라붙었다. 작고 뭉툭한 바늘이 하염없이 심장을 찌르며 주의를 끄는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무엇이든 하려고 했사옵니다. 영영 찾지 못하고 헤매도 괜찮사오니, 아니, 사실은 괜찮지 않사옵니다. 사실은 제가 무슨 정신으로 이곳까지 왔는지 이제 와선 잘 기억나지 않사옵니다. 그저 많이 서러웠던 것 같아요. 익숙지 않은 말을 타고 오면서도 안장에 앉아 많이 울었던 것 같사옵니다. 저는 이제껏 부려 본 적 없던 무모함으로 소문주님의 뒤를 쫓아왔사옵니다만, 만일 소문주님을 이곳에서 찾지 못했다면 이는 결국 망집이 되었을 듯하옵니다…….”

제갈설린이 고요하게 중얼거렸다. 초윤은 위로나 달램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사영이 네게 많이 소중해졌구나.”

“……네, 약선 대협. 소문주님은 정말, 필연 온 마음을 바쳐 따르게 될 정도로 근사하신 분이옵니다. 그런 분을 키워 내셨다니 대협께선 역시 대단하셔요. 소녀의 첫 연정을 단번에 가져가셨을 법도 하옵니다.”

설린이 글썽거리면서도 밝게 웃으며 양손을 포개어 제 심장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급작스러운 고백이었지만, 초윤은 이에 놀라기보단 진심으로 기꺼워 올라가는 입꼬리를 옷소매로 가렸다. 철없던 중학교 시절에 선생님을 좋아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 귀엽기도 했고, 추억이 된 기억을 즐겁게 털어놓는 설린이 조금씩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듯해 안심이 되기도 했다.

표정을 가다듬은 초윤은 단정히 손을 내렸다. 그러나 목소리에 묻어나는 깃털 같은 감정은 다 감추지 못했다.

“연정이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를. 예순에 너만 한 손녀를 두었어도 지금쯤 네 밑으로 다섯은 되었을 것이다.”

“정말이옵니다, 약선 대협. 대협께선 소녀를 실로 정성스레 가르쳐 주셨어요. 처음 소녀를 찾아와 주셨을 때 그려 주신 짐조 그림과 약초 문장도 전부 본가의 금고에 넣어 두었사옵니다. 세상에 당해 낼 자가 없다는 듯이 고강하셨고, 현명하셨고, 또 후려(厚慮)하면서 아름다우셨기에 소녀는 속절없이 대협을 사모했사옵니다.”

“찬(讚)이 과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아 실망했느냐?”

“그럴 리 없지 않사옵니까, 대협. 대협께서는 여전히 비할 곳 없이 고아하고 강인하시옵니다. 한낱 육신의 수척함 따위는 빛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요.”

“…….”

“대협께서는 설령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게 되어도 끊임없이 다정하기 위해 노력하시지 않사옵니까. 그렇기에 제게 눈부신 분이셨고, 또한 그렇기에 지금도 변함없이 찬란하시옵니다.”

“……역시 찬이 과하다. 나를 낯부끄럽게 만드는구나.”

“불편하셨다면 송구하옵니다. 한참은 어린 아해의 철없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어여삐 여겨 주셔요.”

설린이 쿡쿡 웃다가 이윽고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기운 없이 웅얼웅얼 말했다.

“갑자기 울어 버렸더니 온몸의 기운이 빠져 버린 듯하옵니다. 아니면 여러모로 안심을 하여 잊고 있던 여독이 올라오는 것인지……. 하지만 마음 같아선 소문주님께 사흘은 매몰차게 대하며 제가 이리 속상했다 투정을 부리고 싶지만, 객지에서 그리 굴면 많은 분께 실례가 되겠지요?”

“네 성정에 괜한 누를 끼치고 다닐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결하거라.”

제갈설린이 또 혼자 뽈뽈 돌아다니도록 둘 순 없으니 섬서성까진 다시 데리고 가야 했다. 넉넉잡아 삼천오백 리를 함께 가야 하는데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 있으면 여정이 힘들어질 터였다. 그래도 설린의 울화가 이 정도의 투닥거림으로 그쳐서 다행일까. 초윤은 홀로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영이 고집을 부려 대초원까지 떠났다면 십 년은 토라졌겠구나. 그리되지 않아 다행이라며 혼잣말하듯 지나가며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공을 익힌 제갈설린은 작은 속삭임도 놓치지 않았다. 오밀조밀한 입술이 불신과 경악으로 벌어졌다.

