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히트사이클도 아닌데 꼭 그때처럼 쾌감이 온몸을 두드리며 내내 고여 있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기분이 좋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다. 이겸은 권태정을 안은 채 시간이 지나도 잘 가라앉지 않고 몸을 건드리는 쾌감과 마주했다.
“하….”
기분이 좋기는 권태정도 마찬가지였다. 안정을 취해야 하는 이겸을 위해 그동안 기꺼운 마음으로 여러 위기의 순간들을 짓눌러 왔지만, 참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겸을 눈앞에 두고도 자위를 해야 할 때도 있었고, 깊게 넣어 엉망으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저를 탓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지금은 이겸의 안이었다. 그것도 이겸이 너무나도 저를 원하고 있었다. 조금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자꾸만 매달리고, 눈을 맞추고, 혹시라도 그만둘까 싶어 불안함이 묻은 눈으로 보는 이겸이 사랑스러웠다.
“이겸아, 뽀뽀.”
“…뽀뽀.”
눈만 마주쳐도 깊게 혀가 뒤엉키던 자리에서 간지러운 소리가 났다. 뽀뽀할 때도 눈을 감는 이겸과 쪽, 쪽 몇 번이나 뽀뽀한 권태정이 여전히 꽉 맞물린 아래를 빼냈다. 그리고 정액이 고인 콘돔을 빼냈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이겸이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하는 게 느껴졌다.
“재워 줄게.”
마음 같아서는 콘돔 통이 바닥이 날 만큼 하고 싶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서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을 누른 권태정이 다정히 소곤댔다.
“…저 아직 안 졸려요.”
아직 안 졸리다는 말을 자극적으로 듣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던 권태정은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제 품에 축 늘어져 안긴 이겸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하여튼 저 순진한 애가 하는 말을 이렇게 야한 쪽으로 듣는 제가 문제였다.
“사실 더 하고 싶은데…. 너무 오래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생각나서.”
“…그건….”
뭔가 생각이 난 듯 권태정의 품에서 몸을 뗀 이겸이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로 눈을 맞췄다.
“…사이클 때처럼…. 며칠씩 하면 안 된다는 거… 아닐까요?”
조금 전까지는 이겸이 하는 말을 야하게만 듣는 제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조금 전 이겸의 말은 아마 누가 들어도 섹스를 더 하고 싶다는 쪽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할 것이었다. 물론 제가 아닌 다른 누구도 절대 들을 일은 없지만.
“아…. 우리 자기는 며칠은 해야 오래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사흘은 해야 오래 하는 건데 내가 너무 조심했네. 우리 이겸이 마음도 모르고.”
“그, 그게 아니라…. 사이클 때마다 오래 했으니까….”
“응. 맞아. 오래 했지, 우리. 쉬지도 않고 하다가 잠깐 잠들고, 또 누가 먼저든 깨기만 하면 물고 빨고.”
등줄기를 따라 길게 쓸어내리자 이겸의 몸이 다시 움찔거렸다. 권태정은 그대로 이겸을 눕히고, 콘돔 하나를 더 꺼내 성기에 씌웠다. 곧 저를 뒤덮을 권태정을 올려다본 이겸이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하기 어려운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그걸 본 권태정이 몸을 내려 이겸의 입술에 제 귀를 대 주었다.
“…원래는… 그, 그거 없이 해서….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그 느낌이 안 드니까 조금 이상해서요….”
“아…. 배 속에 싸 주는 게 좋았어?”
이겸의 뒤로 몸을 밀착한 권태정이 다시 단단해진 성기 끝을 이겸의 입구에 맞췄다. 콘돔이라는 말도 소리 내지 못하고, 또 정액이라는 말도 소리 내지 못했는데도 말 자체가 지나치게 야했다. 콘돔 없이 해서 배 속에 정액이 가득 찼었는데 그게 아니라 이상하다니. 그걸 듣고 정상적인 사고를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 흣….”
몸을 맞추자마자 단숨에 깊게 뒤에서 삽입한 권태정이 살짝 나온 이겸의 배를 매만지며 허리를 움직였다.
“삐약이 무사히 나오고, 자기 몸 회복만 하면 그땐 다시 다 할 수 있어. 며칠씩 오래도 하고, 배 속도 채우고.”
흥분으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달라붙었다. 이겸은 계속 제 배를 만지며 퍽, 퍽 뒤에서 몸을 부딪쳐 오는 권태정을 느끼며 허리를 비틀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닿아 오는 목소리도, 그 목소리가 담은 내용도, 또 아랫배를 은근히 만지는 손길도 모두 다 몇 배는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아…. 으응, 흣…!”
