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이코패스 (프롤로그)
재영은 지금도 고등학교 때 갔던 주치의의 강연을 주기적으로 떠올린다. 그날 주치의는 많은 사람들 중 유독 재영을 향해 이 질문을 던졌다.
“사이코패스와 정상인이 나뉘는 가장 큰 지점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또 무슨 헛소리를 해댈까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아빠의 부탁이 있었다. 그렇게 참석한 강연에서 이런 막돼먹은 대접이라니. 재영은 주치의를 향해 싱긋 웃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정중한 답을 하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주치의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더니 강의 화면을 넘겼다. 하얀 스크린에 양심이라는 두 글자가 가득 찼다.
“양심의 유무입니다. 사이코패스들은… 음…….”
주치의의 눈이 다시 재영을 향했을 때, 재영은 입속에서 혀를 굴렸다. 쏟아지려는 불편한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그들은 양심이 없죠. 죄책감도, 당연히… 없습니다.”
어벙벙한 얼굴을 한 사람들 사이, 재영은 주치의를 보며 지었던 미소를 거두었다.
그날 강연에서 주치의는 인간의 양심이라는 건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발현된다고 했다. 나 혼자, 스스로, 독단적으로만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양심은 불필요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재영은 그 말을 양심이라는 건 언제나 타자를 눈치 보며, 타자에게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비겁한 인간 행동의 변명이라고 이해했다.
양심이 인간이 지닌 자아의 가치 중 가장 최상위 개념으로 이해되는 데는 타자와의 관계성에서 그 감정이 기인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주치의는 재영이 애초에 가지지 못한 것이자 앞으로도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양심이라고 했다.
“양심……?”
골목에서도 그랬다. 졸업식 날 화장실에서도 호정은 자신이 아무리 전교 꼴등이라도 양심은 있다는 말을 했었다. 호정의 입에서 양심이라는 단어가 뱉어질 때마다 묘하게 비틀렸던 불안한 기분을 재영은 무척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의사는 평범한 인간의 내면에서 울린다는 양심을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댔지만, 재영의 생각은 달랐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건 오히려 더 이해되지 않는 이론에 가까웠고 불필요한 감정일 뿐이었다.
주치의의 강연을 들은 그날 밤, 재영은 밤새 양심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 닥치는 대로 읽어냈다. 가장 먼저 찾은 건 역시나 심리학자이자 의사였던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는 자아 안에 본능적 욕구로만 이뤄진 목소리. 즉, ‘이드’가 있다고 했다. 인간이 이드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건 이런 이드를 제어하는 목소리가 내면에 학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학습된 내면의 목소리를 프로이트는 ‘초자아’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지독한 사회화,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사는 삶 자체가 이런 초자아의 힘이라고 볼 수 있었다.
“…….”
재영은 주치의의 강연을 곱씹었다. 또 뭐랬더라. 사이코패스가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뛰어나고 이상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라고 했던가. 사이코패스는 정상인들이 노력과 학습으로 얻는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존재, 사회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의 덜떨어진 인간이라고 했었다. 주치의는 자신의 의견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주치의의 말에 따르면, 내면의 쾌락을 통제하고 나아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높은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가 자신이었다. 한없이 부족하고 멍청한 존재. 그게 바로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재영은 다시 자료에 집중했다. 초자아의 목소리는 인간들이 이해한 선(善)의 영역에 있는 양심과 완벽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더 나은 인간으로 향하고자 하는 욕구의 목소리, 부모에게서 제어와 훈육으로 배운 예의와 규정이 존재한다는 것에서는 선의 영역과 결이 같았다. 선과 악의 기준을 나눠주고, 옳고 그름을 나누며, 본능으로만 행하려는 이드를 억압하는 내면의 목소리인 ‘양심’이라는 게 평범한 인간에겐… 그러니까 평범하게 태어난 것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존재하는 셈이었다.
