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열 소년-121화 (121/174)

#121

집으로 가는 내내 초음파 사진과 휴대폰 톡으로 보내 준 심장 소리를 듣던 이겸은 집에 가서도 권태정에게 안긴 채 콩닥콩닥 작은 소리를 반복해 들었다. 그리고 백 비서가 사다 준 크림 새우를 점심으로 먹었다.

지난번 강지훈, 유재민과 함께 간 중식당에서는 속이 좋지 않아 겨우 맛만 봤었는데, 갑자기 그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소스와 새우가 먹고 싶어졌다. 그에 권태정이 유명한 중식당에 전화를 넣어 크림 새우와 게살 볶음밥 같은 이겸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주문하고, 백 비서에게 픽업을 부탁했다.

다행히 이겸은 크림 새우와 게살 볶음밥, 그리고 설탕에 절인 리치 디저트까지 아주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으로 쿠키 앤 크림 맛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며 이겸은 내내 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실장님….”

“응, 이겸아.”

“의사 선생님께서… 외출해도 된다고 하셨고, 무리만 안 하면 된다고도 하셨으니까…. 이제 실장님 댁에… 가도 되지 않을까요?”

“아…. 나도 가고 싶은데 스트레스 받으면 안 좋다잖아.”

“저 스트레스 안 받아요. 제가 정말… 인사드리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이제 애기도 있는데…. 나중에 말씀드리면 서운하실 것 같기도 하고….”

이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권태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가족들이야 당연히 이겸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겠지만, 혼자 제 가족 여럿을 만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겸에게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 2주가 넘도록 약속을 잡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이겸을 위한다는 이유로 계속 뒤로 미루는 것도 이겸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맑아지며 명확하게 판단이 섰다.

“집에 말하고 약속 잡을게. 아마 주말쯤 바로 만나자고 하실 거야. 괜찮겠어?”

“네…. 전 좋아요.”

“우리 이겸이가 좋으면 나도 좋아. 바로 말씀드릴게.”

권태정은 이겸이 보는 앞에서 엄마의 번호를 눌러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약속을 잡았다. 권태정의 예상대로 약속일은 사흘 뒤, 토요일 저녁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로 약속 잡았어. 엄마가 은근 기다리셨나 봐. 그때 바로 소개할 것처럼 굴다가 아무 소식도 없으니까. 헤어졌다고 할까 봐 걱정했다는 거 있지. 우리 절대 안 헤어질 건데. 그치.”

이겸에게 다가가 입술에 짧게 입 맞춘 권태정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겸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요즘 이겸은 정말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귀여워져 볼 때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내 부모님이라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두 분 좋은 분들이거든. 사랑이 넘치시고, 또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으셔. 그러니까 정말 아무 걱정도 하지 마.”

“네…. 실장님 가족분들 뵙는 거 처음 아니니까 이번에는 괜찮을 것 같아요. 저 정말… 잘할 수 있어요.”

“자기야. 우리 자기는 그냥 집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돼. 그러기만 해도 우리 엄마랑 아빠 녹아서 당장 결혼 날짜 잡아 주실걸. 서른두 살 막내만 보시다가 스무 살 진짜 애기 보면 예뻐서 기절하실 거야.”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하는 말이라 생각하는지 예쁘게 웃기만 하는 이겸을 보며 권태정은 제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솔직히 권태정은 정말 큰 걱정이 없었다. 이 예쁜 애를 제 부모님이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하는 말 아니야. 진짜 걱정 많이 하지 마. 알았지?”

“네, 그럴게요. 사실 뵙고 인사드리는 것보다…. 애기 생긴 거 말씀드릴 게 더 걱정이에요. 인사드리기도 전에 애기부터 생겨서….”

“그것도 걱정할 거 없어. 그날 내가 분위기 봐서 말씀드릴 거니까. 처음엔 좀 놀라시겠지만, 좋아해 주실 거야.”

권태정의 말을 믿으며 어느 정도 안도한 이겸이 먹기 좋게 녹은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권태정에게 먹여 주었다. 권태정은 이겸이 주는 것을 얌전히 받아먹고 달착지근한 맛이 남은 혀끝으로 이겸의 입술을 장난스럽게 할짝였다.

“으응…. 간지러워요….”

“자기 웃는 거 보니까 나도 막 배 속이 간지러워. 어떡해, 이겸아.”

아랫배에 손을 댄 권태정을 내려다본 이겸이 부끄러운 듯 입술을 꾹꾹 물며 시선을 올렸다.

“…센터 갔을 때… 그것도 여쭤볼 걸 그랬어요.”

“응? 뭐?”

“…그거…요.”

“그거?”

“…실장님이랑 저랑… 하는 거어….”

이겸이 뭘 말하고 있는지 알지만, 괜히 모른 척한 권태정이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런 권태정을 보며 말을 꺼낸 자체로 곤란해지고 부끄러워진 이겸이 어쩔 줄을 몰라 입술을 달싹였다.

“저도… 배, 배 속이 간지러운 적이 있어서…. 그, 그게 실장님이 저 만져 주시거나… 음, 키스하거나…. 그럴 때 그러니까….”

