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20/35)

「안 풀어봤습니다. 진짜……, 아, 억울하다.」

장석민은 선물이 쌓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건네준 상자더미에서 그는 카힌이 보낸 상자를 찾아냈다.

「이게 카힌 왕자님께서 보내신 거 맞죠?」

자하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석민은 포장지를 박박 뜯기 시작했다. 카힌이 무슨 선물을 보냈건 간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제가 카힌 왕자님이 보낸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상자를 열어본 장석민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상자안에 놓인 물건은 시계였다. 

파텍플립 컴플리케이션 워치. 그것도 한정 셀리스티얼.

명품을 좋아하는 장석민은 단박에 시계를 알아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못해도 수십억은 줘야 하는 물건이었다. 아니,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모델이라고 알고 있다. 형식적인 선물이라 대충 구색만 맞춘 것을 보낸 줄 알았는데, 이런 것을 선물하다니.

「허……,…….」

에드문트 회장이 보낸 황금상은 현실성이 떨어져서인지 받고도 제 물건 같지고 않고 마음에 든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완전 다르다.

장석민은 허허, 웃음을 삼키고 시계를 들어보았다.

「허허, ─허.」

장석민이 시계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다가 제 속목에 처억 얹고는 버클을 닫았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가 채워졌다. 

그 모습을 보던 자하르가 짧은 웃음을 삼킨다.

「마음에 드십니까?」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던 장석민은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자하르의 눈웃음이 길어진다.

「마음에 드시는군요.」

「아니, 썩 그렇다고 할 수는 없……, ……마음에 들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카힌은 싫었지만 파텍필립은 죄가 없다. 장석민은 한 손으로 손목시계를 슬쩍,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선물은 거절하지 않는 거라고,……, ……맞죠?」

「맞습니다.」

자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기에 장석민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

길게 늘어져 있던 자하르의 눈웃음에 서늘한 기운이 스친 것을, 장석민은 보고야 말았다.

「제가 준 선물은 환불을 하자고 하셨던가요?」

「아, 아니 , 그러니까, 그건…….」

더듬더듬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말을 타본 것이 처음이기도 하고, 뭐든 낮선 것은 좀 무섭고 두렵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그랬습니다.제가 그리고 걔를 어떻게 키웁니까. 집으로 돌아가면 마사도 없고…….」

「마사가 문제라면 얼마든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장석민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빌라에 마사가 들어설 수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아닙니다. 그럴 만한 여건이……, 아무튼 라이언은 마음에 듭니다. 잘생겼고, 빠르고, ……말이니까요.」

명색에 변호사인데 말이니까요, 라니. 혀를 깨물고 싶었지만, 그 이상의 마땅한 수식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유낭히 말을 좋아하시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 말과 관련된 와디를 만들기도 했지요.」

「무슨, 아닙니다. 그냥 라이언은 동물이고, 엘시시는 아니, 아니 그건 정말로 제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겁니다. 정말이에요.」

장석민이 타르쿤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단연, 엘시시였다. 엘시시 사건으로 두 번이나 곤욕을 격은 것이다. 테러범 앞에서 자하르에게 엘시시 같은 놈이라고 소리를 지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장석민이 외국인이라 언어소통에 문제라 있음을 자하르가 후에 적극적으로 해명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쯤 말라쿤이 아니라 엘시시성애자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이언 좋아해요. ……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장석민은 한숨을 섞어 중얼거렸다.어째서 지금 누구 선물이 더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결론은 자하르 쪽으로 내야 할 것 같았다. 

「라이언이 최고, 최고입니다. 완전 타고 싶네요.」

장석민은 힘없이 두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자하르가 손을 뻗어 장서민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장석민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럼 이건 빼놓는 걸로 합시다.」

자하르가 손수 장석민의 손에서 시계를 끌러냈다. 딸깍, 소리를 내며 손목에서 멀어지는 파텍필립을 장석민의 시선이 아타까운 듯이 좇았다.

「제가 없는 동안 일을 잘 처리하셨으니 상을 드리죠.」

「네? 무슨 상을 ─.」

자하르가 주는 것은 다이아몬드 광산이라고 해도 일단 의심을 해야 한다고 믿는 장석민이었다. 자하르는 대답하지 않고 시계를 도로 상자에 넣고 닫았다. 상자를 선물 머디 안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그제야 자하르가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자는 겁니다.」

장석민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의 까만 눈동자에 불안감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왕자님이랑, 그걸 하자고요?」

장석민이 놀라 묻자 자하르라 그거요? 하고 되묻는다.

「저는, ……그런 취미는 좀, ─.」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겁니다.」

자하르의 말에 장석민의 귓불이 점점 더 붉어졌다. 아무리 여자가 좋다고 하더라고 한 번에 다수와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니, 그냥 저는, 그냥 혼자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여자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좋았다. 하지만 남자와 그런 사적이고 성적인 장면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미 두 번이나 공유한 사이라는 게 더 싫다. ……젠장, 네 번이군.

