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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54화 (254/257)

254화.

“스승님……. 정말 꼭 오실 거죠? 다른 곳으로 가시지 않고, 정말 곧장 무림맹으로 오실 거죠?”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만드는구나. 금방 뒤따라가겠다는데도.”

“하지만 안심이 안 되는걸요……. 추적조가 붙으면 어떡해요. 그 미친 개자식이 갑자기 뒤따라오면 또 어떡하고요. 스승님이 다시 한번 사라지신다면 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하던 사영이가 결국은 울먹였다. 어렸을 땐 절대 울지 않던 아이가 재회한 뒤로 벌써 두 번째 눈물을 보이자, 당황한 초윤이 황급히 사영을 품에 끌어안았다. 계단 위에서 이미 한번 포옹한 적이 있어서인지, 주위의 사람들은 초윤의 다정다감한 행동을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일 따름이었다.

팔과 등, 어깨의 힘을 요하는 활을 주로 익힌 아이다 보니 겨울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품에 살짝 넘쳤다. 초윤은 훌쩍거리는 사영의 단단한 등을 가만히 토닥이며 말했다.

“임사영, 나를 너무 믿지 못해도 모욕이다. 마교의 내부 사정은 네가 내게 알려 주지 않았느냐. 초월량이 쉽게 신강을 벗어나지 못할 거란 사실은 누구보다도 네가 더 잘 알 터인데.”

“하지만…….”

“사저, 제가 스승님을 섬서성까지 모시게 되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너니까 걱정하는 거 아냐!”

방금까지 짓고 있던 울상을 와락 굳힌 사영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천오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초윤의 어깨를 조심히 당기며 의관이 흐트러지셨다는 말을 건넸다. 초윤이 사영의 등을 몇 번 더 두드려 준 뒤 물러나자, 천오는 착실하게 스승의 옷 앞섶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사영은 그 앞에서 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오, 제기랄! 임사현은 왜 경공이 느린 거야! 아니, 차라리 너랑 임사현 둘이 함께 갔으면 몰라. 왜 얘 혼자 스승님이랑 청해성 나들이를 하는 거냐고! 광동성에선 이런 걸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다고 해! 차라리 지금이라도 역할 바꿔. 내가 스승님과 함께 가는 편이 훨 낫겠어!”

“언니……. 저랑 함께 가는 게 싫어요?”

“아니야!”

송별의 끝을 기다리던 제갈설린이 울적하게 묻자, 사영이 지레 질겁을 하고 격하게 부정했다. 허둥대는 사영을 보며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 설린이 초윤의 눈에 들어왔다. 초윤이 속으로 피식 웃는 찰나, 등 뒤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날아와 박혔다.

“아무래도 우리 소문주가 불만이 많나 보군그래.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오.”

“아, 궁주님! 아닙니다!”

나라연천금강이 장령과 사현을 대동하곤 운궁을 걸어 나왔다. 사영은 이번엔 나라연 쪽으로 돌아서며 다급하게 포권을 취했다. 초윤은 조금 생경한 기분으로 사영이의 허술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적부터 마냥 의젓하고 영민했던데다, 커서도 초윤에겐 믿음직스럽기만 했기에 설린이 나타난 뒤 보게 된 첫째의 변화가 생소하면서도 귀하기만 했다.

사영의 솔직한 행동이 귀엽게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인지, 가까이 다가온 나라연 또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몇 달을 생이별하게 생겼으니 무리한 부탁이 맞지. 그대가 동생들을 중히 생각하고 있단 것쯤은 알고 있으니, 최대한 곱게 돌려보내겠소. 저번처럼 비무에 내보내거나 싸우게 만드는 일은 없을 거야. 정말 가는 길만 묻겠다고 약속하지.”

“아니에요, 궁주님. 도리어 튼튼한 점만큼은 내세울 수 있는 놈이니 마구 굴려 주셔도 됩니다. 하물며 궁주님께 직접 사사하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는데요. 모쪼록 제 아둔한 남동생이 운궁에 누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구박하는 듯한 말에 사현이 얼핏 울상을 지었으나, 사영은 그새 사회인의 얼굴을 장착한 채 생글생글 웃으며 포권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곤 정말 마음을 다잡은 듯 짧은 한숨을 폭 내쉬며 메고 있던 봇짐을 가슴 앞으로 돌렸다.

곤륜파는 장문인과 나라연천금강의 전폭적인 찬성하에 무림맹에 합류하게 되었다. 무림맹은 고강하고 강인한 곤륜파의 가맹을 두 팔 벌려 환영했고, 힘을 합하는 대가로 수많은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중원에서 멀찍이 떨어진 곤륜파의 위치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이번에도 서약만 번드르르할 뿐 이렇다 할 교류 없이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백협맹에 속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빛 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인 가맹이 될 게 분명했다. 이에 상업과 통신망에 특화된 하오문이 곤륜파에 닿는 길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로 했으나, 넓고 척박하며 인구가 적은 청해성에 유통망을 갖추려면 한두 해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일이 년 뒤, 청해성의 모든 연결다리가 완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무를 시작하기엔 중원의 사정이 급박했다. 당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마교의 발목이 묶였다고는 하나 언제 침략이 시작될지 예상하기 어려웠고, 또 무림의 내분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빙궁 사절단의 방문을 전해 들은 나라연천금강은 곤륜파 또한 사절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수십의 문도가 중원에 다녀오는 동안 곤륜파의 방어선이 취약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더욱 기회가 없을 것 같단 판단이었다.

