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사이코패시(2)(2권) (3/22)

2. 사이코패시(2)

재영은 병원 로비에 앉아 3분 넘게 주치의를 기다렸다. “씨발. 이럴 거면 예약은 왜 하는 거야.” 재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낮게 읊조렸다. 재영은 어릴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의 주치의를 만나는 게 싫었다. 의미 없고 소득 없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에도 주체할 수 없는 짜증이 났다.

너무 크게 웃거나 인상을 찌푸리거나 슬퍼하는 등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지 말 것.

손동작을 크고 다양하게 하지 말 것.

문장의 주어와 술어, 목적어와 술어를 반드시 맞출 것.

앞뒤 다른 말을 하지 말 것.

질문에는 감정이 든 단어로 답할 것.

“좆같네.”

재영은 아직도 가끔 주치의가 하는 질문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특히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제에선 중학교 입학 때까지도 애를 먹었다. 점차 학습을 통해 옳고 그름, 법으로 지켜야 할 것을 암기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선 ‘왜?’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사이코패시 평가표의 점수는 점차 낮아지는데도 주치의는 절대 재영의 평가서에 ‘호전’이라는 글자를 적어주지 않았다. 약물의 수와 양은 처음 처방 받았을 때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아직도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윤 비서가 다가와 편의점에서 산 물을 내밀었다. 재영은 “고마워.”라는 말을 하고 윤 비서의 머리를 쓸었다.

“차로 돌아가 있으세요. 여기 싫어하잖아.”

“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련님.”

윤 비서가 복도를 돌아 사라졌다. 재영은 침실에서 사라진 CCTV를 처음으로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CCTV라도 있었다면 지금 호정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웠다. 그러다 문득 다훈이 별채에 CCTV를 설치한 이유와 지금 자신이 CCTV를 통해 호정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호정을 향한 이 마음이 내리사랑처럼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재영이 홀로 웃음을 터뜨렸다.

말 같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말로 만들면 될 일이었다. 영국에 가게 되면 호정의 집에 가장 먼저 CCTV부터 설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리사랑이란 대단한 것이라고 배웠으니, 그쯤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병원에 도착한 후로 줄곧 좋지 않았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윤 비서가 주고 간 물을 입안에 머금었다. 입에서 굴리던 물을 삼키고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재영?”

상담실에서 고개를 내민 주치의가 재영의 이름을 불렀다. 재영은 부드러운 미소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편안해 보이는데요?”

주치의가 반가운 기색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겉은 반가운 척을 하지만 속으로는 재영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중일 테다. 재영은 가까스로 입꼬리를 올렸다.

“선생님은 뭔가 더 젊어지신 거 같은데요?”

재영의 손에 쥐어져 있던 물병이 살짝 구겨졌다. 재영은 주치의를 따라 상담실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로는 다시 그의 앞에서 지켜야 하는 사항들을 상기했다. 너무 크게 웃거나 인상을 찌푸리거나 슬퍼하는 등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지 말 것. 손동작을 크고 다양하게 하지 말 것. 말의 주어와 술어, 목적어와 술어를 반드시 맞출 것. 앞뒤 다른 말을 하지 말 것. 질문에는 감정이 든 단어로 답할…….

하지만, 이딴 것들을 왜 지켜야 하지? 재영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고개를 살포시 저으며 다시 주치의의 뒤를 따랐다.

“선생님.”

생각을 멈춘 재영이 주치의를 불렀다.

“네?”

주치의는 컴퓨터 화면을 보던 눈을 돌려 재영을 응시했다. 부드럽게 웃는 얼굴 이면에는 재영에 대한 의심과 확신이 여전히 있었다.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였지만, 사이코패스들을 대할 땐 늘 공존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에 대한 의심과 환자의 병에 대한 확신. 재영은 중학교 때 읽었던 그의 저서에 쓰인 문장들을 머리에 그리며 미소 지었다.

“저 영국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한 거, 들으셨어요?”

“영국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했군요. 아버님이 최근에 오시긴 했는데, 그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의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의자에 앉은 재영이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폰 화면을 보였다.

“여기예요. 예쁘죠? 전경이 아름답대요. 봄에는 꽃도 많이 피고.”

의사는 곧 “그런가요?” 하며 재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재영 씨는 꽃 좋아하세요? 이 학교에 꽃이 피면 어떨 거 같아요?”

재영은 허벅지 위에 오른손을 올렸다. 의사가 원하는 답. 그건 양심 있는 정상인, 호정이 하려는 답과도 같을 것이다. 재영은 자신이 나올 때까지 깊게 잠들어 있던 호정을 떠올렸다.

“예쁠 거 같아요.”

…너무 크게 웃거나 인상을 찌푸리거나 슬퍼하는 등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지 말 것. 손동작을 크고 다양하게 하지 말 것. 말의 주어와 술어, 목적어와 술어를 반드시 맞출 것. 앞뒤 다른 말을 하지 말 것.

그리고. 질문에는 감정이 든 단어로 반드시 답할 것.

“기분이 좋을 거 같은데요?”

“그래요?”

“네. 예쁜 걸 보면 기분이 좋잖아요. 누구나.”