「혼자 하라고요?」

자하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웃고 있지만 화를 내고 있음을, 이제는 쉽게 느낄 수 있다.

장석민은 외치고 싶었다. 

당신 사막의 성자라며, 왜 그렇게 내 앞에서는 있는 성질을 다부리는건데! 아무리 내가 대나무 밭이 되어준다고 했지만 작작 흔들어야지, 이러다 뿌리 뽑히겠다.

「상을 주는 것은, 선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

「쟝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단호한 자하르의 말투에, 장석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남자하고도 그렇고 그런 짓까지 했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사약을 받아드는 마음으로, 자하르의 상을 받기로 결심했다.

「……이게 상인가요?」

장석민이 물었다. 뒤에 있던 자하르가 왜 그러시죠, 라고 물었다. 장석민은 아닙니다,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라이언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분명히 최고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고삐를 쥔 자하르가 부드럽게 묻는 말에 뼈가 실려 있었다. 장석민은 좋습니다, 하고 한숨을 섞어 대꾸했다. 늦은 저녁에 일을 마치고 자하르가 자신을 마사로 데려갔을 때, 장석민은 처음에 이놈이 진정 제대로 돌았구나, 싶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한번에 수십 명을 간음하는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동물까지? 성적인 도덕심이라고는 애초에 타고 태어나질 않은 거냐!

장석민이 기겁하며 자신을 바라보자 자하르는 의아하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휘었다.

저는 그런 거, 절대로, 제 신념 상,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장석민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면서 그렇게 말했다. 자하르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동물이랑, ─.

잇새로 내뱉는 장석민의 말을 들은 자하르는, 한참 동안 표정없이 서 있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을 때는, 입술에 비뚤어진 웃음이 걸린 채였다.

말이랑 하실 생각이었나요?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자못 진지했지만 웃음기가 묻어났다. 당황한 장석민이 말을 더듬으며 그게 아니었냐고 되묻자, 자하르는 긴 웃음을 지었다.

「……좋아하는 걸 하자고 하신 게……, 승마였군요.」

장석민이 입속에서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자하르가 물었다.

「그럼 쟝이 제일 좋아하는게, ─성교였군요.」

「 ─! 」

「몰랐습니다. 다음에 상을 내릴 때는, 염두에 두죠.」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너 말고 여자랑 하는 섹스가 좋다고 바락 외치려다가 장석민은 고개를 내저었다. 말자, 말아. 말해 무엇하리. 앞으로는 상 받을 짓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장석민이 입을 다물자 다시 침묵이 찾아들었다. 드넓은 초지 위에서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는 것은 라이언뿐이었다.

「안 무겁냐.」

성인 남자 둘을 태우고 걷고 있는 라이언이 불쌍해서 장석민은 말의 머리를 도닥이며 물었다. 라이언이 코로 거친 숨소리를 뿜으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어냈다. 화가난 라이언이 난폭하게 앞발로 땅을 걷어차기 시작하자 자하르가 장석민의 손을 잡아 안장 위에 얹게 했다.

「말은 예민한 동물이라 함부로 만지면 안 됨니다.」

「……죄송합니다.」

자하르가 라이언의 얼굴 옆을 두어 번 두르렸다. 신경질을 내던 라이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왜죠, 왜 사람을 차별하는 겁니까.」

말한테까지 차별을 당하자 서러움이 복받쳐 오른 장석민이 물었다.

「주인을 알아보는 겁니다.」

「제가 주인 아닌가요?」

한국으로 데려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말에게 소유를 부정당하자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주인으로서 대해야, 동물도 그걸 이해하는 법입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석민이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잘 길들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는 자하르의 얼굴이 지타치게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 장석민의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든 길들이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요.」

담담한 목소리가 뒤에서 이어진다.

「적당한 세기로 고삐를 쥐어야 합니다. 너무 느슨해도 안 되고, 너무 단단하게 잡아당겨도 안 됩니다.」

순소리가 귀에 닿았다. 장석민의 자하르에게 뒤로 좀 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안장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었지에 마음속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왜 둘이 말을 타고 있는 거야. 승마를 가르쳐줄 거면 지가 아래에서 끌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저기.」

「네.」

「……저 혼자 타도 될 것 같은데요.」

장석민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챈 자하르가 짧게 웃음을 사몄다. 그가 쥐고 있던 고삐를 장석민에세 내주었다.

「그럼 한 번 몰아보세요.」

선선히 고삐를 내어주는 꼴이 미심쩍긴 하지만 특별한 게 뭐 있겠어, 하는 심정으로 장석민은 고삐를 받았다.

그러나,

「헉─!」

고삐를 건네받았을 뿐인데 라이언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앞발을 신경질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앞발을 공중에 번쩍 들어 올리기까지 하자, 장석민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빠, 빨리…….」

장석민이 자하르를 돌아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안장의 후교를 잡고 있던 자하르가 한 손으로 다시 고삐를 쥐었다. 미쳐 날뛰던 라이언이 거짓말처럼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다.

