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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52화 (252/257)

252화.

“그러니까 여길 왜 오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데, 네가! 거기 그냥 있었으면 좋았잖아. 내가 어련히 연락을 안 하겠어?”

“제가 안 왔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셨는데요. 대초원까지 가겠다고 말씀하셨다면서요? 대초원을 종단하는 동안에도 말 한마디 없다가, 빙궁에 도착한 뒤에야 해부만 떡하니 보내실 요량이셨어요? 그래도 헛걸음하실 필요는 없어졌잖아요. 그 점은 생각 안 해 주시나요?”

“네가 무림맹에 얌전히 박혀서, 그 해부를 통해 전했어도 충분한 소식이었어! 그랬다면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촉박해지지도 않았을 테고!”

“애초에 제가 여기까지 오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요. 언니가 먼저 그런 식으로 가 버렸잖아요. ‘나 멀리 떠나. 일이 있어서 신강으로 가게 됐어. 죽을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죽을 가능성이 더 커. 그러니까 기다리지 마. 너는 할 일이 많으니까 거기에만 집중하고 찾아다니지도 마. 잘 풀려서 돌아올 수 있게 되면 내가 먼저 연락할게’. 언니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제가 언니한테 이런 말만 남기고 사라지면, 언니는 제 생각 안 하고 멀쩡히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벌한 언어의 칼날이 양 뺨을 매섭게 베며 휘몰아쳤다. 이를 악물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사영과 점차 사납고 날카로워지는 설린의 사이에서 초윤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머리 좋고 말도 잘하는 데다가 혓바닥 대신 비도를 갖춘 애 둘이 전력으로 싸우자 고작 말싸움인데도 비무 못지않은 긴장감 흘렀다.

사영이를 불러온 게 잘한 짓일까? 초윤은 입꼬리를 굳히며 조금 후회하다가, 말싸움이 점점 심해지자 곧 눈을 뜨고 말문을 열었다.

“그만.”

“…….”

“…….”

“대화를 하라고 일렀더니 입씨름을 하고 있구나. 이대로는 감정만 상할 뿐, 아무런 소용도 없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송구하옵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한껏 높아진 아이들의 언성을 단번에 식히고 차갑게 흩어졌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우던 사영은 이를 악물며 탁자 밑으로 양손을 깍지 껴 잡았고, 입술을 짓씹고 받아치던 설린은 입을 꾹 다문 채 사영을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함께 들어온 사현은 사영의 옆자리에서 누나와 스승을 연신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했고, 설린에게 자리를 뺏긴 천오는 한 칸 먼 의자에 앉는 대신 스승의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초윤은 짧은 고민 끝에 말했다.

“사현, 설린을 데리고 나가 있거라.”

“네?”

사현이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다행스럽게도 사영은 설린과 기싸움을 하느라 사현에게 할애할 성질이 없었다. 초윤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엉거주춤 일어난 사현이 조심스럽게 탁자 반대편으로 가선 설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설린은 한동안 사영과 계속 눈싸움을 하다가, 입을 꾹 다문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선 사현을 따라 방을 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사영은 미동도 없었다. 시선을 내린 채 침묵을 지키는 아이를 조용히 응시하던 초윤은 고개를 돌려 천오와 눈을 마주쳤다. 천오는 무언의 부탁을 찰떡같이 알아듣곤 주위로 차음막을 둘렀다. 초윤은 손잡이 없는 나무 의자를 조금 뒤로 빼 앉고는 가만히 손짓하며 사영을 불렀다.

“사영아.”

“……예, 스승님.”

“일어나서 이쪽으로 오려무나.”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사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초윤의 옆으로 걸어왔다. 다가온 사영 쪽으로 돌아앉자, 좋지 않은 표정으로도 꼿꼿하게 서 있던 아이가 조금 주춤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대고 허벅지로 섰다. 어조를 보아하니 훈계를 들을 것 같은데, 그동안 내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기엔 어색한가 보지. 초윤은 와중에도 못 본 사이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의 키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뒤에 있던 천오의 미간이 선명히 일그러졌지만, 둘 중 누구도 그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초윤은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화도 다 삭이지 못한 사영에게 양 손바닥을 내밀었다. 사영은 스승의 희고 건조한 손과 소매 사이로 보이는 상흔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첫째 아이가 투박한 두 손을 제 손 위에 얹자, 초윤은 이를 곧장 맞잡고 살짝 당기며 나직이 말했다.

“임사영.”

“…….”

“사영아.”

“……예, 스승님.”

“내가 너의 스승이라 하더라도, 나의 나쁜 점까지 쏙 빼닮길 바란 적은 없었다.”

“…….”

“다신 그리하지 말라고 내게 일렀으면, 너도 사람을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방치해선 안 되지 않겠느냐.”

“…….”

무언가 말하려던 사영이 다시 아랫입술을 콰득 씹었다. 초윤은 그 입술을 매만져 주는 대신 잡고 있던 손끝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스승의 허벅지 위를 이리저리 방황하던 시선은 점점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사영은 턱의 교근이 곤두서도록 이를 악물다가, 제 분에 못 이겨 씨근거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스승님, 제갈설린은 홀몸으로 초원을 가로지른다는 무모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영리하지만 한없이 연약하고 유약한 어린애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위험한 땅을 거쳐 왔는지 저는 정말……. ……저는 확실히 얘기했어요. 찾지 말아야 할 마땅한 이유를 알려 두었고, 중원에서 가장 안전한 무림맹에 그 아이가 있는 모습을 확인한 뒤 이리로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왜…….”

