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봉쇄(2)(3권) (6/22)

4. 봉쇄(2)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버스를 탈 자신이 없어 택시를 탔고 이전에 재영이 만약을 대비해 폰에 저장해주었던 집의 주소를 기사에게 보여준 것 또한 거의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집에 돌아와 카디건을 바닥에 두고 그대로 침대에 기다시피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건 것도, 서러움을 받아줄 사람을 떠올린 본능에 가까웠다. 엄마는 웬일로 불효자가 먼저 전화를 다 했다고 놀리긴 했지만 밝은 목소리엔 나를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국은 이제 막 아침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요즘 아빠 상태가 좋다는 말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배 아파 낳은 우리 아들은 전화 안 해도, 아들 친구인 재영이가 매일 전화해줘서 참는 거야. 응? 호정아. 아무리 바빠도 엄마한테 전화 자주 해줘. 엄마도 외로워.

“재영이가 전화를 해? 언제?”

-응. 어제도 왔었는데? 재영이가 너보다 너희 아빠 걱정 더 많이 해. 거의 매일 해. 재영이 덕에 여기 의사들도 어찌나 자주 와서 봐주는지.

엄마는 “어떤 때는 너보다 재영이가 더 아들 같아.”라며 웃었다. 엄마가 웃는데도 나는 이 모든 일이 전혀 웃기지 않았다.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어색하게 아빠의 안부를 물을 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고, 어쩌면 엄마가 말하는 그 잘난 재영이 내게 실망해 이제는 나를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울컥대며 솟았다. 더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서둘러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었다.

파티에서 본 재영의 모습은 내가 알던 재영의 익숙한 모습과는 달랐다. 본 적 없는 모습, 내가 고등학교 때 재영을 멀리서 보며 느꼈던 그런 이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로 차갑고 무서웠다. 나를 빤히 보던 재영이 남자의 볼을 억세게 잡아 벽에 밀어붙일 때부터 도무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바드가 어색하게 나를 쳐다보며 재영의 모습을 가리기 전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그런 재영만 보고 있었다.

“저기, 호정아.”

바드가 어색하게 내 손을 이끌었을 때도 나는 내 앞을 가린 바드의 가슴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는 멍하고 속은 좋지 않았다. 와중에도 신경은 온통 집 밖 도로에 집중되어 있었다. 바람이 부는 소리, 바닥을 때리는 빗소리가 전부인데도 마치 기다리는 소리가 있는 사람처럼 도로에 집중한 정신을 뗄 수 없었다.

이불로 꽁꽁 감싸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창가로 가 커튼을 열었다. 침실 창가에서는 재영의 집이 대각선이라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거실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창밖으로 익숙한 차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불안함에 이가 떨리고 볼도 시큰거렸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거실의 커튼을 열고 창까지 열었다. 바람이 들어오며 두툼한 빗물이 얼굴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재영의 차였다. 재영은 차고가 아닌 도로에 차를 대고 내렸다. 보조석에서 내린 건 좀 전 파티에서 봤던 파란 눈의 남자였다. 남자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팔을 하늘로 뻗었다. 남자의 시선이 곧 내 창에 붙었다.

“하…….”

들킬까 뒤로 몸을 물렀다. 심장이 바닥에 떨어질 것처럼 무겁고 아팠다. 쿵쿵대는 소리가 귀를 울려 뇌까지 흔드는 기분이었다. 뒤로 물러나자 더 이상 밖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경이 온통 밖의 소리에 가 있는데도 빗소리가 워낙 거칠어 세세한 재영의 소리나 움직임은 들을 수 없었다. 한참 시간이 더 지나서야 다시 창문 앞에 설 수 있었다. 못해도 몇 십 분은 더 지났을 시간이었다. 도로에 정차한 재영의 차는 조용했다.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몸을 풀던 그 남자도, 차에서 내려 내리는 비를 맞고만 있던 재영도 이제 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오랜만에 재영의 집 정원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거실에선 잔잔한 조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안했다. 이 모든 감정을 아우르는 말이 이 단어 하나뿐이라는 게 억울하고 분할 정도로 불안했다. 뜨거운 눈덩이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나는 내가 더 비참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제는 여기서 더 비참해지지 않을 방법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이미 마음은 짙은 선으로 오로지 재영을 향해 있었다. 아니라고 뻗대는 게 더 창피한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재영을 붙들고 애원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안 돼…….”

