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도덕적 안락함-65화 (65/100)

#65

달빛이 어슴푸레한 새벽녘쯤 이서가 먼저 눈을 떴다. 눈을 뜸과 동시에 아래쪽에서 찌릿한 격통이 올라왔다.

“윽.”

누운 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한참을 숨을 고른 후에야 손가락과 팔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차계원과 섹스를 했다. 이서는 섹스를 크게 즐기지도 않았지만, 섹스 자체에 의미부여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다만, 차계원과의 섹스는 가볍게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집요하고 자극적이었다. 할 때는 물론이요, 하고 난 후에도 설명할 수 없는 감각들과 쾌감이 머리를 둥둥 울렸다. 김승주와의 섹스나 홧김에 몇 번 해 본 원나잇에서는 느낀 적 없는 감각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자신이 점점 별생각 없이 행위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다.

‘이런 것마저 무뎌지면 어쩌자고.’

매사에 무던하기는 했지만 이런 일에까지 무던해지는 저 자신이 싫었다.

“…….”

이서가 흘깃 차계원을 돌아다본다. 몸에 둘러있는 팔이 무거웠다. 차계원은 항상 관계가 끝난 후에도 이서를 놔주지 않았다. 관계가 없는 날도 매한가지기는 했다.

깨기 전에 살살 몸을 빼보려 허리를 비틀던 이서가 숨을 헉 들이마신다.

“이, 이게.”

차계원의 성기가 빠져나가지 않은 채 그대로 이서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제야 온 신경이 아래로 몰렸다. 내부가 한껏 벌어져 있는 게 느껴졌다.

“미친…… 으윽…….”

이서가 차계원의 성기를 빼내기 위해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의 성기는 워낙에 무지막지할 정도로 컸고, 그 탓에 서로 이어진 부분이 빡빡했다. 이서의 이마에 식은땀이 고인다.

“하아…….”

한동안 고군분투한 결과 그의 성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천천히 빼낼수록 성기의 존재가 여실히 느껴졌다.

“악!”

3분의 2 지점 정도 빼내었을 무렵, 그의 성기가 다시 끝까지 푹 쑤시고 들어왔다. 이서가 신음과 함께 숨을 멈춘다.

“꾀를 이렇게 잘 부리는데 사기는 왜 당했나 몰라.”

능글맞은 목소리가 귓가에 속닥인다. 낮은 웃음소리가 이서를 비웃고 있었다.

“어, 언제.”

이서의 정수리에 쪽 하고 입을 맞춘 계원이 둥근 머리통을 씹어 먹기라도 할 듯이 잇자국을 낸다. 이윽고 얼굴을 내려 목과 어깨 사이도 짓씹어댔다.

“언제 일어났어?”

“내가 대표님보다 빨리 일어났을걸요.”

“근데 왜 모른 척 그렇게…….”

“꼼지락대길래.”

무심하게 대꾸한 계원이 제 성기를 빼 주고는 이서를 자신의 몸 위에 겹쳐 안는다. 이서가 화들짝 놀라 바둥거린다. 관계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상의부터 하의까지 다 차려입고 있던 그가 지금은 이서처럼 나체였다.

“걱정 마요. 나도 더 할 생각 없으니까.”

일어나려 버둥대는 몸을 묵직한 손이 지그시 누르고 등을 토닥거린다. 이서가 고개만 살짝 들어, 부은 눈으로 힘겹게 올려다본다.

“진짜……?”

“기절한 사람한테 박아대기는 싫어서.”

동그란 머리통이 안심됐다는 듯이 폭삭 계원의 가슴에 무게를 싣는다. 그새 풀어져서는 졸린다는 양 하품까지 한다.

“아.”

한숨 같은 탄식을 내뱉은 계원이 이서의 턱을 잡아 올려 자신을 보게 한다. 의아하다는 얼굴이 갸웃거리며 다시 계원을 올려다본다.

“왜……?”

“괜찮을 것도 같네.”

“…….”

눈을 한 번 도로록 굴린 이서가 그 말뜻을 알아듣고 계원의 위에서 데구루루 굴러 내려와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는다.

“대표님.”

“…….”

“대표님?”

“……말해.”

“그러면 내가 못 찾아요?”

“…….”

“머리카락 다 보여요, 지금.”

계원이 등허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쿡쿡 찌르자 이불이 한 번 들썩이더니 머리카락 몇 올까지 쏙 들어간다.

“그래요. 거기 살아요. 그럼.”

피식 바람 빠진 소리를 낸 계원이 몸을 일으켜 샤워실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가 다 씻고 나와 잠옷을 입을 때까지도 이불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귀를 대니 도롱도롱 약하게 코 고는 소리가 났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설마 싶은 마음으로 이불을 얼굴 부분만 거두자 정말 곤히 잠들어 있었다. 눈가를 간질이자 코를 찡긋거린다. 볼을 콕콕 찔러도 세상모르고 잔다. 한동안 그 앞에서 반곱슬 머리칼을 살살 건드리던 계원이 옆에 자리 잡고 누워, 이서를 이불 채로 들고 제 위에 얹어 놓는다. 더 자도 나쁘지 않을 시간이었다.

* * *

“퉤!”

