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도덕적 안락함-31화 (31/100)

#31

“그래, 개새끼야! 다짜고짜 사람을 패? 연예인이면 이래도 돼? 되냐고, 씨발!”

“너는 저걸 왜 패.”

차계원이 백이서를 가리킨다.

“다짜고짜 왜 팼냐니까?”

차계원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은 꼭 궁금증을 갖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했다.

“씹……. 눈깔 없냐? 돈 빌려 놓고 안 갚으니까 찾아왔지 병신 새끼야. 남의 돈 떼먹는 새끼가 씹새끼지, 돈 찾으러 온 우리가 잘못이냐?”

“잘못이죠.”

계원이 구둣발을 남자의 고간에 가져다 댄다.

“으아아아아악!!”

소변을 지려 축축해진 사타구니를 계원이 지르밟는다. 남자가 팔, 다리를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남자가 차계원의 발을 떼려 했으나, 그 즉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코 잘 시간인데 못 자잖아요.”

연속되는 차계원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차계원이 피 묻은 철골을 다시 들어 올린다. 이번에도 향하는 곳은 머리였다.

“차계원 씨! 잠, 잠깐만요!”

기겁한 백이서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차계원의 다리를 붙들었다. 처음 머리가 으깨진 남자의 피도 콘크리트 위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에서 나오는 하얀 김이 불안정했다.

“왜 말려.”

차계원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계원 씨. 제발요. 제발 멈춰 봐요.”

이서가 매달린 손에 힘을 준다. 이 상황에 더는 얼빠져 있을 수 없었다. 지금도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비릿한 피비린내와 오줌 지린내가 섞여 코를 찔렀다.

“제발 그만 해요. 신고라도 들어가면 어떡해요.”

이서의 집은 방음이 잘되지 않는 곳이었다. 차계원 같은 톱스타의 경우 작은 사고만 쳐도 크게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봐도 수습 불가능이다. 백이서의 목소리가 잘게 떨린다. 다리 한쪽에 매달려 차계원을 올려다보는 꼴이 애처롭다.

“뭐래.”

퍽.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차계원이 이서를 비웃고 남자의 머리를 내려쳤다. 남자가 의식을 잃은 듯 두 눈을 까뒤집으며 꺽꺽거렸다.

“어쩌……. 어쩌려고…….”

“…….”

둘 다 머리가 으깨진 그들은 숨만 헐떡였다. 백이서의 낯빛이 하얗게 질린다. 계원이 이서의 팔뚝을 잡고 일으킨다.

“대답이나 해. 세 번째 묻잖아요. 들어가서 코 자라는 게 어렵냐고.”

차계원이 읊조렸다. 작은 읊조림이었으나 복도에 울려 크게 느껴진다.

“안 어려워, 안 어려워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들…….”

“근데 왜 이러고 있어.”

퍽.

“차계원 씨!”

차계원이 이미 의식이 없어 보이는 남자의 배를 한 번 더 찬다. 이서가 놀라 소리치며 그를 붙들었다.

“왜 그렇게 애타게 불러요. 바로 앞에 있는데.”

차계원이 백이서의 터진 입가를 매만진다. 날이 추워 벌써 피가 메말라 있었다.

“혹시 기사라도 뜨면.”

이서가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로 빚쟁이들을 번갈아 본다. 지금 상황이 꿈인 것 같았다.

빚쟁이들이야 몇 대 맞아 주고 잘 달래면 끝이다. 이렇게 폭력까지 쓴 건 드물었으나, 그들의 목적이 애초에 돈이니 겁주려는 요량이었을 거다. 잠깐 아프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크게 잘못됐다.

“지금 내 걱정하는 거예요?”

차계원의 목소리가 상황과 맞지 않게 부드럽다. 차계원이 끼어든 순간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니게 됐다. 빚쟁이들의 몰골은 한눈에 봐도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신고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저들이 깨어나 신고하면 그게 더 복잡해질 것이다.

“씨씨티비가 있으니까……. 그걸로 신고라도 당하면…….”

불안한 목소리의 이서와 달리 차계원은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1층 입구밖에 없어요.”

“계단 쪽에도 있는데요…….”

“아아. 고장 났더라고요. 그거.”

“아…….”

할 말을 잃은 이서가 얼뜨기 같은 얼굴로 계원을 본다.

“그래도 이건 어떻게 정리해야…….”

“신경 쓰지 마요. 존재 자체가 불법인 새끼들이 누가 누굴 신고해.”

차계원이 한 손으로 제 팔을 턴다. 그 모습이 꼭 먼지를 털 듯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얼굴이며 팔이며 피와 멍으로 얼룩진 이서와 달리 그는 옷차림에 그 흔한 구김도 가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을 겪은 건 이서뿐인 양, 흠 한 점 없는 모습 그대로였다. 꼭 혼자만 다른 세상에서 나온 사람 같다.

“이대로 뒀다가 다른 사람들이 먼저 보기라도 하면요? 그러면. 그러면 일이 커지잖아요.”

이서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보고 있기라도 할까 두려웠다.

“옮기죠.”

차계원이 이서를 보며 턱을 까딱였다. 그 턱짓이 빨리 움직이라는 것처럼 보여 이서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람들을요? 어디로요?”

“이걸 뭐 하러 옮겨요. 지 집은 지 알아서 가는 거지.”

