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도덕적 안락함-15화 (15/100)

#15

“워낙 부족해서……. 선배님처럼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요.”

이진강이 이서의 칭찬에 더듬더듬 말을 잇는다. 그는 데뷔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칭찬에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늘 과하게 느껴졌고 들을 때마다 닭살이 돋는 기분이었다.

“매력은 다 다르니까요. 저는 배우님 연기 볼 때마다 감탄했는데요.”

차계원이 워낙 톱스타라고는 하지만 본디 사람의 매력은 다 다른 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예의 바르고 열정적이라면. 분명 앞날이 기대되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다.

“빈말로……. 듣겠습니다. 과찬이라.”

“저는 빈말 못 해요.”

이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색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진강은 의외로 연기력이 좋은 배우였다. 한순간의 이슈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이들은 보통 얼마 못 가 대중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마치 오랜 시간 훈련받고 연습한 것처럼 연기력도, 캐릭터 소화 능력도 좋았다. 정색을 빙자한 이서의 칭찬 탓에 진강의 귀 끝이 붉어진다.

“……감사…… 합니다. 그리고 배우님이라고 안 하셔도 됩니다. 어색해서.”

“아. 그럼 진강 씨라고 할까요?”

“네. 그렇게 해 주시면 더 편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서와 이진강은 나란히 서서 차계원의 촬영을 지켜봤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탄성도 늘어났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진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망설이는 투였다.

“근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일이요?”

“갑자기 늦는다고 하셔서 사고라도 나셨나 했었습니다.”

“예……?”

늦는다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차계원은 분명 촬영이 두 시간 정도 밀렸다고 했었다.

‘뭐지?’

이서가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들을 확인한다. 지연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돌이켜보니 이상했다. 핸드폰을 켰을 때 촬영 관련 연락은 와 있지 않았다. 촬영 시간이 밀리는 거야 허다하게 있는 일이지만, 그랬다면 문자로라도 전달이 됐을 거다.

배우인 차계원에게만 연락이 갔다는 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다못해 김건이라도 제게 연락을 해 줬을 거다.

‘대체 왜?’

이서 옆에서 진강이 다시 한 번 묻는다.

“개인적인 일인가요?”

“아, 예.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드리기가…….”

얼버무림 속에서 이서의 난감함을 읽어낸 진강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제가 괜히 여쭈어봤네요. 죄송합니다. 곤란하게 만들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뇨. 아뇨. 괜찮아요. 별일 아니었어요.”

이서가 애써 웃으며 진강을 안심시킨다. 그 웃음이 퍽 어색한데도 진강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행이네요. 선배님이 직접 연락해 주셨다길래 큰일이라도 났나 했습니다.”

‘직접?’

들을수록 상황 파악이 안 됐다. 아무리 돌이켜 봐도 차계원에게 급한 용무나 개인적인 일은 없었다. 촬영을 미루고 한 거라고는 밥 먹고 커피나 마신 게 다였다.

“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한 이서가 입을 연다.

“혹시 너무 예의 없어 보였을까요?”

“음……. 선배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진강이 한쪽 손으로 턱을 괸다.

“네. 당일 날 갑자기 미루는 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니까요.”

이유는 둘째 치고 그게 제일 먼저 걱정됐다. 배우는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촬영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기는 하지만, 갑자기 촬영이 밀리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스태프들 일정도 다 밀렸을 텐데. 뒤에 진강의 촬영이 있다는 건 뒤 타임 촬영도 밀렸다는 뜻이다.

“하하. 그럴 리가요. 선배님이야 워낙 프로시지 않습니까. 다들 그러려니 하죠.”

“그게 되나요?”

아무리 차계원이라도 일정에 차질을 빚은 거였다. 하지만 이서의 걱정과 달리 진강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았다.

“사실 차계원 선배님 정도면 그냥 펑크 내도 아무 말 못 하죠. 게다가 직접 연락 주셔서 양해까지 구했다고 하시니 안 좋게 볼 사람이 있겠습니까. 식사도 돌려 주시고. 저도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식사도 돌렸나요?”

“……모르셨습니까?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전혀 몰랐다.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차계원이 자리를 뜬 건 화장실을 가는 그 잠깐이었다.

“모르셨나 봅니다. 제가 실수라도 한 건…….”

“아니에요. 아까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잊었나 봐요. 잘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제가 감사하죠. 식사에 커피까지 얻어먹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진강의 감사 인사가 민망했다. 차계원이 왜 그랬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뜻 모를 불안감이 마음속에 피어날 뿐이다. 이서가 고개를 돌려 차계원을 본다. 그는 계속 보고 있었다는 듯 시선을 마주쳐 왔다. 터지는 플래시가 따갑다. 그를 핑계로 이서는 눈을 돌렸다.

* * *

차계원이 의상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이서는 대기실 옆 벽에 기대 있었다. 제가 촬영한 것도 아닌데 몸이 고됐다. 계원은 그 긴 촬영 동안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아직 안 가셨네요?”