삐약이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한 아랫배를 만지다가 손가락을 뻗어 성기 근처까지 문지르는 손길에 이겸은 너무나 쉽게 흥분했다. 무엇보다도 그 근처만 만져 줄 뿐 성기는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아 더 그랬다.
“하…. 후우, 이겸아. 읏, 이겸아….”
다른 말도 아니고 제 이름을 소리 내며 깊게 파고드는 게 너무나 좋았다. 이겸은 배 위에 놓인 권태정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실장님…. 하읏…!”
힘이 실려 깊은 곳이 세게 짓눌리기는 하지만, 움직임이 빠르지는 않았다. 잔뜩 느끼는 곳이 뭉개질 때마다 경련하며 이겸은 권태정이 원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자꾸 이렇게 야한 생각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으응…. 아아…….”
그 순간 물속에서 손가락이 드나들 때처럼 아주 느릿하게 성기가 깊숙이 들어와 자극하면 온몸이 팽팽히 펴질 수밖에 없는 곳을 짓뭉갰다. 이겸은 크게 몸을 떨며 바르작댔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조금 전까지 맺혀 있던 생각이 지워졌다. 이리저리 쾌감이 튀어 정신없이 몸을 두드려 그 무엇도 더는 떠올릴 수 없었다. 이겸은 다시 쾌감에 갇힌 채 떨리는 손으로 제 허리를 감고 있는 권태정의 팔을 잡았다. 깊은 곳을 짓누른 채 움직이지 않아 안달이 났다.
“흐읏, 실장님…. 으응….”
“기분 좋아? 목소리가 야해졌어, 이겸아…. 하…. 목소리 들으니까, 읏…. 쌀 것 같아.”
“…흣, 제발….”
움직여 주지 않는 게 애가 타 눈물이 다 났다. 이겸은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움직여 권태정의 성기 끝에 스스로 깊은 곳을 스치게 했다. 단단한 선단이 잘 느끼는 곳을 긁는 순간 이겸의 성기 끝에서 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 어떡해….”
이대로 내내 가시지 않으면 어쩌나 싶을 만큼 강하고, 기분 좋은 쾌감이 허리에 맺혀 위아래로 퍼졌다. 같은 자극을 또 느끼고 싶어 권태정의 성기가 제 안을 긁도록 엉덩이를 스스로 움직인 이겸이 귓가를 핥는 뜨거움에 어깨를 움찔댔다.
“여기가 좋아?”
이겸이 스스로 맞춰 자극하려는 곳을 세게 찔러 준 권태정이 다시 물줄기가 흐르는 이겸의 성기를 쥐고 끝을 문질렀다. 검지가 이겸이 쏟는 물에 적셔지는 느낌이 좋았다.
“실장님…. 흐읏, 자기야…. 빨리이….”
“빨리 하면 힘드니까 천천히 하는 건데 싫어?”
“빨리…. 빨리 해 주세요….”
씨발, 진짜 모르겠다. 소리 내어 욕을 내뱉을 수는 없어 속으로 삼킨 권태정이 빨리 해 달라고 매달리는 이겸의 안에서 성기를 빼냈다. 그리고 몸을 들어 엎드리게 하고는 더 깊게 끝까지 파고들었다. 조금 전보다 더 안쪽까지 들어오는 느낌에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이겸이 고개를 저었다.
“후우….”
쏟아져 내려온 앞머리를 대충 쓸어 넘긴 권태정이 그렇게 잘 쉬게 하고, 먹이려고 하는데도 살이 붙지 않아 여전히 가느다란 허리를 두 손으로 쥐었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허리를 쥐기만 해도 엉덩이를 움찔대는 뒷모습이 지나치게 야했다. 권태정은 마지막 인내를 쥐어짜 이겸에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힘들면 말해, 참으면 절대 안 돼. 알지?”
“네…. 그럴게요….”
대답하는 사이사이 뒤섞이는 숨소리에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권태정은 그대로 이겸의 허리를 꽉 쥔 채 뒤에서 몸을 움직였다. 잔뜩 젖어 풀어진 내벽을 쓸며 들어가 스치기만 해도 자지러지는 곳을 세게 반복해서 찔렀다. 이겸이 원하고, 또 제 욕망이 향하는 대로.
“아, 아…! 으응, 읏, 하으읏…!”
성기가 이겸의 안으로 빨려 들어가 완전히 깊게 맞물릴 때마다 젖은 소리가 났다. 더 큰 자극이 닿길 바라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퍼지는 쾌감에 이겸의 무릎이 자꾸 무너졌다.