주치의는 잠시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는 재영의 말에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더 영악하고 정교한 악귀가 되었다고 차트에 써넣을지도. 재영은 잠시 주치의의 다음 답을 기다렸다. 주치의는 아무런 말없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무래도 영국에 가게 되면, 자주 못 오니까요. 약을 좀 많이 처방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런던 캔덤 근처의 병원을 추천해주시면 제가 혼자라도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요즘 약을 먹으면 심장이 느려지는 기분이거든요. 하루에 열 시간이 넘게 자기도 하고, 속도 좀 메스꺼워지고요.”

재영은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잔잔하게 웃었다. 의사는 잠시 망설일 것이다. 이런 반응을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니까. 재영은 허벅지에 올린 손으로 천천히 초를 셌다.

“직접 토를 한 적도, 있어요?”

“네. 두 번 정도. 지난주부터요.”

“먹은 직후?”

“아니요.”

재영은 머릿속으로 장례식장에서 호정이 약을 먹은 후 토했던 시간을 되감았다.

“15분 정도 지났나?”

재영은 갑자기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밥 먹고, 약 먹고 막 일어나려는데 처음엔 다리만 좀 후들거리는 거 같더니, 속이 뒤집히더라고요. 그대로 다 토하고. 일단 바로 다시 약을 챙겨 먹긴 했는데, 괜찮겠죠, 선생님?”

“혹시 토하고 나서 본인 토한 거는 보셨나요?”

“네. 좀 정신없긴 했지만.”

재영은 마치 속을 비워내던 그때가 생각난 것처럼 목이 따가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구토물 색이 어땠죠?”

재영은 잠시 망설였다. 호정이 화장실로 가고 이서정이 같이 나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따라가긴 했지만, 변기 안쪽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호정은 그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로 왔고, 민재의 상 때문에 입맛도 없어 보였다. 깨작대며 고기 두 조각만 먹은 게 다였다.

“흰색이었던가? 위액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네요. 뚜껑을 닫고 바로 물을 내려서.”

재영은 주치의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입술이 비틀렸다.

“식사하고 약 드시고 15분… 정도.”

주치의는 중얼대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구시렁거렸다. 재영이 들으라는 의도였다. 재영은 자신의 답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비틀렸던 입술을 풀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났다.

“그러네요. 위액이 쏟아질 정도는 아니었겠군요.”

재영이 입안에서 혀를 굴리며 미소 지었다.

“네. 재영 씨한테 처방한 약은 위액과 만나면 바로 점액질로 녹기 때문에 색도 없죠.”

“그렇군요.”

“물에 바로 녹였을 때만 흰색이죠.”

재영은 자신의 허벅지 위에서 놀던 손을 떼어냈다. 주치의를 보던 올곧던 시선 또한 벽의 창문으로 옮겼다. 창틈으로 스민 해가 밝았다. 비 온 다음 날이라 평소보다 더 날이 좋았다. 날이 좋으면 인간들은 보통 좋은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본채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엄마가 별채 사이의 정원까지 나오기도 하니까. 뉴스조차 봄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쏟아진 인파의 번잡함과 햇살의 따사로움이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찬양하기 바빠지니까.

재영은 자신의 속눈썹을 파고드는 미세한 햇살에 눈을 찌푸렸다.

“씨발…….”

재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 주치의가 앉은 의자 뒤 창가로 걸어갔다. 반쯤 열려있던 커튼을 거칠게 쳐 해를 가렸다.

“죄송해요. 여기 해가 너무 눈 부셔서요.”

커튼을 닫고 나서야 비로소 시리던 눈이 편안해졌다. 조명 아래 어둑하고 노란빛의 상담실을 둘러보았다. 재영은 창가에 반쯤 기대앉았다. 모니터에 재영의 기록을 쓰는 주치의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는 건 흥미롭지 않았지만 그리 지겹지도 않았다.

“약은 더 드시기 싫으신 듯하니 지금보다 더 줄여드리겠습니다.”

재영은 답하지 않았다. 주치의 또한 아무런 변화 없이 타자를 두드렸다. 재영은 오늘 같은 순간을 위해 의학 용어를 외워두고 있었다. 주치의는 재영의 이름 아래 ‘Manipulative behavior’를 기입하고 있었다. 방금 전 재영의 행동이 자신의 행동을 조작해 타인을 속이는 정신병이라는 의미였다. 재영의 미간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 재영은 팔짱 낀 채 주치의의 뒤통수로 시선을 옮겼다.

“제가 선생님을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이런 약은 이제 재영 씨에게는 소용없다는 확신이 드네요.”

“하아… 씨발. 애초에 날 믿은 적도 없지 않아요?”

재영은 주치의의 뒤로 가까이 다가갔다. 팔을 길게 뻗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주치의의 팔꿈치 옆에 손바닥을 댔다. 주치의가 재영의 품에 모두 들어왔다. 타자를 두드리던 주치의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재영을 바라보는 눈길이 단호했다.

“한재…….”