오늘 촬영을 맡았던 보조 작가였다. 온종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그의 목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대기실에서 봤을 때도 고개만 숙여 인사하는 게 다였다. 그의 음성은 생각보다 얇고 빨랐다.

“계원 씨 의상 갈아입는 중이라서요. 작가님은 안 들어가세요?”

“정리가 안 끝나서요.”

이서를 따라 벽에 기댄 남자는 마른 체형을 갖고 있었다. 어깨선이 맞지 않는 재킷은 그를 더 왜소해 보이게 만들었다. 푹 수그리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꺼진 눈 밑이 거뭇했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이서가 먼저 수고 인사를 건넸다. 메인 작가의 곁에 있던 조금 전과는 남자의 분위기가 달랐다. 음울함과 음침함이 공존하는 듯했다.

“…….”

“화보 잘 나올 것 같아요. 작가님들이 많이 고생해 주셔서.”

이쯤 했으면 예의상이라도 인사가 나올 법도 한데,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헐렁한 재킷 품속에서 담배만 꺼내 문다.

“잘 나오지 않겠어요? 차계원인데.”

비뚤어진 대답과 함께 메케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남자는 차계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짝 찌푸린 얼굴로 자신을 보는 대표라는 사람 역시도. 처음부터 차계원이 싫었던 건 아니다. 국민 절반이 차계원 팬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마당에 싫었을 리가.

메인 작가와 차계원은 오늘까지 합하면 벌써 세 번째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세 번 모두 자신도 함께했었다. 국민 배우라던 차계원은 까다로웠고 또 재수 없었다.

컨셉 초안을 짜는 건 항상 자신이었는데, 며칠 밤을 새워 짠 구성안은 그의 ‘별론데요.’라는 한마디로 엎어지고는 했다.

제일 억울한 건 차계원 의견대로 촬영을 진행하면 꼭 대박이 난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망해 버리라고 몇 번을 속으로 빌어도 소용없었다.

“대표라더니 매니저로 전향했나 봐요?”

남자가 이서에게 톡 쏘아붙인다.

메인 작가는 입이 닳도록 백이서를 칭찬했다. 오늘 처음 본,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회사의 대표를.

그녀는 칭찬이 박한 사람이었다. 10년 가까이 보조로 일하는 제가 들어 본 최고의 칭찬은 ‘그 정도면 괜찮네.’였다.

“원래 매니저 하던 사람이 바빠서요.”

“시다바리던데 그냥.”

이게 화풀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화풀이면 어쩌라고.’

지금 제 기분이 바닥을 치는 건 이 허여멀건 사람 때문이다. 이 정도도 안 된다면 분해서 잠이 안 올 거다. 저 인간도 똑같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메인 작가하고만 인사를 나누던 속물.

“초면인데 말이 심하시네요.”

이서의 말투가 딱딱해졌다. 남자의 적의가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당신네들이 심한 게 아니라?”

남자가 이서 쪽으로 연기를 내뿜는다.

백이서가 대기실을 나갈 때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갔었다. 남자치고 곱상한 외모 때문에도 그랬고 메인 작가의 칭찬 때문에도 그랬다. 나가는 뒷모습을 눈으로 좇고 있을 때 무언가 툭 제 발치에 떨어졌다.

구성안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오케이 했던.

‘그렇게 다른 데 정신이 팔려 계시니……. 촬영이 제대로 되겠어요?’

차계원의 한마디로 결국 컨셉이 바뀌었다. 세트나 의상에 지장이 안 갈 정도로 미묘하게. 자신을 향한 메인 작가의 질타 어린 시선은 덤이었다.

“콜록. 콜록.”

“모레도 그쪽이 와요?”

이서가 연달아 기침해댔다. 남자가 이서의 옆으로 피우다 만 담배꽁초를 버린다.

“누가 오는 게 작가님이랑 무슨 상관…….”

달칵.

“뭡니까?”

이서가 화를 내려 할 때였다. 의상을 갈아입은 계원이 험상궂게 노려보며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채 가시지 않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렴풋이 문밖에서 백이서의 기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는데 이게 원인인 듯싶었다.

“뭐 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계원의 얼굴이 단박에 구겨진다. 큰 보폭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남자가 뒤로 물러선다.

“……잠깐 들렀습니다.”

“무슨 볼일이 있어서요.”

계원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그에 아까의 기세를 잊은 남자가 뒷걸음질을 친다. 이서를 대할 때와 정반대였다.

“오늘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려고……. 내일 뵙겠습니다.”

시다바리냐는 둥 비아냥거리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남자는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어이없어 이서가 빤히 바라본다. 별별 이상한 사람 다 겪어 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색다른 경험이다. 바닥에는 남자가 버리고 간 담배꽁초 불씨가 살아 있었다.

“……가죠.”

꽁초를 지르밟은 계원이 앞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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