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도덕적 안락함-10화 (10/100)

#10

케이뉴 회사의 주차장에 도착한 차계원은 내리자마자 김건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나도 회사는 봐야 할 거 아니야.”

“작아서 볼 것도 없어요. 일은 문자로 전달받으면 될 거고.”

한쪽 눈을 가늘게 뜨는 모양새가 한마디만 더 덧붙였다가는 배로 돌아올 게 자명했다. 결국, 건은 그러겠노라 한 발짝 물러난다.

“그래. 어차피 사무실 옮긴다니까.”

차에 오르려는 건의 손에 들려 있던 차 열쇠가 홱 낚아채진다. 오늘만 제 손에 걸 차계원에게 뺏기는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차는 두고 가요.”

“왜?”

“그거 내 차잖아.”

계원은 회사 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다. 본인이 잠깐이라도 사용하는 건 모두 사비로 구비했다. 그래서 이 밴 또한 차계원의 것이었다. 어차피 스케줄용으로 돌리는 차계원의 차만 세 대라 큰 문제야 없었다.

물론 그건 철저히 차계원의 입장에서였다.

“나는 어떻게 가라고?”

“택시 타면 되잖아요. 걸어가든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 줘야 하냐는 듯 내려다보는 표정이 거만하다. 김건의 집은 여기서 차로만 두 시간이었다.

“안 가요?”

“아오. 간다, 가! 대표님 그럼 저는 이만…….”

“아,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럼요. 사무실 옮기면 또 뵙겠습니다.”

“일정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아무래도 그 연락은 대표가 아닌 차계원에게서 올 것 같다. 악수를 청하는 이서의 손을 잠시 맞잡아 준 김건이 택시를 잡으러 걸음을 옮겼다.

“저렇게 보내도 되나요?”

이서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던진다. 헛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사람 참 선해 보였는데.

“안 될 건 뭐예요? 자, 이거요.”

탁.

차계원이 이서의 품에 차 열쇠를 던진다.

“차 키는 왜…….”

“회사 차 해요.”

“이건 차계원 씨 개인 밴 아닌가요?”

“회사에 멀쩡한 차 없잖아요.”

이서가 입술을 꾹 깨문다. 차계원의 말대로 회사 소유의 차는 딱 두 대였는데 한 대는 이서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였고 한 대는 차계원의 밴에 비교하면 아주 구형이었다. 아마 태미의 밴을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설마 나 걷게 하려 했어요?”

“아, 아니죠.”

인파가 몰려 걷지도 못할 거다.

“써요, 그럼. 다른 배우들 태우지는 말고.”

다른 배우라고 해 봤자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둘 있던 배우가 다 나갔으니 차계원이 유일했다.

“어차피 차계원 씨밖에 없는데요.”

“……잘됐네요. 올라가요 그럼.”

* * *

백이서가 꼭 혼나는 모양새로 무릎을 붙이고 앉아 다리를 달달 떤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차계원은 그 앞에서 파일로 테이블을 탁탁 치고 있었다.

시작은 이랬다.

“일단 장부 좀 가져와 봐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장부를 요구한 계원은 백이서의 앞에서 지출 내역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이서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그는 촬영장에서 이서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선 후 바로 케이뉴에 대한 정보를 보고받았다.

한심한 짓거리는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그중 제일 의아했던 게 바로 지출 금액이었다.

“달에 800만 원?”

차계원의 손가락이 경호 팀 지출 내용에 멈춘다.

“경호는 필요하니까요……. 그래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나름의 변명을 주섬주섬 늘어놓는다. 지출 내역까지 숙제 검사하듯 검사받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쥐똥만 한 회사에 그게 왜 필요한데.”

“태미가 필요하다고 해서요…….”

“걔 스케줄이 한 달에 몇 번이나 있는데요.”

“어…….”

이서가 엉뚱한 벽을 보며 손가락을 꼽는다. 저번 달에는 CF 촬영이 있었고, 예능 출연 한 번. 그리고 이번 달에는.

“영화 촬영이 다 아니에요?”

“그렇기는 한데 요즘 스토커들도 많다고 하고. 꼭 스케줄이 없어도 그건 안전 문제라…….”

지랄.

계원이 관자놀이를 문지른다. 들을수록 부아가 치밀었다. 제 말은 못 믿겠다고 게이 바까지 기어간 새끼가 저 같잖은 소리에는 잘도 속아 넘어갔나 보다.

“이건 또 뭐야. 1년 식비가 천만 원? 용이라도 잡아 잡수셨어요?”

“촬, 촬영장이 춥잖아요. 커피 차도 좀 돌리고. 밥 차도 몇 번 돌렸더니.”

그동안 촬영장에 쓸데없는 밥 차가 왜 그렇게 오나 했더니 눈앞의 호구가 그 주인공이었다.

“밥 차 몇 번, 커피 차 몇 번이 이 가격이라고?”

“거의 촬영 스케줄 있을 때마다 돌려서요. 영화 들어간 게 처음이라 들뜨기도 했고……. 그리고 이왕 돌리는 거 좋은 메뉴로 돌리면 배우 기도 살잖아요. 다들 좋아하셨는데…….”

“좋겠죠. 호구가 알아서 떡을 던져 주는데.”

