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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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뭐 마시고 싶으면 꺼내 마실게. 그래도 되지?”
“네, 그럼요. 편하게 계세요. 그런데 갈아입으실 옷이 없어서…. 제 옷은 실장님께는 다 작을 텐데….”
“괜찮아. 차에 여분 셔츠는 있거든. 혹시 몰라서 셔츠는 늘 가지고 다녀. 회사 처음에 들어갔을 때 중요한 회의가 있었는데 시작 직전에 어떤 직원이 나한테 커피를 쏟은 적이 있거든. 그 꼴로 회의 들어갔다가 쪽팔려서 그 뒤로는 차마다 셔츠 한 장씩은 넣고 다녀.”
권태정이 말하는 회사 이야기에 이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번듯한 회사에 괜찮은 직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에 슈퍼 아주머니께 들은 기억이 났다.
“오늘은 이거 입고 자고, 내일 가기 전에 뭐 셔츠만 갈아입고 너 데려다준 다음에…. 집에 가서 씻고 오면 될 것 같아. 일정 빡세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렇게 죄송해할 거 없어. 내가 하기 싫었으면 안 했지. 나 하기 싫은 건 진짜 안 하거든. 해야 할 필요를 못 느껴.”
정말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권태정이 서랍에서 옷을 꺼내는 이겸을 바라보았다. 하얀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꺼낸 이겸은 마지막으로 슬쩍 권태정을 보고는 속옷을 꺼내 티셔츠와 바지 사이에 감췄다.
“뭘 또 그렇게 감춰. 그거 내리고 올리고 내가 다 했는데.”
“…이, 이상한 말씀 하지 마세요….”
조금도 돌아가지 않고 직접적으로 확 와서 꽂히는 말에 발긋하게 달아오른 이겸이 괜히 방바닥에 난 흠집을 보며 입을 열었다.
“…먼저… 씻으셔도 돼요.”
“난 너 씻고 씻을래. 그래야 거기서 네 냄새 날 거 아냐.”
어떻게 저렇게 다정한 웃음을 지으면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나 싶었다. 이겸은 제가 챙긴 옷을 품에 안고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아 잠그기까지 하고 문에 기대어 서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는 와중에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고개를 세게 저어 생각을 흩트린 이겸이 한쪽에 옷을 놓고 입고 있던 남방과 티셔츠를 벗었다. 화장실에는 저밖에 없는데 문 하나만 열면 권태정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옷을 벗는 것도 괜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옷을 벗을 때는 차에서 권태정이 제 속옷을 내리던 느낌과 조금 전에 했던 말이 동시에 떠올라 더더욱 부끄러워졌다.
‘그거 내리고 올리고 내가 다 했는데.’
밴드 부분에 손가락이 걸리던 느낌과 아래로 내려가던 느낌, 허벅지를 스치고 내려가 무릎 정도에서 멈추던 그 느낌까지 떠오르자 저절로 성기가 비벼졌던 것도 떠올랐다. 이겸은 반쯤 열이 오른 몸을 진정시키려 얼른 물이 졸졸 나오는 샤워기로 조금 차가운 물을 몸에 뿌렸다.
‘난 너 씻고 씻을래.’
그래도 자꾸만 권태정의 목소리가 몸에 달라붙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자극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야 거기서 네 냄새 날 거 아냐.’
그 말을 떠올리는 순간 조금 더 흥분한 이겸의 몸에서 조금 더 짙은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달콤하면서도 새큼새큼한 느낌이 나는, 누구라도 맡으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일 수밖에 없는 페로몬 향이 화장실 여기저기로 묻었다.
이겸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며 비누 거품을 내 몸을 씻었다. 몸이 가라앉을 때까지, 평소보다 더 오래.
화장실 청소를 하고 머리까지 싹 다 말린 이겸은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안을 꼼꼼히 살폈다. 제가 아무리 청소를 해도 워낙 낡은 집이라 한계가 있었다. 부디 권태정이 불쾌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한참 만에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그 소리에 벽에 기대고 앉아 TV를 보고 있던 권태정이 이겸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나 씻을까?”
“…네.”
기다란 다리를 접으며 일어난 권태정이 낮은 천장에 살짝 몸을 굽혔다. 다른 것보다 가장 불편한 것은 옛날 집이라 천장이 무척 낮다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도 아닌데 같은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기분이 이상한지 제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는 이겸이 귀여웠다. 긴장 좀 풀라는 의미로 말간 뺨을 살살 문지르니 오히려 더 긴장하는 게 보였다. 그조차도 귀여워 웃은 권태정이 보들보들한 머리칼을 한 번 쓰다듬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 씹.”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확 끼치는 이겸의 페로몬 향에 순간 아찔해졌다. 권태정은 겨우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기대어 섰다. 좁아터진 화장실은 정말 별로였다. 군데군데 낡아 깨져 사라진 타일과 샤워 부스 하나 없이 벽에 덩그러니 걸린 샤워기까지 전부 권태정에게는 너무나 낯선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불편함이 올라오기도 전에 화장실 가득 퍼져 있는 이겸의 페로몬 향이 권태정의 얼굴을 매만졌다. 숨을 쉬면 쉴수록 아랫배가 울렁이고 성기에 힘이 들어갔다.