“내가 본 사이코패스 중 가장 어렸던 아이 A는 다행히 영리한 부모를 만나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이코패시 약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아직도 그 아이를 만난 첫날을 기억하는데, 내가 기억하고자 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영악함과 무자비함이 나를 경악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어린아이는 가끔 모질기도 하고 생명에 극악한 면을 보이기도 하며 바닥을 기는 개미의 목을 무자비하게 자르기도 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아이들의 이런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결코 사이코패스 진단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수차례 면담을 거치고 수십 번의 상담을 한 후에야 비로소 진단을 내리는데 대부분. 아니, 거의 대다수의 아이는 일부 미세한 정신적인 질환들 중 하나를 겪고 있을 뿐, 절대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달랐다. A는 자신의 어머니 손바닥을 찔렀고, 왜 손바닥을 찔렀냐는 내 물음에 손바닥을 찌를 생각은 없었노라고, 손가락을 자르려다 엄마가 반항하는 바람에 실수로 그녀의 손바닥을 찌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보편적인 사이코패스들의 화법이자 기본적인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들에게 실수의 원인은 죄 없는 엄마를 공격한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합리적인 공격에 반항해 목표로 둔 부위가 아닌 다른 부위를 다친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다. A는 단 한 번의 상담으로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았다. 누군가는 내게 물을 것이다. 고작 10살인 아이에게 그런 진단을 내려도 되는 것이냐고. 그 진단이 오진일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그 아이는 절대 나을 수 없다. 내게는 그 아이의 비정상적인 뇌만이 진실이고 정답이자 확신이다.”

“…재영 씨.”

“왜요? 책에선 주절주절 제 이야기를 잘 써놓으셨던데요?”

주치의의 손이 키보드에서 떨어졌다. 주치의는 자신의 두 손을 말아쥐고 이마를 받쳤다. 재영은 그의 팔꿈치 옆에서 책상을 짚고 있던 손을 들어 키보드 위에 얹었다. 유려한 손가락이 주치의의 손이 떠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왜 제 이야기를 책에 쓰셨어요? 허락도 안 받고.”

모니터의 화면에 재영이 쓴 글자가 드러났다. ‘Aggressive behavior’.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 이상 행동. 주치의가 표정을 굳혔다.

“한재영 씨.”

“나는 아직도 내가 엄마의 그 망할 손가락을 자르지 못한 게 존나 이해가 안 되거든요? 근데 그게 당신들이 사는 이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용인이 안 되는 행위라면서요. 도덕적으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당신 같은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잖아요. 못 하고 있잖아. 잘 참고 있잖아요.”

말을 하면서도 재영의 손가락은 쉴 새 없이 타자를 두드렸다. 주치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재영이 두드리는 글자들을 노려보았다. ‘Antisocial behavior’, ‘Apathy’, ‘Conflict’. 수많은 병증이 모니터를 채우기 시작했다.

“‘Schizophrenia’도 추가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분열적 자아가 맞는 거 같은데. 또 뭐 추가할 거 있으면 다 해요. 사람 피 말리듯이 하나하나 찔끔대며 쥐여주지 말고 처방할 수 있는 거 한 번에 다 줘봐요. 그러고 싶잖아. 당신한테 나는 실험쥐잖아요. 그죠? 선생님. 우리 솔직해지죠. 지금도 저만 보면 실험하고 싶잖아요. 어떻게 해야 그 어린 나이에 고양이 목을 자르고, 병아리 다리를 잘라낼 수 있는 악마가 되는지. 어떤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으로 이런 악마가 태어나는지. 내 뇌라도 쪼개서 보고 싶잖아요. 당신.”

“한재영 씨. 진정하세요. 지금 재영 씨는 극도로 불안한 상태…….”

“아, 그러네요. 추가할 필요가 없겠네요.”

재영은 좀 전 자신이 쓴 모니터의 모든 글자를 마우스를 움직여 한 번에 지웠다. 주치의를 감싸고 있던 몸을 일으키고 잠시 빈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사이코패스. 당신한테 나는 그거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새끼일 테니까.”

“진정하세요. 우선 입원을 해서…….”

“하, 저 두 번 말하는 거 굉장히 싫어하는데.”

재영은 입술을 깨물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고 입에 문 담배를 진득하게 빨아당겼다. 뽀얀 연기가 금세 상담실을 채우며 올랐다. 실내에선 금연이라고 배웠다. 그게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맞는다는 것도 알았다. 인간들은 인간들끼리 부대끼며 살아가기 위해 그에 맞는 협의와 법규를 정했고 그 시답잖은 약속들을 지키며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도 알았다. 재영은 다시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바닥으로 재가 떨어졌다. 재영은 반쯤 피운 담배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러니까 그런 건 말 그대로 시답잖고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나 지킨다는 의미잖아.

재영은 고개를 살짝 틀어 주치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려 10년이었다. 10년이면 좀 믿어줄 만도 했다. 이 정도로 자신이 배려를 했으면 저쪽도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해줬어야 옳았다. 주치의는 적어도 자신을 믿어주는 연기라도 했어야 했다. 재영은 그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금일 상담내용은 모두 지우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재영 씨. 저는 시급히 입원하시길 권유 드립니다.”

“책에 내 허락 없이 이야기 쓴 게 걸릴까 봐는 아니고요?”

재영은 비릿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던진 잔불이 남은 담배를 구두로 지져 마저 껐다. 담배가 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재영은 상담실을 나왔다. 오랜만에 주체하지 못하고 화를 냈더니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원무과 앞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불규칙한 호흡부터 가다듬어야 했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재영은 이마를 꾹 누른 채로 호정을 떠올렸다. 집에서 자신과 같은 향을 두르고 이 세상에 오직 자신의 집에만 있는 잠옷을 입고 있을 호정을.

