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에스퍼를 투옥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 시설.
전투복을 입은 남자가 경비병들의 인사를 받으며 실내로 들어갔다. 무표정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는, 가장 보안이 철저한 곳에 위치한 독방 앞에서 멈추어 섰다.
“장희강.”
짤막한 부름에, 쇠창살 너머 감방 벽에 걸려 있던 이가 고개를 들었다. 노출되어 있는 탄탄한 상체가 혈흔으로 가득했다.
그로 인해 동료나 가족을 잃었던 대원들이 울분을 풀며 고문한 흔적이었다.
S급 에스퍼 특유의 자가 치유력으로 상처는 남지 않았지만……. 고문 당시 느껴졌을 지독한 고통을 수상쩍으리만치 순순히 받아들였던 일급 범죄자는, 수감된 이후로도 무기력하게 숨만 쉬어 왔다.
빛 한 점도 감돌지 않는 눈동자가 방문자를 훑었다.
“……차은혁.”
갈라진 입술 새로 건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무엇일까.
“왜…….”
“…….”
“승자의 얼굴이 아니지?”
차은혁 또한 자신과 다를 바 없이, 모든 것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는.
이는 비웃음이 아닌 솔직한 질문이었다.
장희강은 차은혁이 자신에게 오래도록 원한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차은혁의 입장에서는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해소한 시점이 아닌가.
법적인 처벌을 위해 저를 지금 당장 직접 죽이지는 못하지만, 자신은 틀림없이 사형수가 될 터다.
죽음을 앞둔 원수를 제법 만족스러운 눈길로 볼 만도 하건만.
철창 안과 밖의 존재가 뒤바뀌어도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차은혁에게는 영혼이 없어 보였다.
“끝난 게 아니니까.”
차은혁이 낮게 대꾸했다.
“아직 주청경이 남아 있다.”
“……주청경. 그래.”
중얼거린 장희강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내가 추적에 도움이 될 거라 여기고 왔나?”
“그럴 리가.”
차은혁은 단칼에 부정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지만, 완벽한 아군이 될 수는 없다. 이미 주청경을 통해 확신하게 된 사실이었다. 주청경은 장희강의 기지에 대한 정보를 흘리기는 했어도, 차은혁 자신과 장희강 측의 공멸을 노리고서 끝끝내 작전을 수행하러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주청경과 협상했던 때와 같이 장희강에게서도 정보나 획득하면 될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오랫동안 같은 소속이었던 만큼 장희강 또한 주청경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테니.
그러나 그게 주청경의 근거지에 관한 정보는 아닐 것이었다.
만일 장희강 측에서 그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 먼저 그쪽으로 향하여 배신자를 처단해 두었겠지.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면 주청경이 멀쩡히 테러를 일으키거나 저와 접선을 시도하는 일이 애당초 발생했을 리 없었다.
“내가 물으려는 건 하나야.”
그랬기에 그저 본론만을 꺼냈다.
“투항했던 이유.”
국내 최대 규모의 테러 조직을 소탕하는 작전이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으나, 장기전으로 이어질 시 영역의 주인인 적들에게 유리해졌을 테다. 이에 차은혁은 가장 우선적으로 장희강을 색출해 결전을 치르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는 자신의 완벽한 패배였다. 그뿐 아니라 협조코자 찾아왔던 심태성 역시도 무참히…….
……잠깐.
심태성이, 장희강을 잡는 일에 협조를 하러 왔다고?
그러기는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연락을 했던가.
묘하게 무언가를 잊은 듯도, 어긋나는 듯도 한 기억에 미간이 절로 좁아졌다.
정말 차은혁, 자신을 위해 와 주었나?
“……말해.”
거슬리는 느낌을 억지로 욱여넣으며 장희강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무슨 꿍꿍이인지.”
자신과 심태성에게 강력히 응전했던 주제에, 나중에 밀려든 대원들에게는 투항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의혹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어떠한 속셈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장희강이 흐릿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보기에는 지금 내가, 무언가를 숨길 의지가 있어 보이는 모습인가?”
“…….”
서로를 보고 있지만 서로에게 집중하지 않는 눈동자가 끝없이 가라앉는다.
“그냥, 전부…… 의미가 없더군.”
아주 어렵게 얻어 낸, 중요하고 의미 있던 무언가를 잃은 것 같았다.
돌연 그런 기분이 들기 시작했던 까닭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장희강은 어쩌면 자신이 지쳤기 때문일 거라고 여겼다.
전부터 구원받지 못해 들었던 상실감이, 그 끝을 앞두고서 새삼스레 찾아온 것이라고.
폭주는 곧 죽음과도 같았으니까.
“…….”
……의미.