“이겸이랑 내가 또 뭘 했더라….”

이겸의 손에 들린 다 먹은 아이스크림 컵을 가져가 테이블에 놓은 권태정이 차가운 손끝을 매만지다가 이겸의 티셔츠 안으로 슬쩍 손끝을 넣었다. 서늘한 손끝이 따끈한 허리에 닿자 이겸이 숨을 들이마시며 어깨를 움츠렸다.

“설마 우리 애기가 야한 얘기하는 건 아닐 거 아냐.”

“…….”

놀리는 권태정을 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뻐끔댄 이겸이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얼른 권태정의 어깻죽지로 얼굴을 파묻었다. 권태정은 먼저 안겨드는 사랑스러움을 가득 끌어안은 채 연약한 복숭아 향을 들이마시며 소리 내어 웃었다.

“안 그래도 물어볼까 했는데 좀 그렇잖아. 무리하면 안 된다는데 섹스해도 되냐고 묻는 건 좀 너무 섹스에 미친 놈 같고, 또 내가 그런 말 하면 우리 이겸이 부끄러울 거고.”

“…애기 가지면… 원래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글쎄. 너무 심하게만 안 하면 되지 않을까? 아, 배도 눌리면 안 되겠다. 내가 다음에 조용히 혼자 있을 때 물어볼게.”

다시 어깨에 얼굴을 숨긴 채 고개만 끄덕이는 이겸의 귓가에 입술을 댄 권태정이 오직 이겸에게만 들리도록 가볍고 야한 말을 속삭였다.

“뭐라고 물어볼까. 우리 이겸이 물놀이해도 되냐고 물어볼까?”

“물놀이요?”

“응, 내가 손만 대도 물 존나 나오잖아, 우리 자기.”

너무 놀라 어깨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든 이겸이 노골적인 말에 멍하니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먹고 싶은 게 자지라는데 그거 줘도 되냐고 물어보면….”

서둘러 두 손으로 권태정의 입을 막은 이겸이 발긋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입이 막혔는데도 뭐라 더 야한 말을 내뱉던 권태정이 그대로 입술을 벌려 혀끝으로 이겸의 손바닥을 핥았다.

“…….”

혀끝이 손바닥을 간질이는 묘한 감각에 움찔대며 손을 뗀 이겸은 너무 부끄러워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저에게 닿는 권태정의 시선을 느꼈다.

다리 위에 앉아 있는 것도 부끄럽고, 또 말로 차마 하기 힘든 야한 말을 들은 것도 부끄럽지만, 역시 무엇보다 제일 부끄러운 것은 권태정의 시선이었다. 이겸은 여전히 저만 바라보는 권태정을 느낄 때면 지나치게 두근대고 설레서 몸이 배배 꼬이곤 했다.

“이렇게 물어보지 말까?”

“…그, 그냥 평범하게….”

“평범하게? 알았어. 평범하게 물어볼게. 혹시 섹스는 해도 되는지, 된다면 언제부터 되는지, 또 조심해야 할 건 뭔지. 이 정도면 평범하지?”

겨우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제 턱을 들어 올리는 손길에 겨우 시선을 들어 눈을 맞췄다. 정확하게 시선이 맞물리는 순간 심장이 또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어떡해…. 너무 좋아. 너무너무….

“무슨 생각하는지 얼굴에 다 보여.”

“…정말요?”

“응. 내가 그렇게 좋아?”

정확하게 맞추는 권태정을 보고 놀란 이겸이 입을 벌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권태정이 그대로 고개를 기울여 입술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겸은 부드럽게 뒤엉키는 혀를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권태정의 얼굴을 아주 소중하게 감싸 쥐고 매만졌다.

“하아….

“더 만지고 싶은데 만지는 걸로 못 멈출 거 아니까 참아야지.”

다짐이라도 하듯 소리 내서 말한 권태정이 이겸의 따뜻한 볼에 코끝을 비볐다. 그게 간지러웠는지 주변으로 이겸의 작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아…. 맞아. 태명…. 실장님, 우리 태명 지어요.”

“태명? 아, 애기 뭐라고 부를지?”

“네…. 저 얼른 방에 갔다 올게요.”

말릴 새도 없이 다리 위에서 내려가 방으로 가는 이겸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권태정은 곧 손에 휴대폰을 들고나와 다시 자연스럽게 제 다리 위로 올라와 앉는 이겸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지나치게 사랑스러워서 이제 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뭐 찾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태명 어떻게 지었는지 궁금해서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태명이라고 검색해 열심히 보는 이겸의 얼굴을 내내 들여다보던 권태정이 참지 못하고 그 눈가와 뺨에 쪽, 쪽 뽀뽀를 퍼부었다. 간지러워 방싯 웃으면서도 이겸은 권태정을 피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 복덩이, 튼튼이, 사랑이, 기쁨이…. 이런 걸 많이 하나 봐요. 딱풀이도 있어요.”

“딱풀?”

“배 속에 딱 붙어 있으라고….”

