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님 망겜에도 엔딩이 있나요-1화 (1/127)

1화

“미친.”

[잡담] 오픈 일주일 만에 섭종ㄷㄷ

[잡담]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끝판왕이넼ㅋㅋ

수백억의 투자금을 받아 개발된 기대작 <알리엔토 사가>. 그 시작은 장대했으나, 끝은 매우 참담했다.

오픈 월드 어드밴처 게임임에도 다른 유저를 자신의 월드로 초대해 함께 사냥이나 생활을 할 수 있어 기대작으로 화제가 되었다. <알리엔토 사가>를 만든 ‘프렉탈 소프트’는 기업 정보 조회 사이트에서 확인하기론 소규모 벤처기업인데 이런 방대한 볼륨의 게임을 만든다는 것에 의구심 반, 놀라움 반의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의심을 종식하려는 듯─

[기업IN] 프렉탈 소프트, ‘고지능의 AI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직접 관리하는 데이터양을 축소하는 시스템 구현 중’

─이라고 재빠르게 게임 전문 잡지에 인터뷰를 실었다.

K-양산형 게임 구조와 다른 색다른 게임인 데다 기업의 성장 가치를 인정받아 대형 투자 전문 기업들이 줄줄이 투자하였고, 벤처기업임에도 헉 소리 나오는 규모의 투자를 받을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오픈 첫날부터 자잘한 버그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잡담] 어떻게 고치면 고칠수록 더 이상한 버그가 나옴?

[잡담] 그냥 고치지 마라. 제발 부탁이다.

그러기를 일주일째, 드디어 터질 것이 터지고 만 것이다.

[필독] [공지] 안녕하세요. 알리엔토 사가입니다.

[***긴급 점검***]

안녕하세요.

모험가 여러분과 마지막 빛의 여정을 함께 써 내려가는 알리엔토 사가입니다.

현재 권장 전투력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를 가진 보스 ‘비스크라’로 인해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지 못하는 이슈에 대한 개발사의 공식 입장 드립니다.

데이터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고지능의 AI 알고리즘이 유저들의 행동을 빠르게 학습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담당자들이 여러 방면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조속히 원인을 찾아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2021.2.22. 추가)

저희 프렉탈 소프트는 <알리엔토 사가> 정규 서비스를 지속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판단하여 서비스 중단을 결정하였습니다.

치명적인 결함이 해결되는 대로 서비스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리엔토 사가>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모험가 여러분 감사합니다.

- 점검 시기: 2021. 2. 22 ~ 별도 고지 시까지 (2021.2.22. 수정)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당연하게도 불타고 있었다.

[잡담] 3대 명검이 떴는데 그게 무기한 점검인 게 ㄹㅈㄷ

[잡담] 마지막 빛의 여정을 써 내려간다더니 ㄹㅇ 마지막이었음

[잡담] 똥렉탈아 게임이 만들고 싶니?

보통은 이런 분노 섞인 유저들의 성토가 대부분이었고 뜬소문이 돌기도 했다.

[잡담] 현 시각 프렉탈 소프트 내부 상황.txt

친구가 프렉탈 소프트에 다니는데 게네 플머들도 수습 못 해서 지금 경위서 쓰고 난리 났다고 함 ㅇㅇ

[댓글/펼치기]

프렉탈 소프트 유령회사 아님? 저번에 사무실 찾아가 봤는데 그 건물에 프렉탈 소프트 없었음. 친구 다니는 거 인증 좀

뇌피셜 잘 봤고요

미친 개노답이네ㅋㅋㅋ투자금 먹고 튀었네

지금이라도 신고해서 투자금 회수해야 되는 거 아님?ㄷㄷ

되겠냐?

‘오히려 좋아.’

지금 같은 긴급 상황이라면 인력 보충이 절실한 상황일 테고, 심지어 실제로 플레이를 해본 사람인 것을 어필한다면 적어도 1차 면접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구직이 시급한 백수다.

한때는 평생의 반쪽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쫓겨나듯이 나온 회사. 퇴직금도 거의 바닥났기 때문에 취직이 절실했다. 마우스를 돌려 곧바로 게임 업계 전문 구직 사이트 ‘게임IN’의 [이력서 열람 현황] 버튼을 클릭한다. 게임IN 사이트의 마스코트가 해맑게 웃으며 하단의 리스트를 가리키고 있다.

‘유자현’님이 제출하신 이력서 현황입니다.