「뭐, ……이래요.」

「뭐든 고삐를 쥐는 일은, 보기보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차마 이제는 혼자 말을 몰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색한 침묵끝에 장석민은 저기, 하고 말문을 열었다.

「왕자님, 그런데, ……일은 어떨게 잘 되어가고 있나요?」

단순히 후계자가 정해지고 끝아는 문제가 아니라 각종 이권과 권력들이 거미줄처럼 복잡라게 얽혀있는 터라, 장석민은 아예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었다.

「그럭저럭,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

아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장석민은 내심 자하르가 일의 가닥을 잡았을 거라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자하르가 자신을 데리고 승마를 하는 나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다. 여유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물론 이유는 짐작이 가지 않지만.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자세한 얘기는 몰라도 일이 어떻게 돌아는지는 알아둬야 했다.

「국정을 운영할 임시기구를 만드는 데에, 하페즈 전 국무장관을 고문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핫산 내무장관은 위원장을 맡아주실 겁니다.」

핫산 장관이 자하르의 오가 친척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있던 장석민은 하페즈 장관님은 누구 신가요, 하고 물었다.

「하일 형님의 외조부 되시는 분입니다.」

장석민이 눈을 부릅뜨고 고래를 돌렸다.

「그럼 하일 왕자님과 손을 잡는다는 말씀인가요?」

「일단은, 그렇게 되는 건가요.」

면전에 대고 자하르 네가 싫다고 소리치던 하일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연합이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하일 왕자님이 흔쾌히 받아들이셨나요?」

「흔쾌히는 아니실 테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선택하셨겠지요.」

장석민은 거참, 하고 쓴 입맛을 다셨다.

「왜 그러시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일 왕자님하고는 손을 잡을 거라고 생각 못 했습니다.」

「필요하면 누구하고도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장석민의 아버지는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 성격이었다. 판사 임기를 끝내고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쇄도했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잇는 거라며, 그쪽으로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자하르를 보면서 장석민은 바로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는 거구나, 싶었다.

장석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하일 왕자님,……너무 믿지 않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일이 보낸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냥 좀 무서운 분인 거 같아서요.」

사실 그 사람이 당신을 타락시키라고 나를 보냈거든요, 물론, 내가 타락시키기 힘들 만큼 당신은 차락해 있던 상태지만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들을 꿀꺽 삼키는 버릇을, 이곳에 와서 배워가는 중이었다.

「말라쿤의 조언이니 염두에 두지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다른사람은 몰라도 자하르가 말라쿤 이야기를 하면 장석민은 놀림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말을 하면 안 됨니까.」

「가짜잖아요, 가짜. 모조 새.」

자하르는 짧게 웃었다. 장서민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우연과 뒷공작으로 만들어진 새였으니. 그런데도, 가끔은 자하르마저 장석민이 지니는 상징성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난데없이 후계자 싸움 한가운데에 끼게된 장석민이,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가끔은 자하르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어쨌든 잘 해결되어 가고 있으니 다행이네요.」

자하르는 앞에서 떠들고 있는 장석민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빨리해경되어야 저도 집으로 갈 수 있고……,」

거기까지 말을 해놓고 장석민은 슬쩍 자하르의 눈치를 살폈다.

「……보내 주실 거죠?」

다시 확인을 한다. 불안이 마음속에서 머리를 쳐든 모양이었다.

「보내야 하죠.」

대답하는 자하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눈을 반쯤 내리감은 채로 그는 장석민의 목덜미를 내려다보았다. 아까와 다른 의미로 묵직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고국으로 돌아가신다면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

자하르의 물음에 장석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관절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곳에서의 생활과 많이 다르실 텐데요.」

「……다르기는 하지만,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 그렇게 못 사는 게 아닌데요.」 

자하르가 그러시겠죠, 하고 대답했지만 마지못해 답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 가서 가난하다고 무시당해본 적 없는 장석민은 약간 울컥해서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내뱉고 말았다.

「여기서도 썩 그렇게 호화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 데요.」

말고삐를 쥐고 있던 손이 슬쩍 뒤로 움직였다. 라이언의 걸음이 멈추었다. 달칵, 말발굽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장석민의 심장도 함께 멈추는 듯했다.

「지내시는 데 불편함이 있으신가요?」

장석민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전의 처소도 깨끗하고 괜찮았지만 리문은 그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최고급 침구와 가구들은,일류 호텔을 뻔질나게 드나든 장석민조차 본적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허름하다고 느끼신다니,──뭐가 문제인 건가요?」

말투는 부드럽고 조곤조곤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비난은 날카로웠다.

