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내 컨디션이 완벽히 회복될 때까지는 일도 쉬어 가며 수발을 들 것 같던 형이, 갑작스레 긴급한 장기 임무가 발생했다며 떠났다.
임무는 핑계일 거다. 파장 검사를 받으러 간다더니 그 직후 튀어 버린 거라면 이유야 한 가지 아닐까.
근 이틀 동안 나로 인해 나아진 형의 몸 상태가 파악된다면, 분명 협회 관계자들이 형에게 효과적인 가이딩을 한 인물이 누구인지 캐내려고 들 것이었다.
S급 에스퍼에게 먹히는 가이딩이라니.
얼마나 눈이 돌아가겠어?
그걸 염려한 형은 능력을 남발할 수 있는 장소에서 파장을 망가뜨린 뒤 협회로 향했겠지.
그리고 그 상태로 돌아와서 나와 대면할 시에는, 이번에는 못 참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서 피한 것이지 싶다.
결과적으로 나한테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시간을 준 셈이다.
아마 스스로를 파렴치한으로 여기며 내적 싸움을 벌이지 않았을까.
얼마나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였을지 눈에 선하다.
“…….”
정작 나는 닥쳐올 상황이 기대돼서 두근거리는데.
……참 신기하지. 아픈 건 싫은데 말이다.
형이 돌아오면 둘이서 끝까지 갈 거라는 상상에, 그러잖아도 뜨끈하던 몸에 열이 훅 올랐다. 이불을 젖히고 비척비척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었다.
겨울 공기가 들이닥쳤다. 간헐적으로 부는 바람이 아프게 피부를 할퀴어 왔다. 그래도 역시 환기를 시키니 숨통이 트인다. 머릿속에 그려지던 자극적인 상상도 흩어지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창가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이윽고 시선을 내려, 아래쪽으로 펼쳐진 정원을 감상하던 때였다.
“응……?”
창문 밑쪽에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짧게 친 머리와 매우 떡 벌어진 체격, 복장을 보아하니 우리 집 경호원인 듯한데……. 초면인 상대였다.
“……!”
어어. 아냐.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머뭇거리던 남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늘부터 도련님의 경호 인력으로 투입된 심태성입니다.”
심태성.
사진으로 본 적 있던 가이딩 목표 대상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런 식으로 불쑥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띠링!
마치 당황하지 말라는 양, 시스템이 설명 창을 띄웠다. 내가 일전에 이미 확인했던 정보들이었다.
[폭주 위험군 명단 . . . <사진> 심태성: S급, 순간이동 능력자, 28세 . . .] [각 에스퍼별 선호 섹스 키워드 . . . 심태성: 야외, 구강, 반라 . . . *공통 키워드: 다섯 시간 이상] |
순박하게 잘생긴 외모와 다르게 이 사람도 상당히 범상찮은 취향을 가지고 있다. 야외라니, 스릴감 넘치기는 하겠는데.
“아. 네, 안녕하세요.”
뒤늦게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세를 풀며 마주 인사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빤히 봤네요. 낯선 분이라 그만.”
“아닙니다.”
“제 경호원이시라고……. 저는 처음 듣는 소식인데.”
아무리 차화의 세력이 세력이라지만, 무려 S급 에스퍼를 경호원으로 들이다니.
심지어 사회적 지위가 높은 만큼 적이 많을 어머니도 아니고 나에게 붙인 건……. 필시 형의 소행이다.
아무래도 내 보호 레벨을 올려야겠다고 판단한 듯싶었다.
대단해, 우리 형. 대체 어느 틈에 알아보고 이런 거물을 차출해 두고 간 거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잠깐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하실래요?”
“괜찮습니다, 도련님.”
“앞으로 계속 함께하게 될 사이잖아요. 지금 집 안에 아주머니랑 저 말고 아무도 없으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 혹시 내가 부담스러우신 건가.”
끝에 가서는 조금 풀이 죽은 낯으로 중얼거렸다. 심태성이 움찔했다.
이후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직무 태만입니다.”
어렵사리 나온 말은 사무적이면서도 거절에 대한 미안함을 담고 있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 마시는 일이요?”
“예.”
“음……. 제 경호 맡으셨다면서요. 그럼 저랑 가까이 있을수록 임무를 더 잘 수행하시는 거 아닐까요?”
상체를 바깥으로 더 기울이며 눈을 조금 반짝거렸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그런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
심태성은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위험하니 몸은 물리십시오.”
“네.”
결국 집에 들어오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심태성을 내려다보다가,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보아하니 적극적이거나 진심으로 부딪히는 상대에게 약한 타입이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별말씀을요.”
아주머니가 가볍게 다과를 세팅해 주었다.
