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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님 망겜에도 엔딩이 있나요-118화 (118/127)

118화

어깨에 자리 잡고 있던 손은 흘러내리더니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았다. 낮아진 중심점 덕분에 몸은 점점 더 밀착되었다. 미세한 돌기들은 혓바닥을 지그시 누르다가 핥아 올렸으며, 그저 움직임을 쫓기만 해도 바빴다. 과열된 흥분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뒤엉키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음미하듯 빨아들였다. 가장 부드럽고 연한 혓바닥 아랫부분까지 자극되자 나도 모르게 비음을 냈다.

“으응….”

그 소리에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간 것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라. 평소라면 포착하지 못할 사소한 행동이 더욱 몰입되도록 만들었다. 리헤로스는 고개를 기울이고 더욱 깊게 파고들려 했다. 가까스로 잡은 균일한 호흡은 엉망진창 되어 헐떡댔다. 애꿎은 이불자락을 구기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마나 숨을 나눠 가졌을까, 점점 느슨한 움직임으로 바뀌더니 내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다가 놓으며 마침내 떨어졌다. 푸른 눈빛은 오늘따라 유독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하아… 하, 후우….”

“크리스….”

“응…?”

“못… 참겠어….”

“어…?”

“…….”

못 참겠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데다 아직 이 이상의 것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난감했다. 그보다도 리헤로스가 저돌적인 스타일일 줄 몰랐다. 나는 딱히 성생활에 보수적이지도 않으며 소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받는 쪽에 위치할지언정 보통 주도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이번만큼은 어쩌면 좋을지 몰라 초심자처럼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아, 아직 대낮인데….”

옆으로 나란히 앉아있던 리헤로스는 내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다리 사이에 내 몸을 가두는 형태로 말이다.

‘뒤, 뒤로…? 처음부터?’

당황의 연속이었다. 왠지 그이라면 마주 보고 하는 정석적인 자세를 선호하리라 생각했거늘 착각이었나 보다. 머릿속에 경보를 울리며 비상 대책 회의를 펼쳐놓고 있었다. 그때, 리헤로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몸을 눌러 엎드리게 한다던가, 무릎에 앉힌다든지의 행동은 없었다. 양팔은 내 허리를 꽉 감아 안았고 어깨엔 그의 머리가 툭 올라왔다. 금사같이 얇고 반짝이는 머리칼이 흔들리며 뺨을 간질였다.

“이러고 있자.”

“…….”

못 참겠으니 그만하자는 이야기였나. 그럼 그렇지, 내가 앞질러 생각했구나.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적극적으로 색을 밝힐 스타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쪽이 덮쳤으면 덮쳤지.’

심호흡을 가장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속도 모르고 그는 어깨에 뺨을 비벼댔다.

“미안해, 갑작스러웠지?”

“…뭐어, 연인 사이의 키스는… 자연스러운 거니까.”

“연인….”

짤막한 문장 속에 단어 하나가 퍽 좋았던 모양이다. 제 이마를 내 몸에 꾹꾹 눌러댄다.

‘귀여워….’

손을 올려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곤 한참 말이 없었다. 아마 과열된 몸과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거겠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성인끼리 사랑을 나누는 게 나쁜 일도 아닌데 자제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원래 같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리헤로스’라는 특수성이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드는 듯했다. 분위기를 탔다고 해서 강행하는 관계는 좋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와의 첫 관계는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그보다… 아무것도 안 할 거라면 조급해지는데.’

체온을 나누며 안고 있는 것도 좋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었다. 시작은 실패도 많았고 셀 수 없이 넘어졌었지만, 마무리만큼은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앞으론 후회 없이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으니 말이다.

“계,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안 돼?”

“안되는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매몰차게 말할 수 없었다. 미련한 나. 대답을 망설이니 더욱 꽉 끌어안는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목덜미에 제 코끝을 문질러댄다. 꼭 폐부까지 체취를 새기려는 것처럼 들이마시는 소리까지 완벽하게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의 페이스에 휘말렸다간 삼 일 내내 이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선 안 된다. 안될 일이다.

“도와준 스피나에게 인사하러 가고 싶어.”

“왜 그리 서둘러?”

“…….”

그야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고작 두 밤 자고 일어나면 끝이니 그렇지.

“내가 폐를 많이 끼쳤는데, 고맙단 말을 전하질 못했잖아. 미안해서 계속 신경이 쓰여.”

“네가 폐를 끼쳤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폐는 맞아.”

맞느니 아니니 하며 말씨름해봤자 내 고집을 못 꺾으리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싶더니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다른 명분을 찾았다.

“다른 것보다도 스피나 덕분에 제때 널 구할 수 있었고… 모두 무사한 거니까. 네 마음도 이해돼.”

“응, 할 일을 제쳐두고 도와준 거니까. 성의는 표시해야지.”

“알겠어.”

“일어나서 나갈 채비하자.”

마침내 단단한 팔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침대에서 기어 나오면서 옷가지를 걸쳤다. 고작 옷 입는 것이었지만 혼자서도 잘하고 있음에도 리헤로스는 여전히 날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옛날이었다면 그런 형태의 시선이 동정으로 느껴져 짜증스러웠겠다만, 지금은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신발까지 다 신고 나서야 1층으로 내려갔다. 대문을 열고 나서자 정원 벤치에 분홍 휘장의 기사와 페로가 앉아있었다.

“어디 가십니까?”

“이드랑제 백작님을 뵈러 가려고요.”

“아아, 그거라면 조금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마차가 곧 올 겁니다.”

“마차까지… 안 불러주셔도 괜찮은데.”

