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열 소년-107화 (107/174)

#107

얇은 눈꺼풀이 떨리며 속눈썹이 흔들렸다. 살짝 기울어져 숙여진 고개가 흔들리다가 아래로 조금 크게 내려간 순간 이겸의 눈이 뜨였다.

“…….”

제가 또 졸았다는 걸 깨달은 이겸이 잠이 가시지 않은 눈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것도 아니고 딱히 피곤할 일도 없는데 요즘 이상하게 앉기만 해도 잠이 오고, 조용한 곳에 있어도 계속 잠이 쏟아져 저도 모르게 졸고는 했다.

마감 준비할 시간이네…. 아직 카페에 있는 손님들에게 십 분 뒤 영업이 끝난다는 걸 알린 이겸이 으슬으슬한 기운에 팔을 문질렀다. 약하게 튼 에어컨 바람이 추워서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평년 기온이 더 높은 6월이라고도 하고, 그에 어울리게 반팔을 입은 사람이 늘어나고, 또 에어컨을 아예 틀지 않으면 영업이 되지 않을 정도의 날씨가 분명한데 이겸은 에어컨 바람이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마감을 할 때까지는 멋대로 에어컨을 끌 수가 없어 준비실 안쪽 락커로 들어간 이겸은 3월 이후로 입지 않았던 가디건을 꺼내 유니폼 위에 걸쳤다. 따뜻하게 한 겹 더 입자 그제야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졌다.

하지만 다시 홀로 나오니 또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이겸은 뺨과 손등, 그리고 목덜미에 닿는 서늘한 바람에 덜덜 떨었다.

“…왜 이러지.”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 건가…. 가디건까지 걸쳐 더 입을 것도 없는데 자꾸만 한기가 들고, 어깨가 떨렸다. 이겸은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카운터 바깥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웃으며 손을 흔드는 권태정을 향해 활짝 웃음을 보였다. 몸을 감싼 이상한 한기도 그 순간만큼은 이겸을 괴롭히지 못했다.

“이겸아, 어디 몸 안 좋아?”

“아….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어서 그런지 조금 추워서요.”

“에어컨?”

이겸의 말에 고개를 들어 천장 여기저기에 있는 에어컨을 본 권태정이 카운터 안으로 들어와 이겸의 어깨를 팔로 따뜻하게 감쌌다.

“끄면 안 돼? 이제 마감이잖아.”

“손님 다 나가신 다음에 끄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몇 분 남지도 않았는데 뭐 어때. 어디서 끄는 거야?”

권태정의 말에 리모컨을 들어 에어컨을 끈 이겸이 몸을 돌려 따뜻한 품으로 몸을 묻었다. 권태정에게 안기니 거짓말처럼 차가운 기운이 가시고 따뜻함이 온몸을 감쌌다.

“감기 기운 있는 거 아니야? 다른 데 아픈 데는 없어?”

“다른 데는 괜찮아요. 그냥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열 있나 보자.”

살짝 몸을 뗀 권태정이 이겸의 이마를 커다란 손으로 짚어 보았다. 걱정이 담긴 얼굴로 미간까지 살짝 구긴 채 심각한 권태정을 올려다보던 이겸이 웃음 지으며 다시 품으로 안겨들었다. 저의 따뜻함과 조금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두 팔로 저보다 작은 몸을 완전히 가두듯 안은 권태정이 목덜미와 귓가에 차례로 입 맞추며 천천히 등을 쓸어 주었다. 영업 끝날 시간이 되어 정리대에 트레이를 두고 나가는 손님들에게 이겸이 보이지 않도록 몸을 틀어 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도 추워?”

제 어깨 부근에서 고개를 젓는 이겸의 머리칼을 쓰다듬은 권태정이 살짝 몸을 떼어 저를 올려다보는 이겸을 향해 몸을 숙였다. 조금의 틈도 없이 맞물린 입술 사이에서 금세 따뜻함을 넘어선 뜨거움이 잔뜩 번졌다.

“…으응….”

이겸은 권태정의 허리를 안은 채 혀끝으로 번지는 뜨거움을 전부 목 뒤로 넘겼다. 몸 안으로 뜨거운 것이 뚝뚝 떨어지며 발끝부터 열이 올랐다. 더, 더 권태정과 닿고 싶었다. 숨이 엉망이 될 정도로 잔뜩 깊게 키스하고 싶기도 하고, 머릿속이 텅 빌 만큼 몸을 마주하고 싶기도 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겸은 더 깊게 파고들며 다가오는 권태정의 뺨을 살살 매만지며 입술을 댄 채 소곤댔다.

“…빨리, 하아….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이겸의 살짝 젖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권태정이 손님이 모두 빠져나간 카페를 보다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여기서 하고 싶은데 제 일터도 아니고 이겸의 일터에서 섹스를 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길 때 제가 온전히 책임지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청소 안 하고 가면 안 되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이겸을 보며 다시 안달이 난 숨을 내쉰 권태정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쓰레기 버리고 홀 정리 같은 거 내가 빨리 할 테니까 쉬고 있어.”

“아니에요. 제가 얼른….”

“애기는 일하는 거 아니야.”

이겸의 입술에 쪽 소리 나게 입 맞춘 권태정이 이겸을 비교적 따뜻한 준비실 안에 있게 하고는 혼자 넓은 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집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겸은 조수석 쪽으로 반 이상 넘어온 권태정의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으며 숨 쉴 틈도 없이 밀려드는 열기 안으로 혀를 움직였다.

혼자 홀 청소를 다 하고, 쓰레기까지 다 버린 권태정은 뭔가를 엄청 짓누르는 얼굴로 운전을 하고 주차장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시동을 끄자마자 조수석 쪽으로 달려들 듯 몸을 기울였다.