-프렉탈 소프트 | 시스템 기획자 | 2020.12.26. 제출

[2021.1.1. 이력서 열람] [X 지원서 삭제]

티저만으로 가슴을 뛰게 만든 게임은 처음이었다. 알리엔토 사가 런칭 전, 구인 공고를 발견하고 급히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서 올렸더니 열람하고 나서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아니, 불합격이면 얘기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내정자가 있나?’

‘그냥 공고만 올려두고 뽑는 시늉만 하는 건가?’

구직자의 처지이니 예민해져 있었는데 고된 런칭 준비와 버그 픽스로 대응을 못 했겠거니 이해되기 시작했다.

‘포트폴리오에 제안서 추가하자!’

게임을 칭찬하며 현재의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할지 겸손하게 제안하는 기획서를 하나 만들어 재제출하면 어필이 될 것이다. 기업에서 이 아이디어를 100% 수용하진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업의 개발 방향성만 맞는다면 알리엔토 사가에 관심 많은 지원자로 도장 찍혀 긍정적으로 봐줄 게 분명했다. 당연하지만 기업 차원에서는 자사 게임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뽑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잠깐, 섭종 했는데 무슨 수로 게임 개선점을 수집해.’

멍청이! 정작 서비스했던 일주일 동안 별생각 없이 보내다가 뒤늦게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이렇게 갑작스레 섭종할 줄 알았나? 어떻게든 일주일 동안 플레이했던 기억을 살려서 몇 자 적어봤지만, 기억에 의존한 명확하지 않은 정보를 적었다가는 되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어서 폐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버그 제보 게시판에 올렸던 걸 참고해 볼까?’

다시 공식 홈페이지로 접속했다. 어디 쓸만한 거 있나… 돌려차기 스킬 사용하고 나서 무기를 들 수 없던 거라던가, 오브젝트를 들어 던지기 하면 착용하고 있던 무기도 날아갔던 거라던가.

‘…곱씹어 봐도 희한한 버그야.’

몇백 페이지를 넘겨도 자잘한 버그나 개발사를 향한 욕설의 향연으로 도무지 원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역시 직접 플레이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초조해져 손톱 끝으로 마우스를 틱틱 소리 나게 두드렸다. 손쓸 방도가 없으니 게시판의 제목만 쭉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잡담] Alpha Server ☜ Click | 조회수 0

조회 수 0의 게시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뜬금없는 스팸까지 흘러들어올 정도로 화제성이 있긴 하나 보다. 아무래도 이런 노골적인 제목은 클릭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했기에 사람들의 심리가 정확히 반영된 조회수 0이 애처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차라리 자극적인 문장으로 어그로를 끌어보지 싶었다.

‘진짜 알파 서버 내부 개발 서버.

로 접속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99.9%의 확률로 스팸이겠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클릭했다.

[잡담] Alpha Server ☜ Click

♠How to connect Alpha Sever♠

 AlientoSaga(Alpha).exe [다운로드]

‘…엄청나게 수상한 파일이 있잖아.’

웃음이 비식비식 나왔다. 실행 파일을 까 봤자 조악한 스팸일 것 같지만 호기심이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무시하고 지나갈 내용임에도 해결책 없는 이 상황이 날 충동하게 만든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사 온 싸구려 커피를 쭉 빨아들이면서 파일을 내려받아 실행했다.

‘생각해 보니 랜섬웨어일 수도 있겠네? X된 거 아냐?’

찰나의 걱정과 달리 밝은 빛이 서서히 퍼져 나가더니 노을 진 지평선을 바라보는 한 인물의 뒷모습, 익숙한 알리엔토 사가의 메인 화면이 나왔다.

“휴우….”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알파 서버라기보다는 프리 서버를 만든 건가? 보통 서비스 종료된 게임을 즐기지 못하게 된 국내 유저들이 클라이언트 속의 소스 코드와 리소스를 따온 후, 자체 서버를 구축하여 운영하기도 하는데 그걸 ‘프리 서버’라고 부른다. 서비스 잠정 종료를 선언한 격이니 냉큼 구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클라이언트를 뜯는다던가 개인이 서버를 구축해서 서비스하는 건 엄연히 저작물을 훔치는 범죄 행위다.

“쯧쯧. 간이 부었네.”

서버 유저를 끌어모으려고 어그로를 끈 것이겠지만, 대놓고 스팸 냄새를 풍기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거 어쩔까?’

