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허엉, 허윽……. 흐읏……. 우응!”
음산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이서가 울먹이며 신음했다. 계원이 그 흐물거리는 몸을 안아 유두를 지분거렸다.
“읏! 흐읏.”
“후.”
계원이 밭게 움직이며 성기로 이서의 내부를 긁었다. 게게 풀어진 뜨끈뜨끈한 몸뚱이가 제 좆을 조여 물고 있었다.
“하앙, 놔, 놔줘……. 놔줘……. 흐윽.”
이서가 아까부터 제 성기를 꽉 쥐고 놔줄 생각이 없는 계원의 한쪽 손을 떼어내려 용을 썼다. 그러나 계원은 질 나쁜 미소만 지으며 허리 짓의 속도를 높였다.
* * *
삑. 삑.
이서가 대표실의 에어컨 온도를 낮춘다. 아직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초입에 걸쳐 있지만, 낮에는 날이 꽤 무더웠다. 이서는 더위도, 습한 것도 잘 견디지 못했다. 여름만 되면 그 눅눅한 공기에 숨부터 막히고, 몸이 축축 쳐졌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어떨지 벌써 막막했다.
“15주년이요?”
내릴 수 있는 데까지 내려간 온도를 확인한 이서가 물었다. 건은 챙겨 온 셔츠를 걸쳐 입고 있었다. 밝은 색 체크무늬 셔츠가 그와 잘 어울렸다.
“네. 올해 가을이 계원이 데뷔한 지 딱 15주년이거든요. 팬들이 선물이다, 전광판 행사다, 하도 많이 준비해서 팬 사인회라도 기획할까 싶어서요.”
건의 목소리가 발랄했다. 이서는 타 연예인들의 팬 사인회를 떠올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원 씨가……. 그걸 할까요?”
자신이 알기로 차계원은 데뷔 이례 팬 미팅 팬 사인회 같은 건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는 딱히 팬을 챙기지도 않았고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아니요. 계원이 그런데 관심 없잖아요. 소란스러운 것도 싫어하고.”
건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이서는 목 부근의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온도를 내렸는데도 후덥지근했다.
“그럼 안 하는 게 낫지 않아요? 말실수라도 하면 어떡해요.”
팬들을 깔보는 차계원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온갖 커뮤니티에 돌아다니고도 남을 만한 장면이 될 거다.
“에이, 계원이 그 정도로 멋대로인 애는 아니에요.”
“…….”
이서가 진심이냐고 묻는 듯한 얼굴로 건을 응시했다. 건이 어색하게 그 시선을 피했다.
“팬들이 아쉬워해서요. 계원이야 팬들 눈치 볼 인물은 아니지만 한 번쯤 이런 이벤트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고요.”
“좋기야 하겠지만…….”
“인터뷰도 잘 안 하고 어쩌다 하는 영화 시사회에서도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고 끝내는 놈이잖아요.”
차계원은 의도치 않게 신비주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사생활도 공개된 부분이 거의 없고, 행사 같은 것도 하지 않아 팬들이 붙인 수식어였다. 시상식조차 본인이 안 올라가고 대리인을 보낸 적이 수두룩할 정도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계원 씨가 싫다고 할 거 같은데요.”
이서가 걱정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 듣기도 전에 싫다고 할 것이다.
“저, 그래서 말인데요, 대표님.”
건이 갑자기 몸을 숙이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네?”
“대표님이 부탁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건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서는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바쁜 척을 했다. 어울리지 않게 빠른 몸놀림이었다.
“아이, 대표님. 제가 말하면 욕만 듣는단 말이에요!”
이서 옆에 따라붙은 건이 팔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저는 욕만 안 들어요.”
그러나 단호한 어조의 이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책상만 봤다. 몇 번 차계원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다. 물론 그는 그때마다 이서의 부탁을 들어줬다. 거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집요하고 변태 같아서 그렇지.
“아아, 대표니임. 제발요. 저는 무서워서 말도 못 꺼내겠단 말이에요. 저 진짜 하도 구박받아서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둘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서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가 없으면 누가 차계원의 매니저 자리를 맡으려고 할까.
“제가 얼마나 속상하면 그 힘들게 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태우겠어요. 제가 사실 아주 서러움을 잘 탄다고요! 엄청! 많이!”
발을 동동 구르며 찡얼거리는 그에게 마음이 약해진 이서가 힐긋 시선을 보낸다. 건이 그 틈을 타 품에서 전자 담배까지 꺼내 보여 줬다.
“건이 씨 마음은 이해하는데요. 제가 부탁한다고 들어줄지도 모르겠고요…….”
이서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늘였다.
