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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14화 (14/139)

14화

새틴이 미친 늙은이의 주의를 끄는 사이 케인은 참회실로 내려갔다. 대부분 아이들은 바깥에서 놀고 있고, 나머지는 서고나 방에서 공부를 했다.

‘자기 계발을 한다고 뭐가 나아지겠어.’

케인은 회의적이었다.

클로버랜드뿐 아니라 어디에 가도 부모 없는 아이들은 넘쳐났다. 고아원에서 지내다 거리로 나왔다면 그나마 처지가 나은 편이다. 철들었을 때 이미 거리에 있는 아이들도 허다하다.

글자를 읽고 셈을 할 줄 아는 아이라면 그나마 일자리를 구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머리가 좋거나 재주가 있지 않은 이상 나은 대접을 받진 못하겠지. 까막눈에 세 자리 이상 계산하지 못하는 아이와 같은 돈을 받으며 일해야 한다.

‘여분이 있는 부품 같은 처지지.’

얼마든지 대체할 아이가 있는데 무엇 하러 대접을 해 주겠는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괴감만 커질 뿐이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케인은 종종 서고에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복잡하여서 아무 의미 없다 생각하면서도 하고 마는 일들이 있는데 케인에게는 독서가 그랬다.

‘멍청하면 당하고도 모르니까.’

케인은 건성으로 변명하며 지하에 발을 디뎠다.

새틴에게 듣기로는 가장 안쪽 방에서 늙은이가 팀을 죽였다고 했다. 케인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일 처리가 너무 빨랐어.’

팀에게 무슨 짓을 하고, 실패했음을 깨닫고, 뒤처리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매끄러웠다. 참회실은 애초에 그런 용도로 쓰려고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새틴도 그럼 죽을 뻔한 건가.’

원래도 새틴은 종종 밤중에 늙은이의 연구실에 갔다. 아침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은 적은 저번이 처음이었다.

그때 케인은 새틴이 먼저 일어나서 나갔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서로 깨워 줄 만큼 살가운 사이가 아니어서 새틴의 부재도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러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에 갔는데 그곳에도 새틴이 없었다. 마침 아이 중 한 명이 새틴을 찾으니 팀이 대답했다.

「새틴은 참회실에 있대.」

직접 보고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마 늙은이에게 듣고 한 말이었을 테지.

팀은 원래도 늙은이의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늙은이의 환심을 사면 마법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뻔질나게 2층 서쪽 복도를 드나들었다.

‘새벽 내내 가둬 두고, 결국은 데리고 나왔어.’

새틴은 살아서 나왔는데 팀은 그러지 못했다. 무엇이 달랐을까. 전에도 아이들끼리 싸우다 참회실에 갇힌 적이 있다지만 케인은 직접 보지 못한 일은 믿지 않았다.

‘새틴의 말대로라면 시체를 처리하는 곳이야. 여기에 아이들을 함부로 들여보낼 리 없지.’

아이들이 학교에 온 시기는 전부 제각각이다. 학교에 관해 잘 아는 척하는 아이도 캐물어 보면 실은 전해 들은 내용밖에 알지 못했다.

‘아무튼 뭔가 있을지도 모르지.’

케인은 첫 번째 방을 살폈다.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두 번째 방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있었다는 흔적이라곤 없다.

새틴이 말한 마지막 방에 이르러서야 케인은 특이점을 찾았다. 문에 희미한 검댕이 묻어 있었다. 손가락 모양이 찍힌 걸로 봐선 늙은이나 새틴 둘 중 한 사람이 남긴 흔적일 테다.

‘지워 두자.’

그 늙은이가 어설프게 흔적을 남겼을 리 없다. 급하게 나오느라 새틴이 남겼겠지.

소매로 문의 손자국을 지운 후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어두컴컴했다. 작은 창으로 빛이 들긴 하나 방 전체를 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케인은 괜한 데를 뒤적이지 않고 바닥을 살폈다. 매끈하지 않은 바닥은 얼핏 봐서는 평범해 보였다. 손으로 더듬다가 손잡이를 찾았다.

힘을 줘서 들어 올렸다. 유난히 먼지가 인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흙먼지가 아니었다. 닿은 곳을 문지르니 희끗하게 번졌다.

‘재.’

곧 먼지와 재가 가라앉고 숨어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성인 한 명이 간신히 몸을 웅크려 누일 정도의 공간이다. 조그만 아이라면 어렵잖게 들어갈 수 있을 듯하고.

부연 재가 들어찬 자리를 내려다보며 케인은 여기 오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겨울이면 부랑자들의 시신이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나서서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 상태로 시간이 좀 지나면 관청에서 청소부를 보냈다.

청소부들은 시신을 클로버랜드 서문 밖에 있는 구덩이에 모았다. 사람들은 얼어 죽은 들개나 고양이의 시신도 슬쩍 그 자리에 두고 갔다.