주치의의 말대로 양심이라는 건 재영이 애초에 가지지 못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재영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노트북 화면의 글자들을 빤히 응시했다. 재영은 화면을 채운 자료들과 주치의의 말에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재영은 자신의 내면을 이드, 자아, 초자아 따위로 나누지 않았다. 자신은 늘 본능에 따랐고, 그 본능으로만 점철된 인간이었다. 자신의 본능은 본능일 뿐, 나눠진 것들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세 가지 내면의 목소리가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며 자신을 통제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본능의 목소리는 언제나 옳았다. 덕분에 더 나은 인간이 될 필요도, 노력할 이유도 없었다. 답은 늘 자신의 내면에 있었다. 재영의 내면은 하나였고 언제나 하나의 울림으로 재영을 이끌었다. 분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치의가 정의한 ‘정상인’처럼 내면이 고통으로 들끓는다거나, 불안함에 잠을 뒤척이고 죄책감에 울부짖는 일은 앞으로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재영은 주치의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세게 물었다.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이드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인간은 애초에 태어날 때 악마로 태어난다는 의미이니까. 그렇다면 자신은 좀 더 솔직한 인간일 뿐, 저들이 맞고 자신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재영에게 양심이라는 건, 하이데거가 말한 것에 더욱 가까웠다.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 오직 그것만이 재영에게는 양심이고 불안이자 자신을 숨기는 것에 대한 마음의 가책이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본인이 본래의 자신을 감추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 재영은 그 사실에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그런 자신을 안쓰럽게 여겼다.
“이건 진짜 씨발새끼네…….”
재영은 주치의를 떠올리며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뭉쳤던 근육이 풀어지며 입술 사이로 옅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어느 쪽도 좆같은 건 마찬가지였다. 어찌 됐든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이니까. 그건 그들이 정상인이라는 같잖은 이유로 은연중에 언제든 자신을 비웃을 수 있다는 의미이니까.
언제쯤 이 좆같은 짓을 그만둘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며 살 수 있을까. 감추는 쪽과 드러내는 쪽에서 언제나 이득이 되는 건 불행히도 감추는 쪽이었다. 자신을 감추어야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았다.
그래서 더욱 호정에게만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호정이 자신을 온전히 꿰뚫어 봐주길 바랐다. 자신의 내면에서 이글대는 감정들을 호정이 하나하나 직면해주길 원했다. 이드라는 악마의 눈을 호정만은, 호정 하나만큼은 거부하지 않고 바라봐주길 기대했다.
그래서 그 유일함으로 오래,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래 아주 기나긴 시간 동안 자신을 붙들어주길 바랐다.
호정은 정말 긴 시간을 탐닉해도 질리지 않는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자문했다. 물리지 않고 지겨워지지 않고 계속 자신을 붙잡고 있어 줄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호정은 재영을 위해서라도 그래 주어야 했다. 지금껏 그래 주었듯이 안을수록 질리지 않는 존재로 끝까지 남아주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그 유일한 존재를 버리지 않을 테니까.
왜 너만, 왜 이호정에게만 여태 잘 감춰왔던 자신의 진실한 본능을 보이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답은 애석하게도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답은 오히려 호정에게 있었다. 호정에게 “왜 너만 달라?”라고 묻는다면, 호정은 그날처럼 “날 보는 네가 다른가 보지.”라고 말하며 웃어줄까.
재영은 눈을 감고 텅 빈 호정의 집, 그 소파에 앉았다.
“역시, 기특하게 잘 자랐네.”
호정이 도망가길 바란 건 자신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엉망으로 헤집은 재영을 혐오하고 증오하면서. 내면에는 재영에 대한 증오보다 더 깊은 분노로 멍청했던 자신을 책망하면서. 그렇게 아주 멀리, 도망가주길 바랐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호정이 정말 자신을 두고 공항까지 갔구나, 생각하니 씁쓸했다. 재영은 폰 화면에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호정의 위치를 보고 있었다. 이호정은 어떻게 있어도 이렇게 붉은빛이 나나 보지, 위치 추적기의 붉은 점이 느리게 깜박거렸다. 호정이 비행기에 타고 호정과 자신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나면 이 빛은 아예 암전되어버릴 것이다. 소파의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몸을 온전히 기댔는데도 편하지 않았다.
도망치게 만드는 것에 비해 오히려 도망친 호정을 잡는 건 수월할 거다. 호정의 무릎에 박아놓은 위치추적용 칩은 호정이 죽더라도 그 뼈 안에서 삑삑 소리를 내며 내게 위치를 알려줄 테니까.
“하아…….”
호정이 병원에서 자신을 붙들고 도와달라고 말하던 순간, 재영은 자신의 품에 들어온 호정을 세게 껴안았었다. 이 건방진 존재를 절대 놓아줄 수 없다고 다짐했었다. 다만, 그 시기를 정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호정을 볼 때마다 곧 지겨워질 거란 기대가 퇴색됐다. 어쩌면 이 시간이 평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두려워졌다. 언제까지고 이런 구질구질하고 엿 같은 거짓의 모습을 연기할 순 없었다.
몇 달은 쉬웠다. 몇 년도 분명 재영에겐 쉬울 거다. 그러나 평생? 정말 이호정이 평생 지겨워지지 않는 존재라면. 정말 이 짓을, 평생 할 수 있을까? 평생 이 좆같은 연기를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건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다.