권태정은 상기된 감정으로 서둘러 바지 버클을 풀고 성기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빨래통 안에 든 이겸의 셔츠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이겸이 입고 있던 작은 레터링이 적힌 티셔츠였다.
“하….”
거칠어진 숨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겸의 티셔츠를 꽉 쥐어 들어 올린 권태정이 셔츠에 코와 입을 처박았다. 티셔츠에 달라붙은 이겸의 더 짙은 체향에 머리가 완전히 돌 것만 같았다.
권태정은 빠르게 성기를 쓸다가 흔들었다. 당장 문을 열고 나가 제멋대로 굴고 싶었다. 마구 입 안을 침범하고, 뺨처럼 매끄러울 몸을 멋대로 빨다가 그 작은 몸을 꿰뚫어 버리면 어떨까.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손을 움직이던 권태정이 쾌감과 함께 사정감을 느끼며 이겸의 티셔츠를 내려 제 성기를 감쌌다.
“…읏! 씹….”
이겸의 티셔츠로 권태정이 쏟아 낸 것이 잔뜩 묻어나며 떨리는 숨소리가 화장실 안으로 흘렀다. 제 옷에 정액이 묻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아주 만족스러운 쾌감이었다.
권태정은 엉망이 된 이겸의 셔츠를 세면대에 놓고 문에 기대어 엉망으로 흐트러진 숨을 내뱉었다. 코끝에 달라붙는 이겸의 페로몬 향은 여전히 달콤하고, 또 여전히 자극적이었다. 몇 번이고 이 짓을 더 해도 성이 차지 않을 만큼.
억제제를 바꿔야 하나. 전에는 오메가 페로몬에 이렇게 반응한 적이 없었는데. 권태정은 아주 천천히 가라앉는 몸을 느끼며 조현준이 처방해 준 억제제를 떠올렸다.
하도 억제가 잘 되다 보니 오히려 오메가들의 페로몬이 매력적이지 않게 다가올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게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느낌이 전혀 아니었는데 이겸의 향은 달랐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더 파고들어 마구 빨아들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다가 이렇게 잔뜩 퍼진 것을 맡으니 순간 머리가 확 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권태정은 조금 전 본 씻고 나온 이겸을 떠올리며 아까보다는 가라앉은 숨을 내쉬었다.
“…씨발.”
존나 만지고 싶네. 전혀 제어되지 않는 충동을 있는 힘껏 짓누른 채.
한참이나 걸려 씻고 나온 권태정을 본 이겸의 눈이 커졌다. 바지만 입고 위에는 아무것도 입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놀라서 흔들리는 눈동자로 보던 이겸은 얼른 고개를 숙여 다른 곳을 보았다.
“안에서 입기가 불편해서. 둘 중 하나 입을 거면 그래도 바지가 나을 것 같아서 바지만 입었어.”
“…네….”
바닥으로 앉는 권태정의 다리를 본 이겸이 살짝 시선을 올려 군살 하나 없이 단단해 보이는 몸을 바라보았다. 운동이나 그런 것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운동을 아주 많이 한 몸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근육이 멋있게 자리 잡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전혀 운동을 하지 않는 제 몸과는 정말 너무나도 다른 몸이라 멋있고 신기해서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냥 봐도 되는데.”
“…네? 아…. 죄송해요.”
“아니, 진짜 그냥 봐도 돼. 만져 볼래?”
“네? 아, 아니, 괜찮아요….”
당황해 빨개져서 손까지 젓는 이겸을 보고 웃은 권태정이 제가 씻는 사이 깔린 이부자리에 드러누웠다.
“내일 어르신 면회하고 낮에 옷 사러 가자.”
“옷이요?”
“응. 내가 네 티셔츠 하나 못 쓰게 만들었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보는 이겸의 팔을 당겨 제 옆으로 눕힌 권태정이 그 머리 아래로 제 팔을 넣었다. 졸지에 팔베개를 하게 된 이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색하게 천장만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저 문 여니까 네 페로몬 향이 확 나잖아. 예상은 했는데…. 그거 노리고 나중에 씻는다고 한 것도 맞는데 내 예상보다 더 나서…. 씨발.”
“…….”
“그래서 네가 벗어 둔 티셔츠로 혼자 했어.”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는 이겸을 다시 눕히고 아예 몸까지 마주 보게 돌린 권태정이 단단한 팔로 이겸의 상체를 결박했다. 이겸은 정말 조금도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결국, 힘을 빼고 몸을 늘어뜨렸다.
미쳤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조금,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저도 씻으러 들어갔을 때 권태정을 떠올리니 몸이 이상해졌었기 때문이었다.
“화 안 내?”
“…….”
권태정의 팔을 베고 마주 보고 누운 이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부끄럽고 놀라기는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어떡해. 이겸아.”
“…….”
“나 너 좋아하나 봐.”
순간 이겸의 마음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좋아한다는 게 뭔지 잘은 모르지만,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생각을 멈출 수가 없고, 또 눈을 뗄 수가 없고….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에 두 팔을 걸어 매달리고 싶은 그런 것.
“왜 이렇게 예뻐. 응?”
다정함으로 흠뻑 젖은 음성이 이겸의 마음을 마구 두드렸다. 좋아한다는 것과 예쁘다는 것은 이겸이 늘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었다. 예쁘다는 말을 앞세워, 또 좋아한다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결국은 저와 자고 싶다는 게 모두의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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