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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 소년 외전-(16)화 (162/174)

외전 16화

얼마 전까지는 뭔가를 잡지 않고는 분명 다섯 걸음도 잘 걷지 못했는데 며칠 전부터는 열 걸음도 걷고, 스무 걸음도 걸으며 집안을 누비고 다녔다.

“아빠 안아 주러 왔어? 예뻐라. 아빠 안아 줘.”

기다란 다리를 구부려 앉아 팔을 벌린 권태정이 제 품으로 쏙 들어와 안기는 하루를 아프지 않게 안고 살살 몸을 흔들었다. 제가 하는 걸 따라 같이 몸을 흔들고 기저귀를 찬 엉덩이까지 흔들거리는 게 귀여워 웃음이 터졌다.

“누구 아들이 이렇게 예뻐. 우리 하루 두고 아빠 출근 어떻게 하지?”

통통하고 보들보들한 볼을 입술로 깨물자 하루가 까르륵 웃었다. 권태정은 그대로 하루를 번쩍 안아 들어 품에 안고 놀아 주었다. 방 안으로 계속 울리는 맑은 웃음소리에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하루가 아빠랑 노는 게 너무 좋은가 봐요.”

욕실에서 막 씻고 나온 이겸이 권태정의 품에 안겨 저를 보는 하루와 눈을 맞췄다.

“빠빠!”

“응, 아빠. 아, 빠.”

“압…빠아.”

“우리 하루 이제 말도 잘하네.”

“압빠아, 빠! 압빠.”

권태정을 다시 본 하루가 연달아 몇 번이나 아빠라 해 주는 것에 권태정은 진지한 얼굴이 되어 이겸을 바라보았다.

“어떡해, 이겸아. 우리 하루 천재야.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하지. 아까 걷다가 넘어졌는데 울지도 않아. 씩씩하게 일어나더니 삐약이까지 주워서 들고 나한테 왔다니까.”

하루가 성장하며 새로운 모습을 하나씩 보일 때마다 하루를 천재라 말하는 권태정이 귀여워 웃은 이겸이 발뒤꿈치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저를 향해 기울어지는 권태정의 입술에 쪽 입 맞췄다.

“뽀!”

“이거 봐. 뽀뽀도 알아, 하루. 내가 한 것처럼 입술 내미는 것 봐.”

권태정과 이겸이 입술을 내밀어 뽀뽀하는 것을 본 하루가 똑같이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 입술 앞으로 볼을 대 주자 하루가 뽀 소리를 내며 권태정의 볼에 입술을 꾹 눌렀다.

“아, 진짜 오늘 출근 못하겠다. 하루야, 아빠랑 종일 같이 있을까. 아빠를 녹이면 어떡해. 우리 하루 찹쌀떡 먹어야겠다.”

찹쌀떡처럼 말랑한 하루의 볼을 먹듯 장난치는 권태정을 보며 웃던 이겸이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을 보고 놀라 얼른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 링크를 눌러 이름과 생년월일, 수험 번호를 적었다.

“…실장님, 저 확인해 볼게요.”

이겸의 곁으로 온 권태정이 몸을 숙여 이겸과 함께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겸은 긴장되는 마음을 누른 채 조회 버튼을 눌렀다. 사람이 몰려서 그런지 잠시 버벅이던 사이트가 곧 하얗게 변하며 결과 창으로 변했다.

[합격 여부 : 합격]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본 순간 이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 글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겸이 확인한 것과 거의 비슷하게 합격 글자를 본 권태정도 잠시 멍해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오직 권태정의 품에 안긴 하루만이 뽀뽀 놀이에 재미가 들려 멍한 권태정의 볼에 뽀오 소리를 내며 입술을 꾹꾹 누를 뿐이었다.

“하루야, 잠깐만….”

제 행동이 과격해져 혹시 하루가 다칠까 싶어 아기 침대 안에 하루를 내려 놓은 권태정이 다가오는 이겸을 가득 끌어안았다. 그동안 공부와 육아 두 가지 전부 소홀하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 알기에 아낌없이 칭찬하고 축하해 주고 싶었다.

“축하해, 이겸아. 당연히 붙을 줄 알았는데, 아, 그래도 이렇게 보니까 진짜 너무 좋다. 행복해. 너무 잘했어. 우리 이겸이 이렇게 잘할 줄 알았어.”

“감사해요, 실장님…. 이게 다 실장님 덕분이에요.”

“내 덕분은 무슨.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다 우리 자기가 공부 열심히 해서 된 건데.”

“저 공부하라고 하루랑 계속 시간 보내 주셨잖아요. 좋은 선생님도 찾아 주시고…. 또 너무 잘하고 있다고 계속 칭찬도 해 주시고….”

이렇게 기쁜 중에도 저에게 모든 마음과 기쁨을 돌리는 이겸이 사랑스러워 다시 한번 녹은 권태정이 뺨에 깊게 입 맞추며 눈을 감았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다 날 것만 같았다.

“하루랑 시간 보내는 건 아빠니까 당연한 거고, 좋은 선생 백 명을 붙여도 학생이 대충하면 아무 효과도 없는 거잖아. 그리고 정말 너무 잘해서 잘했다고 한 건데. 다 우리 이겸이가 잘해서 된 거야. 난 우리 하루랑 응원하고, 우리 자기 믿은 게 전분데.”

“그래도… 실장님 안 계셨으면 이렇게 편히 공부 못했을 거예요.”

“내가 도움이 됐다면 너무 다행이야. 우리 자기 정말 잘했어. 축하해. 진짜 멋있다, 우리 이겸이.”

