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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28화 (28/139)

28화

먼저 서고에 들어가 있던 로저스는 새틴이 들어오자 곧바로 물었다.

“선생님이 케인을 왜 부르는 거야?”

“나도 몰라.”

“들킨 건 아니겠지?”

“아니지 않을까.”

케인이 선생님의 연구 기록을 베낀 지 이미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내내 아무 말 없던 선생님이 이제 와 수상한 점을 발견했으리란 추측은 하기 어려웠다. 행여 늦게나마 알아차렸다 해도 범인을 케인이라 단정할 근거는 없을 테고.

“선생님은 전부터 케인한테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뭔가 볼일이 있을 수도 있지.”

새틴도 물론 불안이 아예 없진 않다. 그러나 아직 환한 대낮이다. 이 시간에 선생님이 케인에게 위험한 마법을 실험할 리는 없었다.

‘아마도 그럴 거야.’

그렇다면 무슨 볼일이 있을까.

새틴은 일단 로저스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서고의 문은 방음이 거의 안 되다시피 했다. 증축 공사를 날림으로 한 것인지. 문간보다는 안쪽 구석에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 안전했다.

볕이 들지 않아 어둑한 자리에 이르러서야 새틴은 이야기를 이었다.

“선생님이 전에 케인이 도움이 될 거란 말을 한 적이 있어.”

“그, 그래?”

“구체적으로 무슨 도움이 된단 얘기는 안 했지만 실험 얘기일 거야.”

“실험…….”

선생님과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로저스에게는 다소 두루뭉술하게 들리는 듯했다.

“선생님은 흑마법사야. 사람에게 실험하길 거리끼지 않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

로저스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매기랑 팀은…….”

“그냥 있으면 케인도 그 애들처럼 될 거야. 선생님은 케인이 도망친 걸로 꾸미겠지.”

“무사히 편지가 신전에 들어가야 할 텐데.”

∞ ∞ ∞

새틴과 로저스가 속닥이는 동안 케인은 늙은이의 사무실에 있었다.

늙은이는 무슨 이야기를 할 참인지 길게도 뜸을 들였다. 차를 내주겠다는 핑계로 아까부터 부산히 움직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케인은 하품을 참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드디어 늙은이가 찻잔을 내밀었다. 케인이 건성으로 마시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늙은이가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유추할 수 없는 첫 마디였다.

“너를 마법사로 만들어 주겠다면 나를 따를 생각이 있느냐?”

“저의 의사가 중요한지는 몰랐네요.”

“나는 너를 그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마법사로 만들어 줄 생각이다.”

평범한 마법사는 뭐고 특별한 마법사는 뭔지. 케인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늙은이가 인자하게 웃었다.

“나는 이미 나이가 많아 연구의 성과를 내는 것만이 꿈이지. 그러나 네가 내 제자가 된다면 다르다.”

“어떤 면에서요?”

“너는 내 연구의 성과를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돈과 명예, 어쩌면 권력도 말이지.”

“네…….”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케인은 늙은이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렇게 나이를 먹도록 성공하지 못한 연구를 이제 와 성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너는 이곳을 나가고 싶어 하였지?”

케인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늙은이도 대답을 강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빈손으로 나가면 금세 후회할 거다. 지금은 여기가 답답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클로버랜드에 있을 때라고 네가 정말 살고 싶은 대로 살았더냐.”

“그건.”

케인은 입을 열었다가 금세 다물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늙은이의 말이 맞는다.

클로버랜드에서 케인은 늘 치열하고 각박하게 살았다. 이곳에서처럼 하루 세 끼 식사를 할 수도 없었고, 때로는 이슬을 맞으며 잠들어야 했다. 거리의 아이들끼리 싸우다 죽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늙은이는 자애롭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표정과 달리 어조는 교활한 여우 같았다.

“너는 자질을 타고났다. 아주 운이 좋았어. 마법사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더냐.”

과연 어떨까.

케인이 잠자코 있으니 늙은이는 아까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내가 죽고 나면 너는 내 연구만이 아니라 재산까지 모두 물려받을 거야. 네가 내 제자가 된다면 말이지.”

“새틴은 제자가 아닌가요?”

“네가 새틴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느냐?”

대답이 아닌 물음이 돌아왔다. 케인이 눈썹 사이를 찌푸리자 늙은이는 연이어 말했다.

“기억을 잃은 아이를 이전과 똑같다 할 수는 없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야 한다면 그 애보다 단연 네가 낫다.”

케인은 늙은이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새틴에게 마법을 가르친 적은 아마 없을 거다. 예전의 새틴이라면 쓸 줄 아는 마법이 있는데 자랑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

“잘 생각해 보거라. 그리고 새벽에 내 연구실로 오너라. 아무도 모르게.”

“……네.”

케인은 마시는 척만 하고 여태 마시지 않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늙은이의 시선이 찻잔으로 향했다. 불쾌한 내색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늙은이는 그저 웃을 뿐이다.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케인은 서고로 향했다.

