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도덕적 안락함-17화 (17/100)

#17

“윽.”

“뭐가 그렇게 급해요? 사람 서운하게.”

이서의 등이 계원의 상체에 살짝 닿았다. 계원이 그 상태에서 이서 쪽으로 몸을 더 기울이니 반쯤 안긴 모양새가 됐다. 등 뒤로 느껴지는 차계원의 숨이 더웠다.

“시간이……. 늦었으니까요. 계원 씨도 쉬셔야 하고……. 저도 얼른 들어가서…….”

“생각해 주는 척은.”

집에 가고 싶다는 게 표정에 다 드러나는데. 계원이 백이서의 정수리에 턱을 얹는다. 양팔을 모으고 가만히 안겨 있는 게 꼭 덫에 걸려 꼼짝 못 하는 사냥감 같다. 뒷모습이라 표정이 안 보이는 게 영 아쉬웠다.

‘뭐 보나 마나.’

난처하다는 듯이 눈만 내리깔고 있겠지. 붉어진 귓가만 봐도 알 수 있다. 문득, 탐스럽게 달궈진 귓가를 물어뜯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요. 늦었으니까.”

“네…….”

“잘 들어가요.”

“네……. 저…….”

잘 들어가라는 말과 달리 이서에게 감긴 팔은 치워질 줄 몰랐다.

“놔주셔야 들어갈 수 있는데…….”

계원은 아직도 이서의 팔을 붙들고 있었고 그의 턱은 정수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외려 본인의 뺨까지 머리카락에 문대고 있었다. 이서가 그를 피하고자 꼼지락거려도 무용지물이었다.

“놔주면 뭐 해 줄 건데요?”

“꼭 뭘 해 드려야……. 하나요……?”

일부러인지 차계원은 계속 속닥이며 말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습한 숨이 피부를 훑는 것 같았다. 차 안의 공기가 후덥지근하다. 이서의 피부가 목덜미부터 얼굴까지 전부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죠. 그게 세상 이치잖아요. 안 그래요?”

“그, 그냥 놔주시는 건…….”

이서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어서 이 진득하고 눅진한 공기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차계원은 어림도 없다는 듯 이서의 귓바퀴를 가지고 장난치기 시작했다. 손끝을 이용해 귓바퀴가 난 모양대로 훑어도 보고, 자그마한 귓구멍에 새끼손가락을 넣어 보기도 했다. 계원의 손이 지날 때마다 살결을 스치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그냥 놔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죠. 대표님 양아치예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공짜가.”

차계원이 말할 때마다 붓으로 간질이는 것처럼 귓가가 간지러웠다.

“야, 양아치는 계원 씨 아닌가요…….”

차계원의 속닥임과 지분거림을 더는 못 참겠다 싶었던 이서가 눈을 질끈 감고 말한다.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차에서 내리는 대신 무언가를 해 달라니. 이게 도둑놈 심보가 아니면 뭔가 싶다.

“허.”

계원이 바람 빠진 소리를 낸다. 이 조막만 한 여우 새끼는 덫에 걸려 놓고 따질 줄도 알았다.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만지는 족족 움찔대는 게 귀여워 조금 놀려 주려는 심산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안 그래도 붉게 달아오른 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참이다.

“흐읏. 왜, 왜…….”

계원이 혀를 내밀어 이서의 귀를 핥는다. 축축한 혀가 상처에 닿자 따끔하니 쓰라렸다. 이서가 그 쓰라림에 얼굴을 돌리자, 계원이 고개를 움직여 이번에는 귀 뒤를 핥아 올렸다. 귓바퀴에 울리는 외설적인 소리가 끈적하다.

“하, 하지…… 하지 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린 입으로 계원의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간다. 입 속을 헤집는 손가락이 말캉한 혀뿌리부터 고른 치열까지 부드럽게 긁어내린다. 입천장에 손가락 마디 뼈가 느껴졌다. 들락거리는 손 탓에 침이 흘렀다.

“흐으…….”

계원이 이번에는 통통한 백이서의 귓불을 입에 넣고 굴린다. 살의 단내가 입 안 가득 풍겼다. 밭은 숨을 내몰아 쉬는 백이서의 가슴께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거 알아요?”

계원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듯 백이서가 품에서 빠져나가고자 사부작거린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아래로 살짝 올라간 둥근 눈이 그렁그렁한 게, 조금 더 하면 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건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3년 전에 보기는 했는데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흐릿했다.

“흐아.”

손가락을 뺀 계원이 백이서의 뺨을 감싸고 제 쪽을 보게 한다. 침이 잔뜩 묻은 이서의 아랫입술을 계원의 엄지가 반복해서 매만진다. 숨을 고르느라 바쁜 백이서의 입매가 파들거린다. 원망하듯 보는 눈매가 살짝 찌푸려져 있다.

“난 대표님 이런 표정이 제일 재밌어요.”

난처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 불편한데 도망도 못 가고 꾹 참는 거.

