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요 며칠 새틴은 케인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캐묻기가 여의찮았다. 새끼 고양이라는 말이 어지간히도 불쾌했던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인상을 썼다.
‘역시 카라칼이 더 어울리겠어.’
새틴은 시답잖은 생각을 이내 그만두었다. 케인이 닮은 동물이 고양이인지 카라칼인지, 그도 아니면 스라소니인지는 지금 문제가 아니다.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새틴이 케인을 의심하게 된 데는 근거가 있었다. 밤마다 케인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정확히 말하면 케인은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자지 않았다. 졸음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졸려 눈을 비비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뭘 기다리는 건가?’
덩달아 새틴까지 잠들지 못하고 케인의 동태를 살피다 느지막이 잠들었더니 몹시 피로했다. 별 소득도 없는데 피로하다니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케인이 먼저 곯아떨어졌다.
‘어, 자네?’
컴컴해서 케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고 알았다.
누나와 함께 살기 전 ㅇㅇ는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아버지를 피하려 어설프게 자는 체하다 들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진짜 잠든 사람처럼 보이는지 도가 텄다.
지금 케인은 확실히 잠이 들었다. 무얼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 바깥에서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새틴도 이만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 끼익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앞방인가?’
몇 번인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기억했다. 이쪽 복도에 있는 여섯 개의 침실 중 유난히 문소리가 큰 방이 두 개 있었다. 앞방과 계단 바로 옆의 방. 경첩이 뻑뻑한 탓일 테다.
계단 옆방이라면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진 않겠지. 새틴은 아마도 앞방에서 난 소리라 짐작하고 조심스레 문으로 다가갔다. 어쩌면 여태 케인이 기다리던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지.’
이 방은 경첩이 부드러워 문을 열 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새틴은 문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누구지?’
램프를 든 아이가 저 앞에서 걷고 있었다. 불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니 누구인지 바로 분간할 수 없었다. 앞방에서 지내는 아이 중 하나일 테니 팀 아니면 로빈이다.
새틴은 아주 조심스레 방에서 나왔다. 새틴은 밤눈이 특별히 밝지 않지만 ㅇㅇ는 어둠 속을 걷는 데 익숙했다.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고 아이의 뒤를 쫓았다.
아이는 친구들의 방을 찾거나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고 직진했다.
‘저쪽은 선생님의 연구실인데.’
선생님의 연구실과 서재, 사무실과 침실. 복도 이편이 모두 아이들의 방이듯 저편은 모두 선생님의 방이었다.
이 야심한 시각 저 아이는 무슨 일로 선생님의 공간에 찾아가고 있을까.
아이는 연구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을 향해 몸을 돌린 모습을 보고서야 누구인지 알았다.
‘팀이구나.’
새틴은 처음 팀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팀은 궁금한 게 있다며 선생님을 찾아왔는데 이후에 보니 팀은 그다지 학구적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바깥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선생님을 찾아와 질문을 한 데에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하면 너무 나간 생각일까. 중학생 때 예쁜 교생 선생님을 보러 교무실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완전히 헛된 생각 같진 않았다.
‘의미야 다르겠지만.’
어린애들은 가까운 어른의 애정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ㅇㅇ도 어릴 때는 그랬다. 그런 아이들은 얼토당토않은 지시에도 고분고분 따른다. 팀도 그래서 아이들 모르게 선생님을 찾았을지 모른다.
팀이 아주 조심스레 노크하자 곧 문이 열렸다.
“왔느냐.”
왜 왔느냔 질문이 아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이 시간쯤 만나기로 미리 얘기가 돼 있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팀을 안으로 들이고 문을 닫았다.
‘뭘 하려는 거지.’
새틴은 잠시 고민했다. 이만 침실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지, 아니면 팀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지.
내일 아침 팀에게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면 순순히 알려 줄까. 알려 줄 의무가 없는 일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뗄 가능성도 있다. 구태여 이 시간에 약속을 잡은 건 다른 아이들에게 비밀로 하고 싶어서일 테니.
호기심이란. 새틴은 작게 혀를 차고 발을 옮겼다.
팀이 들어간 연구실 문에 귀를 바짝 붙였다. 무어라 웅얼대는 소리는 들리나 정확히 분간은 되지 않았다. 몇 개의 단어만 간신히 잡아챘다.
‘마법 얘기를 하는 거 같은데.’
마법이 어쩌고, 마력이 어쩌고. 새틴이…….
‘방금 내 이름 나오지 않았나?’
더 바짝 귀를 대 보았지만 그런다고 소리가 커지진 않았다.
며칠 전 새틴이 로저스와 나눈 이야기를 케인은 서고 안에서도 다 들었다. 그쪽에 비해 이쪽의 방음이 훨씬 잘되는 이유가 있을까.
‘새어 나가면 안 될 이야기를 할 일이 더 많아서?’
새틴은 픽 웃었다. 지금 이렇게 엿듣는 제 모습을 생각하면 과연 합리적인 추측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말소리가 끊기고 문과 바닥, 벽의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몹시 기이한 빛이었다. 주변을 밝히지 않고 오직 홀로 빛났다.
