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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님 망겜에도 엔딩이 있나요-52화 (52/127)

52화

마차 내부는 암막 커튼으로 사방이 가려져 있어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도착해 보면 아실 겁니다.”

우릴 마주 보고 앉은 복면의 인물은 길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충 예상 가긴 하는데….’

흡사 납치하는 것처럼 우릴 끌고 왔지만, 별다른 위협을 가하지도 않고 마차의 승차감은 좋았다. 이런 것들을 장난스레 꾸밀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사람은 많이 없다.

“서프라이즈~”

눈이 가려진 채 마차에서 내렸고, 한참을 걷다 도착한 곳에서 안대가 풀어졌다. 그리고 시야가 풀리자마자 보인 것은 분홍색 머리의 앳된 외모의 여성. 스피나 델 이드랑제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리헤로스는 애써 웃고 있지만, 나는 너무 뻔하다고 생각해서 일말의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직장 일을 하며 다져온 ‘솔’ 톤의 목소리로 리액션 했다.

“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크리스, 너무 영혼이 없는 거 아니에요? 서운해지려고 그러네.”

“백작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후후후, 두 분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건강해 보여서 안심했어요.”

“그래 보이면 다행이죠. 리헤로스는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해도 앓아누웠었는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들었어요. 역시 마왕의 짓이죠? 못된 놈! 이제 영멸해 버렸으니 다행이에요.”

그 나쁜 놈이 코앞에 있는 나라는 것을 모르는 순수한 NPC에게 악담을 듣고 있자니 영 가시방석이었다. 나만큼이나 좌불안석인 리헤로스의 표정이 관리되지 않자 툭툭 쳤다.

‘다 들통나고 싶어서 그래?’

눈썹을 삐죽 들어 올리니 리헤로스가 헛기침하고 화제를 돌렸다.

“오전에 선포문이 붙은 건 들으셨지요?”

“그럼요! 추측이 진짜가 되었어요. 축제에요! 이드랑제 가문이 군수산업을 하곤 있지만, 저는 평화로운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저희 가문이 망할수록 좋은 거 아니겠어요.”

“헐…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는 거예요?”

“백작님, 농담이 짓궂으시네요.”

“후후후, 대답하기 곤란한 농담이었나요? 하여튼 그간 고생 많으셨으니 두 분도 이제 마음의 짐은 덜어놓고 즐기세요. 두 분을 위한 축제니까요.”

“감사합니다. 백작님도 축제하는 동안은 집무에 대한 부담을 덜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한 달 동안은 아마 대장간은 올스탑에 가까울 것 같아요. 겸사겸사 대장간 직원 모두 휴가 보내야겠네요.”

“참, 선물해 주신 무기도 잘 썼습니다. 이드랑제 가문이 군수산업을 선도하는 이유가 체감되더군요.”

“과분한 칭찬이에요. 세계의 평화를 가져다준 용사님이 그리 말씀해 주시니 영광이에요. 역시 그대를 지원해 주길 잘했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긴장되어 있던 마음을 풀어지게 했다. 스피나는 역시 귀족답지 않게 편한 스타일이다.

“그럼, 두 사람은 무엇부터 즐길 생각인가요?”

“보통 이런 축제는 무얼 하나요?”

“수도의 축제 같은 경우엔 일주일 동안 하는데요. 일반적으로 한 주 동안 각종 먹거리 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고 금요일에 무투대회 일요일엔 연회가 있을 거예요.”

“다른 건 다 평범한데 무투대회는 특이하네요.”

“그렇죠? 수도엔 글라디우스 기사단의 명성으로 인해 외부 각지의 기사와 모험가들이 모이거든요. 그래서 무투대회는 일종의 상징이 되었죠.”

“설마… 리헤로스는 강제 참여인가요?”

“후후, 그럴 리가요. 용사님의 공을 치하하는 축제이기 때문에 리헤로스는 시상을 하는 역할일 거예요.”

“그렇군요. 참여는 못 하나요?”

“참여하려고?!”

“부상이 좋으면 참여할까 해서.”

“아서라…. 물욕도 없는 놈이.”

“흐음 아마 특별 경기로는 가능하지 않으려나 모르겠어요. 그것도 용사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겠지만요.”

“아무래도 그러겠죠? 마-왕을 쓰러트린 용사에게 감히 대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리헤로스를 보면서 실실 웃었다. 명백한 농담조이긴 했지만, 그의 얼굴이 한껏 더 곤란해진 게 볼만했다. 다른 이유로 나를 죽이진 못했어도 리헤로스는 함부로 덤비기 쉬운 인물은 아니긴 했다.

느긋한 상상을 마치고 눈앞의 찻잔을 들어 드디어 목을 축였다.

“자, 이제 일어나세요.”

“후룹… 네?”

“제가 오늘 부른 이유가 뭐겠어요? 고대하던 연회! 저번에는 아쉽게도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못했지만, 이번에야말로 그대들을 나의 자랑스러운 비즈니스 파트너임을 자랑하고 말겠다고요.”

“아…?”

“기억하시죠?”

‘훗날 많은 사람의 우상이 되었을 때, 이드랑제의 원조를 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만 해주어도 우리 가문의 위상이 높아질 거예요.’

“물론… 기억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레 제게 시간을 할애해 주세요. 축제 기간 동안 입을 예복은 맞춰야죠.”

