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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 中 (2) (20/22)

IF 외전 中 (2)

학교로 가는 길 내내 호정은 입을 다물었다. 다만, 불편한 마음을 주기적으로 볼을 실룩대는 것으로 표현했다. 부풀었다가도 금세 가라앉는 뺨의 색이 붉었다. 재영은 그런 호정의 손을 힘주지 않고 여리게 잡았다.

“호정아.”

재영이 자신을 부르는 데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재영은 지금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제 손을 잡아주고 화를 풀어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걸까. 자신도 의문이었다.

의문? 자신에게 일어난 일 중 실상 의문이랄 게 있었나. 내 인생에 의문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일 만한 일이 있긴 했나.

호정은 창에 비친 자신의 흐릿한 얼굴을 응시하다 반쯤 고개를 숙였다. 고개가 좌우로 느리게 흔들렸다.

이유야 간단했다. 재영이 어제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까. 자신은 시샘도 질투도 많은 사람이라 그런 상황에선 쉽게 토라지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런 거다. 이번에도 그런 이유였다. 의문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제 내가 전화 안 받아서 화났구나.”

호정은 차창 아래를 향한 시선을 나지막이 내렸다. 재영은 똑똑해서 말하지 않아도 호정의 감정을 잘 알았다. 지금도 재영이 말해준 게 자신의 감정이었다. 자신은 지금 화가 나 있었고, 그 이유는 어제 재영과의 연락이 닿지 않아서였다. 이제야 들쑥날쑥하던 감정이 정리되며 차분해졌다.

호정은 들릴 듯 말 듯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 중이던 윤 비서가 백미러를 통해 자신을 흘깃 쳐다보았다. 늘 그랬듯 자신을 볼 때 윤 비서의 눈빛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평소엔 무심히 넘겼던 일인데 오늘은 그마저도 짜증스러워 괴로웠다. 호정은 한쪽 눈을 찌푸렸다.

“나 잠시 들러야 할 데가 생겼는데, 먼저 들어갈 수 있겠어?”

“어디 가게?”

호정은 질문과 동시에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재영은 되묻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호정은 입술을 꾹 다물고 금세 눈초리를 내렸다. 시무룩한 호정의 얼굴에 재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재영은 기다란 손으로 호정의 뺨을 감싸 어루만졌다.

호정의 뺨이 더욱 짙은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재영이 웃어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재영을 화나게 한 것 같진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몇 년 만이지? 네가 이렇게 나한테 되묻는 게?”

“음......”

몇 년 만이지. 최근에는 재영이 하는 일에 아예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당연히 되물을 일도 없었다. 호정은 잠시 눈을 굴렸다. 고등학교에 온 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중학교 때. 중학교... 2학년. 아니, 3학년 초였다. 분명했다.

“중3 때. 우리 전학 가기 전에... 맞지?”

“맞아.”

재영이 호정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칭찬받는 기분에 호정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너랑 나 처음으로 반 나뉘고 호정이가 그 반 반장 맡았을 때였지.”

“기억나.”

호정이 고개를 꺾어 재영의 눈을 마주했다. 기억났다. 자신을 놀리고 싶어서인지, 괴롭히고 싶어서인지 반 아이들이 합심해 호정을 반의 반장으로 선출했던 적이 있었다. 주목받는 상황이 괴로워지려던 찰나 운 좋게도 재영의 집이 이사하며 덩달아 자신도 그를 따라가게 되었다.

“내가 우리 전학 가야 한다니까 네가 왜 가냐고 물었었지. 몇 번이나.”

“...응. 미안.”

호정은 습관화된 용서를 구하고 재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를 떠올리니 또 금방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인지 자꾸만 그 이유가 궁금해 되묻고 또 되물었었다.

“그냥 너 따라가면 되는 건데. 그땐 내가 철이 없었어.”

방금 자신이 한 말 중에 재영의 심기를 거를 말이 있었던가, 곰곰이 되씹었다. 다행히 재영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호정을 보고 있었다.

“그 직전 해에 부모님 돌아가셨을 땐, 호정이 진짜 질문 많았었지?”

“......응.”

지금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재영이 하는 말에 반발심인지 의문인지 모를 것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던 시기였다. 왜, 하고 질문을 던지면 재영은 미간을 좁혔다. 열 개의 질문을 던지면 하나가 돌아올까 말까 하던 시점에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해, 참 안 좋은 일도 있었고. 그렇지?”

호정은 사고 현장에서 보았던 부모님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렸다. 잊었다고 생각한 장면이 휘몰아치며 머리를 어질렀다. 호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더듬대며 재영의 손을 바짝 끌어 쥐었다.

