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벽에 등을 딱 붙인 채 눈을 홉 뜬 이서가 양손으로 제 입가를 가린다. 경악스러움에 쉰 것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이게. 형 무슨 일이야?”
어제만 해도 멀쩡했던 김승주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손과 머리에는 붕대를 엉성하게 감고 있었고, 보이는 곳은 온통 멍과 상처투성이였다. 가벼운 멍이 아니었다. 온 얼굴이 퉁퉁 부어 그가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면 못 알아보고 지나칠 뻔했다. 보이지 않는 곳은 어떨지 가늠이 안 되었다.
“차에 타자, 어? 일단 차에 타.”
당당하고 능글맞던 태도도 어딘가 공포에 질려 있었고 두려워 보였다.
“무슨 소리야 병원부터 가야지! 형 지금…….”
“타서 이야기해.”
그가 남은 힘을 짜내듯 이서를 차 앞으로 끌고 간다.
“차 키.”
“여, 여기.”
이서가 허겁지겁 차 키를 찾아 문을 연다.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김승주의 상태는 어딜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나가자, 일단 나가자.”
이서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석에 앉은 김승주가 시동을 걸려고 했다. 그러나 손이 말을 안 듣는지 제대로 키 버튼을 찾지 못했다.
“무슨 소리야. 형 몸이 왜 이래? 누구한테 맞았어? 쫓기는 거야?”
“일단 나가자고!”
김승주가 눈을 까뒤집듯 뜨며 주변을 휙휙 둘러본다.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형…….”
“씨발!”
그가 화를 못 이기고 차 키를 냅다 집어 던진다. 차 키가 유리창에 튕겨 바닥으로 떨어졌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서가 아는 그는 이렇게 흥분해서 날뛰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해. 너 어제 내가 한 이야기 생각해 봤어?”
“어?”
그가 다그치듯 몰아붙인다.
“합병 말이야 합병! 내가 어제 말했잖아!”
“어어, 생각해 봤어, 해 봤는데. 차계원 씨 싫다고 할 거 같아. 합병은 괜찮은 거 같은데…….”
“같은데? 빨리 말해 이서야. 제발. 나 지금 급해.”
이서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닦달하는 모습이 몹시도 낯설었다.
“나 이제 일 벌이는 것도 무섭고, 형이 아예 이 회사 인수한 다음에 합병할래? 형 말대로 난 나갈게.”
낯선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이서가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게 밤새 자신이 내린 결론이었다.
김승주는 너무 밉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보다 똑똑했다. 합병도 감정을 빼고 본다면 지금 회사 상황에서 이득이었다. 여러모로 그가 회사 운영을 맡는 게 나았다.
아주 솔직해지자면, 그가 돌아왔으니 이제 자신은 이 일에서 빠지고 싶었다. 남은 빚도 그가 다 갚으면 이서를 얽맬 건 존재하지 않는다. 차계원에게 휘둘리던 상황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차계원 씨 먼저 옮길 필요는 없는 거 같아. 어차피 합병하면 한 회사잖아. 아니면 형이 인수하고 설득해 봐도 괜찮을 거야.”
김승주는 카페를 차려 준다고 했지만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손에 남는 건 없어도 모든 과거와 짐을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괜찮았다.
“그게 안 되니까 이러는 거 아냐!”
“형……?”
김승주가 버럭 화를 낸다. 이서가 놀라 숨을 멈추었다. 진정시키려 해봐도 그는 진정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네가 해야 돼! 네가 그 새끼를 설득해야 한다고!”
“형……. 형 이상해. 왜 이러는 거야. 아파!”
잡힌 어깨에 아플 정도로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서가 어렵사리 제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을 떼어냈다. 김승주는 이제 얼굴색까지 파랗게 질려 몸을 떨었다.
“씨발.”
그가 작게 욕을 읊조렸다.
* * *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정신을 차리니 제가 투숙하는 모텔 방 안이었다. 그러나 꿈이라 하기에는 머리고 손이고 너무나 아팠다. 신고라도 하려고 하니 핸드폰이 안 보였다. 뒤늦게 깨진 핸드폰을 떠올렸던 그는 모텔 전화라도 쓸 요량으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앞에 차계원이 있었다.
‘도와주세요. 119에 연락 좀 해 주시겠어요? 차계원 씨를 이런 꼴로 뵙게 되다니. 제가 정말 팬인데…….’
놀란 그는 무작정 도와 달라는 말부터 했다. 차계원이 자신의 모텔방에 있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했다. 정신이 없었고, 제 방에 있는 그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퍽,
횡설수설 도움을 청하는 그에게 날아온 건 얼굴을 강타하는 폭력이었다. 그제야 그는 모텔 밖에서 자신을 습격한 사람과 자신을 모텔방에 데려온 이가 차계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맞고 나서도 얼떨떨한 그의 앞에서 차계원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가 앉은 조악한 모텔 의자가 마치 이름 있는 가구 브랜드의 새 디자인 같았다.
‘그쪽이 정말 궁금했어요.’
그는 김승주의 멱살을 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 얼굴이 얼마나 해사하던지 맞아 놓고도 맞은 걸 까먹을 정도였다. 그 후로는 기억이 드문드문하다. 아직도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몇 마디 기억나는 말들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뿐이었다.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더라고.’
