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열 소년-67화 (67/174)

#67

“여기로 누워 봐.”

베개까지 놓고 두드리는 권태정을 보며 어색하게 누운 이겸이 이불을 당겨 눈만 내놓고 얼굴을 가렸다. 이불이 걷히고 다리가 벌어지는 느낌이 나자 조금 무서워 긴장이 됐다.

“아….”

며칠 내내 권태정이 드나들던 안으로 손가락이 들어오는 것에 이겸은 저도 모르게 신음하다가 놀라 이불로 입을 더 꾹 눌렀다. 어젯밤까지 정신없이 마주했던 몸이라 여전히 손길이 닿기만 해도 몸은 너무나도 쉽게 달아올랐다.

“아, 진짜 존나 많이도 쌌네.”

아래를 보고 있는 권태정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겸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저는 보이지 않는 다리 사이를 권태정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이상해졌다. 손가락이 들어갔다가 빠져나갈 때마다 정말 뭔가가 울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더 그랬다.

“…으음, 이상해요….”

“자기야, 느끼는 거 아니지? 히트도 끝났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응, 알아. 아니지, 그럼.”

권태정은 정말 조금의 장난도 치지 않고 제가 안에 가득 싸 둔 것을 빼냈다. 하지만 그 양이 워낙 많고 또 깊게 들어 있기도 해 깊은 곳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제 다 나온 것 같은데.”

“…하아….”

한참을 빼내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이겸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흥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끝나서 다행이라 생각한 이겸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말캉하고 뜨거운 것이 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아…. 으응…!”

보이지 않는 다리 사이에서 축축한 소리가 났다. 혀 같은 것이 안을 헤집다가 빨아들이는 느낌에 이겸은 허리를 비틀었다. 정액을 빼내며 달아올랐던 몸은 쉽게 흥분해 금세 말간 것을 흘렸다. 그렇게 허리를 크게 들썩이며 가 버리는 것을 본 뒤에야 권태정이 고개를 들었다.

“정리 다 했어, 자기야. 이제 씻자.”

혀로 파고든 것을 보여라도 주듯 젖은 입술을 느릿하게 문지른 권태정이 웃으며 헐떡이는 이겸을 세워 앉혔다.

“싫었어?”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 것에 가만히 바라보던 이겸이 고개를 젓고 권태정의 품에 얼굴을 기대었다. 사흘 내내 조금도 싫었던 적이 없었다.

“…좋았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순한 목소리에 웃은 권태정이 이겸의 허리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나도.”

“…….”

“나도 좋았어.”

뺨에 닿는 목소리와 싱그러운 향, 그리고 온기가 좋아 이겸은 자꾸만 권태정에게 더 기대고 싶어졌다. 할아버지에게도 그래 본 적이 없는데 권태정에게는 불쑥 한 번씩 그러고 싶어져서 곤란하고, 또 속상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저 그럼 씻고 올게요.”

“나 잡고 일어나.”

이겸의 양쪽 팔 아래에 손을 넣은 권태정이 단단히 두 팔로 몸을 끌어안은 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기대고 있던 이겸이 조금씩 힘을 주며 두 다리로 설 때까지 권태정은 묵묵히 그 자리에서 이겸을 잡아 주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절대로 넘어지지 않도록 아주 단단히.

“씻을 때 조심해. 미끄러우니까.”

“…네.”

“하다가 못하겠으면 말하고.”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갈아입을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른 말은 다 들었지만, 그냥 벗고 나와서 옷을 입으라는 권태정의 말은 듣지 않기로 했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은 이겸은 한쪽에 옷을 잘 놓고 낡은 세면대 위 거울을 바라보았다.

“…….”

잔뜩 흐트러지고 이상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 여느 때보다도 얼굴이 좋아 보였다. 피곤해 보이지도 않고, 핏기도 더 돌아 보였다. 사흘 내내 너무 좋기만 했던 게 얼굴에도 다 드러나는 걸까. 매끈매끈한 뺨을 손으로 짚어 본 이겸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권태정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

거울에 비친 얼굴 아래로 시선을 내린 이겸은 제 가슴 쪽에 울긋불긋한 자국이 많이 남은 것을 보며 그 위를 손끝으로 살짝 눌러 보았다. 권태정이 내내 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게 떠올라 또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얼른 고개를 저어 야한 생각을 흩트린 이겸이 샤워기를 들고 미지근한 물을 틀어 끼얹었다.

부디 아주 약간의 떨림이라도 물줄기와 함께 흘러내리기를 바라며. 하지만 이겸의 바람과는 달리 약한 물줄기는 사흘 동안의 기억 그 무엇도 씻어 내지 못했다.

* * *

배터리가 나간 휴대폰을 차에 꽂자 그제야 전원이 들어왔다. 권태정은 하루 사이에 몇 통 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확인했다. 딱히 아주 중요하고 긴급한 건은 없어 바로 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겸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오늘은 본가에 들를 생각이었다. 누나와 형이 왜 연락이 안 되냐며 전화를 몇 통씩 했으니 직접 등장해서 걱정을 덜어 줘야 할 것 같았다.

“난 이겸이 너 병원 데려다주고 백 비서 만났다가 저녁에는 집에 가려고. 누나랑 형이 하도 찾아서. 늦진 않을 거야. 카페 끝날 때 데리러 갈게.”

“네…. 혹시 저 때문에 집에서 못 주무시고 오시는 거면…. 안 그러셔도 돼요.”

“혼자 잘 수 있어?”

“…잘 수 있지 않을까요?”

“에이, 나 없으면 이제 못 잘걸.”