김승주가 침을 뱉으며 담배를 비벼 끈다. 기분이 더러웠다.

“염병 뒈지게 춥네.”

칼바람에 살이 아렸다. 오늘은 한파주의보도 떴다. 그가 팔짱을 끼며 오소소 돋아나는 닭살들을 비볐다. 어찌나 추운지 턱이고 다리고 달달 떨렸다.

달칵.

모텔로 향한 그가 곧장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녹인다. 렌터카를 반납하느라 올 때는 걸어와야만 했다. 얼마나 쩨쩨한지 고작 두 시간 늦게 반납했다고 추가금이 몇만 원이나 붙었다. 외제 차라 금액이 더 비쌌다. 내일도 빌려야 하는데 큰일이었다.

“씨발, 그 호구 새끼가.”

김승주가 이불 속에서 이를 바득 간다. 언제나 물러 터져서 제 말이면 죽는시늉까지 하던 백이서가 돈이나 내놓으라며 눈을 똑바로 떴다.

제가 가면 이제 왔냐고, 몸은 괜찮냐고, 여태 어디서 무얼 먹고 어떻게 지냈냐고 걱정했어야 정상이었다. 그게 옳았다.

“좋다고 쫓아다니길래 만나 줬더니.”

그가 백이서를 처음 본 건 신입생 환영회에서였다. 웬 햇병아리 같은 놈이 환영회 내내 제게 힐끔힐끔 시선을 보내왔다. 동경이나 친해지고 싶은 마음 정도로 치부했던 시선은 그 후에도 줄곧 제게 따라붙었다. 사내새끼라면 징글징글한데, 이상하게 그 시선은 싫지 않았다. 불손한 무언가가 담겨 있지도 않았으며, 그저 맑고 순수했다.

주위 동기들이 쟤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몇 번 놀릴 즈음, 떠보기나 할 요량으로 게이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빨개진 얼굴로 도망쳤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은 당황이나 불쾌함보다도 우월감이었다.

“은혜도 모르는 호모 새끼.”

맹세코 남자를 좋아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한 일 아닌가. 남자와의 키스나 섹스라니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밀려왔다.

“생긴 건 괜찮으니까.”

그런데 백이서와는 그렇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것과 달리 백이서와의 스킨십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서 미칠 정도였다. 작은 체구도 아니고, 낭창한 몸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동했다. 따먹을 때마다 수치심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이 이렇게 되지만 않았다면 계속 손안에 붙들고 있었을 거다.

“인기도 많기는 했지.”

초반의 백이서는 과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었다. 반반한 얼굴에 성격도 유하니 그럴 만했다. 타 학과 여학생들에게서 종종 미팅이 들어오기도 했다. 백이서와 붙어 다니는 제게 그의 번호를 묻는 여자애들도 있었다. 물론 전해 준 적은 없었다.

그 무렵이었다. 백이서가 게이인 걸 소문냈을 때가. 어차피 자신은 졸업이었고 백이서는 막 학기만 남은 상태였다. 까놓고 말하자면 불안했다. 저만 보고, 제 손안에서 노는 백이서가 눈을 돌릴까 봐.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열등감도 있었던 것 같다. 과 회장까지 하면서도 평판이 별로였던 저와 다르게 백이서는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평판이 좋았으니까.

졸업하고 백수가 된 자신과 달리, 백이서는 졸업도 하기 전에 교수님 추천을 받았었다. 물론 게이라는 소문이 퍼진 후로는 무산됐지만.

“나도 어렸지 참.”

일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졌다. 그저 조금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백이서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잠수 타는 것밖에 없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많다. 그때 자신은 어렸고 무서웠다.

“모르니 됐지, 뭐.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고.”

백수인 자신이 인생을 역전할 방법은 도박과 사업이 다였다. 도박은 자존심이 상해 손도 안 댔다. 하지만 사업은 욕심이 났다. 그러나 자금이 부족했고 안 되면 말자라는 마음으로 백이서에게 다시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백이서는 많이 변해 있었다. 사람들을 무서워했고 집 밖으로 잘 나오려 하지 않았었다. 집안과도 연을 끊었다고 했다.

“그걸 다시 멀쩡하게 만들어 준 게 누군데.”

다행인 건 백이서가 자신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거다. 당시 그가 게이라는 걸 아는 건 자신뿐이었는데도 의심하지 않았다. 외려 돌아와서 다행이라며 마주 안아 왔다. 어찌나 우쭐하던지.

그렇게 같이 사업을 시작하며 백이서는 점점 다시 집 밖으로 나오게 됐다. 빚이 그에게 가기는 했으나 원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아닌가.

“근데 나를 그렇게 대해?”

다시 생각해도 괘씸하고 괘씸했다. 거기에 백이서는 어디에서 났는지 좋은 차에,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있었다. 누구는 시골에 짱 박혀 있느라 바깥소식도 모르고 살았는데.

“콜록, 콜록. 에이씨. 이 그지 같은 모텔.”

싸구려라 그런지 모텔 방에 웃풍이 들었다. 백이서의 행색을 보자면 이사 갔다는 곳도 더 좋은 집일 거다.

징. 징.

김승주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꺼낸다.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개통한 유행이 한참 지난 기종의 핸드폰이었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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