“백작님의 귀빈이시니까요.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밖에 계십니까?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 그….”

내 권유에 기사는 손사래를 치려는데 페로가 자기가 안다며 날개를 파닥였다.

“두 분이 하실 일이 있다고 저희가 피해드린 거예요! 그렇죠?”

“…….”

기사는 제 이마를 '탁' 치며 고개를 떨군다. 분위기를 읽고 피해준 거였구나. 어떤 이유인지 모르는 페로는 천진난만하게 말한 것이었다. 이해했다. 우리는 그렇게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뚱 서 있기만 했다. 누군가 말문을 트지 않는다면 모두 이 상태로 굳어버려 석상이 될 지경이었다.

“이, 이제 끝났으니까요…. 들어오세요.”

“아, 괘, 괜찮습니다….”

“네….”

강력히 권유하는 것도 민망하니 그만두었다. 또, 이 상황에서 둘만 다시 들어가는 것도 심히 이상해 보일 것 같아 작은 정원을 거닐었다. 우리만의 세계에 갇혀 물고 빨고 있느라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못했단 사실이 일어났단 게 웃기면서도 창피스러웠다.

“…덥네.”

“…응. 그늘에 있자.”

“그럴까.”

우리는 푸른 잎이 듬성듬성 자란 사과나무 아래에 앉았다. 옆에 보이는 ‘블루 아이스’는 무성하게 자라 이미 2층까지 닿는 크기가 되어있었다. 도망칠 때 녀석을 타고 내려온 탓에 한쪽의 가지가 많이 부러진 상태였다.

“아… 어쩌지. 저거 내가 그런 거야.”

“네가? 왜?”

“글라디우스 놈들한테 쫓기다가 2층에서 뛰어내렸거든.

“뭐…?”

“나무에 부딪히면서 떨어진 덕에 다친 덴 없지만… 나무가 만신창이가 됐어.”

“괜찮아. 부러진 부분만 깔끔하게 잘라서 정리해 주면 금방 새 가지가 날 거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정말? 다행이다. 네가 속상해할까 걱정했어.”

리헤로스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글라디우스 놈들에게 쫓기던 이야기를 에둘러 빙빙 돌리려는 걸 진작 눈치챘다는 의미였다.

“나무는 생명력이 단단해서 크게 걱정 안 해. 그런데… 나 없는 사이에 집에 왔었어? 어쩌다가 2층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한 거야? 너라면 충분히….”

“놈들이 계단으로 올라오니 별수 없었어. 싸울 만큼 건강한 상태도 아니었고 잡히면 정말 즉결 처형당할 것 같았으니까.”

지난 일이니 장난스러운 어조로 대답했지만, 그는 전혀 웃지 않았다.

“그랬…구나.”

“너무 심각해하지 마. 이제 다 끝난 일인 걸.”

“…네가 사지에 몰려있을 때,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때 내가 곁에 없었다는 사실이 속상하고… 분하기도 해.”

“아, 아니야. 전혀 위험하다고 생각 안 했어! 2층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사실 당시엔 엄청 무섭고 위험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에게 말 한대로 이미 끝난 일이었기에 영웅담처럼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리헤로스는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마음을 풀어줄 다른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굳이 2층에서 뛰어내린 이유는… 그래, 사실 집기를 이용해서 방어할 수 있었는데 집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해서야.”

“어째서?”

“그야…. 모처럼 네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보금자리여서 그런 걸까? 차라리 내 몸이 부러지더라도 여기가 망가지는 건 본능적으로 막고 싶었나 봐. 그래서 멀리 달아나려고 한 거지.”

그땐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감정이었지만 행동의 당위성을 정리하자면 그렇다는 소리였다. 내 말에 리헤로스는 눈을 끔뻑이다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너는….”

“리헤로스 님, 아크리스 님, 모시러 왔습니다.”

그때, 울타리 앞에 화려한 마차가 도착했다. 심문이 되어버린 대화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과 마침내 목표를 향해 갈 수 있겠단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났다.

“리헤로스! 얼른 와.”

“…….”

“저희가 가도 되는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시중을 들어주는 이가 손을 쓰기도 전에 리헤로스가 성큼 다가오더니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발판을 딛자 올라가기 쉽도록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과보호라니까.’

원래 같았으면 그만두라고 타박했을 텐데 직전의 대화가 신경 쓰이기도 했으니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마차에 궁둥이를 붙이자 뒤따라 들어오는 리헤로스는 의아하다는 듯이 갸웃하고 있었다.

“무슨 문제 있어?”

“평소의 너라면 애 취급하지 말라고 화냈을 텐데 아무 말도 안 해서.”

“아… 아직 몸이 불편하니까 도움받으면 좋지.”

“많이 아파? 움직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 정돈 아니고, 조금 힘에 부쳐서 부축받고 싶은 정도야. 걱정 안 해도 돼.”

“…….”

“아하하, 알잖아. 나 말할 때 과장하고, 엄살 잘 부리는 거.”

“네가? 오히려 엄살 좀 부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

좀처럼 분위기가 풀리지 않았다. 이래서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걱정스러운 눈길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괜스레 마차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씨 좋다.”

“…….”

그는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의문스러운 시선을 거두지도 않았다. 같은 주제로 빙빙 돌아오지 않도록 철저히 외면하였다.

다행인 건 걸어간다면 한참 걸렸을 테지만, 마차를 타니 순식간이었다는 점이다.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마차에서 내리자 이드랑제의 사용인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리헤로스는 해소되지 않은 모든 의문을 접어둔 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미소를 띠며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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