“선물이라도 안겨 주면 되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잖아요. 선물 주는 사람 부탁을 거절하겠어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파악한 건이, 흔들리는 이서를 밀어붙였다. 차계원이야 웃는 얼굴에 가래침도 뱉을 놈이지만 사실 관계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갑자기 선물을 주는 것도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이서가 아리송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계원이 데뷔 15주년이라고요. 대표님이 그거 기념해서 선물하시면 되죠!”
“데뷔 15주년 선물이요?”
“네!”
건이 이거라는 듯 고개를 쉴 새 없이 끄덕였다. 그러나 이서는 곤란한 얼굴로 손만 만지작거렸다. 차계원에게 뭘 준다는 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는 이미 웬만한 건 다 가지고 있었고, 애초에 그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들었다.
“저, 그게요. 그러니까…….”
이서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쯤, 대표실 문이 노크도 없이 열리고 차계원이 들어왔다.
“뭐 해요?”
그는 들어오자마자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불만 어린 시선을 보내고, 넓은 보폭으로 걸어와 둘을 떼어냈다. 그리고 탐탁지 않은 시선을 한 채 건을 위아래로 훑었다.
“……나 손 씻었어.”
마치 자신이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대표님한테서 떼어내는 차계원을 보며, 건이 서럽다는 듯 중얼거린다. 대표님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얼마나 세게 쳐냈는지 손등이 붉게 부어올랐다.
‘이참에 이거 핑계로 나이롱 환자 행세하고 드러누워? 산재 처리 할 거다, 나쁜 놈.’
건이 속으로 음험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둘이 너무 친한 거 아니에요?”
역시나 오늘도 건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계원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놨다.
“야, 사이좋게 지내면 좋지. 그럼, 같은 회사 식구끼리 데면데면하랴?”
건이 바락 소리쳤다. 그런 건의 앞에 다가선 차계원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네. 데면데면하게 지내세요. 둘이 무슨 친구라도 돼요? 단순 비즈니스 관계면서 스킨십이 과하네요. 여기가 헐리웃인가?”
“……저 담배 피우고 올게요.”
팔 한번 잡았다가 신랄한 비난을 한 몸에 받은 건은 체념한 듯 고개를 흔들고 털레털레 대표실을 걸어 나갔다.
“어, 건 씨.”
이서가 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차계원에 의해 그 손이 거두어졌다.
“건 씨 힘들게 담배 끊었었다고 했는데…….”
이서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린다. 차계원의 눈매가 휙 치켜 올라갔다.
“알게 뭐예요. 폐암 걸려 죽든 말든. 저 인간 앞으로 보험이라도 들어 놨어요? 뭘 그렇게 걱정해 줘요?”
“그냥, 같은 회사 식구니까. 너는 담배 같은 거 안 피워?”
차계원의 비난이 건에게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걸 느낀 이서가 얼른 화재를 바꾸었다.
“담배 냄새 싫어하지 않아요?”
차계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 걸 말한 적이 있었나. 하기는 차계원이 언제는 자신이 알려 준 것만 알고 있었나. 그라면 아마 이서의 가족 이름부터 사돈의 팔촌까지 다 꿰고 있을 것이다.
“응, 별로 안 좋아해. 밥이나 먹으러 갈래?”
이서가 대수롭지 않게 털어 버리며 물었다. 원래는 건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가 버렸으니 계원밖에 없었다.
“그래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사르르 웃으며 앞장서는 계원을 보며, 이서는 혀를 내두르고 뒤따랐다.
* * *
차계원의 집 거실에는 오랜만에 적막만이 흘렀다. 이서는 단호한 차계원을 보면서도 한 번 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적막을 깼다.
“나, 안 갈래…….”
“대표님이 간다고 했었어요.”
차계원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억울한 듯 이서의 눈썹이 팔자로 죽 내려갔다.
이 모든 건 바로 여름에 촬영을 앞둔 영화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촬영은 스페인의 항구 도시 말라가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마드리드, 세비야 등 거론된 도시는 많았으나 촬영이 미뤄지고 장소를 섭외하는 단계에서 말라가가 가장 적합하다고 의견이 모였기 때문이다.
제작사의 결정을 듣고 이서는 기대감에 들떴었다. 김건은 이서가 스페인에 갈 생각에 들떴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이서는 스페인에서 보내는 휴가보다 더 갖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자유였다.
차계원이 촬영을 위해 스페인으로 떠나면 근 한 달 넘는 자유가 생긴다. 이서가 이렇게 자유에 목매게 된 원인은 바로 차계원이었다.
이서가 이 집으로 들어온 후로 차계원은 운동할 때와 피치 못할 스케줄이 있을 때를 빼면 집에만 붙어 있었다. 문제는 그가 이서 또한 그러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