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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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스도 해 주는. 이겸은 부끄러워 이불 안으로 더 몸을 움츠렸다. 권태정과 나눈 키스를 떠올리자 코끝으로 비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기울어진 우산 안에서 잡은 권태정의 팔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안 순간을 떠올리자 또 눈동자가 뜨거워졌다. 이겸은 저에게 기울어진 권태정의 다정함과 마주할 때마다 꼼짝없이 녹아내렸다.
정신없이 권태정을 떠올리던 이겸은 머리맡에서 갑자기 진동이 울리는 것에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들어 휴대폰을 가지고 이불 안으로 들어왔다. 이 새벽에 누군가 싶어 본 화면에는 ‘실장님’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겸은 눈을 떼지도 못하고 바라보다가 혹시라도 끊길까 두려워 얼른 폴더를 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받았다. 아직 안 잤어? 자는 줄 알아서 딱 열 번만 울리고 안 받으면 끊어야지…. 했는데.
권태정의 목소리는 취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낮았다. 이겸은 취한 티가 나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두근대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잠이 안 와서요. 실장님은… 아직 밖이세요?”
-응…. 집 앞이야. 다 왔어.
“아…. 얼른 들어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목소리 듣고 싶어서. 듣고 가려고.
낮고 평소보다 느리게 흐르는 목소리가 조용한 방 안 이불 속에서 울릴 때마다 이겸은 조금씩 새빨개졌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처음으로 닿는 귀가, 그리고 그다음에는 타고 내려가는 목덜미가, 그리고 이제는 목소리 하나에 숨이 막혀 버린 모든 곳들이.
이겸은 할아버지가 깨실 것 같기도 하고, 또 저도 조금 더 편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에 이불 안에서 조용히 나와 살금살금 걸어 방을 벗어났다.
-어디 가?
“…밖에 나가서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나 보고 싶어서?
숨과 뒤섞여 흐르는 나른한 웃음소리에 이겸은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고 나와 문을 닫았다. 이 정도 떨어졌으면 편하게 말을 해도 할아버지가 깨시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왔어?
“네….”
-응, 빨리 와….
권태정이 자주 앉아 있는 허물어진 담벼락 쪽으로 가서 앉은 이겸은 빨리 오라는 말에 괜히 발끝으로 바닥을 콕콕 찍었다.
“술 많이 드셨어요?”
-응…. 이렇게 많이 마신 거 진짜 오랜만이야.
“…얼른 들어가서 주무세요.”
-얼굴도 못 봤는데? 왜 이렇게 안 와….
꼭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내내 말하는 것에 바닥만 발로 살살 문지르던 이겸이 홧홧한 뺨을 다른 손으로 꾹 누르며 겨우 입술을 열었다.
“…내일… 볼 수 있으니까… 오늘은 얼른 들어가세요. 그러다가 차에서 주무시면 안 되잖아요.”
-아니, 내일 말고 지금. 거기서 여기가 얼마나 된다고 안 와.
뭔가 묘하게 대화가 어긋나고 있는 기분에 이겸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빨리 와, 이겸아.
“…어디신데요?”
-집 앞…. 네 집 앞….
권태정의 마지막 말에 벌떡 일어난 이겸이 얼른 골목 양쪽 입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느 쪽 입구부터 가 봐야 하는지 몰라 망설이다가 결국, 이겸은 가까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분명 걷는 것으로 시작한 두 발은 결국, 골목을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골목을 벗어난 이겸은 그 어귀에 선 권태정의 차를 보고 멈춰 섰다. 권태정이 말한 ‘집’이 제가 있는 곳이었다는 걸 두 눈으로 더 확실하게 보고 나자 속눈썹이 축축해졌다. 이겸은 권태정의 차를 보자마자 용기를 잃은 두 발을 겨우 조금씩 움직여 가로등 불빛이 겨우 조금 닿는 곳에 선 권태정의 새카만 차로 다가갔다.
“…….”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창이 열린 뒷좌석 쪽으로 겨우 한 걸음씩 옮기다가 그 창 안까지 겨우 닿은 아주 미약한 가로등 불빛 안에 머문 권태정을 두 눈에 담았다. 권태정은 시트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어디야?
“……저 왔어요.”
목소리는 형편없이 작았다. 떨림과 긴장, 울어 버릴 것만 같은 바보 같은 감정까지 전부 섞여 어떻게 말을 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
이겸의 말에 눈을 뜬 권태정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웃었다. 여전히 휴대폰을 귀에 댄 채였다.
“왜 이제 와.”
휴대폰 안으로도 또 밖으로도 동시에 권태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겸은 휴대폰을 내리는 권태정을 보며 저도 따라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스르륵 내렸다. 목소리가 닿던 귓가가 너무 뜨거웠다.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얼른 이리 와.”
안에서 문을 연 권태정이 더 안쪽으로 들어가며 이겸에게 손짓했다. 그런 권태정을 보던 이겸이 가만히 조금 전까지 그가 앉아 있던 자리로 올라앉아 문을 닫았다.
“…전 실장님 사시는 집… 앞에서 전화하신 건 줄 알았어요.”
“아…. 내 집? 아니야, 아니야. 거기로 가려고 했는데 너 보고 가려고 왔어.”
“…….”
술에 취한 권태정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대하기 어려우면서도 평소보다 말이 느린 게 조금 귀엽게 느껴지는 것에 이겸은 옆에서 저만 보고 있는 권태정을 흘끗흘끗 몰래 바라보았다.
“왜 몰래 봐, 또.”