「딱히 문제는 아니고,…….」

자하르가 다시 고삐를 가볍게 흔들었다. 라이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그, ……침대가 좀 안 맞아서 허리가 아프나, …….」

무슨 핑계라도 대야 했기에 장석민은 매일 밤 자신을 단잠으로 이끌어 주는 훌륭한 침대를 팔았다.

「알겠습니다.」

「…….」

괜히 침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장석민은 그래도 나름 쓸 만해요. 쿠션도 좋고 튼튼하고, 하면서 웅얼웅얼 말을 이어갔다. 자하르는 다시 알겠습니다. 하고 대꾸할 뿐이었다.

한동안 말 없는 승마가 이어지자 장석민은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자하르를 불렀다.

「그런데,이렇게 계속해도 되는 건가요?」

「뭘 말입니까?」

「말 타고 돌아다니는 거요.」

「제가 쟝에게 내리는 상입니다. 상관없습니다.」

내가 상관이 있어서 그래, 내가.

「……누가 보고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내면 어떻게 합니까.」

남자 둘이 한 안장을 타고 승마를 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한 그림이었다.장석민에게는 자하르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너무 멀지도 않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게.

「쟝과 제가 벌거벗고 침대 위에서 뒹구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이상,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아닙니다.」

「그래요, 이미 뒹굴었지요, 두 번이나 질펀하게.」

자하르의 웃음소리가 나른하게 이어졌다. 목소리로 능욕당하는 새로운 경험에 장석민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제가 쟝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어깨에 말라쿤을 얹은 채 다니던 아나크 왕을 봅니다.」

「저는 새가 아니잖아요.」

「저도 아나크 왕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산뜻하다. 장석민은 자하르가 왕이 된다면 아나크 왕 이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왕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정치는 역시 사기꾼이 해야 제맛이지.

「그런데 말라쿤은 왜 아나크 왕을 돕기 시작한 건가요?」

「전설의 신수(神數)였던 새가 신의 목소리를 듣고 아나크 왕을 도우러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말라쿤은 그럼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나크 왕과 말라쿤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듯 싶었다. 목숨도 구해주고 건국의 기초도 도와주고 장석민의 머릿속에 다정한 아나크 왕과 새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나크 왕이 큰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말라쿤이 제 심장을 내어주어 먹게 합니다.」

「네? 심장을, 새가?」

「그걸 먹고 아나크 왕은 젊음을 되찾아 다시 몇백 년간,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먹었어요? 그걸 줬다고 또 먹어?」

「그럼 안 먹습니까.」

장석민이 허, 하고 기가 차다는 듯이 숨을 뱉었다. 타르카 왕국에서 성군으로 칭송받는 아나크 왕이 한순간에 장석민의 안에서는 새 심장을 뜯어먹는 나쁜 놈으로 추락했다.

「──너무 하다. 새 불쌍하다. 그게 약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걸 먹습니까.……, ……설마. 저 먹지는 않으실 거죠?」

덜컥 밀려든 불안감에 장석민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자하르가 눈매를 접으며 글쎄요,하고 대꾸했다.

「하하하. 설마, 그 새를 먹으면 왕이 된다든가.──아니에요.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제가 말을 해놓고도 너무 끔찍한 장면을 떠올렸는지 장석민이 몸서리를 쳤다. 자하르의 시선이 장석민의 어깨에 닿았다.

「그러고 보니 말라쿤을 저도 먹어보긴 했군요.」

장석민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자하르가 장석민이 이렇게 흠칫, 흠칫. 몸을 떠는 게 마음에 들었다. 제멋대로 굴 때는 앞뒤 분간 없이 뛰어다니다가, 손에 넣으면 몸을 작게 떠는 것이, 작은 동물 같았다. 계속 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장석민이 손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뒤틀렸다.

「저도 그럼 말라쿤을 먹었으니 왕이 되겠군요.」

자하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석민이 몸을 앞쪽으로 최대한 움직이며 고개를 떨구었다. 남색 옷깃 안으로 보이는 깨끗한 피부가 자하르의 시선을 끌었다.

「……저기,…….」

장석민의 입술이 달싹거리다 어렵게 말문을 떼었다.

「네」

「……뭐가 닿는,……,……아닙니다. 착각일,──.」

장석민의 몸이 긴장해 단단하게 굳는 것이 보였다. 자하르가 고삐를 잡아끌면서 장석민의 몸을 바싹 끌어안았다. 아래가 밀착되자 장석민의 어깨가 나무토막처럼 굳었다.

「쟝.」

자하르가 장석민을 불렀다. 네. 하는 조그만 응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쟝이 좋아하는 걸 했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언제──,──!」

「꽉 잡으세요. 조금 먼 곳으로 갈 겁니다.」

자하르가 고삐를 단단히 쥐고 발로 말의 배를 걷어찼다. 라이언이 자하르의 발짓에 대답하듯 푸르르, 거친 울음소리를 냈다.

장석민이 히익, 하고 숨을 들이켠 것과 동시에 라이언은 내달리기 시작했다.

