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대박?”
“왜 너 갑자기 없어지고 얼마 안 가서 밖이 엄청 소란스러워지는 거야. 그때 누가 왔었는지 아냐?”
설마.
“차계원이 왔다더라고. 뭐 이 앞에서 촬영 있었나 봐.”
이서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너도 안 나갔으면 봤을 텐데. 진짜 아깝다.”
시발 맞다. 차계원 주장이 맞았다. 이제 더는 부정할 건덕지조차 없다. 그 향기 좋은 이불 속에 있던 게, 하룻밤 실수로 생각한 그날의 주인공이, 정말 차계원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하도 난리길래 나도 나가서 봤는데 진짜 잘생기기는 잘생겼더라. 사인해 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기분이었다니까?”
“차계원…….”
이서가 황망하게 읊조린다. 제 머리 가죽을 벗기겠다며 속삭이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래, 차계원. 얼마나 시끄러운지 밖에서 나는 함성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더라니까.”
꺄아아아아악.
그때 입구 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성이 들려왔다.
“어어, 그래 약간 이런 소리였는데. 좀 더…….”
불안감이 이서의 몸을 감싼다. 척추 끝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뒤도 못 돌아보고 칵테일잔만 부여잡는다. 이서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심찬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차계원! 야. 야. 차계원이다! 미친. 대박.”
정신 못 차리고 삿대질까지 한다. 입술을 잘근 깨문 이서가 용기를 내 뒤를 돌았다. 아까의 그 깔끔한 정장 차림 그대로 차계원이 입구에 서 있다.
그대로 뛰쳐나와 옷매무새가 다 망가진 자신과 다르게 여전히 재단된 것처럼 반듯하다. 모로 꺾인 고개가 곧았다.
“와. 미친…….”
“…….”
“야, 빽아. 근데 너 혹시 차계원이랑 아는 사이냐?”
“알기는 아는데…….”
“너 저기에도 빚졌어? 왜 죽일 듯이 노려보는데.”
심찬이 이서에게 속삭인다. 남자는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바로 백이서에게로 시선을 향한 차계원이 다가온다. 그 느릿한 걸음이 어떤 경고를 하는 것 같아 이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안녕하세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차계원에게 이서가 어색한 인사를 건넨다.
“그쪽이 여기 사장이세요?”
“예? 예.”
시선은 이서에게 박혀 있으면서 이서의 인사는 무시한 차계원이 찬에게 말을 던진다.
“가게 관리 안 하나 봐요. 이렇게 시끄러운데.”
소란스러움의 원인이 저인 건 생각 않고 심찬을 타박한다. 가만 보니 차계원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헙. 죄송합니다.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갑자기 차계원이 들이닥친 거고 사장은 자신인데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다. 심찬이 정리를 위해 입구로 향하자 이서의 어색함이 배가 된다.
“또……. 뵙네요…….”
같지도 않은 인사에 계원이 대꾸도 하지 않는다.
“기껏 집에 넣어 줬더니…….”
그의 성의 없는 손길이 이서의 칼라를 톡 톡 친다.
“쥐새끼처럼 나오는 건 무슨 경우예요?”
* * *
“…….”
“무슨 경우냐고.”
“여기에…….”
“뭐가요.”
“왜 여기 계신지…….”
영문을 몰라 갑작스러운 건 이서인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은 외려 차계원이 짓고 있었다.
“왜?”
백이서가 사는 곳은 복도식이었고, 그를 데려다준 계원은 차에 앉아 그 집에 불이 켜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백이서의 집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바로 잠들었나 싶어 시동을 걸려는 참에 현관문이 열리더니 백이서가 기어 나왔다. 시간은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뭘 왜예요. 뽈뽈 기어 나와 놓고.”
그 겁 없는 뒷모습에 어이가 없어 따라왔다. 무딘 건지 멍청한 건지 백이서는 차가 대놓고 느린 속도로 제 옆을 따라가는데 눈치도 못 챘다. 사람이 몰릴 걸 대비해 김건을 부른 게 지금이었다.
“그러니까. 왜 저를 따라오셨는지…….”
이서는 지금 차계원을 보기가 영 껄끄러웠다. 차계원과 잔 게 확실하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그의 옆에 있는 것조차 민망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차계원이 말을 잇는다.
“……발정 난 건 아까 그 새끼가 아니라 대표님인가 봐요.”
빨빨거리면서 나가길래 얼마나 대단한 데를 가나 했더니, 제가 처음 백이서를 주워 간 게이 바 앞이었다. 돌아도 단단히 돈 거지.
“저, 저. 발정 안 났…….”
저속한 말에 이서가 부산스레 고개를 도리질 친다. 대체 이 사람은 뇌 구조가 어떻게 돼 있길래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내가 대표님 어디서 주웠다고 했어요.”
“여, 여기요…….”
“근데 왜 여기 있어. 또 주워 가 달라는 게 아니면 뭐예요, 이게.”