“속상한 마음과 노기(怒氣)를 혼동하여선 안 되지. 잘 생각해 보거라. 너는 지금 화가 났느냐, 아니면 그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조급해졌느냐?”

“…….”

“내 눈에 너희들은 연약하고 유약하지 않아 보일 것 같더냐?”

이어진 초윤의 질문에 사영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사영의 불안정한 두 눈에 들어온 스승의 표정은 요 며칠 사이 보았던 차분하고 현명한 모습과 별다른 바 없었다. 남매가 엉엉 울며 돌아온 날, 거의 진심이었던 눈물 공세와 분노를 적립하기 위한 탐색전이 오갔던 저녁 식사 뒤로 스승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지극히 줄였다. 본래부터 자기 자신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하는 성정은 아니셨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도 ‘사술에 당했다’는 한마디만 하실 뿐 이렇다 할 설명이나 경험담도 누설하지 않으시기에 애가 닳던 지경이었다.

사영은 그의 뜻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사영의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어쩌다 어떻게 다쳤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하며 위로를 구할 생각은 애초에 아예 없으셨다. 그의 외피를 떼어 낸 못정이 무엇이었는지, 그에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지,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이제 와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발설하실 요량이 정말 조금도 없었다. 우리가 충격받을 것을 걱정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약선 초윤의 일’에 우리들이 휘말려 겪은 꼴을 기억하실 테니 거리를 두시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남매의 마음에는 결코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며칠이고 끈질기게 찾아와 낮부터 저녁까지 종달새처럼 지저귀었건만.

그때도 자신의 신변이라면 한마디도 안 하시던 분이 지금 나를 타이르기 위해 입을 여신다고. 사영은 험한 울상을 지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잃어버린 8년에 대해 정말 기억나는 게 없어 말을 아꼈던 초윤으로선 퍽 억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영의 속을 모르는 초윤은 가능한 모든 진심을 담아서 상냥하고 자상하게 말했다.

“아무리 내공을 쓸 수 없는 반쪽짜리 무림인 신세가 되었다곤 하나, 너희들은 여전히 내 눈에 무르고 약하기 그지없다. 너 역시도 영리한 아이니, 지금 실력으로 중원에서 마음을 놓기엔 부족하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터인데.”

“…….”

“제갈설린은 그나마 청해성을 건너 운궁으로 왔지, 너희들은 겁도 없이 신강을 건너 마교로 왔다. 나 역시도 너희들이 오면 안 되는 이유를 확실히 전한 뒤에 광동성을 떴으니, 내 말을 어겼다며 화를 내기에 충분하지 않았겠느냐?”

자상……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초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말에 꾸역꾸역 캐릭터 해석을 덮어씌웠다. 속상한 아이를 달래고 얼러 줘야 하는데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은 이 정도뿐이라니 땅을 치고 곡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전부 전해야 해. 초윤은 이제야 헛된 분노를 걷고 글썽거리는 사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그래, 차라리 다행이다. 내가 저질렀던 과오를 아이들이 고스란히 답습할 뻔했다는 사실을 그나마 일찍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화가 났다. 이곳이 어디인데,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감히 발을 들이고 들쑤셔 놓았냐며 분개했다. 눈도 뜨지 못하고 손끝도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네 목소리는 선명하더구나. 쫓아오는 마교인들을 몸소 매달고 도망가겠다 말하는 네 목소리가 말이다.”

“…….”

“하지만 다시 너희를 보게 되니 도무지 노기를 드러낼 수가 없더구나. 내가 너희를 지키겠다고 취한 행동이, 곧 너희를 사지로 밀어 넣는 선택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 아니에요, 스승님. 아닙니다. 저희가 멋대로 저지른 짓이에요. 제가 스승님께 도와 달라 말씀드린 탓, 다들 꼴사납게 붙잡혀 버린 탓…….”

“너희가 나를 사무치게 그리워하여 일러둔 대로 따를 수 없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너희들이 그리 사라졌다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

“무모했지. 무모하고 경솔했다. 하지만 내가 일조한 말썽이고 탈이다. 나는 너희들을 꾸짖는 대신, 앞으로는 내가 더욱 유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나니 결국 내가 느꼈던 분노는 너희들을 향한 화살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나에게, 너희를 이곳까지 오게 한 아둔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더구나.”

“……스승님.”

“너는 어떻더냐, 사영아.”

초윤은 사영의 손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분명 자신이 직접 반골세수를 거쳐 허물을 벗듯 탈피시킨 몸이었다. 오래되어 흉진 거죽을 벗기고 더욱 질기며 흠 없는 살갗을 함께 선물한 육신이었다.

하지만 닿은 손바닥에서 만져지는 굳은살과 도톰한 흉터들이 사영의 세월을 알려 주었다. 이 빼어난 육체에 기어코 거칠게 박이고, 깊게 새겨진 험한 시간이 피부 위 기록으로 겹겹이 남아 있었다.

……아, 정말 자랐다.

그렇다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사영이 초윤의 허벅지에 이마를 푹 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초윤은 엄지로 사영의 손등을 가만히 쓸어 주며 속삭였다.

“사영아, 나의 좋은 점만을 배워 가거라. 네가 아무리 너를 내 딸처럼 키웠다 하여도, 나의 나쁜 점까지 닮아 가면 안 돼.”

“스승님…….”

“어떻게 하는지는 방금 보여 주었지. 가서 먼저 사과하거라. 그러면 그 아이도 자연히 네게 미안하다며 눈물지을 것이다.”

너무 울면 짓무른 눈가를 숨기기도 어려워질 테니 적당히 그치고. 덧붙이는 말은 애처럼 우는 성인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라기엔 모순적으로 흐뭇한 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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