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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2화 (2/139)

2화

1

―어서 오십시오! 상위 차원의 존재여! 우리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폭죽이 터지고 팡파르가 울렸다. 온 세상이 무지갯빛이었다. 날아다니는 꽃가루가 하도 반짝여 눈이 아플 지경이다.

눈을 비빈 순간 ㅇㅇ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상한 꿈을 꾼 거 같은데…….’

눈을 껌벅이며 꿈의 내용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뭔가, 환영한단 얘기를 들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아무튼 ㅇㅇ는 몸을 일으켰다. 천장이 낯설었다. 늘 잠들던 제 방이 아니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지?

의문을 품자마자 깃털 덩어리를 만난 일이 기억났다.

그렇다면 여기는 정말 누나가 쓴 소설 속일까.

ㅇㅇ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살폈다.

천장은 높지 않고, 바닥도 좁다. 있는 가구라곤 침대뿐인데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모포 한 장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진 않은데 꼭…… 감옥 같네.’

일단 ㅇㅇ는 바깥을 살펴보려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이라고 해도 익히 아는 유리창은 아니다. 천장 바로 아래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기에 대강 창이라 칭했을 뿐이다. 빛은 거의 안 들고 환기 정도나 가능하게 생겼다.

창은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내다보이는 높이였다. 창문 대신 창살로 반쯤 막힌 바깥을 간신히 내다보니 듬성듬성 잔디가 깔린 땅이 보였다. 사람이나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있는 정보는 여기가 지하라는 것 정도다.

‘냄새가 쿰쿰하더라니.’

ㅇㅇ는 지하실이 있는 집에 산 적이 있다. 아무리 자주 청소를 해도 지하실에서는 늘 쿰쿰한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하인 걸 알고 보니 더 감옥 같은데?’

누나가 쓴 소설에서 누나가 가장 아끼는 인물이 왜 감옥에 있지? 목가적이고 따스한 소설일 거라고 멋대로 짐작했는데 아무래도 틀렸을까.

‘분명 누나가 그랬는데.’

무슨 글을 그렇게 쓰냐고 물을 때마다 눈을 왼쪽 오른쪽으로 바삐 굴리면서 말하길.

「뭐랄까. 운명을 거슬러서라도 반드시 행복해지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표현이 애매하긴 하나 아무튼 평화로운 내용이란 얘기 아닌가. 소설 주인공에게 으레 주어지는 고난과 역경을 모두 거스르고 안전한 선택만 할 거 같고.

짧은 회상을 마친 ㅇㅇ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어두침침해서 자세히 살필 수는 없지만 ㅇㅇ가 들어온 몸은 남자였다. 여자였다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다행이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얼굴이며 팔이 매끈매끈했다.

눈높이로 추측건대 키는 꽤 큰 편. 성장기가 거의 지났다 치면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정도로 짐작하면 될까. 원래 ㅇㅇ의 나이가 스무 살이었는데 큰 차이는 나지 않을 성싶다.

‘상태는 어떻지.’

허기는 심하지 않다. 갇힌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일까.

그럴듯한 추측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방 안에 화장실이 없었다. 사람을 오랫동안 가둬 둘 만한 곳이 못 되었다.

아니면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곧 끔찍한 허기가 몰려올지도 모른다.

‘아, 갇혀 있긴 한가?’

감옥같이 생겨서 당연히 갇혀 있다고 생각해 버렸다. ㅇㅇ는 일어나 문을 찾았다. 곧 문을 찾았지만 열지는 못했다. 문고리가 없었다. 잠금장치와 문고리 모두 바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갇혀 있는 게 맞았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하던 생각을 이어 나갔다.

작가가 가장 아끼는 인물, 아마 주인공이겠지. 그런 주인공이 시작부터 감옥에 있다는 게 무슨 뜻일까. 목가적이고 따스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

물론 감옥에서 시작한다고 불행한 주인공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감옥에 갇히지만…….

‘아니, 복수에 성공했다고 안 불행한 게 아니지. 복수할 일이 생긴 게 이미 불행이지.’

일단 누군가를 만나거나 뭔가를 보지 않고서는 더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 너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 ㅇㅇ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혹시 그냥 지나가 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인기척은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어두워서 여태 발견하지 못했는데 문에 조그만 창이 하나 있었다. 드르륵, 소리가 나더니 손바닥만 한 구멍이 생겼다. 좁아서 너머의 사람을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그래도 눈 정도는 보였다.

“새틴.”

문 너머의 낯선 사람이 말했다.

‘저게 내 이름인가?’

그리 생각하면서도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가 있는 표현일 수도 있으니.

“새틴, 왜 대답이 없느냐.”

아무래도 제 이름이 맞는 모양이다. 이제 ㅇㅇ는 새틴이 되었다. 새틴은 문으로 다가가며 대답했다.

“네…….”

“반성이라도 했느냐?”

반성이라. 새틴은 아까 한 추측을 수정했다.

여기는 감옥이 아니다. 비슷한 용도기는 해도. 집단생활을 하는 시설의 반성실 같은 곳이겠지. 굳이 반성했냐고 묻는 이유는 반성했으면 꺼내 주려는 거고.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반성했다고 하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좋을까.