시신이 어느 정도 쌓이면 그 자리는 화장장으로 쓰였다. 무수한 시신을 태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법을 쓰면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겠지만 고작 부랑자와 야생 짐승의 시신을 태우는 데 손을 보태는 마법사는 없다. 관청 또한 그런 일로 돈을 쓰지 않고.

타고 남은 재는 바로 그 자리에 매장되었다. 뒤늦게 가져온 시신이 있다면 태우지 않고 그대로 묻는다.

그 광경을 보며 케인은 생각했다. 시신이 마지막으로 머문 자리에 영혼이 남는다면 저 자리에는 아마 수천의 영혼이 매여 있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 보니 여기에도 몇은 매여 있을 성싶다.

∞ ∞ ∞

저녁 식사 시간 동안 새틴과 케인은 떨어져 앉았다. 어차피 한방을 쓰니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데서 무언가 작당하는 티를 낼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저마다 방으로 흩어질 때 두 사람도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에는 잠금장치가 없지만 별걱정은 하지 않았다. 며칠간 지켜보니 밤에 이 방에 찾아오는 아이는 없었다.

‘애들이 케인을 무서워하는 거 같아.’

나이 때문은 아닌 듯하고 아마도 성격 때문이 아닐까. 웃는 얼굴을 좀체 보여 주지 않는 데다 말투도 다정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내가 편해 보이겠네.’

새틴은 제가 착한 사람이 아님을 안다. 친절하고 상냥해 보였다면 그런 체한 결과일 뿐이다. 태도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아이들에게 그리 말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짐작하겠는가.

“왜 사람을 그렇게 봐?”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불편했는지 케인이 퉁명스레 물었다. 새틴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웃었다.

서고만큼은 아니나 이 방도 그다지 방음이 잘되는 편은 아니기에 둘은 목소리를 낮춰 대화했다.

“아까 지하에 갔다 왔어. 네 말이 맞았어.”

새틴은 그러게 왜 의심했냐고 타박하지 않았다. 확인해 볼 만한 사안이었다.

“전에 도망쳤다는 애들도 분명 거기서 죽었을 거야. 미친 늙은이.”

작게 욕한 케인은 한숨을 한 번 쉬고 새틴에게 물었다.

“그 늙은이는 뭐래? 제자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어?”

“응, 왠지 내 느낌으론…… 당연하게 여기는 거 같았어.”

“네가 자기 환심을 사려는 걸?”

“응.”

“그리고?”

새틴이 머뭇대자 케인이 빨리 말하라고 채근했다. 새틴은 머쓱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안 했다니, 그냥 나왔다고?”

“일단은 돌아가라고 하던데. 내 마음은 알겠다고.”

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소 당황한 기색이었는데 새틴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

“난 선생님이 뭔가 시킬 줄 알았어. 떠보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이를 죽이는 행위가 목적이든 과정이든 들켜서는 안 된다고 선생님이 자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으면서 새틴은 몇 가지 예상을 했다. 나쁜 사람들이 충성심을 시험하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범행에 동참하게 만드는 거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나 범행은 나누면 확실히 반이 된다. 형량이 아니라 죄책감이. 물론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명령을 하지 않았다. 그런 뉘앙스의 말조차 없었다.

“아직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케인은 대꾸가 없었다. 심각한 표정이 되어선 턱만 문질렀다. 그러다 불쑥 입을 뗐다.

“굳이 시험해 볼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는데.”

“무슨 말이야?”

새틴이 고개를 갸웃하자 케인이 잠깐 뜸을 들이다 말했다.

“네가 너무 멀쩡하니까.”

“멀쩡한 게 왜?”

“기억을 잃었는데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잖아. 아이들도 별 위화감 못 느끼고.”

“응, 잘하고 있는 거 아니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실감이 안 난다는 말이야.”

바로 알아듣지 못해 새틴은 케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케인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머리로는 네가 멍청이가 된 걸 아는데, 네 행동을 보면 전과 다를 바가 없이 느껴진다고. 그냥 너라는 인간의 본질은 그대로인 것처럼. 기억과 관계없이.”

“선생님이 그러니까, 내가 전하고 똑같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래, 야비한 기회주의자로 말이지.”

케인은 일부러 기분 나쁘라고 저런 표현을 쓰는 걸까, 아니면 예전의 새틴을 정말 저렇게 생각했던 걸까.

아무튼 예전의 새틴과 자신을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는 새틴으로서는 별로 불쾌하지 않았다.

‘실제로 야비한 기회주의자도 맞고.’

생각해 보니 선생님도 그런 말을 했다. 기억을 잃어도 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케인의 말대로라면 선생님은 굳이 새틴을 시험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잘된 일이네, 그럼. 선생님의 신뢰를 사려고 아등바등할 필요 없단 얘기잖아.”

“내 추측이 맞는다면 그렇겠지.”

희망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커지면 좋지 않다.

잘되었다 생각하면서도 새틴은 선생님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놓지 않았다. 케인도 일단락되었다고 안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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