「……왜,──.」

장석민이 간신히 내뱉은 한마디였다. 자하르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생각하다 대답했다.

「섰는데, 넣을 구멍이 지금 여기밖에 없지 않습니까.」

자하르의 손가락이 한층 더 깊은 곳을 더듬었다. 장석민이 밭은 숨소리를 내며 자하르의 옷자락을 쥐었다. 손으로 자하르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장석민의 몸을 바싹 끌어안고 손가락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장석민은 입술을 깨물면서 대체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인가에 대해 반추해보았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하르가 말을 타고 달려온 곳은 초지에서 한참 떨어진 숲이었다.

먼저 말에서 내린 그는 장석민을 내려준 후에, 라이언을 나무에 묶어 놓았다. 사막에 무슨 숲이 있는 건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던 장석민은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커다란 정원임을 깨달았다.

여긴 어딘가요.

그렇게 묻는 자신의 목소리에 불안함이 묻어있음을, 장석민은 알고 있었다. 자하르는 라이언이 움직이지 ㅇ낳도록 가죽끈을 묶어놓은 매듭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뒤쪽의 정원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한마디가 장석민의 일렁이던 불안에 불을 붙였다.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입니다.

장석민은 웃으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물론 세 걸음도 걷지 못하고 자하르의 손에 붙들렸다. 그리고 지금 이 꼴인 것이다.

「대체 왜.……, 아.──.」

「말씀드렸잖습니까. 마땅히 넣을 곳이, 이것뿐이라고.」

아래를 파고든 손가락이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개수를 늘렸다. 장석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하르를 노려보았다.

「……, ……다른,…….」

안을 더듬던 손가락이 힘을 주어 다물려 있던 구멍을 벌렸다. 장석민의 목에서 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은,딱히 생각나는 구멍이 없군요.」

자하르의 음성은 평온하리만치 담담했다. 남자의 아래에 손가락을 넣고 휘젓고 있는 파렴치한이라고 믿기 힘든 음성이었다.

장석민은 눈을 치떴다.

구멍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그렇지만, 자하르의 주변에는 그를 상대 할 만한 사람이 수십 명이나 있었다.

「다른 후궁들도,──아, ──!」

손가락이 어느새 세 개로 늘었다. 장석민은 다리에 힘을 주어 자하르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손가락이 깊숙이 들어와 아래를 찔벅거리며 더듬었다.

「다른 후궁들에게, 박으라──?」

자하르의 잇새에서 웃음소리 흘러나왔다. 장석민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믈라쿤이 끝났는데 굳이 자하르가 하젤의 신문을 유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현재 자하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그런 것이지 일이 정리되면 그도 비를 맞이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딱히, 그럴 생각도 들지 않고. 그리고──.」

장석민의 희게 질린 얼굴을 자하르는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팔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도, 아직 상처 자국이 남아있는 목덜미도.

잔뜩 움츠린 어깨와 아래를 쑤셔댈 때마다 휘청거리는 다리도,

시선으로 하나씩 핥으며, 자하르는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묵직한 충동을 느꼈다.

「읏──. ──!」

손가락에 힘을 주어 안쪽을 긁자 장석민의 몸이 튀어 오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장석민의 몸이 거의 자하르에게 안기게 되었다. 자하르의 눈이 길게 웃었다.

「무엇보다, ──그걸 보고 싶거든요.」

「뭘.……읏.」

자하르가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의 앞섶을 헤집어 흉포하게 성이 난 살덩이를 끄집어냈다. 바로 앞에서 남자의 성기를 보게 된 장석민의 낯이 대번에 구겨진다.

「쟝의 느끼는 표정 말입니다.」

「──!」

「요즘 저도 아래를 풀지 못해서, 슬슬 짜증이 나던 참입니다.」

좁은 구멍을 더듬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장석민이 가느다란 신음을 내며 앞으로 무너지듯 넘어졌다. 자하르가 이런, 하고 장석민의 몸을 붙들었다.

「지금부터 시작인데 벌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뭘.…….」

「두 번이나 해봤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시는 건, 역시 흥분을 돋우기 위함인가요?」

장석민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넣지는 않으실 거죠?」

이상한 분위기로 흘렀을 때 장석민은 꼼짝없이 남자의 아래를 빨겠구나,싶었다. 그런데 손가락이 아래를 더듬고 그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슬슬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하하하.」

자하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이마를 감싸 쥔 채 웃었다.

「손가락을 넣고 쑤신다고 제 좆이 흥분하지는 않습니다.」

「……!」

거짓말, 아래를 그렇게 잔뜩 세우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기대가, 아래를 세우는 겁니다.」

자하르의 손바닥이 장석민의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장석민이 고개를 내저었다.

「싫,──싫습니다.」

직접적인 거절이었다.