드디어 봤는데 얼굴을 제대로 봐 주지 않는 게 싫었는지 권태정이 손을 들어 이겸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아 제 쪽으로 돌렸다. 이겸은 따뜻하고 큰 권태정의 손에 잡힌 채 눈을 맞췄다.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하는데 정작 술 냄새는 그리 많이 나지 않았다. 술 냄새보다 오히려 권태정에게서 나는 마른 장미향 같은 페로몬 향이 더 짙게 났다. 가까이 다가가 그 향을 더 맡고 싶다고 생각한 이겸이 제가 한 생각에 놀라 다시 시선을 피했다.
“이겸아, 오늘 뭐 했어?”
“…점심 먹고… 집에 있다가 아르바이트 갔어요. 그리고 오늘 카페에 사람이 많아서… 마감이 늦어졌거든요. 그래서 한 시간 정도 늦게 끝났어요.”
“또? 난 안 보고 싶었어?”
술기운 때문인지 권태정은 평소보다 더 직설적인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 냈다. 이겸은 그런 권태정의 말에 깜짝깜짝 놀라 바로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해 눈만 빠르게 깜빡였다.
“난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집으로 안 가고 너 보러 왔잖아.”
또다시 정확하게 일직선으로 다가와 마음으로 확 꽂히는 말에 이겸은 권태정의 말이 심장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마주했다. 취했으니까, 이런 사소한 대화는 술과 함께 전부 휘발되어 사라질 테니까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시선을 마주해도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겸은 세차게 뛰는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권태정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최초의 용기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용기이기도 했다. 권태정이 그런 이겸을 보고 자꾸 웃으며 뺨을 귀엽다는 듯 매만졌다.
“너도 알지, 너 예쁜 거.”
“…저 안 그래요.”
“뭐가 안 그래.”
“…하나도 안 예뻐요.”
“무슨 소리야. 내가 눈이 얼마나 높은데. 넌 그… 그 사진부터 예뻤어.”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겸의 증명사진을 떠올린 권태정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바라보는 이겸을 보며 또 웃었다.
“그거, 네 증명사진. 여기 올 때 주민 리스트 봤거든.”
“아…. 그거… 이상하게 나왔는데….”
“실물이 더 예쁘긴 해.”
권태정이 웃을 때마다 이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넥타이도 풀려서 늘어져 있고, 셔츠 위에 단추도 두어 개 풀려 있는데도 전혀 흐트러져 보이지가 않았다.
“이겸아.”
“…네.”
“술 마셔 봤어?”
“…한 번 마셔 봤어요.”
“언제?”
“전에 아르바이트 끝나고… 형이 치킨 사 주셔서 갔었는데 거기서 맥주 한 모금 마셨었어요.”
한 잔도 아니고 한 모금을 마셨다는 것에 웃은 권태정이 이겸의 뺨을 살짝살짝 손끝으로 건드렸다.
“왜 한 모금만 마셨어.”
“너무 써서요.”
이겸의 말에 힘이 빠져 늘어져 있어도 넓은 어깨를 흔들며 웃은 권태정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줘서 이겸의 보들보들한 뺨을 꼬집어 흔들었다. 하지 말라는 말도 안 하고 그냥 제가 만지면 만지는 대로, 꼬집으면 꼬집는 대로 가만히 있는 이겸이 귀여웠다.
“아직 애기라 그래.”
“…저도 이제 어른인데….”
“어른이었어?”
“스무 살이면 어른이잖아요. 일도 하고 있고, 돈도 벌고….”
“와, 그럼 이제 연애만 하면 되겠다.”
시트로 기대고 있던 몸을 기울여 이겸의 어깨 위에 머리를 댄 권태정이 피곤한데 절대 잠들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아…. 진짜 존나 좋은 냄새 나.”
이겸의 어깨 위에서 고개를 앞으로 기울여 깊게 페로몬 향을 들이마신 권태정이 아예 작정을 한 것처럼 어깨에 코를 박았다가 이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갑자기 목덜미에 눌리는 입술의 말랑한 느낌과 숨에 놀란 이겸이 권태정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지만, 밀어내지는 못했다.
“…아….”
술에 취해 자제력이 사라진 데다가 이겸의 좋은 향까지 맡은 권태정은 스킨십에 거리낌이 없었다. 목덜미를 코로 문지르고, 또 입술을 벌려 머금다가 쪽, 쪽 입을 맞췄다. 손 하나를 들어 이겸의 뺨을 매만지기도 하고, 엄지와 검지로 귀를 잡아 느릿하게 문지르기도 했다. 이겸은 그런 권태정에게 속절없이 끌려갔다.
“…잠깐, 잠깐만요. 실장님…. 아, 흣….”
목덜미를 아프지 않게 빠는 느낌에 이겸의 숨이 달아올랐다. 부드럽고, 또 간지러운 느낌에 몸이 자꾸만 이상해졌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부끄럽고, 핥는 느낌이 날 때마다 허벅지가 오므라들었다. 온몸을 데우며 오르는 미열에 이겸의 감긴 눈꺼풀이 흔들렸다.
이겸은 권태정의 커다란 몸에 문까지 밀려나 겨우 단단한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제야 권태정이 목덜미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이겸을 바라보았다.
“설 것 같아.”
이겸은 잠시 권태정의 말이 무슨 말인지 해석하려 생각에 잠겼다. 권태정은 그런 이겸을 보며 손을 하나 잡아 들어 손목에 입 맞추고 올라가 손바닥에 입술을 묻은 채 쪽, 쪽 쉴 새 없이 입 맞췄다. 그제야 권태정의 말을 이해한 이겸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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