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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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대로 이겸의 다리 사이에 손을 넣은 권태정이 구멍 위를 더듬었다. 며칠 전에는 손을 대지 않아도 열을 이기지 못하고 내내 울컥울컥 넘치더니 지금은 아니었다. 이것만 봐도 열기가 많이 잦아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그런 것 같은데. 가만히 있어도 줄줄 흐르더니 지금은 안 그러잖아. 아, 젖는다.”
권태정의 손끝이 집요하게 구멍 위를 더듬자 금세 축축해지는 느낌이 났다. 이대로면 밥을 다 먹이기도 전에 또 박게 될 것 같아 아쉽게 손을 뗀 권태정이 젖은 손끝을 이겸에게 보여 주며 웃었다. 놀란 이겸이 얼른 휴지를 뜯어 권태정의 손끝에서 반들대는 것을 닦으며 다리를 오므렸다.
“안 괴롭힐 테니까 천천히 먹을 수 있는 만큼 먹고 또 쉬어. 며칠 밤낮으로 굴러서 푹 쉬어야 돼.”
“…아, 병원…. 할아버지한테 가 봐야 하는데….”
“아까 보니 병원에서 부재중 찍힌 건 없던데. 걱정하지 마. 내일이나 가 보면 되지. 오늘은 좀 쉬어. 내가 이따 전화해 볼게.”
“네…. 고맙습니다….”
“먹어, 식기 전에.”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다시 앞에 있는 맛있는 것들을 조금씩 떠서 입에 넣었다. 정말 뭘 먹어도 다 맛있기만 했다. 음식 자체가 맛있는 것도 있지만, 권태정과 함께 먹어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 그리고 이거 초콜릿이거든. 우리 누나가 좋아하는 건데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스트레스 받거나 힘들 때 이거 몇 개 먹으면 싹 다 풀린다고 하더라고.”
초콜릿 상자를 가볍게 흔들며 보여 주는 권태정을 보며 웃은 이겸이 별것 아닌 행동 하나에도 설레는 마음 위를 손으로 꾹 눌렀다.
사흘 동안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내내 붙어 있어서 그런 건지 권태정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냥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누구와는 절대 함부로 할 수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일들을 내내 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
몸에 열이 올라 정신을 차리기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권태정이었다. 한 번 떠오른 얼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내내 권태정을 기다렸다.
이겸은 며칠 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그가 도착해 목소리를 들려준 순간과 문을 열고 시선을 마주했을 때 느낀 그 안도감까지 전부 다 너무나도 또렷했다.
그리고 입술을 마주하며 권태정이 제 몸을 꽉 안은 순간 그에게 모든 것을 기대게 됐던 그 마음까지도.
그렇게 며칠을 내내 믿고 의지한 제 마음을 알기에 이겸은 사실 권태정을 보는 게 전보다 더 부끄러웠다. 하지 않아야 할 말도 하고, 제가 먼저 한 행동들도 많아서 마음을 다 들켜 버렸을 것만 같았다.
히트 때는 다들 그런다니까 그냥 그 충동에 저지른 일이라고만 생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이겸의 마음을 흔들었다.
“…….”
어떡해…. 보기만 해도 너무 떨려. 머릿속을 뒤덮고 있던 쾌락을 향한 희끄무레한 막이 사라지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맨정신으로 보니 더 떨리고, 설렜다.
이겸은 하얀 숟가락 끝을 입에 문 채 저도 모르게 멀거니 권태정이 식사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너무 잘생기고, 또 멋있고…. 다정해서 좋다는 생각 외에는 맺히는 생각이 없었다.
“왜 그렇게 봐?”
“…네?”
“내가 좋아서 막 미치겠어?”
장난스럽게 말하고 웃은 권태정이 백 비서가 사 온 푸딩 병을 꺼내 마개를 열고, 같이 든 작은 스푼으로 떠서 이겸에게 먹여 주었다. 이겸은 손끝까지 달아오른 채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맛에 다리를 오므렸다. 다리 사이가 다시 축축해지는 느낌이 났다.
“…실장님….”
“응.”
“…저 아직…. 안 끝난 것 같아요….”
“…….”
푸딩을 한 입 먹던 권태정의 눈썹이 느릿하게 찌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거의 다 먹은 음식들이 놓인 상이 아무렇게나 확 구석으로 밀렸다. 이겸은 저를 뒤덮는 권태정의 목을 끌어안으며 맞물리는 입술을 머금은 채 눈을 감았다.
* * *
마지막으로 본 시간, 그러니까 백 비서에게 전화가 올 때 본 시간이 오전 열한 시였다. 그리고 또 몸을 겹쳤다가 확인한 지금 시간은 오후 일곱 시가 넘어 있었다.
권태정은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를 다시 제대로 보기 위해 이겸의 몸에서 성기를 빼내고 일어섰다. 백 비서가 음식을 한 시쯤 사다 주고, 먹다가 뒹굴게 됐으니 많이 봐줘서 두 시부터 뒹굴었다고 해도 다섯 시간을 넘게 해 댄 게 됐다.
히트가 아직 안 끝난 것 같다는 이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시 금세 열이 올라서는 찌르면 찌르는 대로 물이 줄줄 흐르고, 잔뜩 느껴 자지러지면서도 매달리는 것에 미쳐 정말 미친놈처럼 해 버렸다.