그 귀찮은 일을 또 한단 말인가. 경악하는 나와 달리 리헤로스는 차분히 거절의 말을 이었다.

“감사하지만, 저번에 맞춰주신 정장이면 충분합니다.”

“절-대 안 돼요. 그때엔 급하게 맞추느라 적당히 타협했던 거라고요.”

“그런…….”

“부탁할게요. 제 체면을 봐서라도요.”

“그렇다면 백작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바보.’

그녀의 완고한 대답에 마음 약한 리헤로스는 금세 수락해버린다. 이럴 줄 알았기에 늘 단호한 답이 필요할 땐 내가 말을 가로챘지만, 어차피 이제 특별히 바쁠 일도 없으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 그때의 게스트룸을 다시 내어 드릴까요? 여전히 방은 한 개뿐이 못 쓰지만요.”

“오, 그럼….”

“아니요. 그건 괜찮습니다.”

“어?”

“숙소 잡아둔 곳에서 생활하고 싶어요. 더한 누를 끼쳐드리기도 면구스럽고요.”

“어머,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다니. 그렇게 하세요.”

맞춤 정장에 대해 거절하지 않은 건 이해했지만, 이 편안한 곳에서의 안온한 삶을 포기하는 건 또 뭔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피나는 내일을 기약하며 자리를 떴다. 그녀가 떠난 후, 뒤늦게 장소에서 나와보니 이드랑제 저택이 아닌 귀족들만 드나드는 프라이빗한 카페였다.

“이런 곳도 있구나.”

“리헤로스, 그때 게스트룸에서 잤던 게 별로였어?”

“응?”

“방 내어준다는 말에 거절할 줄은 몰랐거든.”

“아 그건…… 네가 불편한 것 같아서 그랬지.”

“…내 핑계 대지 마.”

“진짠데. 네가 나랑 자는 걸 불편해하잖아.”

“아닛… 아…….”

그렇게까지 싫었던 건 아닌데, 나를 너무 의식하느라 호화로운 생활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던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

‘리헤로스는… 뭘 좋아하지?’

그가 어떤 걸 편히 여기고 불편한지, 제대로 살펴본 적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뒤늦게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 너랑 몇 달을 함께 있었는데 네 취향을 몰라.”

“취향이라면?”

“예를 들면 내가 빵… 좋아하는 것처럼, 네가 뭘 좋아하는지 말이야. 물론 내가 빵을 좋아하는 건 아니야.”

“아, 먹는 거? 글쎄… 뭐가 있을까.”

“아아! 말하지 마!”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리헤로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동그란 눈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자연스레 손을 뗐다.

“물어본 거 아니었어?”

“물어본 거 아냐! 절대 말하지 마! 내가 찾아낼 거야. 네가 말하면 의미 없어.”

“아, 풉….”

“왜, 왜 웃어?!”

“그냥 뭐랄까…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

“그렇다고 해서 얕본 건 절대 아니야. 귀여우….”

“야 인마, 너 애 취급 잦아지는 것 같다? 짜증 나게?!”

“귀엽다는 말이 싫어?”

“당연하지. 다 큰 성인 남성이 귀엽다는 말 듣는 게 유쾌하겠냐.”

“그럼 나한테 해줘.”

“…뭐를?”

“귀엽다고 말해줘.”

“미쳤냐!”

귀염성이라곤 1g도 없는 놈에게 무슨 귀엽다고 말하겠는가. 징그러워서 소름이 돋았다.

“그럼 내기할까? 이번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네가 좋아하는 거 알아내기.”

“좋아. 내기라면… 어떤 보상을 걸고 할 건데?”

“가장 편한 건 소원권이지 않을까. 돈을 달라고 하든, 심부름을 시키든 1회 무조건 들어주기.”

“좋아.”

내가 불쑥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이젠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게 그도 손가락을 걸어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소원권 받으면 애 취급하지 말라고 해야지. 이득이다.’

소원권이라는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의욕적으로 만들었다. 벌써 눈에 불을 켜고 그의 몸 구석구석 눈으로 스캔하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용사님이랑 그의 정부 아니야?”

“크크큭. 그림 좋은데?”

누가 이런 미친 소리를 지껄이나 싶었는데, 붉은 휘장이 달린 제복을 입은 여럿이 몰려와서 둘러싼다.

“글라디우스 기사단인가.”

“하, 지긋지긋하네.”

“감히 우리 단장님을 걷어차 놓고 도망쳐? 그러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했냐?”

“그게 언제 일인데 아직도 분에 차 있냐. 그리고 애초에 너희들이, 아니 칼리고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잖아.”

“크리스 말이 맞습니다. 그만 돌아가세요. 큰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시끄럽다! 단장님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기나 해!”

“우리의 위엄 넘치는 단장님을 그런 모양으로 만들다니 용서 못 해!”

“그런 모양? 상당히 추했다는 걸 네놈들도 느끼나 본데.”

“이…!!”

붉으락푸르락 한 기사단원 중 하나가 못 참고 검을 뽑아 든다. 리헤로스는 군말하지 않고 그 앞을 나섰다.

‘원래 이렇게 저돌적인 스타일인가? 회유할 줄 알았는데.’

─ 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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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긍지 : 글라디우스 기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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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 인원: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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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킥은 참전할 수 없습니다. 별도의 제재 시스템은 없으나 용사의 신변에 페널티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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