호정을 볼 때 떠오르는 난잡한 생각들. 하고 싶은 더러운 말들. 그 모두를 가감 없이 그 예쁜 얼굴 앞에 뱉고 싶었다. 네 목을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그 정도로 너를 가지고 싶다고.
나 같은 존재를 사이코패스라고 한다니까… 나는 네 감정 따위가 어떻든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너는 내 감정을 알고 내 옆에 있어 줘야 한다고. 두려움에 떠는 호정의 목을 붙들고 내면에서 들끓는 모든 자아의 울림을 드러내고 싶었다.
여태 모든 것들에 결국은 지겨움을 느꼈었다. 지겨워지면 그게 무엇이든 버렸다.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패대기칠 수 있었다. 그런 지겨움을 호정에게만큼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평생 자신의 옆에 두고 싶었다. 호정만큼은 더 오래 보고 싶었다.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호정이 자신을 의심하고 끝내 모든 진실을 알게 돼 스스로 도망쳐야 했다. 자신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래야 찾을 수 있었다. 그래야, 그래야만 한재영이라는 본연의 모습으로 호정을 대할 수 있었다.
2층의 모든 방을 점검한 윤 비서가 소파에 앉은 재영의 옆에 섰다.
“짐은 거의 다 두고 갔습니다. 돈도 그대로입니다.”
“그렇겠죠.”
재영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도련님이 예상하신 대로군요.”
“네. 분명 기특한 일인데…….”
재영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눈썹을 긁었다.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윤 비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영의 얼굴을 살폈다.
“근데 나는, 내가 지금…….”
윤 비서는 아무런 변화 없는 얼굴로 재영을 응시했다. 제 주인이 바라던 일이 일어났는데 주인은 전혀 이 상황을 즐거워하고 있지 않았다. 윤 비서는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호정을 죽여달라고 한다면 죽여줄 생각이었고, 데려오라고 한다면 두 다리를 잘라서라도 주인 앞에 데려올 생각이었다.
“윤 비서님.”
재영이 자신을 불렀다. 윤 비서는 기대감에 차 재영을 쳐다보았다.
“나는… 근데. 씨발… 이게 왜 이렇게 서운하죠?”
재영이 자신의 이마를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대체 왜 약점을 만들까 궁금했었다. 조금만 머리를 써도 충분히 약점 없이 살 수 있는 게 인생인데, 인간들은 늘 제 스스로 약점을 만들고 재영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손쉽게 그 약점을 드러냈다.
“이호정.”
그래서 재영은 건방지게 자신의 약점이 되어버린 호정을 더더욱 놓아줄 수가 없었다.
“그럼 왜 보내신 겁니까? 공들여서 잡은 건데.”
윤 비서는 창가로 다가가 가려진 커튼을 열었다. 밝은 빛이 거실로 쏟아졌다. 호정이 허리를 들썩대며 자신의 성기에 몸을 박아대던 소파와 불안한 무릎으로도 곧잘 뛰던 호정이 작은 뒤꿈치로 나지막이 디뎠던 카펫, 종알대며 웃던 그 얼굴이 빛 아래 지금도 움직이는 듯했다. 재영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흐리던 눈이 선명해졌다. 깊게 숨을 들이켰다. 호정의 향이 아직 남아 있었다.
“가출했다 돌아온 아이가…….”
재영이 맥없이 웃었다. 와중에도 호정의 모습이 그립다는 게 우스웠다.
“부모한테 더 잘한대요.”
윤 비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네.”라고 짧게 답했다. 이해한 건 아니었다. 재영의 말이니 무조건적으로 고개부터 끄덕이는 반사적 행동이었다. 재영은 자신의 휴대폰 속 붉은 점으로 반짝이는 호정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한국으로 가긴 가야겠네요.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이게 작동을 못 하니까.”
“네. 준비하겠습니다.”
재영은 소파에 볼을 기댔다. 소파 곳곳에 남은 호정의 향이 아직 맡아졌다. 묵직한 우드 향에 단 바닐라 향이 남는 향이었다. 눈을 감았다. 호정의 냄새는 자신의 것과 같았으나 깊게 음미하면 달랐다. 같은 향수라도 살에 닿으면 그 사람 특유의 살 냄새에 더해지고, 결국 사람마다 다른 향으로 발현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윤 비서는 폰을 꺼내 비행기 티켓을 확인했다. 귀찮은 일이 늘었지만, 재영이 기뻐한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