곧 거실에는 절도 있는 자세로 앉은 심태성과 나만 남았다.
“편하게 드세요.”
“예.”
곰처럼 커다란 손에 들린 찻잔이 앙증맞아 보였다. 거구만 두고 보면 충분히 위협적인데, 약간 처진 눈꼬리가 그나마 인상을 중화시킨다.
“원래 전담까지는 없었거든요.”
나도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문을 열었다.
“그냥 제가 외출할 때 돌아가면서 따라오시곤 했어요. 경호원분들요.”
“그러셨습니까.”
“네. 저는 괜찮은데 형이 워낙 가족들 안위에 신경을 많이 써서……. 심 경호원님도 저희 형이 뽑으신 거죠?”
“예.”
심태성이 조심스럽게 잔을 내려놓았다.
“어제 팀장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오게 됐습니다.”
“팀장님?”
자연스러운 호칭에 의아해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한때 제가 후임이었던 시기가 있어서.”
“아.”
과거에 모종의 이유로 팀을 나간 모양이었다. 그게 무엇일지 궁금하기야 하지만, 초반부터 너무 꼬치꼬치 물어보면 이 새끼는 뭔가 싶을 테니 참았다. 기회란 서두르지 않을수록 빨리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근데 어제라면……. 바로 와 주신 거네요.”
“저는 단기 경호 의뢰를 받는 형태로 일하는 중이었고, 마침 이전 건이 종료된 상황이었습니다.”
“와.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구나.”
형과의 유대감도 꽤 있는 모양이고.
“사실 최근에 저한테 일이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형이 제 안전에 좀 더 민감해졌나 봐요.”
S급 가이드의 정체가 발각되는 즉시 달려들 에스퍼가 몇인가. 그러나 그럴 경우를 저어하여 내 경호 인력 규모를 별안간 어마어마하게 확대한다면 오히려 이러쿵저러쿵 주변의 의심을 살 터다. 고로 형은 향후에도 심태성 외의 경호원을 더 영입하지는 않을 테지.
애초에 심태성 하나만으로도 굉장한 전력이잖아?
“저도 그래서 마음이 착잡한 상태라……. 혼자 방에서 쉬고 있다가 경호원님을 본 거예요. 다른 사람이랑 대화라도 하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날아가지 않을까 싶었죠.”
무슨 사정인지는 알려줄 수 없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처음 만난 상대이고, 형과의 약속도 있으니까.
이어 쓴웃음도 던져 준다.
“제가 너무 고집을 부렸죠?”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심태성이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왔다.
“다만 도련님께서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으십니다. 열이 있으신 것 같은데 올라가셔서 더 쉬시는 편이…….”
“이 정도면 거의 아무렇지도 않아요.”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나도 내 상태가 어떤지 안다. 뺨은 발그스름하고 숨소리도 고르지 않겠지.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삼십여 분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내가 화제를 이어 나가면 심태성은 짧게 응수하는 식이었다.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고 어떤 주제건 진지하게 들어준다. 공과 사, 어느 쪽에서든 성실하게 지낼 것 같은 성격이었다.
나는 상대방을 면밀히 뜯어보며 내심 감탄했다.
심태성 또한 가이딩이 부족해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 왔을 게 분명한데도, 그를 티 내지 않는 법을 터득한 듯 보였다.
뭐, 하긴. 우리 형도 그랬다.
하지만 본디 사나운 인상인 형과 비교해 보면 이 사람은 살짝 수더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 상대의 거짓말이 꽂혀 왔다.
“네?”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에스퍼가 아니시라고요?”
“예.”
이게 뭔 개소리야.
황당한 내 심정을 알 리 없는 심태성이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양 응시해 온다.
수준급의 연기였다.
“…….”
지끈거리는 머리를 굴렸다.
내가 가이드로 발현한 직후 검색해 본 정보에 의하면, 가이드와 다르게 에스퍼의 발현 과정은 화려하다. 본인에게 생겨난 능력이 제어가 되지 않고 폭발하듯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인지력이 있는 존재라면 자신이 무슨 힘을 지닌 에스퍼가 되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시스템이 준 정보가 틀릴 리도 없고.
그러니까 지금 저 남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맞다.
왜.
왜 에스퍼임을 숨긴 채 살고 있을까?
어떤 사연이 있어서? 정체가 뭐기에?
……아니, 잠깐만.
그건 일단 넘어간다 치고.
다시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 에스퍼는 피부만 스쳐도 상대가 가이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가이드라는 사실을 세상에 숨기고자 하는 형이, 나를 밀착 경호하는 존재를 에스퍼로 둘까?
나는 마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형은 자신이 아는 에스퍼가 아닌 이들 중에서……. 강자로 인정하는 심태성을 영입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