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도덕적 안락함-13화 (13/100)

#13

“아하하. 감사합니다…….”

백이서가 쑥스러워하며 눈썹 주변을 긁적였다.

“어머 세상에. 웃는 거 봐.”

예의 상이 아니라 정말 탐이 났다. 여태 작업한 어정쩡한 모델 몇보다도 눈앞의 대표라는 사람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조금만 다듬어도 괜찮은 사진을 꽤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재료다.

“너무 귀엽다. 다음에 제가 사진 찍어 줄까요?”

“사진이라뇨. 칭찬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장난인지 아나 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그녀가 백이서의 주머니에 제 명함을 찔러 넣었다. 키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지만, 비율이 워낙 좋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저 분위기였다. 수수하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사람의 눈길을 끄는 데가 있었다.

“저희 컨셉 이야기 안 해요? 저 투명 인간 취급하면 섭섭해요. 작가님.”

그들의 대화를 빤히 바라보던 차계원이 슬쩍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간다.

차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서의 어깨를 제 쪽으로 살짝 끌어당긴다. 여자가 제 손바닥을 마주치며 보조 작가에게서 파일을 건네받는다.

“맞다. 맞다. 내 정신 좀 봐. 잘생긴 남정네 둘이서 사람을 홀리니까 까먹지.”

“우리 대표님이 좀 귀엽긴 하죠.”

차계원의 능청스러움에 당황하는 건 이서 혼자였는지 여자는 톤이 한층 더 높아진다.

“지금 감싸는 거야? 어우. 너무 보기 좋다. 솔직히 말해. 오늘 나 눈 호강시켜 주려고 이러는 거지.”

“들켰네요. 그럼 앉으실래요?”

의자를 가리키자 바로 자리 잡고 앉은 여자는 옆자리를 탁탁 치며 이서를 부른다.

“우리 잘생긴 대표님도 좀 앉아요.”

그 손짓을 따라 앉으려는 이서의 팔목을 차계원이 잡는다.

“아. 대표님은 촬영장 좀 구경할 거예요.”

“제가요……?”

이서가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킨다. 하도 구경해 더 볼 것도 없었다.

“워낙 호기심이 넘치셔서. 그렇죠?”

“어…….”

그건 누가 봐도 축객령이었고,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었다.

“아, 네. 편하게 대화하세요.”

문을 닫아 주고 나온 이서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그 앞을 서성였다. 잘 따라다니라고 했다가 나가라고 했다가. 차계원은 변덕이 죽 끓듯 하다.

“편의점이라도 가야 하나.”

이왕 나온 거 음료라도 사 올까 싶어 대기실과 좀 멀어지자. 아까 살갑게 인사를 하던 스태프들이 이서를 부른다.

“어? 대표님이다.”

“대표님도 일로 와요!”

그들은 마치 다과회라도 하는 양 세트에서 떨어져 둘러앉아 있었다. 어차피 할 것도 없겠다. 친해져서 나쁠 것도 없겠다. 그쪽으로 다가갔다.

“다들 모여 계시네요.”

이서가 사람들 틈바구니에 조심스레 앉는다.

“촬영 준비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요.”

“저희 안 그래도 대표님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저요?”

팔자에도 없던 관심을 오늘 다 받는 것 같다. 갓 군대를 제대한 것 같은 스태프 하나가 이서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게 몹시도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차계원 배우 어떻게 잡으신 거예요?”

“맞아. 원래 아는 사이셨어요?”

옆에 있던 여자도 한 술 거든다. 따지고 보면 잡은 게 아니라 굴러 들어왔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기는 난감했다.

“글…… 쎄요…….”

“우리한테만 말해 주면 안 돼요? 어디서 말 안 할게요! 진짜. 약속!”

“우리 진짜 입 무거워요. 아니 너무 궁금하잖아요. 차계원 씨 전 소속사랑 계약도 안 끝난 상태였다는데.”

“저도 잘 몰라서…….”

“에엑? 대표님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그럼 전 소속사랑 불화 있었다는 건 사실이에요?”

사람들의 시선이 이서에게 박힌다. 하나같이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들이다. 대체 이 사람들은 저를 뭐로 아는 걸까.

“그런 건 아무래도 제가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그전 사정은 알지도 못하고요.”

이서가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소속 배우가 곤란해질 건덕지를 던져 주는 대표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다.

“우와 보기보다 단호하시다. 장난이에요. 장난.”

“설마 진짜 캐묻겠어요.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요.”

한발 물러선 사람들이 저들끼리 눈치를 주고받는다. 그 모습이 못내 부담스러워 땀이 비죽 흐른다.

“그런데 진짜 궁금하기는 해요. 차계원 씨면 같이 일하자는 소속사가 줄 서 있잖아요.”

“…….”

“케이뉴 지금 소속 배우 차계원 씨밖에 없지 않아요? 찾아보니까 홈페이지도 기본 정보만 있더라고요.”

워낙 작은 회사라 홈페이지는 있으나, 올라가 있는 건 기본 정보가 다였다. 그마저도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만든 페이지였다.

결국, 그들이 궁금한 건 차계원이 왜 콩꼬투리만 한 회사에 몸을 담았는지였다.