재영의 집 거실을 아스라이 밝히던 빛이 꺼졌다. 커튼을 쥔 손이 내 심장 소리와 박자를 같이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늘, 언제나, 항상… 오답만 내렸다. 지금도 내가 내린 답은 틀린 답일 수도 있었다. 재영에게 달려가 매달리는 것만으로 우리 사이의 우정 같았던 그 얄팍한 감정마저 모두 사라질 수 있었다. 기어코 내 손으로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대로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무릎이 시큰거려 몇 번이나 절뚝거렸지만 무릎을 보듬을 정신이 없었다. 현관을 나가 재영의 집 앞까지 달려갔을 땐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씨발. 오답이면 어쩌라고.”

당장 죽을 거 같은데. 민재 말대로 첫사랑은 다 이렇게 좆같은가 보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오답이어도 상관없었다. 무모하고 대책 없는 결론이었지만 딱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답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재영의 집 도어 벨을 때리듯 눌렀다. 안은 고요했다.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머리카락을 적시고 볼을 뜨겁게 만드는 빗물에 자꾸만 어깨가 아래로 처졌다.

“한재영…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내가…….”

우리 관계에 대해 더는 캐묻지 않을 테니까. 오해니, 뭐니 값비싼 척해가며 네 진심을 밀어내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다시 이전의 재영처럼 나를 대해달라고 애걸하고 싶었다.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내린 답은 오답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내가 내린 모든 결론과 결정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나는 명백히 틀린 답을 내린 셈이었다. 도어 벨을 누르던 손을 내렸다. 비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비바람에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호정아.”

고개를 들었다. 빗물로 젖은 눈을 비비자 현관문을 열고 나를 보고 선 재영의 모습이 보였다. 샤워가운만 두른 채로 재영은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 뒤로 재영과 같은 샤워가운을 걸친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어라 영어로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남자가 하는 말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한 마디도 없었다. 남자가 무슨 말을 하든 재영의 눈은 오직 나를 향해 있었다. 묵묵한 눈은 일말의 흔들림이 없었다. 촉촉하고 고요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재영의 볼을 감싸 안고 싶었다.

“재영아… 흐으… 한재영…….”

재영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꺽꺽대며 보기 싫게 목이 꺾어지고 어깨는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재영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 두 팔을 벌렸다. 주춤거리며 걷다 입술을 꾹 깨물고 달려가 재영의 품에 안겼다. 재영은 빗물로 젖은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옅은 술 냄새가 났지만, 괜찮았다. 그마저도 좋았다.

“우리 호정이가 왜 울까? 응? 나 마음 아프게. 누가 우리 호정이를 울렸어.”

아이를 어르는 말투인데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아이라도 된 것처럼 울먹임만 짙어졌다.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재영의 어깨에 턱을 붙이고 눈을 꼭 감았다. 재영의 향만 맡았는데도 벌써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날 밤, 재영이 했던 질문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너는. 호정아, 너는 나를 여태 네가 정의한 그 평범한 친구로만 대했다고 자신할 수 있어? 네가 정의한 그 대단하다는 평범한 친구 관계로만 나를 본 게 확실해?’

그럴 리 없었다. 내가 재영을 평범한 친구로 대하지 않았던 건 명확했다. 묘하게 재영이 불편했고 잘 보이고 싶었다. 어쭙잖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나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건 친구 이상의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흐… 너 좋아해. 나 게이, 그거… 아닌데… 씨… 너도 게이 아니고, 흐응, 나도 아닌데.”