꼬옥 끌어안고 있던 몸을 살짝 떼어 눈을 맞춘 권태정이 고개를 기울였다. 곧 쪽, 쪽 기쁨과 사랑이 묻은 간지러운 울림이 방 안으로 퍼졌다.

“뽀! 뽀오.”

몇 번이고 입술을 마주하던 권태정과 이겸의 시선이 아기 침대 쪽으로 향했다. 삐약이 인형을 끌어안은 채 하루가 입술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게 보였다. 뽀뽀 놀이를 하고 싶은지 허공에 쪽, 쪽 뽀뽀하는 하루를 보고 웃음을 터뜨린 이겸이 얼른 하루를 안아 들었다.

“우리 하루도 뽀뽀.”

“압빠빠, 뽀오.”

“태정이 아빠한테도 뽀뽀해 드리자.”

“빠아, 뽀!”

권태정이 몸을 숙여 얼굴을 대자 하루의 입술이 볼에 꾸욱 눌렸다가 떨어졌다. 침이 묻었는데도 좋은지 웃은 권태정이 이겸과 하루 볼에 번갈아 입 맞췄다.

정말이지 더 아무것도 바랄 게 없는 완벽한 행복의 아침이었다.

* * *

이겸의 대학 합격을 축하하며 권태정의 아버지는 억대의 돈이 든 용돈 통장과 카드를, 어머니는 권태정과 시간을 내어 가서 며칠 푹 쉬고 오라고 유명한 호텔 숙박권을, 그리고 권유정과 권기정은 학교 다닐 때 필요한 것을 사라며 고가의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로 주었다.

권태정도 뭔가 물질적인 큰 선물을 하려 했지만, 이미 차고 넘치게 받아 더 필요한 게 없다며 이겸이 만류하는 바람에 일단은 이겸이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사랑해 주는 것으로 선물을 대신했다.

그렇게 하루를 가족들에게 맡기고 어머니가 선물해 준 호텔에서 둘이서만 보낸 주말은 무척 축축하고 또 뜨거웠다.

눈만 마주치면 어디서든 서로를 끌어당겼고, 소리도 마음껏 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본가에서도 세대 분리가 엄청나게 잘 된 덕분에 섹스하는 것에 불편은 없었지만, 하루가 아기 침대에서 자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도 많아서 소리를 죽여야 할 때도 많았기에 마음껏 소리를 내며 하는 섹스가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까무룩 잠이 들 만큼 섹스를 하고 일어나서는 함께 서로의 휴대폰에 가득한 하루의 동영상과 사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또 입을 맞추고, 서로를 끊임없이 머금고 또 머금었다.

그런 열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입학한 대학교는 이겸에게 무척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커다란 학교도 신기하고, 저에게 친절하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너무나 좋았다. 다람동 철거촌에 사는 애라며 말을 나누어 보기도 전에 친구가 될 수 없는 선을 긋던 때와는 달랐다.

개강총회 자리 역시 낯설었지만, 선배들이 긴장을 풀 수 있게 농담을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말을 걸어 주기도 해서 금세 자리에 스며들 수 있었다.

“저…. 아까 들었는데 저희보다 두 살 많으시다고….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아…. 네, 그럼요.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형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야 저도 편해요. 전 신해수예요. 형 이름도 다시 말해 주세요. 아까 들었는데 까먹었어요.”

“아, 전 연이겸이에요….”

“아, 그럼 전 이겸이 형이라고 부를게요. 형 진짜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 으응. 그럼 나는… 해수라고 부를게….”

옆에 앉은 붙임성 좋은 동기가 터 준 대화의 물꼬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편해지고 즐거워졌다. 이겸은 그래도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 다행이라 생각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당일에만 간단히 하고 끝내 그날 별로 친해진 사람이 없는 이유였다.

“형, 오티 때부터 형이랑 다 친해지고 싶어한 거 아세요?”

“…나랑? 왜?”

“얼굴 쩔어서요. 형 누구냐고 에타에도 올라왔던데. 저도 형 연예인인 줄 알았어요. 형 뭐 그런 거 활동한 적 있어요? 어디서 진짜 본 것 같은데….”

“아니…. 나 그런 쪽으로는 뭐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

권태정과 함께 다니다 보면 가끔 여기저기에서 사진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일이 생기고는 했다. 그런 건 태성그룹에서 금세 처리를 하며 하루이틀 안에 내려가긴 하지만, 워낙 여기저기 떠돌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통해 저를 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굳이 알려 좋을 건 없기에 이겸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형, 술은 잘 마셔요?”

“술? 아니…. 많이 안 마셔 봤어. 그나마도 마지막으로 마신 게 일 년도 더 돼서….”

“아아, 전 진짜 못했는데 졸업하고 술자리가 계속 생겨서 다니다 보니까 좀 늘었어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가게 안이 가득 차고, 음식들이 식탁마다 가득 놓였다. 이겸은 식탁 한 쪽으로 가득가득 놓인 술병을 보며 볼을 살짝 부풀렸다가 바람을 빼냈다.

“형, 저 몇 명 친해진 애들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애들 다 착한데.”

“아…. 정말?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서글서글하게 먼저 말을 걸어 주고, 또 친구까지 소개해 준다는 신해수를 보고 웃은 이겸이 제 앞으로 놓인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권태정이 깡패가 아니라 태성그룹 아들이라는 걸 알고 만나지 않을 때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던 형들과 술을 마신 날 이후 제대로 술과 마주하는 게 처음이었다.

‘이겸아, 술 마셔도 되는데 천천히 마시고, 안주 많이 먹어. 알았지? 너무 어지럽거나 잠들 것 같다 하면 그 전에 꼭 전화하고. 취해도 걱정하지 마. 내가 데리러 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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