쏟아지는 페로몬과 권태정의 숨, 그리고 제 몸을 단단히 뒤에서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힘과 제가 그를 원하는 것처럼 그도 저를 원한다는 듯 깊숙하게 몸이 맞물리는 게 너무나 좋았다.
이겸은 권태정의 냄새가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들어온 깊은 곳으로 페로몬까지 파고들어 뒤섞이는 느낌이 났다.
“…흐으, 응…. 좋아, 아아…. 좋아요….”
“하…. 이겸아, 읏, 좋아?”
“으응, 좋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사정감을 느낀 권태정이 몸을 등 위로 숙여 붙이며 이겸의 고개를 잡아 돌려 혀끝을 문질렀다.
“하….”
기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이겸을 보며 권태정은 문득 제가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말하는 걸 보고 멋있다고 하던 이겸의 말을 떠올렸다. 불쑥 치솟은 장난기와 이겸을 더 기분 좋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일렁였다. 권태정은 그대로 이겸의 귓가에 입술을 댄 채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연이겸 씨, 기분 좋아요?”
“…흣….”
뜨겁게 스며드는 낮은 목소리와 존댓말에 놀란 이겸의 어깨를 움찔댔다. 안 그래도 좁은 아래가 아플 만큼 더 꽉 조여드는 걸 보니 자극이 되는 모양이었다.
“입사하자마자 실장이랑 붙어먹는 신입이 어디 있어요. 이러면 곤란한데.”
“하읏…. 실장님….”
“다른 사람도 알아요? 연이겸 씨 이렇게 야한 거?”
“몰, 몰라요…. 으응, 아….”
기분 좋은 곳이 뭉개지는 느낌과 함께 애액이 울컥 넘치고, 성기 끝에서 또 물이 주륵 흘렀다. 이겸은 제가 쏟아 내는 것들로 엉망이 된 시트를 보며 헐떡였다. 권태정이 말을 높이며 연이겸 씨라고 부를 때마다 배 속이 울렁이고, 안 그래도 뜨거운 몸에 열이 더 확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
다시 빠르게 은밀한 곳을 짓뭉개는 것에 하릴없이 맑은 물을 쏟아 낸 이겸이 완전히 침대 위로 무너졌다. 너무 느껴 머리가 다 저릿했다.
엉덩이만 조금 든 채 무너진 이겸의 안으로 빠르게 몇 번 더 움직여 사정한 권태정이 고개를 가볍게 젖힌 채 긴 숨을 내뱉었다. 흥분한 이겸이 아플 만큼 꽉 조였다가 풀고, 또 아플 만큼 꽉 조이며 제 성기를 먹을 때마다 온몸이 다 오싹할 만큼의 쾌감이 돌았다.
“하…. 후우….”
손끝까지 저릿할 만큼 강한 쾌감에 여운을 붙잡고 있던 권태정이 쥐고 있던 이겸의 허리를 놓고 축축하지 않은 쪽으로 편히 눕혀 주었다. 그제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놀란 권태정이 얼른 이겸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이렇게 많이 운 줄 몰랐어, 미안해. 힘들었어?”
걱정이 가득 담긴 권태정을 올려다보며 이겸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땀에 젖은 제 머리를 넘겨 주는 손길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또 저만을 향한 목소리도 전부 다 너무나 다정해 좋았다.
“좋아서….”
“…….”
“좋아서 그런 거예요…. 너무 좋아서….”
“그럼 다행이지만, 그래도 운 거 보니 마음 아파.”
마음이 아프다는 소리와 동시에 권태정의 얼굴 위로 그 감정이 떠올랐다. 정말 권태정과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전부 이어져 있어서 그런지 권태정이 느끼는 감정을 이겸도 전부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꽉 조이고 저릿한 느낌…. 또 애처롭고 어쩔 줄을 모르겠는 그 마음을.
“…….”
권태정이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과 사랑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뻐 마음이 마구 벅차올랐다. 이겸은 눈만 마주쳐도 감정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눈으로 저를 보는 권태정의 뺨을 살살 문질렀다.
“…자, 자기야….”
“…….”
“…뽀뽀….”
걱정이 뭉친 마음을 풀어 주고 싶어 작게 소리 내자 권태정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겸은 그대로 저에게 쏟아져 얼굴 여기저기 마구 뽀뽀하는 권태정을 안으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 간지럽고 행복한 소리는 사랑이 되어 밤이 더 깊고, 새벽이 기울 때까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