욕망으로 번들거리던 자하르의 눈빛이 서늘하게 굳었다. 장석민의 입에서 싫다는 말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자꾸,……안 하신다고 하시고, 왜…….」

장석민의 까만 눈동자에 불안함이 치밀어 오른다. 한 번은 사고였다고 생각하고 치워버리고 두 번은 재수 없는 일로 넘겨버린다 해도, 세 번은 아닌 것이다.

「……안 하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장석민의 말에 자하르가 입매를 굳힌다.

「분명히, 한 번 한 상대하고는, 물려서 안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벌써, 이게……」

「세 번째가, 되겠지요.」

자하르가 손으로 장석민의 턱을 쥐어 시선을 마주친다. 어둠 속에서 자신만을 오롯이 바라보고 있는 회색 눈동자와 마주하자 장석민은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손가락이 잘게 떨고 있는 장석민의 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이상하긴 합니다.」

자하르가 말을 이었다.

「질린다는 생각보다──.」

「──.──.」

「과연, 세 번을 하고 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먼저니.」

자하르가 장석민의 허리를 안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등 뒤에 닿는 나무가 장석민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

「싫──,──.」

허벅지를 벌리고 안쪽으로 단단한 살덩이가 파고들었다. 고통으로 장석민의 몸이 순간, 움츠렸다. 자하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힘 빼세요.」

그가 장석민의 엉덩이를 쥐고 옆으로 잡아 벌리며, 속삭였다.

「조금만 넣으면, 다 들어갈 거예요.」

「이,──,──.」

사기꾼도 이런 사기꾼이 없었다. 지금 살덩이의 끝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조금만 넣으면 다 들어간다니. 상대가 일국의 왕자니 쌍욕을 하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긴장 풀어요.」

「……그게, 가능──.」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면,──역시 긴장됩니까.」

장석민이 윽, 하고 이를 사리물었다. 벌어진 틈으로 단단한 살덩이가 한 치쯤,들어온 것이다.

「어떤, 기분일까요.」

자하르가 장석민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채로 속삭였다.

「좋아하는 사람과 성교를 하는 건, 어떤 기분입니까.」

장석민은 울화가 치밀었다. 벌써 남자의 성기가 반쯤, 안쪽으로 들어온 채였다.

「쟝이 설명해주세요.」

「──분명한 건,──.」

장석민은 앙다문 잇새로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자하르 왕자미은,……평생 모를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군요.」

자하르가 장석민의 허리를 붙들고 강하게 자신의 성기를 치어 올렸다.장석민이 악,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눈앞에서 별이 번뜩였다. 눈을 깜빡거리자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몰라도,상관없습니다.」

자하르가 나른하게 웃었다.

장석민은 그가 지금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하르는 장석민의 다리를 벌리게 해서 자신의 허리에 얹었다. 선 채로 장석민의 몸을 받치고서는 그는 허릿짓을 시작했다. 장석민의 입에서 윽, 윽.하는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자하르가 퍽, 하고 허리를 치받았다. 살덩이가 내벽 안으로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렸다. 자하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목 안쪽에서 만족스러운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끝내주는 걸, 아는데, 상관이겠습니까.」

몸의 무게가 더해져 자하르가 허리를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내벽에 전해지는 자극이 엄청났다. 금세 장석민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빠듯하게 벌어진 아래가 가득 들어찼다. 남자가 추삽질을 거듭할수록 두꺼운 살덩이의 무게가 더해갔다. 인간적이지 않은 그 크기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아파,……나쁜. ……개, 쌍, ……."

그가 알아듣지 못한 한국어로 장석민은 솔직한 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자하르가 입매를 휜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장석민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자하르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쟝이 사용하는 언어는,──욕이 선정적으로 들리는군요.」

자하르가 장석민의 등을 나무에 기대게 했다. 그러고는 빠르게 추삽을 거듭했다.

「아! 읏, 아──.」

아슬아슬하게 벌어진 틈 사이로 드나드는 성기가 안쪽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느 순간, 장석민의 몸이 움칫, 하고 움츠러들었다.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장석민이 움직이는 모양을, 자하르는 바로 알아챘다. 그의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장석민은 저도 놀란 듯이, 눈을 크게 껌뻑였다.

자하르가 다시 허리를 오렸다. 같은 부분을 성기의 끝이 쳐올리자 장석민의 몸이 다시 퍼뜩, 움직였다. 고통에서 비롯되는 반응이 아니었다. 자하르의 입가에 민틋한 웃음이 걸렸다.

「──좋습니까?」

자하르가 물었다. 장석민은 다급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직후에 아래를 자극하는 이상한 감각에 장석민은 숨을 삼키며 자하르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무서웠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장석민은 잡히는 대로 움켜쥐고 이해하지 못할 감각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살이 적당히 붙은 탄탄한 엉덩이 사이로, 굵직한 남자의 성기가 빠르게 출입을 거듭했다. 장석민의 입에서 가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아, 하, 으──!」

아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몸으로 열기가 퍼져 나갔다. 장석민의 숨결에도 열기가 묻어났다. 자하르가 장석민의 어깨를 붙들고 격렬하게 움직일 때마다, 벌어진 아래가 움찔거리며 성기를 조이기 시작했다.