호언장담한 권태정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좋아 미소지은 이겸이 괜히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권태정의 말을 조금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같이 집에 며칠을 있었을 뿐인데 이제 정말 권태정이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았다. 어떻게 며칠 만에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걸까. 이제 권태정을 보기만 해도 두근두근해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실장님께서는… 몸 괜찮으세요?”

“나?”

“네…. 저 때문에 며칠씩이나 고생하셨잖아요.”

“그게 무슨 고생이야. 내가 뭐 너 히트 왔다고 억지로 봉사라도 해 준 것 같아?”

봉사를 해 줬다는 의미로 말한 건 아니지만, 제가 한 말을 조금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좋았다고 했잖아. 그냥 네 마음 좋게 해 주려고 한 말 아니야. 나 그딴 말 안 해. 내가 남 기분을 왜 좋게 해 주려고 맘에 있지도 않은 말을 해야 하는데.”

“…….”

“좋아서 한 거고, 하고 싶어서 한 거야. 너랑 안 하면 죽어 버릴 것 같았어. 하고 싶어서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고. 씨발, 머리만 터지면 다행이게.”

“…….”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건 네가 나한테 미안해하면 진짜 내가 엄청 서운한 상황이거든? 날 뭐 히트 처리용으로 고용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면 그런 말하지 마.”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겸은 어떻게 제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 빨리 서둘러 말하지 않으면 권태정이 진짜 화가 날 것만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조금 전에 권태정이 말한 ‘히트 처리용’이라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단연코 권태정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더 그랬다.

“그렇게… 생각해서 드린 말씀 아니에요.”

“아닌데 고생했다고 해? 섹스하고 고생했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정말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실장님을 그런… 처, 처리용으로…. 그런 거 아니에요. 히트 사이클이 온 게… 저한테는 제 일이라 힘들어도 괜찮지만, 실장님께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을 텐데도…. 사흘이나 저랑 계속 같이 있어 주셔서…. 그게 너무 감사하고 또 죄송해서 드린 말씀인데….”

그런 게 아니라고 빨리 풀어 주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말이 길어지고 횡설수설하게 됐다. 정확하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자꾸 바보 같은 말이나 하는 제가 너무 한심했다.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어…. 처음 몸이 이상해졌을 때…. 제일 먼저 실장님 생각이 났어요.”

“…….”

“히트도 다시 시작될 거라고 해 주신 말씀도 생각나고…. 또 실장님 페로몬 향도 맡고 싶고, 괜찮을 거라는 말도 듣고 싶었어요.”

“…….”

“실장님만 생각했어요…. 정말 실장님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 생각에는 고맙고 죄송한 마음은 하나도 없었어요. 거기까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

“…너무… 너무너무… 좋기만 했어요.”

이겸은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권태정의 오해가 풀리려면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처음 권태정을 떠올렸던 그 순간의 이야기를.

“오메가랑 자는 거 어려운 일 아니야.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야. 그 일들 중에서도 제일 쉬운 일이기도 하고.”

“…….”

“그런데 그 쉬운 일을 내가 안 좋아해. 너무 비효율적이잖아. 약 몇 밀리만 넣으면 끝날걸 몇 날 며칠을 뒤엉키는 거 이상하잖아. 진짜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

너무 큰 말실수를 한 것만 같아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정말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권태정의 말을 듣고 보니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해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그랬었는데 집에 가서 너 히트 온 거 알게 된 그 순간부터는 씨발,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그딴 거 생각 하나도 안 나고, 너랑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

“…….”

“너니까 그런 거야.”

조수석으로 다가온 손이 이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고 떨어졌다. 평소와 같은 손길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이겸이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내가 하고 싶어 미치겠어서 한 거니까 미안해하지 마.”

“…….”

“너도 좋았다며. 나도 좋았거든. 같이 좋아서 했는데 고생은 무슨 고생.”

“…죄송해요. 제가 괜히 이상한 말을 해서…. 기분 상하셨죠.”

“좀 서운할 뻔하긴 했는데 히트 터지고 내 생각만 했대서 반쯤 풀렸어.”

제가 제 입으로 다 한 말이기는 하지만, 권태정에게 전해 들으니 굉장히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겸은 다시 조수석으로 다가와 제 뺨을 문지르는 권태정의 손을 잡고 그 손가락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다 풀어 주시면 안 돼요?”

“지금 또 남은 거에서 반 풀렸어.”

어느새 병원에 도착해 정문 앞에 서는 차에 이겸이 조금 아쉽다는 듯 권태정의 손을 놓았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폰은 간병인한테 말하면 줄 거야. 일단 오늘은 그거 쓰고 내일 폰 새로 사러 가자.”

“지금 것도 잘 되는데….”

“더 잘 되는 거 사 줄게. 안 그래도 바꿔 줘야지 생각했었어.”

저를 가만히 보는 이겸과 눈을 맞춘 권태정이 말랑한 뺨을 아프지 않게 또 조몰락거렸다.

“혹시 싫어? 막 지금 폰에 엄청난 의미가 있다거나 폴더폰 아니면 못 쓰는 그런 병이 있다거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는 권태정을 보고 작게 웃은 이겸이 고개를 저었다. 웃는 이겸을 보며 권태정도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카페 갈 때 힘드니까 택시 타고 가.”

“네…. 운전 조심하세요.”

“응.”

손을 흔들어 웃으며 인사한 권태정이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이겸의 뒷모습을 본 뒤에야 병원을 빠져나갔다. 히트가 온 순간부터 저만 떠올렸다는 이겸의 말이 내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권태정을 기쁘게 했다. 사흘간 단 한순간도 좋지 않은 적이 없었던 그 시간만큼이나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더 이상 일을 위한 공적인 무언가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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