‘근데 누나 취향이 이랬나?’

요즘 유행하는 빙의물에서 주인공은 주로 망나니 황족이나 귀족가의 천덕꾸러기 자제처럼 귀한 신분임에도 괄시받는 인물에 빙의한다.

그런 인물로 깨어나면 갑자기 기억이 안 난다고 해도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다. 도련님이 이상해졌습니다! 아가씨가 이상해요! 이러면서 하인이 뛰어나가면 곧 가족들이 몰려오고 그들이 걱정하는 말을 들으며 주인공은 자기가 어느 소설에 빙의했는지 알아차린다.

내용을 아는 소설에 빙의했으니 앞으로의 일은 일사천리다. 더는 기억 상실인 척할 필요도 없다.

일어날 사건을 미리 해결하고, 사이가 좋지 않던 인물과의 관계도 호전. 재산 축적이며 명성을 쌓기도 어렵지 않다. 쾌속 사이다 전개다.

하지만 그 전개를 새틴이 따라가긴 아무래도 어렵다.

‘난 누나 소설을 안 읽었으니까…….’

내용을 모르는 소설에 들어오는 건 너무 무모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이렇게 반성실에 갇혀 있는 걸 보면.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반드시 행복해진다고 하지 않았나. 그 과정에 약간 불편한 일은 있을지 모르나, 설마하니 작가가 가장 아끼는 인물이 내내 진창을 구르기야 하겠는가.

ㅇㅇ는 누나를 잘 안다. 누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깃털 덩어리도 그러지 않았던가. 상위 차원에 오르는 존재는 아주 드물다고. 상위 차원이 뭔진 잘 모르겠지만.

“대답하지 않는 건 반성하지 않았다는 뜻이냐?”

생각이 길어지자 문밖의 사람이 다시 묻는다. 새틴은 일단 입을 뗐다.

“제가…….”

짧은 틈을 타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지요?”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하지. 당장의 난처함을 모면하려다가 나중에 더 곤혹스러운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저를 새틴이라고 부르시는데, 그게 제 이름인가요?”

새틴은 어떻게 해야 더 그럴듯한 기억 상실 환자처럼 보일지 고심했으나 답이 없었다. 기억 상실은 흔한 병이 아니니 저 사람도 지금껏 본 적 없겠지.

“그쪽은 누구세요? 절 여기서 꺼내 주실 수 있나요?”

연달아 이어지는 질문에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새틴은 좁은 창에 바짝 붙어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어두워서 눈의 색깔은 잘 보이지 않지만 아무튼 눈썹 아래가 움푹 들어간 모양으로 보아 동양인은 아니었다.

하기야 새틴이라는 이름부터 한국인 같지 않았다.

누나는 출퇴근길에서 웹소설을 보는 취미가 있었다. 간혹 재미있는 게 있으면 추천해 주기도 했다.

‘판타지를 좋아했으니 판타지를 썼나 보네.’

나가면 현대 문물 전파나 해 볼까. 두유 노 김치?

새틴이 실없는 생각을 하는데 덜컥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새틴은 뒤로 물러났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문 너머의 사람은 나이가 꽤 많았다. 최소 육십 대, 어쩌면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 희게 센 머리를 보면 나이가 많은 건 분명한데 얼굴만 봐선 잘 가늠되지 않았다.

‘완전히 서양인 같은 외모는 또 아니네.’

서양풍 판타지는 아주 예전부터 유행했고 지금도 드물지 않지만 진짜 서양, 그러니까 중세 유럽 배경의 소설은 거의 없었다.

한국인이 상상하는 판타지 소설에는 근대 유럽 수준의 기술력과 조선 왕정의 정치 체계, 현대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말 그대로 판타지다. 등장인물들의 외모도 완전한 서양인이 아니라 동서양이 섞인 외모를 상상한다.

누나도 으레 그런 공식을 따른 모양이다.

‘내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새틴은 무심코 얼굴을 더듬어 만지다가 손을 내렸다. 문밖의 노인이 눈썹 사이를 살짝 찡그린 채 새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심스럽겠지.’

하루아침에 기억을 잃었다고 하면 누가 곧이곧대로 믿을까. 노인이 의심스러워해도 새틴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다고 없던 기억이 생겨나진 않으니 계속 우길 거지만.

“정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

“그건 아니에요…….”

새틴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낯가리는 아이 흉내를 냈다. 실제로도 낯을 가리는 편이었는데 여기는 소설 속이라 생각하니 왠지 좀 대범해져서 흉내를 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에 관한, 그런 기억을 잊어버린 거 같아요. 이렇게 말도 하고 물건들의 이름도 아는데 제가 누군지, 그리고 그쪽이 누군지…….”

새틴은 어물어물 대답하며 열심히 쭈뼛거렸다. 그러면서도 노인의 행색을 살피는 건 잊지 않았다.

체격은 보통이고 키는 새틴보다 약간 작다. 얼굴은 인자해 보인다. 인상을 쓰고 있는데도 사납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는 감옥인가요? 제가 죄를 지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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