“대초원이요?”

“아.”

“소문주님이 대초원까지 가려고 하셨사옵니까? 약선 대협을 모시고 나와서도 곧장 귀환하긴커녕 대초원까지요? 어, 어째서요?”

이놈의 입! ‘초윤’이 있었다면 말하기 전에 나 대신 세 번은 더 생각해 줬을 텐데 이놈의 입이 또!

초윤은 소리 없이 신음하며 변명을 고심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설린만큼은 괜한 언동을 하지 않을 것 같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듯했다.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초윤은 설린에게 손바닥을 위로 하여 한쪽 팔을 내밀었다. 소매를 걷자 붕대를 감은 손목과 깊은 흉터가 선명한 팔뚝 안쪽이 드러났다.

“맥을 짚을 줄 안다고 했지. 해 보거라.”

“네?”

느닷없는 말에 놀란 설린이 토끼처럼 눈을 뜨고 되물었다. 하지만 금방 말귀를 알아듣곤 초윤의 손목에 조심스레 세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댔다.

연약한 유리 세공품을 대하듯 초윤의 피부 위에 약하게 손끝을 누르고 맥박을 느끼던 설린은 곧 오소소 소름이 돋은 듯 어깨를 움츠리며 손을 뗐다. 매일같이 초윤을 진맥하던 나라연천금강에게선 볼 수 없던 반응이라, 초윤은 이 냉기가 사실 접촉으로 옮는 것이었나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제 양팔을 붙들고 연신 쓸어내리며 두리번거리던 설린의 시선이 끝내 닿은 곳은 기척 없이 서 있는 천오의 발치였다. 설린은 누가 봐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몸서리치고선 태연함을 가장하며 뻣뻣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삽시간에 하얗게 질린 설린의 안색을 본 초윤은 천오를 돌아보았지만, 말한 대로 조용히 자리만을 지키며 대기하는 천오는 아까 전과 한 치도 달라진 게 없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초윤의 잔에 간간이 차를 따랐고, 차분하게 스승의 눈길을 받을 뿐이었다.

천오가 내공으로 위협하거나 전음을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 뭐지? 초윤이 어리둥절하는 사이, 설린은 천오 쪽에 애써 눈길도 주지 않으며 잽싸게 먼저 입을 열었다.

“구음절맥과 비슷하나 다른 느낌이었사옵니다. 절맥증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구음절맥은 기맥의 가닥마다 음기가 가득하여 기의 순환이 쉽지 않은데, 대협께선 단전에만 음기를 품고 계시군요. 다만 그 성질이 이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막강하고 악독하여, 단전 근처의 혈맥과 기맥을 지나기만 하여도 피가 차게 식고 기맥에는 냉한 기운이 실리는 듯하옵니다. 사술에 당하셨사옵니까?”

“예리하구나. 정확하다.”

“약선 대협께서 홀로 풀어내실 수 없는 술법이옵니까?”

“단전을 막은 냉기를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선 내공을 움직여야 하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운기할 기미를 보이면 음기가 기승을 부리며 온 기맥을 얼리고 사위에 미친다. 천오는 내 기맥을 파악하고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단전을 직접 건드렸다간 어떤 영향을 받을지 모르니 이는 최후의 방법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야 쓸 방법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초윤은 천오의 도움을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발작이 올 때마다 격체전공의 묘리로 초윤을 안정시켜 주는 것도 천오에겐 충분히 부담이 될 행위였다. 하지만 타인의 운기에 내공을 보태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자신의 내공만으로 남의 기맥을 모조리 채운다면. 그것으로도 모자라 전신의 기맥으로 기운을 움직이며 단전을 막은 음기까지 연신 두드리고 깨부순다면 시술자의 위험이 너무나도 커졌다. 9할 9푼의 확률로 내상을 입을 것은 당연했고, 단전이 부서지거나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내공을 회수하다가 초윤을 고통스럽게 만든 음기까지 흡수할 수도 있었으며 심할 경우 죽을 가능성까지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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