권태정은 새근새근 잠든 이겸의 머리를 쓰다듬고 대충 바닥에 떨어진 드로어즈와 바지만 입은 채 슈트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머릿속이 너무 혼몽해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는 애를 데리고 또 무슨 짓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온 권태정이 이겸이 신발을 신을 때 걸터앉는 좁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늘따라 동네가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이제 저와 이겸, 둘만 여기 남아 있는 것만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싸한 느낌이 들게 깊이 빨아들였다가 숨을 내쉬자 어두운 주변으로 하얀 연기가 흐트러졌다. 괜히 연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권태정이 문 열리는 소리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 깼어?”
까무룩 잠이 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깬 이겸을 보고 놀란 권태정이 손을 뻗었다. 걸어서 온 것도 아니고 기어서 온 건지 두 손까지 바닥에 대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작은 동물 같아 웃은 권태정이 손으로 얼굴을 만지자 이겸이 그 손에 얼굴을 비볐다.
“춥겠다. 이불 가지고 와.”
4월 초라 꽤 따뜻하다지만, 그래도 해가 떨어지면 서늘한 기운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 게다가 방 안에만 내내 있다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이겸에게는 더 차갑게 느껴질 것이었다. 권태정은 제가 시킨 대로 손을 뻗어 이불을 끌고 온 이겸을 보고 소리 내어 웃고 문을 더 활짝 열었다.
“이리 와.”
아예 바깥으로 나와 저에게 오라고 손짓하자 이겸이 문턱을 넘었다. 조금의 머뭇댐도 없이 오는 이겸을 본 권태정이 담뱃불을 대충 마루에 비벼 끄고 버렸다. 그리고 저에게 온 이겸의 몸을 안아 제 다리 위로 올렸다.
“나 없어서 깼어?”
“…네….”
마주 보게 다리 위에 앉히자 이겸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권태정은 제 품에 안기는 이겸의 몸 위로 이불을 둘러 끌어안았다.
“정말?”
“…네. 실장님이 옆에 안 계셔서….”
권태정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잠이 묻은 목소리로 소곤댔다.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권태정이 다시 잠든 이겸의 머리칼 위에 입술을 누른 채 따라 눈을 감았다.
“이제 어디 안 가고 있을게.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자.”
제 대답을 들었으면 좋겠지만, 듣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직접 다 보여 줄 거니까. 눈을 떴을 때, 손을 옆으로 뻗었을 때 제가 언제든 옆에 있을 거라는 걸.
품에서 새근새근 고요한 숨소리가 울렸다. 권태정은 그렇게 제 품에 찾아온 너무나 낯설지만,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감정을 안은 채 저녁이 밤이 되고, 밤이 새벽이 되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부디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 * *
사흘을 꼬박 채워 권태정과 붙어 있던 이겸은 완전히 몸이 가벼워진 느낌에 히트가 끝났다는 걸 알았다. 힘이 조금 들기는 하지만, 사흘 동안 눈만 뜨면 권태정과 몸을 겹쳤던 것에 비해 컨디션이 너무 좋아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야….”
하지만 컨디션과 달리 몸은 여기저기가 아팠다. 잘 안 쓰던 곳들을 사흘 내내 써서 그런지 허리와 허벅지 안쪽, 그리고 팔에서도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일어났어? 몸 아프지.”
화장실에서 나와 가까이 다가오는 권태정에게서 나는 싱그러운 향에 이겸은 얼른 씻고 싶어졌다. 권태정은 너무나 말끔한데 저만 사흘 동안 뒤엉켜 있던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참을 수 있을 정도라 괜찮아요. 저도 씻고 올게요.”
“혼자 씻을 수 있겠어?”
“…그럼요. 씻는 건 혼자….”
당연한 걸 왜 묻는 건지 이유를 알지 못하며 일어나던 이겸은 두 발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시 바닥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혹시나 다칠까 주저앉는 이겸을 붙든 권태정이 엉덩방아 찧는 것을 막아 주었다.
“안 될걸.”
“…다리가 이상해요.”
“사흘 동안 안 써서 그래. 일어나서 걸은 적 없잖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히트가 왔다는 걸 알고 방에 들어와 주저앉은 그 순간부터 두 다리로 바닥을 딛고 일어난 기억이 없었다. 며칠 동안 두 다리는 그저 권태정의 어깨 위에서 흔들리거나 무릎을 꿇은 채 다가가거나 활짝 벌어져 있던 게 전부였다.
“…….”
이겸은 제 발목을 쥐고 만지면서 복숭아뼈를 핥던 권태정을 떠올리다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씻겨 줄게.”
“…아, 아니에요.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럼 안에 든 거 빼 줄게. 아까 보니까 움직일 때마다 나오더라.”
“…안에 든 거요? 아….”
제 몸 안에 가득 사정했던 권태정을 떠올린 이겸이 괜히 다리를 더 꽉 오므리며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건 혼자 하기 힘들 것 같아서 그래. 뒤로 손가락 넣을 수 있어? 내가 해 줄게. 누워 봐.”
“호, 혼자 할 게요…. 혼자 할래요….”
“내가 가정교육을 좀 잘 받았거든. 일은 시작만큼 과정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무리라고 배워서 모른 척 못 하겠는데.”
“…….”
“좋다고 싸 놓고 뒤처리도 안 하는 건 좀 너무 별로잖아. 장난 안 치고 정리만 할게, 정말이야.”
진지하게 말하는 권태정을 보며 이겸은 결국 말을 따르기로 했다. 권태정의 말처럼 혼자 뒤에 손가락을 넣어 안에 든 것을 빼낼 자신이 없기도 하고, 또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마지막까지 지겠다는데 계속 거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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