“후우…….”

호정을 떠올리자 편두통이 조금씩 멎어 들고 호흡도 제 박자로 천천히 돌아왔다. 재영은 당장이라도 호정의 목에 코를 박고 그의 살 냄새를 맡고 싶어졌다. 이를 세워 야금야금 깨물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때의 그 피 맛이 나려나. 아니 조금 더 달콤하고 쌉싸름하게 혀를 감쌀 수도. 재영은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젖혔다. 어지럽던 머리가 점차 진정되며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서 재영을 기다리던 윤 비서는 재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황급히 다가와 안색을 살폈다. 재영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윤 비서는 본능적으로 그가 오늘 병원에서 좋지 못한 일을 겪었음을 깨달았다. 시선을 내려 재영의 손에 들린 약 봉투를 보았다. 윤 비서는 잠시 망설이다, 그를 기분 좋게 할 것을 생각보다 더 빨리 건네기로 했다. 윤 비서는 품에 넣어두었던 폰을 꺼내 재영에게 내밀었다. 재영이 의아한 눈으로 윤 비서를 올려보았다.

“도련님 이야기하시는 동안 이호정 님 이전 폰 잠금 풀어놓았습니다. 병원 가까이에 업체가 있어서요.”

“와…….”

재영이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따뜻한 눈길로 윤 비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윤 비서님 덕에 기분이 좀 나아지네요.”

윤 비서는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그건 반대로 그를 기분 나쁘게 하는 건 뭐든 제거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강에 들렀다 집에 가셔도 됩니다.”

“네. 좋은 생각이네요.”

윤 비서는 재영을 집이 아닌 강변으로 먼저 안내했다. 재영은 강변에 서서 물에 약을 던져 보내는 윤 비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 비서는 자신보다 더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재영 본인은 지어낸 표정을 보일 때도 있었고 이따금 정말 웃음이 나와 웃거나 기분이 나빠 찌푸릴 때도 있었지만, 윤 비서는 그런 자신보다도 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재영은 차에 살짝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윤 비서님.”

“네. 도련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왜 태어난 걸까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불편하다는데.”

“네?”

윤 비서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재영을 쳐다보았다. 윤 비서는 수면 위로 천천히 떨어뜨리던 약을 꽉 쥐었다. 그는 잠시 재영이 한 말을 되감았다. 이내 다시 강물에 약을 버리다가 다시 멈추고 재영의 말을 곱씹었다. 아무리 곱씹고 되감아도 좀체 이해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저희를 불편해한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아.”

재영은 피식 웃고 윤 비서의 옆으로 다가갔다. 윤 비서의 손에 들려 있던 약을 가져와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강에 뿌렸다. 약은 강 수면의 작은 파동을 만들었지만, 강의 전체 흐름까지는 바꾸지 못했다. 미세한 소리를 내며 강의 표면을 유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보다 깊은 내면, 강의 밑바닥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뭍에서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약은 아무것도, 이 강 어느 곳에 스며도 강 본연의 무엇 하나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강의 파동도 흐름도 강이 본디 태어난 그 형태와 속도도 모두 그대로 흘러갈 테니까.

“도련님이 저를 불편해하신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 해서 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게 왜 중요한지, 왜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재영은 윤 비서를 보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기특한 답이었다.

“또, 불편하다는 건 사람들에게 저나 도련님이 편한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이니 긍정적인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네요.”

손에 있던 모든 약이 한 번에 풍덩 소리를 내며 강에 처박혔다. 소리는 곧 강물 소리에 묻혀 아스라이 사라졌다. 10년 동안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주치의의 눈에는 본인의 그런 노력도 영악하고 추악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재영에겐 매일매일이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이제는 더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다.

학술에 게재된 논문을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건 재영에겐 독이었다. 재영은 주치의가 게재한 모든 논문과 발간한 책 전부를 읽었다. 그중 자신을 사례로 한 논문이 열다섯 편이나 되었다. 당연히 재영은 자신과 관련된 논문을 모두 암기했다. 단 한 번 읽었을 뿐인데 도무지 잊히지 않은 것도 많았다. 논문은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면 제각각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엔 하나의 결론을 맺고 있었다. 사이코패스로 이미 결정 난 인간의 경우 그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가 쓴 논문 중 하나는 사이코패스를 전기 치료로 호전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연구였다. 사이코패스 발병 원인을 뇌에서 찾는 그였으니 전기 치료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 논문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윤 비서였다. 주치의는 그 실험이 불법인 건 들키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윤 비서의 사례 앞에 외국 사례라는 거짓을 명시하고 있었다.

재영은 이따금 눈앞의 윤 비서와 주치의가 쓴 논문 속 J로 등장하는 윤지후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재영은 턱을 쓸며 천천히 윤 비서의 행동을 관찰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을 아끼고 우선으로 여기는 이기심과 타인을 존중하는 이타심을 적정한 비율로 나눠 가진다고 한다. 그 비율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기준은 이 이타심의 유무이지 비율이 아니니까. 주치의의 논문에 의하면 이러한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사이코패스는 모든 중심이 본인이라고 했다. 모든 선택의 기준이 본인이라는 것.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본인뿐이라는 것. 그들에게 타자의 감정이라는 건 없다. 그는 이걸 명백한 사실이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논문에서 주치의는 J를 완벽한 실패사례라고 명하고 있었다. 전기 치료로 본인을 잃은 사이코패스는 그 이기심의 자리에 이타심을 밀어 넣지 않았다. 그는 이기심의 자리에 앉아있었던 본래 주인, 즉 본인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이기심을 발현할 다른 주인을 넣었다. 이타심의 자리는 사이코패스들에겐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윤 비서의 경우엔 그 주인의 자리가 재영으로 바뀌었다. 재영은 이따금 자신의 뇌와 윤 비서의 뇌에 한재영의 자리만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만족해했다. 지금도 윤 비서는 오직 재영의 기분만 생각하며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윤 비서님.”