코와 볼이 뜨겁고 축축해졌다. 그간의 설움이 단번에 파도가 되어 눈물로 터져 나왔다. 재영은 조심스럽게 내 몸을 떼어냈다. 아이처럼 두 팔을 뻗어 다시 재영을 안으려는데도 재영은 단호하게 내 팔을 붙들고 안아주지 않았다. 재영과 두 눈을 마주했을 땐 마치 분한 사람처럼 씩씩대며 볼과 어깨를 떨어대고 있었다. 재영은 팔을 잡아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지금 네 감정을 나한테 설명해 봐.”

재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달뜬 숨을 겨우겨우 다듬으며 눈을 굴렸다. 내 감정. 내 감정… 떨리는 내 눈을 보던 재영이 다시 한 번 세게 내 팔을 붙들었다. 정신이 들었다.

“내가 너한테 특별한 줄 알았어. 게이… 그런 거 나는 몰라. 그냥 너한테 특별하고 싶었고,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을 땐 서운하고 섭섭했어. 그러다 너한테 짜증나고, 화도 났어. 모두 네 탓을 해버리고 싶었는데 자꾸 머리에선 그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더 내가 답답하고… 너한테 화내고 나면 네가 다시 나를 달래줄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나한테 네가 소중하다고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는…….”

내 말을 듣던 재영이 내 팔에서 손을 뗐다. 내가 너무 구구절절 지루한 말을 쏟았나 싶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재영이 나와 거리를 두고 서서 자신의 뒤에 선 남자를 가리켰다.

“호정아. 네가 원한다면 쟤는 당장 내보낼 수 있어.”

입술을 잘근 물었다. 재영의 차가운 눈빛에 볼까지 다 얼얼해질 정도로 긴장되었다.

“쟤, 가라고 할까? 난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재영의 잔잔한 미소에 등줄기로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더욱 세차게 내 머리와 몸을 적시며 떨어졌다. 추위로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불안함이 내 정신을 잠식했다.

“쟤. 집에 보내고 너랑 나랑, 둘이서만 놀까? 그럴래?”

재영의 손이 부드럽게 내 턱을 감쌌다.

“호정아. 그러고 싶어?”

“…….”

“대답해.”

꼿꼿하게 재영을 응시하던 눈을 천천히 내렸다. 재영은 내 턱을 좀 더 거친 힘으로 잡아 고개를 올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재영과 눈이 마주쳤다. 잡힌 턱이 이전과 달리 조금 아렸다. 눈을 찌푸리자 재영은 손에 들었던 힘을 풀어 두 손으로 내 볼을 부드럽게 감쌌다.

“응? 쟤 보내면 나랑 놀아줄 거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영이 다시 이전처럼 미소 지었다. 예전과 같은 온화한 미소에 마음이 풀어졌다. 재영은 내 볼을 감싸던 손을 내리고 남자를 향해 갔다. 테이블에 둔 지갑에서 현금뭉치를 꺼낸 재영이 남자의 멱살을 끌고 왔다. 남자는 작은 덩치가 아니었다. 키나 덩치가 나와 비슷하거나 좀 더 큰 편이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재영의 손에 맥없이 두 다리를 끌며 내 앞까지 끌려왔다.

남자가 입은 샤워 가운이 반쯤 풀어지며 그 안의 나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놀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재영의 손에 끌려 나온 남자가 내게 영어로 소리쳤다. 여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날 향한 욕인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남자가 바득바득 소리치자 재영은 남자를 끌고 나오던 손을 내렸다. 남자의 몸이 푹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재영은 쓰러진 남자의 앞에 쭈그려 앉아 그를 살폈다. 목을 한 바퀴 느리게 돌린 재영이 남자의 풀어진 샤워가운을 만지작댔다.

“호정아. 혹시 추워?”

“…….”