품에 재영의 손을 안고 상체를 숙였다. 재영의 허벅지에 볼을 기대 누워 가빠지는 숨을 들이마쉬고 내쉬었다. 재영의 고요한 움직임이 뺨에 닿고 나서야 호정의 가쁜 숨도 점차 차분해질 수 있었다.

재영의 손이 호정의 품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손은 호정의 뺨을 조물조물 아프지 않게 꼬집다가 이내 호정의 허리로 내려가 마른 배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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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은 재영 없이 혼자 학교로 들어서는 게 어색했다. 문득 집에 두고 온 민재의 가방이 생각났다. 만약 민재가 물어오면 버렸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대답도 듣지 않고 무턱대고 가방을 던지고 간 건 민재였다. 잃어버렸다 한들 그 탓도 단연 민재에게 있었다.

호정은 교실 문 앞에서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먼지가 낀 천장이 시야에 들었다. 불편한 기분이 거미줄처럼 목구멍을 막았다.

“안 들어가?”

어깨를 감싸는 낯선 감촉,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목소리. 호정은 비스듬히 고개를 돌러 자신 옆에선 민재를 쳐다보았다. 서둘러 어깨를 비틀어 팔을 벗어났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라 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민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몸을 돌려 제 등을 보여주었다. 민재의 등에는 전날처럼 빨간 가방이 달려 있었다. 놀란 호정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너 싸가지 없어서 가방 안 들고 올 줄 알았어. 그래서 더 예쁜 걸로 새로 샀다.”

“미친.”

호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몇 가지의 반응을 예상했었지만 그중 이건 없었다. 웃는 호정을 보던 민재가 제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내밀었다. 얘는 지금 자기가 웃고 있는 건 알고 있나, 그 생각이 들었다.

“재밌지?”

호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민재가 내민 사탕을 받았다. 적어도 슬픈 쪽은 아니니까. 고개를 끄덕인다고 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거 우리나라에 없어.”

“왜?”

호정은 질문과 동시에 얼굴을 굳혔다. 우리나라에 없는 사탕이라는데 굳이 왜라는 질문은 왜 해서.

“미...”

스스로가 한심해지려는 찰나 민재가 손등으로 호정의 볼을 쓱 약하게 닦았다. 여리게 만져진 뺨은 곧장 제 위치로 돌아와 색을 붉혔다.

“우리 아빠가 수입할까 말까 고민 중인 제품이거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나만 먹는 거야.”

호정은 민재에 의해 제 손에 쥐여진 사탕을 세게 쥐었다. 재영이 했던 말이 머리에 채워졌다. 질문이 많아진다는 건 못된 버릇이 고개를 든다는 거다. 그리고 그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꾸준히 싸가지 없어서 또 안 먹으려고 하네. 그냥 먹어. 사탕 이거 뭐라고.”

민재는 호정의 손에서 사탕을 가져가 비닐을 찢어 다시 내밀었다.

“애새끼도 아니고, 먹여줘야 먹냐?”

노란색의 동그란 사탕이 호정의 입술 사이로 빠르게 들어왔다.

“맛있지? 레몬인데 안 시고 달지?”

호정은 예고 없이 불쑥 입 안으로 들어온 사탕을 혀로 훑었다. 민재의 말처럼 사탕은 레몬 맛이 났지만 시지는 않았다. 오히려 단맛이 혀끝에 고였다. 호정은 침을 꼴깍 삼키고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민재가 “거 봐.” 하며 호정의 뺨을 한 번 더 어루었다.

이러니 그 새끼가 길들이는 거다. 반응이 맛있으니까. 민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호정의 얼굴을 찬찬히 관찰했다.

따까리는 확실히 아니다. 전학 온 후로 몇 번이나 호정이 재영과 있는 순간을 봤었다. 겉보기엔 호정이 재영의 뒤를 졸졸 따라붙는 듯 보였지만, 오히려 호정이 뒤를 따라오지 않을까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건 재영 쪽이었다.

민재는 그런 장면에서 흥미를 느꼈다. 뒤를 쫓아 따라붙는 행위는 철저히 학습된 거다. 손을 달라고 하면 앞발을 내어주고 간식을 내어줄까 기대하며 자신을 쳐다봤던 자신의 강아지, 지니처럼.

민재는 자신의 앞에서 사탕을 굴리는 호정을 관찰했다. 어느 부분에서 재미를 느꼈을까. 어느 모습에서 이토록 철저하게 학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민재는 복잡한 생각이 번지는 머리를 약하게 흔들었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호정을 지나쳐 그보다 먼저 반으로 들어갔다. 몇 명 오지 않아 반도 채워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눈인사를 하고 자신의 자리에 가 앉는데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곧이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들어온 호정이 민재가 있는 방향을 흘끔거렸다. 오른쪽 뺨이 사탕으로 살짝 부풀어진 게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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