‘제자?’

늙은이는 정말로 저를 새 제자로 삼을 생각일까. 그다지 믿기지 않는다. 제자가 될 수 있단 말로 미끼를 드리우는 거겠지.

그렇다면 오늘 연구실에 오라는 말도 다른 꿍꿍이라고 해석 가능하다.

‘오늘 새벽에 내게 뭔가 할 셈이야.’

케인은 서두르는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로빈이 케인을 보고 손에 든 것을 숨겼다. 그따위 딱딱한 과자를 누가 탐낸다고. 케인은 로빈에게 시선 두지 않고 서고로 들어갔다.

문을 여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케인은 돌아 나가지 않고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까 교실에서 늙은이가 저를 데려가는 모습을 봤으면서 새틴과 로저스가 따로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둘이서 무슨 상황인지 얘기하고 있겠지.’

예상대로 구석에서 새틴과 로저스를 발견했다.

문소리에 긴장했는지 새틴은 케인을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장 물었다.

“선생님이 뭐래?”

마법을 가르쳐 주겠단 얘기는 어차피 진심이 아니었을 테니 케인은 중요한 내용만 전했다.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연구실로 오라던데.”

“저번처럼 얘기나 할 셈은…….”

“당연히 아니겠지.”

일전에 불러들였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이들은 이제 팀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팀은 벌써 잊혔다. 늙은이는 슬슬 다음 실험을 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케인의 생각을 새틴도 바로 짐작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간을 끌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시간을 끈다 해도 궁극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쓰레기에 숨겨 내보낸 편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무언가 생각났는지 새틴이 반짝 눈을 빛냈다.

“목격자를 만들자.”

“목격자?”

케인 대신 로저스가 되묻자 새틴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설명했다.

“케인이 선생님 연구실에 갔다는 걸 아이들이 알게 만드는 거지. 선생님의 연구실에 드나들 정도면 총애를 받고 있단 뜻인데 야밤에 도망칠 리 없잖아.”

늙은이가 팀을 연구실로 끌어들인 시간은 새벽이었다. 케인을 불렀을 때도 새벽. 새벽이 아닌 시간에 연구실에 드나든 사람은 새틴뿐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의 새틴.

아이들은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틴을 부러워했다. 새틴이야말로 선생님의 제자라고 생각했다. 만약 팀이 대낮에 연구실에 드나들었다면 어땠을까. 팀 역시 부러움을 사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팀이 없어졌을 때 누구도 도망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마법사의 제자가 도망을 칠 이유가 없으니.

케인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어떤 식으로 목격자를 만들 생각인데?”

“최대한 조용히 나가려고 했는데 내가 깨어나 버렸다고 해.”

“그건 의미가 없지. 넌 그 늙은이한테 협조 중이잖아.”

“아, 그렇겠네. 그럼 로저스가 우연히 목격하는 걸로 하자. 화장실 가려고 나왔다가 마주쳤다든지. 어때?”

새틴이 갑자기 자신을 지목하자 로저스는 잠깐 당황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새틴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니까 두 번은 통하지 않을 거야.”

“그럼 다음엔 어쩌려고.”

케인이 눈썹 사이를 찌푸리며 물으니 새틴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간섭해야지.”

“그건 의미가 없다니까.”

“들어 봐. 나는 너를 견제하는 입장이잖아. 그런데 아이들 사이에서 네가 선생님의 새 제자가 됐다는 소문이 돈다면 어떻겠어.”

아마도 불안해서 뭐라도 하려 들겠지.

케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양 새틴이 히쭉 웃었다.

∞ ∞ ∞

새벽녘, 노크 소리를 듣고 문을 연 라기이스는 문 앞에 서 있는 새틴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 새벽에 케인을 연구실로 불러들였다. 마법사가 될 마음이 있어도 없어도 일단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지 않았다. 낮에 케인과 마주쳐 이유를 물으니 나오다가 로저스를 만났다며 변명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다시 만나기로 하였는데 케인은 오지 않고 엉뚱하게도 새틴이 왔다.

“이 새벽에 어쩐 일이냐. 네게 연구실에 와도 좋다 말하지 않았는데.”

“선생님, 케인을 저 대신 제자로 삼으실 생각이세요?”

억울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새틴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간 별말 없이 시키는 일을 잘하기에 내버려 두었는데 조바심이라도 들었을까.

“왜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

“케인을 연구실로 부르셨잖아요. 제가 기억을 잃어서 쓸모가 없어졌나요?”

“케인이 그렇게 말하더냐?”

“그건 아니지만, 제가 모르게 갈 만한 데는 여기뿐이니까요. 애들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잃은 건 기억이지 눈치가 아니었다. 라기이스는 작게 한숨을 쉬고 일단 새틴을 안으로 들였다.

“케인이 도움이 될 거라 하지 않았더냐.”

“……이용하려고 부르셨단 말씀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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