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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51화 (251/257)

251화.

“당시 받은 목록엔 이렇다 할 특별함 없이 양기를 지니고 몸을 데우는 환단이 대부분이었사옵니다. 그래서 곧 관심을 끊고, 소문주님의 소식을 캐내어 이곳까지 달려왔사온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옵니다. 길고 긴 목록의 끝에 ‘칠엽자지선란(七葉子枝仙蘭)’이 있었사옵니다만, 이는 도리어 대초원 너머에서 어렵게 수입하는 영약이 아니옵니까?”

“북해에서 자라는 약초 중 몇 안 되는 양기의 영약이구나. 지열이 강한 동굴 속에 숨어 있어 발견하기 어렵다만, 확실히 중원보다는 빙궁 근처에서 자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지요? 약선 대협께서 제 사저에 다녀가신 뒤로 비현실적인 상상이라 취급받던 영약까지 여러모로 공부하였기에 알 수 있었사옵니다. 선란(仙蘭)은 가지 하나에 달린 잎이 많을수록 최상위급으로 치니 50년 전 시중에 나온 육엽(六葉)의 선란 이후로 가장 좋은 물건이었사온데, 이를 손에 넣은 상인은 하남을 지나서 산서성의 대동시를 끝으로 행적이 끊겼사옵니다. 그곳에는 선란을 팔기에 마땅한 세가도 없고, 문파도 없는데 말이지요.”

안휘성에서 약을 사고 곧장 북상했구나. 초윤은 머릿속에 무림 지도를 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로 치는 구엽자지선란에는 못 미쳐도, 선란부터가 본디 뛰어난 영약이었다. 따듯한 곳에 자라면서 반경의 생태 조성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가진 힘이 뛰어났는데, 만년지극혈보처럼 복용자를 태워 버릴 수 있는 양기는 없었지만 온화한 열기를 가득 품고 있어 내공 증진과 자양 강장에 좋은 효과를 보였다.

그러니 내공을 한 톨이라도 더 늘려 줄 수 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무협지 세계관에선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남궁세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온갖 문파와 세가가 경매에 참여했을 게 뻔했고, 이를 모두 제치고 선란을 차지하려면 금액 또한 분명히 엄청났을 터였다.

그런데 그 비싼 물건을 들고 사 줄 사람 하나 없는 오지로 향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제갈설린의 추론을 차근차근 따라가 이해를 끝마치자, 신중한 결론이 이어졌다.

“북해빙궁은 수준 높은 빙공으로 이름이 높지요. 중원에서야 사파 취급을 받아 왔지만, 씨족끼리 무한히 경쟁하며 실력을 닦는 체계인지라 뒤처짐이 없기로 자자하옵니다. 그리고 음한의 무공을 익혔다면 마땅히 설삼이나 설령과 등의 냉한 영약을 찾기 마련이온데, 급작스럽게 박주시를 언급하고 양기를 찾는다면…….”

“……절맥증이구나. 그것도 빙공으로는 미처 다스릴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음기로 막힌 절맥이야.”

“예, 대협. 절맥증을 앓아 본 이로서 예상하건대, 아무래도 빙궁에 위중한 환자가 있는 듯하옵니다. 이제껏 관심도 없다는 듯 발도 들이지 않던 땅에 축하를 내세우며 먼저 오겠다고 하다니 목적이 없으면 불가능하지요. 공교롭게도 약재 시장이 정상화되었다는 소문이 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기이고, 또 비밀이란 감추려 할수록 드러나는 법이니 말이옵니다.”

조근조근 말하며 낮게 웃는 설린의 위로 음흉한 절세미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영리해도 순진하던 아이를 이렇게 키우다니 참 잘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꾀 없이 천진하던 애를 다 망쳐 놨다고 해야 할지. 초윤은 조금 떨떠름하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협께서 절맥증을 치료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 빙궁의 사절이 도착한다면 자연스레 접근해 볼 수 있사옵니다. 대협의 복귀 사실은 잠시 기밀에 부쳐야겠지만 빙궁은 중원의 정세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요. 어찌 생각하시옵니까?”

“……나쁘지 않다.”

원작에서는 모용서가 두각을 드러내고, 마교와의 전쟁이 한참 심화되어 새외무림까지 악영향을 뻗치자 뒤늦게 사자를 보냈던 빙궁이었다. 그런 세력이 무림맹의 창단 소식을 듣자마자 오겠다며 연락을 보낸 것도 행운이었는데, 이 일에 ‘고칠 수 있는 수준의’ 환자가 얽혀 있다면 초윤에겐 정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좀 더 운이 따라 준다면 그쪽에서 아예 무림맹까지 환자를 데려올 수도 있고, 그러면 앉은 자리에서 바로 도와줄 수도 있을 테고……. 물론 증상을 봐야 고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겠지만 명색이 약선인데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빙궁까지 사영이를 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지만, 그동안 빙궁이 쌓아 온 지식과 기술 중에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사영의 말에는 내심 신경이 쓰였다. 방금 설린의 말로 봐선 북해빙궁은 향상심이 높은 문파 같으니 정말 무언가 새로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을 법도 한데. 서로에게 필요한 건강 관리법을 교환하면 둘 다 윈윈이니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잖아.