“재밌어서 돌아 버릴 정도야.”

점성 있는 목소리가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 * *

집 앞에 다다르자마자 백이서가 튀어 내리듯 차에서 내린다. 꼭 농구공이 튕겨 나가는 것 같다.

“들어가세요.”

계원 쪽은 보지도 않고 대충 인사한 이서가 빨리 집에 들어가기 위해 뛰듯이 걷는다. 아직도 귓불이 불에 덴 듯 뜨거웠다.

“대표님.”

그런 이서의 발걸음을 차계원의 목소리가 잡아챘다.

“예, 예?”

이서의 몸은 이미 차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여러모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대변됐다. 이서가 옷소매로 몇 번이나 입가를 닦는다. 턱이 다 얼얼하다.

“와요.”

창밖으로 팔을 뻗은 차계원이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모로 꺾은 고개가 불만이 있다는 듯 시선을 보내왔다.

“저, 집, 집에.”

“와.”

차계원이 다 내린 차창에 팔을 기대고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서가 한 번 더 인사를 한 후 뒤로 물러선다.

“……내가 내려요?”

찌푸려진 미간이 마지막으로 경고한다는 것처럼 스산했다. 이서가 하는 수 없이 차체로 다가간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 걸음이 느릿하다. 신발 밑창이 아스팔트에 끌리는 소리가 계원에게까지 들렸다.

“데려다준 사람한테 인사도 안 해요? 계속 이렇게 사람 서운하게 해요. 응?”

몸을 차체에서 50센티미터 정도 떼고 있는 이서가 우물거린다. 숙인 고개가 올라올 줄 모른다.

“감사하다고……. 아까 했는데…….”

“이런 식이면 억울하죠.”

차계원의 짓씹는 듯한 목소리가 퍼석하다.

하도 소스라치며 바둥거리길래, 씹어 넘기고 싶은 걸 겨우 참았건만. 제 집이라고 쪼르르 도망가려 하는 게 그리 괘씸할 수가 없다.

“가까이 와요.”

주춤거리는 몸짓이 겨우 반 발자국을 움직여 가까이 간다.

“더.”

이번에는 반 발자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걸음이었다.

“이게 진짜…….”

계원이 손을 뻗어 이서의 겉옷을 잡고 당긴다. 멱살을 붙들린 채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는 코앞에 있는 상대의 숨결이 닿을 정도였다.

“아야!”

그대로 이서의 턱을 잡아챈 계원이 이서의 코끝을 이로 물었다. 하얀 코끝에 붉은 잇자국이 새겨지자 루돌프가 따로 없었다. 계원이 그제야 기분이 약간 풀렸다는 양 이서를 놔준다.

“잘 들어가요. 어디 또 기어 나가지 말고.”

잘 들어가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가 잡아가기라도 할까 쪼르르 뛰어 올라간다.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사라지는 백이서의 뒷모습이 빨랐다. 집에 불이 켜지는 걸 확인한 계원이 차에 시동을 건다.

* * *

씻자마자 침대에 내던지듯 몸을 누인 이서가 뒤척거린다.

“하…….”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복잡했다. 제가 아무리 무던한 편이라고 해도 차계원의 행동이 도를 넘는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보통 그렇게 스킨십을 하나?’

아무리 잔 적이 있다 해도 생판 모르는 남인데 정도가 심했다. 김승주와 연애를 할 때도 그런 질척거리는 스킨십은 해 본 적 없었다.

‘혹시.’

자신을 좋아하나 싶은 생각이 든 이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지. 아니야.”

어떤 시각으로 봐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할 만한 행동들은 아니었다. 차계원이 좀 제멋대로인가. 여태까지 제게 한 짓도 막말로 따지고 보자면 폭력에다가 성추행이었다. 순간 재미있다는 계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렇게 말하는 차계원은 섬뜩할 정도로 즐거워 보였었다. 살면서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재미있다는 소리는 또 처음이다.

“진성 싸이코인가.”

싸이코가 아니고서야 그의 행동들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은 수의 싸이코패스가 섞여 있다고 하지 않는가. 차계원도 그중 하나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게 생각해야지만 조금 이해될까 말까다.

“어쩐다.”

계속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마주침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거고. 수틀리면 협박이나 해대는 인물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차계원을 이해하는 건 포기하자고 마음먹어 봐도 쉽지 않았다.

“누더기도 아니고…….”

핸드폰 화면에 비친 제 얼굴을 본 이서가 혼잣말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잇자국이 난 코에 겨우 생긴 피딱지마저 떨어진 귀에.

“어느 천년에 기다려.”

핸드폰을 침대에 던진 이서의 얼굴이 죽상이 됐다. 가만히 차계원이 회사를 나갈 때까지 기다리려 했는데 막막하기 그지없다.

징. 징.

한창 침대 위를 뒹굴며 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이서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김건이다. 이서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보통 이 시간에 매니저가 전화하는 경우는 좋은 일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매니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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