“그……. 저는 다시 들어가 볼게요. 잠깐 나온 거라.”

이서가 대충 둘러대며 다시 일어섰다. 아무래도 불편하다. 앉아 있으면 계속 질문 공세가 쏟아질 거고, 또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어떻게 말이 와전될지 모른다. 찌라시의 시작은 다 이런 곳에서였다.

“왜요오. 저희랑 이야기 좀 하다 가시지.”

“계원 씨가 찾으실 것 같아서요.”

“에이. 아쉽다.”

저를 내보낸 게 바로 차계원이었지만, 지금 둘러댈 구실도 차계원뿐이었다. 이서가 사람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화장실을 가는 척 자리를 빠져나간다.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들이 길었다.

* * *

대기실 문 앞에서 이서는 몇 번이나 문고리를 만졌다가 땠다. 들어가기도 뭐하고 안 들어가기도 뭐 했다. 음료수라도 사러 가려 했더니. 이미 간식이고 뭐고 다 구비 되어 있어 핑계가 안 됐다. 화장실도 다녀온 지 오래였다.

이서가 입술을 축이며 다시 문고리에 손을 댈 때였다.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어머? 안 그래도 이야기 딱 마쳤는데 어떻게 알고 왔어?”

대화가 끝났는지 촬영 작가 둘이 나오려 하고 있었다. 여자가 다시 한 번 이서의 볼을 만진다. 그 옆에 선 보조 작가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이서를 아래위로 훑는다.

“피부 너무 좋다. 진짜.”

“계원 씨는…….”

“안에요. 근데 피부 관리 진짜 뭐로 해요? 좋은 건 공유해야지.”

“하하…….”

이서가 멋쩍은 웃음으로 농담을 피했다. 계속된 칭찬이 계면쩍었다. 차계원은 이제 막 스타일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나가는 여자 뒤로 보조 작가가 꾸벅 인사를 한 후 따른다.

“그럼 촬영 잘 부탁해요. 계원 씨. 우리 대표님도.”

“네. 이따가 봬요.”

탁.

문을 닫고 들어오자 차계원이 거울을 통해 이서를 본다. 스타일리스트 세 명이 붙어 계원의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돕고 있었다.

“대화가……. 금방 끝나셨네요.”

“미리 전달받았던 내용이라.”

“…….”

“구경 좀 하라니까 왜 들어왔어요?”

차계원이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게…….”

이서가 잠시 말을 고른다.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말하기는 영 창피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붙어 있으라고 하셨잖아요.”

핑계기는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먼저 그렇게 말한 건 차계원이었으니까.

“따라다니라고 했지 붙어 있으라 한 적은 없는데.”

다리를 꼬고 앉은 거울 속의 차계원이 눈을 흘긴다. 장난스러운 표정이었다.

“비슷한 거……. 아닌가요.”

또 나가 있으라는 말을 들을까 싶은 백이서가 슬금슬금 계원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 허공을 보는 척 쭈뼛거리는 폼을 본 계원이 피식 웃는다.

“맞아요. 비슷한 거.”

다행이라는 듯 힘이 들어가 있던 이서의 어깨가 이완된다.

“그럼. 거기서 나 구경해요.”

“넵.”

이서가 이때다 싶어 차계원의 옆자리에 앉는다. 역시 밖보다 차라리 이게 편했다.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턱을 괸 백이서가 진짜 구경하듯이 계원의 스타일링 과정을 뜯어본다. 그 시선이 쓸데없이 올곧아 계원의 신경을 묘하게 끌었다.

“개 새끼 아니고 여우 새끼였네요.”

“예? 새끼…… 요……?”

잘못 들었나 싶은 이서가 되묻는다. 온종일 열심히 따라다니고 팔자에 없는 매니저 노릇을 하며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차계원이 선택하는 단어들은 매번 직설적이었다. 친근하지 않은 적나라함.

“아. 아까 개새끼 같았거든요. 두리번거릴 때.”

말 안 해 줬었냐는 듯 고저 없는 어조가 천연덕스럽다. 이서가 바닥을 내려다본다. 차계원의 저런 말투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왜 눈 돌려요. 나 구경한다며.”

아주 잠깐이었는데 그걸 또 불호령을 내린다. 결국, 이서는 차계원의 스타일링이 끝날 때까지 모든 과정을 봐야 했다.

‘하긴 앞으로 얼마나 마주치겠어.’

첫 계약 때나 가끔 대면하지 배우와 대표가 얼굴을 부딪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작품이 들어올 때 정도가 아니면 의무적으로 안부나 파악할 뿐이다.

차계원은 더할 것이다. 그는 작품을 정할 때도 회사와 상의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정한다고 들었다. 본인에게 필요한 인력마저 직접 데려오겠다고도 첫날 못 박았었다.

‘괜찮아.’

잠깐 본 그는 변덕이 심했다. 지금이야 휘두를 회사가 필요할지 몰라도 얼마 안 가 알아서 나갈 것이다. 그러면 위약금을 낼 필요도 없고 대면할 일도 없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적응할 필요 없다. 조금만 지나면 될 일이다.

‘곧 사그라들 거야.’

이서가 속으로 되새겼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