“꼭 거기에 다 쓴 건 아니고요. 보통 회사에서 식사할 때가 많으니까…….”

한껏 기죽은 이서가 말끝을 흐린다.

“식당 없지 않아요? 사무실 이 한 칸이 다잖아.”

“배달…… 시키죠.”

“여기가 무료 급식소예요? 그리고, 스케줄도 없는 것들이 식사는 회사 나와서 하겠대요?”

“밥은…… 먹여야 하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자주는 아니었어요.”

돌겠네.

“대표님.”

“예, 예?!”

“이제부터 회사 지출 회계 팀한테 맡겨요.”

“…….”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는 이서를 무시하고 파일을 반대쪽으로 치워 놓는다. 더 보면 열불 터져서 제 명에 못 살 듯싶다.

그다음 차계원이 펼쳐 든 건 제 계약서였다. 서명까지 했음에도 내용을 몰라 목을 쭉 빼고 기웃거리는 이서가 빤히 보이면서, 그는 읽어 보겠냐는 한마디를 안 한다.

“우리 계약 조건을 하나 추가할 거예요.”

“어떤 조건이요? 웬만하면 맞춰 볼게요.”

이서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계약이나 원만하게 끝내자는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차계원이야 지금 당장은 나가지도 않으려 하는 것 같고 50억을 내고 내보낼 여력은 안 됐다.

좋게 좋게 지내다가 잘 구슬려 내보내는 게 빠를 수도 있다. 배우들이 요구하는 계약 조건이야 워낙 각양각색이니 어려울 것도 없다.

그러나 차계원이 요구하는 건 예상 밖의 조건이었다.

“대표님은 이제 게이 바 못 가요. 클럽 같은데도 전부.”

“예? 왜요?”

작품 조항도 아니고 임금 비율 조정도 아니고 뜬금없이 제 사생활에 왜 제약이 들어오는지 알 길이 없다.

“되게 놀라네. 자주 가나 봐요. 그런 데?”

“안 가요!”

이날 이때까지 클럽은 가 본 적도 없었다. 게이 바도 심찬이 아니었으면 갈 일 없었을 거다.

“뭐가 걱정이에요. 그럼.”

“업계 사람들 만날 때도 있을 거잖아요. 앞으로 인사도 많이 다녀야 할 거고.”

“그건 신경 쓰지 마요. 회사에 홍보 팀 따로 만들 거니까.”

“홍보 팀…….”

회계 팀에 이어 홍보 팀이라니.

사실 케이뉴는 부서가 따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 규모가 커야 부서도 나누고 사람도 뽑을 수 있을 텐데 당장 사무실 월세도 어려운 실정이라 계획도 못 해 본 부분이었다.

그에 따른 어려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나 휘준과 제가 발로 뛰다 보면 얼추 해결되고는 했었다.

“회계 팀, 사무 팀, 매니저 팀, 관리 팀. 우선 이 정도만 만들어요. 있는 게 있어야지.”

그의 발이 낡은 테이블 다리를 무심하게 찬다. 그마저도 전 사람들이 두고 간 물건이었다.

“그러면……. 금액이 꽤 들 텐데요. 인건비만 해도.”

당장 눈앞이 깜깜했다. 이제 더 빚낼 곳도 없다.

“누가 대표님 보고 충당하래요? 내가 장님도 아니고 여기 사정 뻔히 보이는데.”

“하지만…….”

“투자라고 생각해요. 생판 남한테도 투자하는데 우리 회사에 그 정도도 못 할까.”

“그…….”

“뭐가 문젠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잖아요.”

안 그래도 열 받아 죽겠는데 답답하게 구는 꼴을 보니 말이 곱게 안 나간다. 계속 망설이던 백이서가 계원의 재촉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조금……. 부담되네요.”

“……뭐?”

“그……. 차계원 씨는 소속 배우잖아요.”

“그래서.”

“불편하기도……. 하고.”

제 경험상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차에, 사무실 이전에, 걸리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지금 말하지 않으면 흐지부지 차계원에게 잔뜩 빚지게 될 것 같았다.

아직 계약 초반이니 짚고 넘어가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꺼낸 말이었는데 차계원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해진다.

“기어코 기분을 개같이 만드시네요.”

“에……. 예?”

당황스러움에 턱이 벌어진다. 자신이 못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계원이야 투자라고 말하지만 빚지는 기분이 드는 건 당연지사였다.

“저, 계원 씨. 제 말을 오해하신 거 같은데…….”

자신은 어디까지나 차계원을 위해 한 말이었다. 차계원이 말한 건 회사를 갈아엎는 수준이었는데 상식적으로 그 정도면 본인이 회사를 차리는 게 빠를 것이다.

제 추측대로 그가 이 회사에 들어온 목적이 마음대로 휘두를 회사가 필요해서라고 해도, 배우에게 소속사가 해야 할 일들을 떠맡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는지 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야.”

무거운 울림이 작은 사무실 안에 퍼진다. 이서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고자 했으나 계원의 손이 더 빨랐다.

“악!”

차계원이 이서의 멱살을 잡아 상체를 테이블 위로 당긴다. 테이블 다리에 잘못 부닥친 무릎뼈가 아팠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금속이 긁히는 것처럼 거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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