“네.”

“난 내가 싫지 않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윤 비서의 입이 조금 비틀리는가 싶더니 곧 본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비가 내리려는지 강의 습한 기운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재영은 윤 비서의 비틀린 볼을 콕콕 장난스럽게 눌렀다.

“갈까요?”

“네. 냄새가 너무 역해서 아무나 죽이고 싶던 차였습니다.”

재영이 피식 웃었다. 재영을 웃게 하기 위한 윤 비서 나름의 농담이었을 것이다.

“가죠. 아, 호정이는 지금 뭐하고 있죠?”

“본관에서 사모님과 식사 중입니다.”

“엄마가 왜 갑자기 오늘 돌아왔지?”

“도련님 옷을 사서 돌아오셨답니다. 도련님 유학 준비를 본인이 조금이라도 돕고자 하십니다.”

윤 비서는 재영의 손에서 구겨진 약 봉투를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힘이 바짝 들어간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윤 비서는 재영의 손에서 가져온 약 봉투를 자신의 재킷 안주머니로 옮겼다.

“호정이한테 헛소리는 안 하겠죠?”

“못하실 겁니다.”

“내가 윤 비서 빼고는… 진짜 믿을 만한 인간이 하나도 없어서 그래요.”

윤 비서는 고개를 숙였다.

“한 번이라도 내게 속아주었다면, 한 번이라도 그간의 내 노력을 이해해줬다면 나도 마무리를 잘 했을 거예요.”

“유중석 박사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뇨. 그 사람은 건드리면 안 돼요.”

윤 비서의 고개가 틀어졌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윤 비서의 모습에 재영이 다시 윤 비서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우리 같은 놈들이 자기 죽일까 봐 정상인인 척 사는 사이코패스들 논문만 그렇게 주야장천 써댄 거예요, 그 새끼는. 의아하게 죽는 순간 유중석 박사에게 상담받은 모든 사이코패스들을 조사할 겁니다. 물론 내가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것도 세상에 드러날 거고.”

“죄송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뭐, 나중에 내 생각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윤 비서는 재영의 말을 모두 이해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의 기분이 여전히 좋지 않다는 건 알았다. 윤 비서는 그저 재영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빨리 나아지길 바랐다. 자신의 주인이 가지고 싶어 하는 건 모두 가지길 바랐다.

“도련님.”

“…네.”

“이호정 씨는 도련님이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건은 어젯밤에 해결되었으니까요.”

“알아요. 일 마무리되면 영국으로 가버릴 거니까.”

윤 비서는 주머니에서 목캔디 하나를 꺼내 재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재영이 피식 웃은 뒤 입에 캔디를 넣었다.

“영국 이전에요. 제가 준비한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분,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으시잖아요. 떨어져 있기도 싫으시고요.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윤 비서의 얼굴을 보던 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에 물고 있던 목캔디가 으깨지며 알싸한 맛이 입안을 감쌌다. 목을 넘어가는 시원함과 칼칼함에 분노로 굳어있던 재영의 머리가 점차 유연하게 풀어졌다. 그제야 재영은 윤 비서의 속뜻을 이해했다. 떨어져 있기 싫은…….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하, 맞네요. 그 학교 애들이 거의 다 그랬어서… 호정이는 아니라는 걸 생각 못 했네.”

재영이 픽 웃더니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재영의 호탕한 웃음에 윤 비서의 표정도 마침내 풀어졌다. 재영은 자신의 손목을 느리게 풀었다. 굳어있던 목도, 흐릿하던 눈도 끔벅거려 보았다. 병원을 나온 후로 줄곧 갑갑했던 기분이 확실히 나아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재영은 말없이 호정의 이전 폰을 구경했다. 앨범에는 민재가 앞에서 폰을 들고 뒤에 앉은 호정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대다수였다. 재영은 화면 뒤로 보이는 호정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뭐가 그렇게 행복했어?”

재영은 웃고 있는 호정의 볼을 꾹 눌러보았다. 호정의 올라간 입꼬리를 따라 손가락을 그었다. 호선을 그리며 옴폭 파인 반원을 보고 또 보았다.

지난밤, 윤 비서는 고속도로 1차선에 고장 난 차를 세우고 잠시 갓길에 서서 담배를 물었다. 폰으로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CCTV를 확인했다. 톨게이트를 지난 트럭이 점차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윤 비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죽이는 거라면 차라리 쉬울 텐데 이번엔 죽여서는 안 됐다. 재영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영은 호정이 자신의 아버지가 죽으면 모든 걸 포기할 거라고 했다. 윤 비서는 그게 도무지 무슨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재영에게 돌아가 칭찬을 받고픈 마음뿐이었다.