범법 행위인 것은 알지만 딱 몇 가지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실제로 플레이를 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싶었으니까.

‘개발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볼게요.’

마음속으로 석고대죄하며 [LOGIN] 버튼을 클릭했다. 원래대로라면 지평선을 보고 있는 인물을 점점 줌인하다가 정면으로 돌아가 커스터마이징 ui가 나와야 한다.

─퍽!

“어?”

모니터인지 본체인지 모를 곳에서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역시 나쁜 마음을 가지니까 벌을 받는구나. 모니터는 고요한 적막 속에서 암전 된 채 전원 램프만 깜빡이고 있다.

“알뜰살뜰 모아둔 자료랑 포트폴리오 날아갔으면 어쩌지? 진짜 돌겠네!”

다른 것보다 자료가 가장 걱정스러웠다. 머지않아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의 전원이 들어왔지만, 그것이 반갑기는커녕 뭔가 이상했다. 기름에 물이 섞인 것 같은 탁한 무지갯빛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불쾌한 움직임으로 울렁댔다.

“왜 이래? 어떻게 끄지?”

코드를 뽑아버리자니 정말 망가질 것만 같고 강제 종료 키를 입력해 봐도 아무 반응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속이 매스껍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스트레스 때문일까, 빈속에 커피를 마셔서 그런가? 1인칭 게임을 할 때도 멀미한 법이 없는데 이상할 정도로 속이 울렁거리고 힘이 들었다. 찬물이라도 마시며 머리를 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잠깐… 나 정말 몸이 이상한…데…”

책상에서 벗어나 발을 딛는 순간 세상이 위아래가 뒤집히는 것처럼 시야가 휙 돌아갔다. 점점 바닥과 시야가 가까워지는 동시에 머리가 땅에 처박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몸 전체 신경의 전원이 차단된 것처럼 시야가 정전되고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

생전 맡아본 적 없는 퀴퀴하고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서히 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있는 걸까.

‘뭐 하다 잠들었지? 맞다… 기절했었지.’

요즘 돈이 없어 영양실조 수준으로 밥을 안 먹긴 했는데 그 때문인 걸까.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건지 눈꺼풀에 접착제라도 바른 것처럼 뻑뻑해서 뜨기 힘겨웠다. 맘 같아선 그냥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쓰러지면서 뇌진탕이라도 왔으면 큰일이니 상태를 살펴야 했다.

‘어?’

눈을 뜨자마자 푸른색 불꽃이 일렁이는 금속 샹들리에가 정면에 보인다. 우리 집에 저런 게 있을…리가 없다. 몸만 겨우 뉠 수 있는 원룸에 거대 샹들리에를 넣는 멍청이가 어디 있나? 그러고 보니 아늑한 황토색 장판이라던가, 집주인의 취향으로 범벅된 꽃무늬 벽지는 온데간데없고 삭막한 회색 벽돌뿐이었다.

꼭…

‘알리엔토 사가 마왕성 같은데?’

직접 플레이하러 가보진 못했지만, 홍보용 영상에서 이런 풍경을 봤다. 본래 RPG 게임의 ‘마왕’이라 하면 붉은색, 녹색 계열을 많이 쓰지만, 알리엔토 사가의 마왕 세력의 키 컬러는 파란색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손바닥에 닿은 차가운 촉감의 정체는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해골?!”

자세히 보니 파란색 보석이 박혀있는 해골 모양의 장식물이었다. 분명 쓰러졌는데 괴상한 의자에 앉아있다. 심지어 뒤늦게 시야에 들어온 손이 굉장히 창백해 보였다.

‘설마 나 죽은 거야?’

요즘 2030 청년 고독사가 많아졌다곤 했지만 그 뉴스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절그럭 소리를 내며 옷에 달린 체인들이 흔들렸다. 거기에 천이 여러 겹 덧대 있는 새틴 셔츠에 코트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보통 죽으면 당시의 모습 그대로라지 않았나 옷이 죽은 사람 치곤 과했다.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내 몰골을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벽에 잘 닦여진 금속판 같은 것이 거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헐레벌떡 그 앞으로 달려갔다.

“…말도 안 돼.”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낯선 얼굴이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형형히 빛내는 샛노란 눈동자와 백발의 뾰족한 귀를 가진 남자.

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알리엔토 사가의 홍보 영상에서.

“이거… 마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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