차계원이 중얼거린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를 갈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 변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계원은 셔츠 위쪽의 풀려 있는 단추를 목 끝까지 잠가 주고 있었다.
“여긴 그냥 형이 하는 데라서.”
단추를 잠가 주던 느긋한 손길이 단박에 돌변해 이서의 멱살을 쥔다.
“캑. 콜록. 콜록.”
“당신 첫째잖아. 형이 어디 있어, 형이.”
“그러니까 친한 형이…….”
“형은 씨발.”
백이서는 울림소리가 나는 단어들을 말할 때 말끝을 늘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 때문에 형이 혀엉으로 들리는데 그게 그렇게 좆같을 수가 없다. 차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쾌감이 이제는 끝 간 데 없이 치솟았다.
“나와요.”
차계원이 이서의 멱살을 쥔 채 가게를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본 심찬이 놀라 말리려 들었으나 턱도 없었다.
* * *
차계원의 손에 이끌려 오게 된 집은 꼭 펜트하우스 같았다. 넓은 복층인데 꼭 필요한 가구들만 들인 느낌이라 더 넓고 휑해 보인다. 중간중간 걸린 미술품이 이곳을 집보다 텅 빈 전시회장에 가깝게 만들었다.
‘3년 전 호텔은 약과였네…….’
뒷배가 탄탄하다는 소문은 아무래도 사실이었나 보다.
“안 들어가요?”
“앗!”
신발장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이서의 등을 차계원이 떠민다.
“신발 벗어요.”
“어…….”
“내가 벗겨 줘요?”
“아뇨! 저, 차계원 씨.”
다급한 부름에 정말 신발을 벗기려 들던 차계원이 돌아본다. 이서는 아직도 어정쩡하게 현관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제 집이 더 가까운데요.”
바에서 자신의 집까지는 걸어서 삼십 분 정도였다. 그런데도 차계원은 기어코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래서요.”
“저는 제 집에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침착한 백이서의 목소리에 계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백이서는 안 그래 보이면서 은근히 고집이 세다.
“하? 어딜 기어 나갈 줄 알고.”
어디를 가든 그건 자신 마음 아니냐는 말이 이서의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꿀떡 삼켜낸다. 제가 이 바닥에서 얻은 건 눈치뿐이었다.
“그, 안 기어 나갈게요!”
“여기서 자요. 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차계원이 이서의 양 어깻죽지에 손을 넣어 달랑 들어 올린다. 이서는 말랐지만, 꽤 다부진 체격이었다. 키도 176으로 작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차계원에게는 너무 쉽게 몸이 들렸다. 이서의 두 발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린다.
“어, 어. 내려 주세요.”
“싫어.”
“차라리 제가 걸을게요!”
“싫다니까.”
걸음을 옮기던 계원이 우뚝 멈추더니 피식 웃는다. 그의 시선이 신발이 벗겨진 백이서의 발에 가 있다.
“대표님 취향이에요?”
“어, 어떤 게요?”
“고양이 양말.”
“으아아아.”
차계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리던 이서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다. 아침에 급해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신고 나왔더니 하필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양말이었다.
“잘 어울리는데 왜. 닮은 것도 같고.”
자신이 들어 올린 덕에 눈 바로 앞에 위치하게 된 백이서의 목덜미가 붉었다. 계원이 부끄럼을 타는 듯한 목덜미에 제 코를 가져다 댄다.
“으악. 왜, 왜 이러세요!”
백이서가 기겁하며 버둥거린다.
“멍들겠네요.”
주차장에서 계원이 잡은 자리에 옅게 손자국이 남아 있다. 내일이면 멍이 들 것이다.
“차, 차계원 씨 때문에 든 건데…….”
“알아요.”
차계원이 말할 때마다 더운 숨이 같이 밀려온다. 이서가 소스라치듯 목을 반대쪽으로 뺀다.
“……이대로 던지기 전에 가만있어요.”
차계원네 집 바닥은 전부 대리석이었다. 이대로 던져지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던, 던지지는 말아 주시면……. 좋겠는데…….”
들어 놓은 보험도 얼마 없는데 이렇게 다치기는 싫었다. 그리고 차계원의 행동으로 보건대, 제 머리가 깨지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버려둘 것 같다.
“얌전히 있어요. 그럼.”
차계원이 명령조로 내뱉는다.
“……네.”
백이서가 얌전히 몸에 힘을 뺀다. 그 모양새가 꼭 커다란 봉제 인형 같아 계원이 얼굴을 문댄다. 목에 와 닿는 서늘한 감촉에 백이서가 흠칫 놀라자 살짝 곤두선 솜털들이 보인다.
“……서른 넘어서 솜털 있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민망한지 바스락대는 움직임에서 단내가 풍겨 온다. 불쾌하던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이서가 눈을 도록도록 굴린다. 허공에 떠서 뒷목을 내주고 있는 상황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시발 되게 닦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