예상한 대로 트럭은 1차선에 정차한 차를 보지 못하고 가파르게 미끄러졌다. 검은 장갑을 끼우고 손을 풀었다. 목을 한 바퀴 돌리고 트럭에 다가섰다. 조수석에서 튕겨 나온 남자가 윤 비서를 향해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사… 살려… 주…….”

윤 비서는 입이 찢어지게 하품했다. 새벽인 데다 깊게 자지 못해 졸린 상태였다. 윤 비서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넌 이호정 아빠 아니잖아.”

윤 비서는 피 묻은 남자의 손을 구둣발로 짓이겼다. 윤 비서의 발아래에서 파들파들 떨리던 남자의 손이 곧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영의 명령은 이호정의 아빠를 죽이지 말고 병원으로 이송하라는 것이었으니, 저런 건 죽어도 상관없었다. 윤 비서는 트럭의 반대편으로 다가가며 폰으로 사고 신고를 마쳤다. 놀란 척을 하라는 명대로 말도 두어 번 더듬거렸다. 산소 포화도를 올려주는 알약을 호정의 아빠 입에 한 알 밀어 넣고 장갑을 벗었다. 응급처치를 했으니 호송될 동안은 죽지 않을 것이다. 주머니에 장갑을 넣고 나니 마음이 가뿐해졌다.

“하아… 그나마 새벽 공기가 제일 낫다니까.”

윤 비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목구멍을 넘어갔다. 윤 비서는 주머니에 있던 목캔디를 꺼내 입에 물었다.

호정의 아버지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응급차에 실려 옮겨졌다. 응급차는 재영이 예상한 대로 사고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인 목경대 병원으로 호정의 아빠를 이송했다. 목경대 병원은 재영의 재단 소속 병원이었다. 그곳에 가야 일이 더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다.

재영은 욕실에서 윤 비서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호정의 아빠가 아침에 발작을 일으켰다는 것 빼고는 일이 잘 정리되었다는 문자였다. 재영은 호정의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대로 중환자실로 옮기라는 문자를 윤 비서에게 보냈다. 문자를 전송한 후 재영은 머리를 말리던 것을 멈추고 거울 속 자신을 응시했다.

이게 웃는 걸까, 그럼 슬픈 건? 슬픈 상황도 미리 연습을 좀 해두어야 할 거 같은데. 재영은 드라이기를 쥔 채로 거울 속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노려보는 것에 가까웠다. 자신을 보는 엄마의 그 처참하게 기분 나쁜 표정을 흉내 내야 할까도 생각했다. 어쩌면 그게 슬픈 얼굴일 수도 있을 테니까. 침실에서 호정이 본인 엄마와 통화하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재영은 손에 쥐고 있던 드라이기를 끄고 욕실에서 나갔다.

“엄마… 어디야.”

호정이 불안한 눈을 깜박이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재영은 조금 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상기했다. 호정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조금 더 놀란 척이라도 해야 할까. 재영은 천천히 호정의 앞으로 다가갔다. 바들바들 떨리는 호정의 무릎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호정아. 데려다줄까?”

그게 지옥이든, 천국이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말이야.

호정은 재영을 보던 눈길을 내리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미안. 우리 집까지만 부탁할게.”

재영은 잔잔하게 웃으며 호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재영은 엄마와의 통화 후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자신의 차에 오르는 호정의 모습을 계속 관찰했다. 호정은 불안정한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도무지 눈을 떼기 힘들었다. 호정의 집 아래 차를 댄 후, 떨리는 손으로 가까스로 폰을 쥐는 호정을 느리고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재영은 천천히 자신의 폰을 꺼냈다. 호정의 어머니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자 불안하던 호정의 눈이 마침내 폰이 아닌 자신을 향하게 되었다. 재영은 호정이 좀 전의 그 불안정하던 눈길로 자신을 계속 바라봐주길 기대했다.

“네. 어머니, 저 호정이 친구…….”

-재영… 재영 군 맞죠?

“네. 맞아요.”

호정의 엄마는 통화 상대가 재영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울먹임 가득한 목소리가 귀를 따갑게 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재영은 수화음을 낮추고 잠시 망설였다. 이럴 땐 어떤 반응을 해야 하지,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 보아도 마땅히 배운 적이 없었다. 재영은 묵묵히 추임새 같은 답만 했다. 호정의 엄마는 재영이 이미 아는 이야기를 하며 울먹거렸다.

“네.”

재영은 딱히 다른 답을 할 게 없었다. 통화가 조금 지루해질 때쯤이면 어두운 앞 유리에 비친 호정의 얼굴을 관찰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신만 보고 있는 호정의 얼굴을 보니 지겨운 통화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진짜 염치없는 건 아는데, 재영아…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여기 목경대 병원 응급실인데…….

“네.”

재영은 핸들 위에 손을 올리고 박자를 셌다. 기분 좋은 설렘으로 진지한 표정이 흐트러지기라도 할까 봐 입술을 잘근 씹었다.

-여기가… 그 호정이 고등학교 재단이랑 같다고… 맞지?

“네. 어머니.”

-혹시 도와줄 수… 미안해… 우리 너무 염치없는 거 아는데… 지금 애 아빠가… 호정이 아빠는… 내가, 내가…….