재영은 시선을 남자에게 둔 채로 내게 물었다.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애가 춥대. 너, 이거 벗고 가.”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재영의 목소리가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내게 말하던 평소의 목소리와는 톤 자체가 달랐다. 샤워가운을 여미며 일어서는 남자의 손을 잡은 재영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남자의 옷가지를 잡아 그의 품에 가볍게 던졌다.

“호정아. 밖이 추워. 들어와.”

느리게 일어나는 남자를 지나 재영의 집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자작나무의 합판으로 덧댄 천장의 그림자가 바닥에 꽃처럼 너울거렸다. 통창 너머 마당의 홍송이 그림 같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흑단으로 이뤄진 바닥을 딛고 들어섰다. 남자가 중얼대며 내게 손을 뻗자 재영이 남자와 내 사이를 막아섰다. 재영이 막아주지 않아도 내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괜찮다는 의미로 재영의 등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였다.

재영의 손이 허공에서 물결을 그리더니 남자의 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남자가 컥컥 소리를 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재영은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넘기고 남자의 목을 잡아 현관까지 끌고 갔다. 남자의 얼굴이 붉다 못해 자줏빛으로 변했다.

“재영아. 한재영!”

너무 과했다. 그냥 돌려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말리려 재영의 어깨를 붙드는 순간, 재영이 낮게 숨을 내뱉었다.

“호정아. 쉬이, 기다려.”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버둥대던 남자의 다리는 현관에 다다르자 힘없이 축 늘어졌다. 재영은 남자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렸다. 재영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남자는 절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싼 남자는 재영이 바닥에 던진 돈을 황급히 줍기 시작했다. 바닥의 돈을 줍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재영은 그런 내 앞으로 돌아와 눈을 맞추었다.

“새 거 줄게. 저건 너무 더러워졌어.”

이전처럼 미소 짓는 재영을 보고 눈동자만 움직여 무릎으로 바닥을 기는 남자를 흘깃거렸다. 돈을 다 주운 남자는 눈치를 살피더니 바닥에 떨어진 재영의 지갑으로 손을 뻗었다.

“재영아. 저 사람이 지금…….”

“그냥 돈이니까 괜찮아. 쟤가 널 훔쳐가는 것도 아니잖아.”

재영이 내 볼을 감싸 자신 쪽으로 돌렸다. 검은 눈동자 색이 선명했다.

“보지 마. 네가 볼 필요 없는 것들이야.”

“재영아…….”

“저런 것들 보지 말랬지.”

재영의 손이 부드럽게 내 목 뒤를 감쌌다. 재영은 내 목에 입술을 묻고 볼을 어깨에 비볐다. 나에게 애라고 했지만 정작 아이처럼 내게 붙어 옅은 숨소리를 내는 건 재영이었다. 좀 전 남자의 멱살을 끌고 가던 재영의 모습이 내가 아는 재영의 모습 위로 겹쳐졌다. 남자는 바닥의 돈뿐 아니라 재영의 지갑에서 꺼낸 돈까지 모두 손에 쥐었다. 만족할 만큼의 돈을 손에 쥔 남자가 마른기침을 뱉었다.

“하아, 시끄러.”

재영이 숨소리처럼 낮은 말을 읊었다. 목선으로 뜨거운 숨이 끼쳤다. 남자는 아픈 목을 만지다가 재영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집을 빠져나갔다. 무릎이 몇 번이나 고꾸라졌지만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목제 문이 바람에 흔들리며 아픈 소리를 냈다. 재영은 나를 두고 현관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현관 앞에 선 재영이 뒤돌았다. 나를 보는 눈이 단호했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로 재영은 등 뒤로 손을 뻗어 열린 문을 닫았다. 이중으로 된 문고리가 철커덩 소리를 내며 걸렸다.

“호정아. 여긴 네가 들어온 거야. 다시 못 나가도, 괜찮겠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잠근 재영이 나를 응시했다. 눈빛이 따뜻했다. 안도감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재영이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에 꼴사납게 눈물이나 그렁거리는 꼴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