계원이 코웃음을 친다.

“그럼…….”

“대표님 거처요.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예? 굳이 왜…….”

“위험하니까?”

차계원이 아직 내려놓지 않은 철골로 그들을 가리켰다. 이서가 티 나지 않게 숨을 삼킨다. 여러모로 봐도 이곳에서 제일 위험한 건 차계원 같았다.

“그거랑 계원 씨 집이랑 무슨 상관…….”

“그때도 말했잖아요. 내가 마음이 여리다고.”

“마음…… 이요…….”

이서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진다.

“이렇게 위험한 상태의 대표님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네요.”

차계원은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는 양, 아예 한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있었다.

“그…….”

“잘 아시다시피 제가 원체 마음이 여려서.”

그렇게 말하며 계원은 이서의 집 현관문을 툭툭 친다. 열라는 뜻이다.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

“어차피 이제 위험해질 일도 없고……. 제가 조심할게요.”

“이게 조심하면 될 일인가.”

차계원이 보란 듯이 널브러진 남자의 손 하나를 지르밟는다.

“어억!”

그를 흘긋 본 이서가 눈을 피한다. 손이 밟힌 남자의 몰골이 계속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고, 그 끔찍한 몰골을 무감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차계원은 소름 끼쳤다.

“찾아오려 들면 어디든 찾아올 수 있을 거예요……. 여기나 거기나 비슷할 테니까…….”

우물우물 말하는 백이서의 입에서는 피가 다시 배어 나오고 있었다.

“…….”

“차계원 씨는 먼저 들어가세요. 혹시 기사라도 뜨면 전부 곤란해지니까……. 여기는 어떻게든 정리해 볼게요.”

백이서가 제 집 현관문 문고리를 굳세게 잡는다.

“하…….”

“계원 씨?”

“또 이러네.”

“예?”

차계원이 철골을 내던진다. 쇳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뭐가……. 요.”

차계원이 이서의 눈앞에 마주 선다. 뒤로 주춤거려 보지만, 문에 등만 부딪힐 뿐이었다. 계원이 이서의 옷자락을 당겨 피가 튄 제 손을 슥. 슥. 닦는다. 이서의 옷에 번진 피가 묻는다.

“대표님 그렇게 되묻는 거. 어떨 때는 귀엽거든요. 근데 어떨 때는 화가 나.”

“…….”

“특히 이렇게 말 안 들을 때.”

“읏.”

이서의 옷자락을 놔준 계원이 턱을 잡아챈다. 아까 맞아 멍든 볼이 아렸다.

“사실 여러 번 고민해요. 이걸 줘 팰까. 아니면 어디 개집에 던져 버릴까.”

“…….”

“그냥 달랑 들어다 던져 버리면 될 거 같은데. 그편이 쉽잖아요. 짜증도 덜 나고…….”

“……일단 오늘은 가시고.”

쾅.

차계원이 이서의 머리를 잡아 순식간에 현관문에 들이박는다. 철문의 웅웅거림이 머리를 지나 목까지 타고 왔다.

“근데 그러면 또 나 피할 거잖아. 그치.”

“으윽……. 지금 왜 화나셨는지…….”

“도망 다니는 거 잡아다 가두는 거. 그거 일도 아닌데 참고 있는 거예요. 그때 대표님 표정이 개좆같아서.”

차계원은 빚쟁이들을 상대할 때보다 더 화나 보였다. 머릿속의 웅웅거림보다 짓씹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더 또렷한 느낌이었다.

“쟤네보다 더 뭉개 버리고 싶을 정도로 좆같았거든.”

이서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차계원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협조 좀 하시라고요. 내가 이 정도로 배려하잖아. 내 호의가 언제 끝날지 알고 멋대로 굴어.”

“…….”

“짐 싸요.”

* * *

옷가지 몇 개만 대충 챙겨 온 이서가 차계원의 집 소파에 앉아 있다. 차계원은 짐을 챙기라 해 놓고, 그냥 나오라며 몇 번을 닦달했다. 결국, 챙긴 거라곤 세면도구와 속옷 몇 장, 외출용 여벌 옷 두 벌 정도였다. 이걸 핑계로 집에 빨리 돌아갈 수 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서가 팔을 내준다.

“붕대까지 감아야 하나요……?”

이서가 짐을 챙기는 동안 차계원은 어딘가에 몇 번 전화를 걸었었다. 차계원의 집에 다다르니 의사라는 사람이 그들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이서는 샤워한 후 치료를 위해 앉게 되었다.

“어깨 근육이 놀라서 당분간 감아 놓는 게 좋습니다. 타박상이 큰 편이에요.”

얇은 안경테를 쓴 의사가 붕대를 더 단단하게 고정한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각이었다. 이 시간에도 의사 왕진이 가능하다는 걸 이서는 처음 알았다.

“죄송은요.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많이 받아 갈 거니까 걱정 마세요.”

의사가 눈을 찡긋거리며 차계원을 가리킨다.

“그래도 많이 늦었잖아요. 감사합니다.”

이서가 붕대가 감긴 부분을 문지르며 꾸벅 감사 인사를 전한다.

“왜 거기다 감사해요? 부른 건 난데.”

앞에서 팔짱을 끼고 비뚤게 서 있던 차계원이 불만을 내뱉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