“네. 알겠습니다. 지금 가면 삼십 분 정도 걸릴 거예요.”

호정의 엄마는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재영은 옆자리에서 다급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호정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런 부탁이 그의 엄마 입이 아니라 호정에게서 직접 나온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재영은 자칫 방심해 웃음이라도 흘리게 될까 봐, 그래서 호정의 의심을 사게 될까 숨을 고르고 또 골랐다. 천천히 숨을 가다듬는 사이 호정이 먼저 재영의 팔을 붙들었다.

“엄마. 뭐래? 어디래?”

호정의 물음에 재영은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이런 식의 연기는 차라리 쉬웠다. 난 지금 너를 배려하고 있고,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건 이미 열 살 때부터 혼자 지겹도록 연기해왔던 것이었다.

“가서 네가 직접 듣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래야 네 엄마가 아니라 네가 직접 내게 매달려 부탁하게 될 테니까.

재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핸들을 돌렸다. 얼른 목경대 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온몸에 피를 두르고 병원 베드에 누워 마치 지금 뱉는 숨이 마지막 숨이라도 되는 듯 폐를 들썩대는 아버지의 모습을 호정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선택은 호정의 몫이었다. 재영은 그 정도의 배려는 늘 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호정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일 뿐이었다.

재영은 입에 담배를 물었다. 아무래도 기다림이 길어질 것 같았다. 밤새 호정을 보느라 자지 못한 탓에 졸리기도 했다. 입에 담배를 반쯤 물고 작게 하품하는 사이, 복도를 지나던 병원 직원이 재영의 입에 물린 담배를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왔다.

“여기는 금연 구역…….”

직원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재영의 팔을 붙들었다. 복도 끝에 서 있던 윤 비서가 빠르게 다가와 재영의 팔을 붙든 직원을 밀쳐냈다. 직원은 윤 비서의 거센 힘에 밀려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재영은 한 손을 들고 윤 비서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괜찮으니 뒤로 가 있으라는 의미였다. 바닥에 쓰러진 직원이 재영과 윤 비서를 노려보았다. 재영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문 채로 무릎을 굽혀 앉았다.

“불 안 붙였잖아. 어?”

“…병원은 금연… 구역입니다.”

직원이 목소리를 떨었다.

“알아. 그런 세세한 규칙 너 같은 게 설명 안 해줘도, 이미 다 안다고.”

“네?”

직원이 미간을 좁히며 팔로 바닥을 디뎠다. 재영은 상체를 일으키려는 직원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깊게 숨을 내쉬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옮겼다. 처음 본 사람에겐 존댓말. 낯선 사람에겐 존댓말. 그게 너 같이 평범한 인간들이 정한 규칙이고 예의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설마 그쪽도 이 담배 피워요? 그래서 나한테 이래요? 하나 줄까?”

“당신. 진짜 미쳤어요?”

재영이 웃음을 흘렸다. 흔들리는 눈에 자신의 눈을 고정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건 사실이니까. 너 같이 별거 아닌 인간들도 정상인이라는 범주 안에 들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나를 무시하잖아. 재영은 뒤로 물러 서 있던 윤 비서를 향해 손을 들었다.

“윤 비서. 얘 좀 치워줄래요?”

윤 비서가 다가와 직원의 몸을 일으켰다. 재영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구겼다. 담배도 맛있을 거 같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눈을 굴렸다. 세상에 죽이고 싶은 인간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언제나 괴로운 일이었다. 재영은 가까스로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마셨다.

“한… 한재…….”

호정의 목소리에 재영이 고개를 돌렸다. 호정이 보였다. 재영은 자신이 그토록 꿈꿔왔던 모습으로 선 호정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눈. 자신이 준 옷을 입고 이 세상의 끈이라고는 재영만 남은 채로 덜덜 떠는 불안한 형체. 그 불안함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눈빛과 떨림.

재영은 호정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보다,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급해졌다. 담뱃갑을 바닥에 내던졌다. 재영은 자신을 향해 두 손을 펼친 가련한 호정을 응시했다. 아이처럼 우는 호정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재영을 설레게 했다. 재영은 자신이 호정에게 원하던 모습이 이것이었을까, 생각했다.

“…호정아.”

아니었다. 이것보다 더. 이것보다 더 직접적인 것을 원했다. 재영은 자신의 팔을 붙든 호정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바들바들 힘없이 떨리는 손가락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재영은 당장이라도 호정의 턱을 잡아 눈을 맞추고 싶었다. 발갛게 익었을 그 눈 밑을 진득한 혀로 핥아대고 싶었다. 아작아작 물고 뜯어내고 싶었다.

“우리 아빠 좀 살려줘. 재영아. 나, 나 좀 도와줘.”

호정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재영은 호정의 눈 밑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 아래가 울면 울수록 붉어진다는 게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민재와 찍은 사진을 보니 웃을 때도 이처럼 붉던데.

그렇다면 내 앞에서도 좀 웃어도 될 거 같은데. 아니, 더 울어도 될 거 같은데. 아니, 웃는 게 더 나으려나. 재영은 복잡한 머리를 털어냈다.

“호정아. 나는 네가 왜 우는지 몰라.”