재밌는지 웃는 이겸을 보고 따라 웃은 권태정은 고개를 기울여 말랑한 볼을 아프지 않게 깨물다가 빨아들였다.

“우리 이겸이는 뭐가 좋아?”

“음…. 전 귀여운 게 좋을 것 같아요….”

“귀여운 거? 그럼 태명도 이겸이라고 지어야겠다. 세상에 우리 자기만큼 귀여운 거 없잖아.”

권태정은 제가 ‘이겸아.’하고 이름을 불렀을 때, 이겸과 애기가 둘 다 저를 보는 것을 상상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면…. 음, 어디 보자.”

이겸에게 휴대폰을 받아 이것저것 스크롤을 내려 보던 권태정이 불쑥 솟은 장난기를 숨기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달덩이는 어때? 달덩이처럼 크고 환하라고.”

“…달덩이요? 어…. 의미는 좋은데….”

“아니면 푸근이? 부드럽고 따뜻하라고. 대박나라고 대박이도 좋겠다. 아니면 돈방석에 앉으라고 방석이.”

“…전부 의미는 좋은 것 같은데…. 부르기가 조금…. 그리고 방석이라는 태명은 아무도 안 할 것 같아요….”

이겸은 당황해 눈동자를 한곳에 두지 못했다. 달덩이, 푸근이, 대박이, 방석이…. 모두 의미는 좋지만 별로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권태정이 원한다면 그렇게 지을 수도 있겠지만….

권태정은 제 농담에 정말 곤란해 보이는 이겸을 보며 크게 웃다가 앓는 소리를 냈다. 씨발, 진짜 우리 자기 예뻐서 어쩌지. 진짜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다 아팠다.

“장난이야. 걱정하지 마.”

진짜 그렇게 부를까 봐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보고 다시 소리 내어 웃다가 결국 눈물까지 흘린 권태정이 살살 이겸의 얼굴을 만져 다시 웃게 만들었다.

“귀여운 거 하니까 우리 이겸이 병아리 옷 입었던 거 생각나네. 그때 진짜 귀여웠는데. 동화책 같은 데 나오잖아. 병아리가 삐약거리면서 엄마 따라가는 거. 그거랑 진짜 똑같았어.”

“이제 그 옷을 보기만 해도 실장님이 병아리 소리 내 보라고 하신 게 생각나요.”

“한 번만 더 해 줘. 또 듣고 싶어.”

귀와 목덜미가 빨개진 채 이겸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작게 목을 울렸다.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권태정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삐약….”

씨발, 진짜 미치겠다. 조현준한테 지금 전화해서 물어볼까. 과격하게 안 하고 그냥 넣기만 하는 것도 안 되냐고.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마구 끓는 마음을 겨우 짓누른 권태정이 발그레 달아오른 이겸의 입술에 깊게 입 맞추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삐약이 예뻐서 어떡해. 이겸아. 매일 한 번씩 해 주면 안 돼?”

“…삐약이? 삐약이 귀여운 것 같아요.”

삐약이라는 말이 마음에 드는지 이제야 좋아서 웃는 이겸을 본 권태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겸이 마음에 든다면 저는 뭐든 다 좋았다. 그리고 매일 이겸이 삐약거리는 걸 들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데 그걸 놓칠 수는 없었다.

“마음에 들면 삐약이라고 할까? 애기랑도 잘 어울리고, 우리 이겸이랑도 잘 어울리니까.”

“실장님도 마음에 드세요?”

“그럼. 나도 좋지.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뻐.”

“그럼 그걸로 할래요.”

말갛게 웃은 이겸이 기분이 좋은지 권태정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권태정은 먼저 닿아오는 이겸의 허리를 안으며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밤이라 조금 더 짙어진 복숭아 향이 몸속으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 심장에 고인 사랑도 찰랑였다.

“아, 너무 세게 안으면 안 좋겠지?”

너무 좋아 너무 꽉 안았다가 지레 겁을 먹은 권태정이 스르륵 팔에서 힘을 풀며 이겸을 바라보았다.

“하나도 안 아팠어요.”

“그래? 다행이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애기도 좋았을 거예요. 제가 좋았으니까.”

“태명으로 불러야지. 방금 정했잖아.”

“아…. 삐약이도….”

아, 씨발. 너무 귀여운데. 태명을 부를 때마다 이렇게 귀여우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실장님도… 불러 보세요.”

“나야 완전 잘하지.”

권태정은 이겸의 배 위를 손바닥으로 살짝 덮은 채 부드러운 시선을 아래로 보내며 웃음 지었다.

“삐약아, 다른 건 됐고 건강히 있다가 만나자. 아, 그리고 이겸이 아빠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권태정을 말끄러미 바라보던 이겸이 두 손으로 가만히 그 얼굴을 잡고 입술에 초옥 입 맞췄다. 새삼 권태정을 만나게 되고, 또 사랑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다정함을 모르고 살았다면 얼마나 슬펐을까. 이겸은 조금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저의 다정함을 가득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행복했다, 아주 많이. 너무나 좋다는 생각 외엔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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