“…으음, 응….”

빨리 집에 올라가 편히 키스하는 게 좋기는 하겠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커다란 권태정의 몸을 밀어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저 역시 권태정과 닿고 싶다는 생각이 최우선이라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 으응, 실장님, 올라가서….”

“응, 올라가서….”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시 맞물리는 입술에 웃은 이겸이 권태정의 얼굴을 매만졌다. 너무 좋아서 그런지 이렇게 만지고, 혀끝에서 뜨거운 체온이 녹고 있는데도 조금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닿고 싶고, 또 더 깊게 스며들고 싶었다. 그만큼 권태정이 좋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깊게 갈망할 만큼.

“하아….”

가쁜 숨이 잔뜩 터지고, 서로의 페로몬이 뒤섞여 차 안에 가득 찬 뒤에야 맞물려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젖은 이겸의 입술에 간지러운 소리가 나게 몇 번 더 입 맞춘 권태정이 다시 운전석으로 몸을 움직였다.

“…….”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몸을 뗀다고 해서 멀어진다는 표현을 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아주 많이 멀어진 것 같은 기분에 이겸이 손을 들어 권태정의 옷자락을 쥐었다. 그 약한 힘에 고개를 돌려 다시 이겸을 본 권태정이 의자를 뒤로 조금 밀고, 그대로 이겸을 당겨 제 다리 위로 앉혔다.

“나랑 떨어지기 싫어?”

소리 내기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두 팔로 권태정의 목을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씨발, 진짜 욕을 줄이고 싶어도, 씨발. 줄일 수가 없어. 존나 좋은데 그걸 표현할 방법이 없네.”

저를 먼저 끌어안은 이겸의 머리칼에 입 맞춘 권태정이 두 팔로 작은 몸을 가득 안아 가두며 눈을 감았다. 이겸이 너무 좋아 뇌 어딘가가 망가진 것만 같았다.

망가지기 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고, 또 앞으로 더 망가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도 걱정이 되거나 싫지 않았다. 권태정은 더 망가지고 싶었다. 온전히 연이겸만이 저를 움직일 수 있게.

“집까지 이러고 가자.”

너무나 간단한 방법이라는 듯 권태정은 이겸을 안은 채 차 문을 열었다. 이겸은 그제야 내리겠다고 말했지만, 권태정은 들어주지 않았다.

“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아무도 안 봐.”

이겸을 안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부스로 들어간 권태정은 제 목을 끌어안고 소곤대는 이겸의 목소리에 침음했다. 작정하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안겨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귓가에 목소리가 닿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너무 야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에 누가 타면….”

“안 타. 여태까지 우리 탈 때 다른 사람 탄 적 있어? 없잖아. 그리고 주차장에서 다른 사람 본 적도 없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권태정이 맨 위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이겸의 머리칼과 귓가에 뽀뽀를 퍼부었다. 그게 간지러워 작게 웃은 이겸이 어깨에 누르고 있던 얼굴을 들어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정말 엘리베이터랑 주차장에서 다른 사람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못 볼 거야. 저기 내 전용 주차장이거든. 이건 내 집 가는 전용 엘리베이터고.”

“…와…. 그럼 아까 주차장에 있는 차가 전부….”

“응, 다 내 차.”

놀라서 입이 퐁 벌어진 이겸을 보고 귀엽다는 듯 웃은 권태정이 그 뺨과 턱에 마구잡이로 입 맞췄다.

“키스해 줘, 이겸아.”

권태정의 말에 잠시 당황해 눈동자를 굴리던 이겸이 두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저를 보고 있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내려 입술을 댔다.

“좀 더 옆.”

눈을 감고 내려 그런지 입술 옆쪽으로 닿은 것에 이겸이 살짝 눈을 떠 잘 맞춰 다시 입술을 눌렀다. 먼저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어 당기자 이겸이 움찔대는 게 느껴졌다.

이겸의 어깨 너머로 꼭대기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걸 본 권태정이 느긋하게 이겸의 침입을 기다렸다. 어차피 제가 누르지 않는 한 이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일은 없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으음….”

좁은 공간 안으로 쪽, 쪽 귀여운 소리가 울렸다. 이겸은 겨우 권태정의 얼굴을 쥔 채 가볍게 입을 맞추다가 권태정이 저에게 해 준 것처럼 입술을 살살 빨았다.

권태정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키스했지만, 이겸이 리드해서 한 적은 한 손에 다 꼽힐 정도라 먼저 하는 키스는 여전히 어설프고 느렸다. 하지만 그 느린 움직임도 꽤 자극적이라 권태정은 먼저 입술을 벌리거나 혀끝을 살짝 핥아 주는 정도의 도움만 주며 이겸을 당겼다.

“자기야. 혀 안 넣어 줄 거야?”

입술을 댄 채 말하다가 넣어 달라는 듯 벌리자 머뭇대던 이겸의 혀가 안으로 조금 들어왔다. 살짝 혀끝을 문지르니 기분이 좋았는지 용기를 내어 혀를 움직이는 것에 권태정이 눈을 떠 이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 얼굴을 잡은 채 벌어진 입 안에 혀를 넣어 움직이는 이겸이라니…. 너무나 자극이 강했다. 저 순하고 말간 얼굴이 키스를 좋아한다는 것도, 또 저와 하는 섹스를 좋아한다는 것도 미칠 것만 같았다.

“…으응….”

혀를 문지르며 앓는 소리를 내는 것도 지나치게 야했다. 권태정은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내려 집으로 다가갔다. 그에 놀란 이겸이 입술을 떼자 한 손으로 다시 머리를 가볍게 눌러 입술을 포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계속해.”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