몸을 맞기도 하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 비명을 지르고 이유를 물어도 거기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만해 달라고 빌어도 소용없었다. 말 그대로 그는 개 패듯이 자신을 팼다.
‘봐요. 넘어지면 이렇게 돼야 하잖아. 그쵸?’
신고하겠다고, 당신이 날 죽도록 팬 걸 온 세상이 알게 할 거라고 악다구니 치는 그를 손쉽게 바닥에 넘어뜨려 짓이긴 후 그가 한 말이었다.
‘애초에 그런 거로 우는 사람도 아니고. 울먹거리는 건 종종 보는데 우는 건 잘 보기 힘들거든.’
그때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잘 못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그는 싹싹 빌었다. 신발까지 핥을 기세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바람 하나로 미친 듯이 빌었다.
‘얼마나 모았어요?’
‘네, 네?’
‘네가 걔 명의로 빌린 거. 다만 얼마라도 모았으니까 얼굴 들이밀었을 거 아냐.’
그 말에 김승주는 자신이 이렇게 맞고 있는 이유가 빚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빚 때문에 회사에서 일을 많이 줬다든지, 백이서가 그에게 손을 벌렸다든지, 아무튼 차계원에게까지 곤란한 일이 생겨서 저렇게 나오는 거라고.
그래서 아픈 것도 잊고 더 열심히 빌었다. 수중에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지만 일단 살아남으려면 거짓말이라도 해야 했다.
‘갚, 갚겠습니다. 다 모았어요! 다 모아서 온 겁니다! 진짜예요.’
‘갚는다고?’
그러나 김승주의 희망과 다르게 차계원의 얼굴은 냉랭하게 가라앉았다.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무감각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봤다. 그 칼날처럼 싸늘한 기운에 턱이 달달 떨려, 김승주는 필사적으로 매달렸었다.
‘네. 네, 네! 바로 갚겠습니다. 내일도 갚을 수 있어요.’
‘안 되지.’
그리고 기억이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새벽이었고, 여전히 모텔 방바닥이었다.
* * *
“형. 우선 병원부터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고. 내 입장은 전달했으니까…….”
“차계원이 이렇게 만들었어!”
내리려는 이서에게 그가 발악처럼 소리쳤다.
“뭐?”
“그 새끼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 미친 새끼가! 날 어제 죽도록 팼다고!”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본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마지막 말을 할 때의 그 싸하고 냉소적인 눈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를 않았다. 얼마나 강하게 인식됐는지 눈을 감아도 떠올랐다.
“차계원이 왜. 그 사람이 형을 왜 때려.”
이서가 나가려던 움직임을 뚝 멈추고 멍하니 묻는다. 어제 차계원이 왜 나갔더라. 산책. 산책이라 했는데.
자신이 집에 온 건 5시였다. 차계원이 들어온 건 9시가 넘어서였고.
“이서 너, 너 지금 내 말 못 믿는 거야? 내 말이 안 믿겨? 그래. 내가 너한테 사업하자고 바람 넣고, 거짓말도 하고, 빚도 네 앞으로 냈어! 근데! 근데 이건 진짜라고! 내가 너한테 거짓말 많이 하긴 했지만, 이건 진짜라고!”
김승주가 답답한지 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안 믿기냐니.
“아니, 믿겨.”
믿긴다. 너무 믿겨서 문제였다. 누군가를 이렇게 패놓고 천연덕스러울 수 있는 사람이 차계원이 말고 누가 더 있을까.
“근데 왜? 그 사람이 왜 형을 때려? 게다가 형을 어떻게 알고…….”
“몰라 씨발! 난 그냥 맞기만 했다고! 빚 갚겠다고 하니까 더 때렸다니까!”
“아…….”
순간 정말 말도 안 되게도 로비 데스크 여직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단아하고 선량한 얼굴. 김승주가 찾아온 날에도 그 얼굴과 눈이 마주쳤었다.
방문하는 사람도 몇 없는 회사에 데스크 직원이 필요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차계원이 뭐라고 대답했더라.
“이서야, 나. 차계원 신고할 수도 있는데 안 했어. 너한테 피해 갈까 봐. 기사라도 나면 그거 수습하는 거 너니까. 일부러 안 했어.”
김승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서의 손을 다급하게 부여잡는다. 그의 눈에는 이미 초점이 없었다.
“너 걱정돼서 여기 먼저 달려온 거야. 그 새끼, 미친 새끼야. 정상 아니야.”
“달려오면, 나한테 달려오면……. 그러면 어떻게 하자고?”
데스크 직원과 차계원이 사사로운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거라면 이서가 아직 회사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거다.
띠링. 띠링.
그때 이서의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침묵이 흐르는 차 안에 단조로운 벨소리와 공포로 뒤덮인 김승주의 숨소리만 울렸다. 이윽고 벨 소리가 끊기고 문자가 들어왔다.
[뭐 해요?]
문자를 확인하는 이서 옆에서 같이 내용을 읽은 김승주가 이서의 팔을 세게 잡는다.
“도망가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