문제라고 한다면 오히려 내 쪽에 있지…….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초윤은 슬그머니 시선을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뒷짐을 지고 선 채 기척도 하나 없이 풍경처럼 서 있는 천오가 보였다. 허리 언저리에서 더욱 눈을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마주쳐 오는 눈길엔 예리한 날이 서 있었다. 천오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초윤의 너덜너덜한 양팔과 호박색 눈을 번갈아 바라보며 정녕 그리하실 것이냐고 묻고 있었다.

그야, 제갈설린은 약선 초윤의 피가 실존하는 영약 중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양팔에 상처와 흉터가 깊은 초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치료’를 언급하는 모양을 보면 확실했다. 사영과 가까이 지내 왔으면서도 전해 듣지 못했다니, 철저히 정보를 통제했다는 말은 사실인 듯했다.

그러니 약선 초윤이 자신의 절맥증을 치료한 방법 또한 그 혈액임을 모르고도 남았다.

하지만 설린을 피로 낫게 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초윤은 천오의 앞에서 스스로 팔을 그어 약사발에 피를 모았다. 행할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으나, 지난 뒤 생각해 보니 뼈아픈 실책이라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나타난 초월량의 주도로 또 끔찍한 꼴을 보여 주게 되었고, 천오의 손에 고스란히 피를 쏟기도 했으며, 재회했을 때조차 과다출혈로 시름시름 죽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입은 자상이 이제야 좀 아물기 시작했는데 또 피를 내야 하는 시술을 하겠다고 확언한다면 그동안 자신을 돌봐 준 천오의 성의를 무시하고 상처 입히게 될 것 같았다.

일단은 만나 보고 결정해야겠다. 초윤은 천오의 시선을 피해 얼버무리다가 문득 떠오른 의문을 꺼냈다.

“……설린, 네가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에 빙궁의 서신을 받았다고 하였지.”

“예, 대협.”

“빙궁의 서신을 받고선 박주시의 약재 시장을 조사했고, 그 결과를 받아든 뒤 여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맞사옵니다. 무언가 걸리는 점이 있으시옵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달포는 지나지 않았느냐. 사절단은 언제쯤 온다고 하였지?”

“실은 소녀의 내공이 그다지 깊지 않아 말을 타고 왔사옵니다. 섬서성을 떠난 지는 서른 날하고도 열이레가 지났사옵니다만…… 헉.”

“서신을 보낸 지 두 달은 되었겠구나. 한가락씩 하는 무림인들이니 길에서 시간을 지체할 리도 없고, 네 추측대로 중환자가 있다면 더욱 걸음을 빨리하겠지. 무림맹에 도착해서도 일행을 나누어 박주시부터 뒤져 볼지도 모른다.”

“일리 있는 말씀이시옵니다…….”

“너는 적어도 보름 안에 돌아가야겠구나. 어찌할 요량이더냐?”

“…….”

늦어도 두 달이면 빙궁의 사절단이 무림맹에 도달할 터였다. 먼 길을 걸어왔으니 극진하게 대접받겠지만, 타지에서 보름 이상 머무를지는 불투명했다.

칠주야를 경공으로 뛰어도 거뜬한 제자들을 보내자니 ‘하오문의 일원’과 ‘무림맹 총무실 소속’의 명패는 결이 달랐다. 하오문이 아무리 무림맹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빙궁과 접촉해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려면 그들이 표면적으로나마 축하한다고 말해 온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편이 유리했다.

그리고 천오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불가능했다. 결과가 아무리 좋았다고 한들 온 무림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탓에 흉흉한 별호까지 얻게 되었는데, 저승사자 취급을 받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걸어 봤자 내용이 어떻든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초윤 또한 복귀 사실을 중원에 알리기엔 성급하다고 여겨지는 지금, 가장 튼튼한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사람은 눈앞의 사성철려 제갈설린밖에 없었다.

늦지 않게 무림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긴 했다만.

아직 제정신이 다 돌아오지 못했는지, 평소라면 일찍이 알아챘을 부분을 불시에 쿡 찔린 제갈설린이 얼빠진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초윤은 담담히 대답을 기다리는 듯 보였지만 다급하긴 매한가지였다. 설린의 계획대로라면 초윤도 너무 늦지 않게 섬서성에 도착해야 했는데, 마필을 타고도 오십 일 가까이 걸렸다는 설린의 경험담을 듣자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경공도 쓸 수 없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타야 빠르게 귀환할 수 있는가. 여기서 말보다 빠른 탈것이라곤 천오밖에 없지 않나? 사막을 건너는 내내 업혀 온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난처한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채 잠시 곤경을 나누었다. 사실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나, 설린과 초윤 모두 각자의 입 밖으로 꺼내기엔 개운치 않은 해법이었다.

결국 먼저 나선 사람은 일의 효율을 철저히 계산할 줄 알고, 연장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배워 온 설린이었다. 제갈설린은 최소 사흘 동안 사영의 애간장을 태우려던 계획을 아쉽게 접으며 말했다.

“소문주님을 불러 주시겠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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