자하르의 입에서도 어느새,웃음이 사라졌다. 이전에 했던 성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는 거칠게 살덩이를 찔렀다, 빼냈다. 

아찔한 감각이 잇따라 아래를 조여들며 온몸에 퍼져 나갔다.

「아! 으, 아아! 하, 아! 아아!」

장석민이 자하르의 어깨에 매달린 채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냈다. 단정한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어 머리카락이 들러붙었다. 정신없이 흔들리며 필사적으로 옷자락을 움켜쥐는 손이, 자하르를 흡족하게 했다. 

장석민은 미칠 지경이었다. 직접적인 자극이 없었는데도, 아래가 저릿저릿할 만큼 쾌감이 잇달아 퍼졌다.

「아, 아, 으, 하읏, 응, 아──!」

장석민이 소리를 내지를 때9마다 자하르의 눈빛에도 진득한 열기가 어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벌린 채, 달뜬 신음을 내는 장석민의 표정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오직 성기로 뒤를 쑤셔주는 것만으로도, 저런 표정을 하다니. 타고난, 몸이었다.

「뒤가, 아주──. 음란하군요.」

자하르의 음성이 장석민의 귀에 닿았다.

「남자의 좆으로. 지금, 느끼고 있는 겁니다.」

「무, ──윽. ──, ──!」

뻣뻣하게 솟아오른 장석민의 성기에서 흘러내린 타액이 자하르의 배에 닿았다.

「읏, ──, 응. ──아!!」

자하르는 장석민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사납게 허리를 움직였다. 자하르의 옷자락이 뜨끈, 하고 젖었다. 장석민이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뜨거운 구멍이 경련하며 한껏 부푼 자하르의 살덩이를 지끈,지끈,씹듯이 조여 댔다. 자하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고조된 흥분에 자하르는 있는 힘껏 다리를 움직여 장석민의 안에 성기를 내리꽂았다.

쾌감을 쥐어짜는 듯한 절정이 찾아왔다.

「──,──.」

깊은 점막 안으로 더운 액체가 와락, 밀려들었다. 자하르가 몇 번 더 허리를 작게 찔러 올렸다. 그때마다 뜨끈한 정액이 장석민의 안을 적셨다.

일순, 멈추었던 호흡이 돌아왔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장석민이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자하르의 숨소리도 잦아들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장석민은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눈만 껌뻑거렸다.끔찍하리만치 어색한 침묵을 깨야 한다는 생각에 장석민은 일단 입을 열었다.

「전,…….…….」

머릿속이 텅 빈 상태라 다음 말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자하르가 분명 짓궃은 말을 할 거라 생각하고 장석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자하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그 시선이었다. 열기가 가시지 않은 회색 눈동자로 자하르는 장석민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피부가 따끔할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이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장석민은 등 뒤로 나무가 배기는 것을 느끼고, 설핏 인상을 찌푸렸다.

자하르는 그제야 장석민의 몸을 땅에 내려주었다. 그 바람에 안쪽에 고여 있던 정액이 장석민의 다리사이로 흘러내렸다. 실금을 하는 것처럼, 주르륵 흘러내리는 뿌연 액체에 장석민의 얼굴이 이번에는 하얗게 질렸다.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정액을, 자하르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장석민은 옷자락으로 다리를 가렸다. 사람들 앞에서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수치스러웠다.

「──!」

자하르의 손이 장석민의 옷자락을 쥐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젖혀, 다리를 드러나게 했다.

「뭐, 뭐하시는 겁니까.」

장석민이 당황해 외쳤다. 자하르가 담담한 투로 보는 겁니다, 라고 대꾸했다.

「뭘, 보는 겁니까.」

그렇게 말을 해놓고도 장석민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차마 속을 들여다보는 변태를 대하는 여고생 같은 말투였다. 하지만 자하르가 하는 짓이 지금 딱 그랬다.

「쟝의 구멍에서 제 씨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절경이군요.」

「무슨,…….」

대체 이런 이중인격 변태가 어떻게 성자 소리를 들으며, 지금껏 지내왔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자하르가 장석민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놀란 장석민이 몸을 바르작거리자 자하르가 가만히 있어요. 하고 그의 몸을 숙이게 했다.

「뭐하시는,──!」

아래가 훤히 드러나는 수치스러운 자세에 장석민은 다급하게 자하르를 제지했다.

「도와드리는 겁니다.」

그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왔다. 부은 내벽을 더듬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장석민은 이를 사리물었다. 세 마디쯤, 들어왔을 때 손가락이 원을 그리며 안을 휘저었다.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구멍 안에 고여 있던 정액이 마저, 주르륵 흘러내렸다.그 섬뜩한 느낌에 장석민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칫,긴장했다.