마음속으로 되뇐 차은혁은, 입을 다문 채 장희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고작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무척 이상히도, 원수의 눈빛과 목소리에 스며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 역시 쥐고 있던 무언가를 허망하게 잃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듯한 공허감.
장희강으로부터 치명상을 입고 의식을 회복했던 날, 그날을 기점으로 그러했다.
당일에는 실로 사고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멍한 감각에 지배되었다. 주변인 모두가 그의 뇌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할 정도였다.
곁을 지키던 모친과 여동생의 눈물이 아니었으면 그는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그들의 근처가 너무도 허전해, 연방 주위를 돌아보는 이상 행동을 했으나…….
결국 가족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과 의무감을 지키기 위해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차은혁은 본인의 상태를 어렵지 않게 간파한 죄수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죄수는 더 이상 그를 마주 보지조차 않고 무감정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음울한 정적이 암막처럼 드리워졌다.
***
지역 인구수는 적지만 토지 규모가 비교적 큰 연단에 지하 도시가 존재했고, 그곳에서 테러 조직이 병력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아챈 정부군이 사활을 건 작전을 벌인 끝에 장희강을 생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은 왈칵 뒤집혔다.
그리고 그에 더해, 또 다른 놀라운 사건이 알려졌다.
새로운 S급 에스퍼의 등장이었다.
차은혁에게 협력하여 장희강과의 교전을 치렀다는 인물이 전투 현장에서 차은혁과 함께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이후 병원에 이송되어 의료 처치를 받던 중 정체가 드러났다.
원래 작전에 투입된 인물이 아닌 데다가, 신원을 파악할 만한 소지품도 지니고 있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그가 에스퍼이리라고 간주한 의료진은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파장 검사를 포함한 여러 항목의 검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대상이 실제로 S급 에스퍼라는 진실을 파악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의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거나, 당사자인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수많은 이가 혈안이 되었다. 외신 기자들 역시 해당 정세에 지대한 흥미를 품은 채 하루가 멀게 입국해 왔다.
쿵쿵쿵.
“심태성 씨, 계십니까!”
“잠시만 시간 좀 내주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한껏 키운 목소리. 예민한 청각을 괴롭히고도 남는 소음이 배려 없이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태성은 일말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거실 벽에 기대앉은 채, 활짝 열린 창문 밖만 쳐다보았다.
겨울의 끝자락이 몰고 온 찬 바람에 커튼이 펄럭였다.
자연적인 현상으로는 추위를 느낄 리가 없는 몸인데, 왜인지 서늘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인 그가 눈을 감았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목을 어루만져 오는 것만 같았다. 곧고 고운 손가락으로 위로하듯, 진심 어린 애정을 전하듯이.
간간이 나타나는 환각이었다.
그는 손을 뒤로 뻗어 그쪽을 더듬었다. 있을 리 없는 타인의 손을 잡고 싶은 양, 한참을 그랬다.
끝내 스르르 내린 제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스스로를 가두다시피 하는 생활을 이어 오며 드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였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
“……!”
시끌시끌하던 소리가 훅 멎었다.
심태성은 손을 떼어 내며 얼굴을 들었다.
쏴아아. 쏴아아.
시원하게 파도가 치고, 수면이 햇빛을 머금은 채 반짝였다.
아무도 없는 섬이었다.
인기척이라고는 자신의 것뿐인 곳에, 그는 볼품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언젠가 폭주할 때를 대비해 사 두었던 사유지였다.
가이드였던 동생의 죽음은 원치 않아도 그에게 어마어마한 재산을 안겼었다. 과거의 그는 그것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점점 세월이 흐를수록 깨달았다. 자신의 죽음은 비단 스스로만이 아닌, 주위의 많은 목숨들을 함께 데려가리라는 사실을.
어디서든 기록으로 찾아볼 수 있던, S급 에스퍼였던 이들의 말로.
차은혁을 언젠가는 반드시 터지게 되어 있는 시한폭탄을 보듯 했던 시선들.
제 자산을 합쳐 무덤을 마련하기에는 충분한 동기였다.
“…….”
주변을 무의미하게 둘러보았다.
답답했던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능력을 써서 이동해 버린 걸까.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에 붙어 있던 모래가 금가루처럼 떨어져 내렸다. 맑은 하늘을 그대로 비추는 바다가 썩 아름다웠다.
그러나 바닷가를 거니는 대신, 저만치 홀로 존재하는 집으로 향했다.
텅 빈 내부에 발을 들이자 싸늘한 공기가 몸을 감싸 왔다.
그는 침실로 쓰려고 정해 두었던 방 쪽으로 다가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이내 내부가 완전히 드러났다.
아무도 쓴 흔적이 없는 침대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서 창가의 커튼을 차르륵 걷었다. 마치 바깥에 있는 것처럼 밝은 햇살이 쏟아졌다.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
하지만…….
그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오던 어떠한 것임은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