‘……마력이다.’
무언지는 모르나 안에서 마법을 쓰고 있었다.
새틴은 선생님이 시험 삼아 보여 주었던 불꽃 마법을 떠올렸다. 그때 보인 빛은 아주 희미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나 강렬하다. 막힌 공간을 채우고 바깥으로 새어 나올 정도다.
대체 무슨 마법을 쓰는 거지.
새틴은 일단 빛을 피해 물러났다. 급히 움직이다 보니 복도 안쪽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낭패였다. 이러면 선생님이 나왔을 때 몸을 숨길 곳이 없는데.
‘마력에 닿아도 되나? 밟고 지나가면 눈치채려나?’
새틴이 걱정을 하는 동안에도 빛은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불길할 정도로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망할!”
작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선생님의 노성이었다. 새틴은 움찔 놀라 벽에 바짝 붙어 섰다.
서서히 마력의 빛이 희미해지다 벌컥 문이 열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디로 몸을 숨길 새도 없었다.
‘저게 뭐야.’
새틴은 선생님이 커다란 자루를 짊어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자루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아까 제 발로 들어간 팀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의 어깨에 축 늘어져 있었다.
힘을 세게 만들어 주는 마법은 없는지 선생님은 다소 버겁게 팀을 짊어진 채 계단으로 향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틴이 있는 쪽은 보지 않았다.
‘운이 좋았네.’
아까는 저편으로 몸을 피하지 않아 낭패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실수가 행운으로 느껴졌다. 저편으로 몸을 피했더라면 곧바로 들켰을 테다.
선생님은 경황이 없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뛰듯이 내려갔다. 새틴도 그 뒤를 쫓았다. 선생님은 1층 서쪽 복도로 들어섰다. 교실과 위생 시설들, 그리고 지하실이 있는 쪽이다.
‘지하로 가는 건가.’
설마하니 이 시간에 쓰러진 아이를 데리고 교실로 가진 않겠지.
예상대로 선생님은 복도를 빠르게 지나쳐 지하실 계단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는 하나뿐이라 더는 쫓아갈 수 없었다.
새틴은 일단 선생님이 다시 나올 때를 대비해 목욕탕 안에 몸을 숨겼다. 목욕탕은 습기 때문에 사용 중이 아닐 때는 늘 문이 열려 있었다.
복도에서 보이지 않도록 문 뒤에 숨어 기다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조용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실루엣이 목욕탕 앞을 휙 하고 지나쳤다. 새틴은 재빨리 바깥을 내다보았다.
‘……팀은 어디 갔지?’
얼핏 보았지만 선생님의 어깨에 아무것도 없다는 건 분명히 확인했다. 선생님은 순식간에 복도를 빠져나가 사라져 버렸다.
새틴은 잠깐 뜸을 들이다 목욕탕을 나왔다. 선생님이 사라진 방향이 아닌 지하실 쪽으로 향했다.
‘가둬 둔 건가?’
새틴이 참회실에 갇혔던 일을 두고 아이들은 새틴이 선생님께 잘못을 해서 갇혔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팀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정신을 잃고 있던 이유는 또 뭐고.
‘팀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지하로 내려가며 새틴은 어떤 냄새를 맡았다. 지하실의 익숙한 곰팡이 냄새가 아닌, 매캐한 냄새.
‘탄 냄새 같은데…….’
참회실 안에도 창이 있지만 크기가 작다 보니 금세 환기가 되지 않은 듯했다.
새틴은 눈살을 찌푸린 채 계속 내려갔다. 이윽고 계단의 끝에 이르렀다. 조심스레 벽을 더듬으며 팀이 어디에 있을지 추측했다.
참회실은 총 세 개. 모두 같은 방향에 있다.
첫 번째 문을 더듬어 열고 속삭였다.
“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주 좁은 방이기에 잠깐 주위를 더듬어 보기만 해도 비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방으로 향했다. 그곳 역시 비어 있었다.
가장 안쪽, 마지막 방의 문을 열며 새틴은 저도 모르게 기침을 했다. 다 가시지 않은 연기가 고여 있었다. 전에 새틴이 갇혀 있던 바로 그 방인데 그때와는 다른 냄새가 났다.
‘여기서 뭔가를…….’
연기를 헤치며 곳곳을 더듬었다. 팀을 부르기도 했다. 아무도 없었다.
‘뭐야.’
새틴은 다시 벽을 더듬었다. 때마침 구름에 가린 달이 드러났는지 좁은 창으로 희미한 빛이 들었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팀을 짊어지고 내려가는 모습을 봤는데 정작 내려오니 아무도 없다니.
무심코 시선을 떨어뜨린 새틴은 바닥에서 무언가 발견했다. 하마터면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얼룩이었다. 목탄 따위를 뭉개기라도 한 듯 시커먼 얼룩.
‘저번에도 있었나?’
새틴은 무릎을 꿇고 앉아 얼룩 주위를 손으로 더듬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모양으로 패인 자국이 손끝에 걸렸다. 손잡이 같았다.
‘지하실에 있는 지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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