사영은 곤륜파에게 많은 신세를 진 만큼 보답하고 싶었다. 스승님과 자신들을 대가 없이 도와준 것으로도 모자라 허무맹랑하게 들렸을 무림맹의 신조를 받아들이고 협력하겠다 말한 포용력, 그리고 무엇보다 중원의 세력과는 다르게 진솔하고 거침없는 운궁이란 집단이 깊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중원까지 가는 길을 고민하는 나라연에게 덜컥 동생을 두고 가겠단 말을 하게 되었다. 곤륜파의 사절들이 청해성과 섬서성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무림맹으로 향하는 길을 물어볼 필요가 없도록 편의를 봐주는 동시에, 중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방인이 될 그들에게 ‘하오문 소속 화경 고수’의 안내를 받으며 왔다는 명패를 달아 주고 싶다는 노림수였다.

나라연천금강은 이를 듣자마자 사영의 속을 알아챘는지 조금 웃었다. 그리고 거절할 이유가 없다며, 도리어 부탁하고 싶다며 받아들였다. 사영은 뒤늦게 조금 부끄러워했지만 무를 생각은 없었다. 사영은 겸연쩍게 뒷목을 긁적이며 그대로 방으로 돌아와선 두 놈 중 어느 놈이 남을 것이냐 물었고, 결과는 당연했다. 사현은 천오를 고집으로 꺾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현의 체류가 반강제적으로 연장되자 신이 난 건 운궁의 문도들이었다. 그들은 온종일 사현을 데리고 온갖 새로운 수련법이며 장법, 권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난리를 피웠다. 이는 어렵지 않게 나라연의 눈에도 들게 되어, 사현은 영광스럽게도 나라연천금강에게 직접 권법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그사이 초윤의 흔쾌한 허락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사영은 겉보기에 서글서글한 누나의 얼굴로 사현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하오문 사정은 섬서성에 도착하자마자 알아보고 연락할게. 별일 없을 거야. 있었으면 일찍 기별이 왔겠지.”

“응…….”

“예의 바르게 처신 잘하고, 사고 치지 말고, 툭하면 울지 말고, 아무나 때리지 말고, 남의 집 밥을 한 끼에 꾸역꾸역 5인분씩 미련하게 축내지 말고. 너 내년이면 이립이다.”

“알아, 안다구…….”

“서문천오 너는…… 뭐, 잘해라. 잘 못하면 죽는다.”

“예, 사저.”

사영은 퉁명스러운 장령에게도, 정중한 나라연에게도 살가운 인사를 남긴 뒤 마지막으로 초윤을 다시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조금 서러운 한숨을 푹 내쉬며 야윈 스승에게 조심히 오시라 속삭였다. 초윤이 재차 알겠다 안심시키며 두어 번 도닥여 주자, 곧 털어 내듯 기합을 넣은 사영이 평소처럼 당차게 웃으며 면사를 꺼내 얼굴을 반쯤 가렸다. 그런 뒤 제갈설린을 향해 등을 내보이며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설린 또한 천오를 포함해 배웅 나온 모두에게 공손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초윤에게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하곤 모든 짐을 등 뒤로 둘러메고 사영의 등에 조심히 업혔다. 사영은 설린의 무게를 가볍게 지고 일어나선 한차례 추켜올리며 말했다.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경공으로 갈게요. 설린이가 곤륜산에 올라오면서 자기 말을 산 아래 유목민들에게 맡겼다고 하니, 스승님은 그걸 타고 와 주세요. 저희가 내려가면서 찾아다가 얘기해 둘게요.”

“그래, 알았다.”

“늦지 않게 강녕히 오세요. 꼭 오셔야 해요. 꼭이요.”

“오냐, 약속하마.”

미련 많은 눈으로 초윤을 바라보던 사영이 곧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궁의 정문을 나섰다. 그 밑으로는 험준한 산세였으나, 사영의 눈에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설린과 함께 큰 목소리로 인사를 남긴 사영이 밑을 향해 몸을 던졌다. 비탈길을 내려가는 방법도 있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급한 성질머리는 고치지 못했는지 일부러 가파른 경사를 골라 뛰어내리듯 투신했다. 졸지에 내장이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 설린의 높고 새된 비명이 멀리 이어졌다.

초윤은 정문을 조금 따라 나가선 빠르게 작아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금 웃었다. 그러나 어쩐지 헛헛한 기분에 쉽게 돌아설 수가 없었다.

사영과 설린이 산 밑으로 내려가 지평선으로 나아갔다. 초윤은 그들이 땅끝 너머로 사라지고도 일각을 가만히 서 있었다. 오한이 들 것을 걱정한 천오가 몇 번을 어르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초윤의 뒤를 지키고 선 사람은 어느새 천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 나도 가야지. 약속한 대로 건강하게, 빠르게, 꼭 가야지.

초윤은 겉옷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다시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어도 왜 이별은 늘 사람을 허전하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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