재영은 더 솔직해지고 싶었다. 이미 속에선 정제되지 못한 말이 활화산의 용암처럼 솟구쳤다. 나는 네 감정을 몰라. 네가 하는 말의 의미도 모르고, 지금 네가 왜 우는지도 전혀 몰라. 아마 시간이 더 지나도 여전히 네 감정 따위는 모르고, 네가 하는 말들도 전부 내게는 다르게 들릴지도 모르지. 네가 기뻐서 웃어도, 지금처럼 서럽고 슬퍼서 운다 해도,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줄줄 쏟아졌다.

“…….”

호정의 작은 뒤통수를 한 손에 잡아 감싸듯 품에 안았다. 나머지 손으로는 호정의 허리를 깊숙이 끌어당겼다. 자신의 품에 온전히 들어온 형체에 비로소 안도의 숨이 뱉어졌다. 모든 게 잘 끝났다. 그런데도 계속 불안한 마음이 저변에 들었다.

재영은 자신의 품에 완전히 밀착해 들어온 호정을 끌어안고 호정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젖은 볼의 감촉. 느린 박자를 띤 어깨의 떨림. 자신의 옷을 붙든 손가락 힘의 강도와 가까이에서 듣는 숨소리의 크기. 품에 들어온 허리의 느낌과 뒤통수를 감싼 손 사이로 빠져나오는 머리카락의 부드러움.

처음 이 존재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를 떠올렸다. 골목길에 피투성이로 떨어진 미약했던 그 생명체를, 처음 자신의 앞에 떨어졌던 그 존재를 마음속에 다시 그려 넣었다. 그때는 단지 그 생명체가 자신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길 바랐었다. 자신을 다 내어 보내고 염치도, 양심도 내어놓고 자신에게 매달리게 해줄 생각뿐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재영은 골목길에서 호정이 내뱉었던 “양심 없는 새끼.”라는 말을 되감았다.

그러니까 왜 내 흥미를 끌었어. 왜 내 관심을 끌어서 이렇게 우는 꼴이 되어버린 거야.

“호정아. 다 괜찮아.”

재영은 호정의 귀에 속삭이며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여태 모든 존재들이 그랬듯, 호정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품에 넣고 나면 단순히 떨어져 나갈 존재일 줄 알았다. 민재가 죽고 아빠마저 위태로운 숨을 붙인 이 순간이 되어 호정이 자신에게 매달리는 지금만 오면 끝일 줄 알았다. 호정이라는 보잘것없는 존재는 금세 자신에게서 잊힐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재영은 이 순간이 오면 호정에 이유 없이 들었던 흥미를 잃게 될 거라 내심 기대했었다. 이렇게 자신의 품에 호정을 온전히 안게 되는 순간, 자신은 그런 호정을 바닥에 내치고 무자비하게 거절하고 돌아서 버릴 수도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재영은 호정의 뒤에 서서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윤 비서의 눈을 응시했다. 호정을 품에 안았다. 그렇다면 자신도 지금의 윤 비서 모습처럼 웃고 있을까. 생각하니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호정아. 어떡할래? 나랑 같이 갈래?”

재영은 호정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이렇게 품에 넣고도, 모든 흥미로운 일을 끝마치고도 사라지지 않는 갈증이 남았다. 여전히 목구멍은 따가웠고 품에 안긴 호정에 대한 갈망은 깊었다. 어쩌면 호정에 대한 흥미를 잃는 건 불가능인 게 아닐까. 어쩌면 지금처럼, 너는 내 모든 욕구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인 게 아닐까. 썩어버린 나라는 강물의 흐름을 바꿀 댐이 바로 이호정, 너인 게 아닐까.

“…….”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 중에 타자로 인해 통제되고 변화한 존재가 있었던가. 숱한 논문과 책에서 보았던 사례 중 지금 자신이 느끼는 기대감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을까. 재영은 자신의 머릿속을 뒤집어 지금과 가장 비슷한 사례를 떠올렸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코패스 살인자이자 역사상 가장 빠른 사형 집행이 이뤄진 극악무도한 인물. 그런 이를 유일하게 통제했던 댐 같은 존재가 있긴 했었다.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재영은 오래전 읽은 책의 내용을 천천히 되감았다.

지적장애 아들을 둔 사이코패스 아빠. 살인의 순간에도 아들에게만큼은 다정했던 살인자. 마지막 유언으로 아들의 보호를 원한 범죄자.

처음 그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도 재영은 그의 이중성이 흥미로웠었다. 추후 검색으로 얻은 내용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들을 향한 그의 태도였다. 극적으로 살아난 피해자들과 그의 전처가 증언하듯 그는 입이 더러웠다. 음담패설은 물론이고 단어 하나에도 상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을 “DARL.”이라고 부른 걸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책의 저자였던 의사는 그의 행동을 타자이지만 또 하나의 자신인 아들을 사랑했을 거라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들을 향한 그의 행동이 사랑의 최상위 개념인 부성애, 모성애와 결을 같이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건 결국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을 뿐인 거다. 재영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아.”

재영은 자신의 품에 온전히 안긴 호정을 느꼈다. 그에게 아들이 그런 존재였듯 자신에게는 지금 품에 안긴 이 존재가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기대감이 들었다.

“…….”

재영은 티 나지 않게 옅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었다. 이 모든 건 망상일 뿐이었다. 자신은 절대 통제될 수 없었다. 썩은 강을 회생할 수 있는 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례는 고작해야 사례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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