자하르의 손가락이 엉덩이 사이의 입구를 문질렀다. 장석민이 몸을 빼려 했지만 자하르의 손이 그걸 가로막았다.

「입구가 말랑말랑해졌군요.」

「……,대체, 왜…….」

「이번에는 더 쉽게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자하르의 말에 장석민은 제 귀를 의심했다. 원래 섹스를 할 때도 체력적 소모가 심하지만 남자와 하는 섹스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선 채로 하고 난 뒤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만큼 후들거렸다.

「적당히 할 생각이었는데, 질질 정액을 흘리는 꼴을 보니까.──아래가 빠듯하니 아플 지경입니다.」

먹이를 앞에 둔 맹수처럼 나른한 말투였다. 장석민은 고개를 내저었다. 선 채로 한 번 더 했다가는 죽는다. 정말로 죽는다. 커다란 눈에 공포로 인한 눈물이 와락, 맺혔다,

「이번엔, 저 진짜로 못 버팁니다.」

자하르가 낮게 혀를 찼다. 그러고는 장석민의 허리 위에 제 몸을 겹치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럼 문지르기만 하겠습니다.」

「…….」

「문지르는 건, 괜찮지 않습니까?」

전기톱 살인마인 전과 18범과 결혼할 것인가 연쇄 살인범인 전과 13범과 약혼할 것인가. 어쩔 수 없다. 이혼보다는 파혼이 나은 법.

장석민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문지르기만.」

자하르가 장석민의 손을 나무에 대게 하고 제 손을 그 위에 겹쳤다. 뒤에서 느릿하게 허릿짓을 할 때마다 아래의 구멍에 남자의 성기가 문질러졌다. 장석민은 몸을 움찔거리며 긴장했다. 등 뒤에서 남자의 낮은 한숨이 들린다. 그가 흥분하고 있는 증거가 여실히 몸에 닿았다. 단단하게 부푼 살덩이 끝으로 구멍을 이리저리 문지르고 비비며, 자하르는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구멍에 남자의 것이 비벼지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한심했지만 장석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넣지는 않는다고 했으니 다행, ……!

「──!」

장석민이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이미 결합이 이루어진 아래는 빠듯하게 맞물린 상태였다. 자하르가 짧게 웃었다.

「분명히 안 넣는다. 문지르기만 한다고──, 읏──.」

「너무하시는군요.」

「뭐가, 너무합, …….」

「구멍을 그렇게 벌름거리고 있는데 문지르기만 하라니──.」

그렇게 묻는 자하르의 목소리가 되레 화가 난 투였다. 장석민이 그런게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물으려 하는 순간, 자하르가 퍽 하고 세게 박아 울렸다. 장석민은 눈앞이 시큰했다.

「──,──.」

자하르가 탁한 숨을 토했다. 안쪽으로 살덩이를 모두 밀어 넣은 것이다.

그가 죽이는군,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장석민은 아래의 고통 때문에 듣지 못했다.

「쟝의 성기가 내 것을 물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장석민이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무슨 소리를, …….」

자하르가 장석민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

「남자의 좆을 넣고 쑤셔주면 좋아서 벌름거리는 곳은, 성기입니다.」

그가 느릿하게 성기로 깊은 곳을 문질렀다. 장석민의 입에서 새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 이건, 성기란 말입니다. 여자의 질처럼, 남자의 성기를 아주 찰지게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니, ……읏, 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남자의 뒤에서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장석민의 눈앞에 별이 번뜩번뜩 점멸을 반복했다. 힘을 주는 대로 흔들리는 장석민의 몸을 내려다보며 자하르가 감질을 느꼈다.

욕망이 고조될수록 뱃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묵직한 감정이 무게를 더해갔다. 자하르가 장석민의 허리를 움켜쥐고 있는 힘껏, 성기를 찔러 올렸다.

「아! 아아! 앗, 아아──!」

힘없이 흔들리는 몸은 손을 대는 곳마다 열기가 퍼졌다. 어디를 만져도 장석민은 자지러지는 신음을 냈다. 온몸의 성감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자하르는 이를 사리문 채로, 있는 힘껏 구멍에 살덩이를 찔러 넣었다. 장석민이 먼저 절정에 다다랐다. 비명을 내지르며 온몸이 경련했다.

장석민의 허벅지 아래로 터져버린 욕망이 줄줄 흘러내렸다.

더할 나위 없는, 절경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래가 터질 것처럼 선정적인 모습이었다.

절정과 함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몸이 남자의 부푼 성기를 짓씹듯이 조였다. 자하르가 탁한 숨을 내며, 장석민의 몸 깊숙한 곳에 토정했다. 울컥, 울컥, 몇 번이고 계속 허리를 추어올리며 뜨끈한 욕망을 가득 부었다.

「──. ──. …….」

눈을 가늘게 뜨고 가쁘게 숨을 고르던 자하르의 팔 위로 장석민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예상대로였다. 결국에, 장석민은 버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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