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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40화 (40/139)

40화

“당시 저는 수습 신관이었는데 제 사수였던 제레미 신관님과 함께 치안청의 작전에 차출되었죠. 혹시 흑마법사의 술수에 당하는 사람이 나올지 모르니까요.”

“신관이 겨우 둘밖에 안 갔어? 진짜 치안청이 다 해 먹었나 보네.”

리타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드워드는 멋쩍게 웃고 말을 이었다.

“흑마법사는 그때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여럿 데리고 있었습니다. 학교라는 명목이었죠. 그 흑마법사는 클로버랜드에서는 괴짜 마법사이자 자선가로 유명했습니다.”

“설마 공부 가르쳐 준다고 데려가서 자기 연구에 써먹은 거야?”

“일단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아이들 말로는 이전에 몇 명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서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긴 살아 있는 애들은 아직 무슨 짓을 안 당했단 뜻이니 잘 모를 수도 있겠네.”

새틴에게는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낯설었다. 다크에이지에서 주인공 케인이 흑마법사에게 붙잡혀 있던 시절은 자세히 서술되지 않는다. 초반에 잠깐 속마음으로 언급될 뿐이다. 회상 장면도 없었다.

뒤를 따라가며 가만히 듣기만 하던 새틴은 두 사람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살아남은 애들은 어떻게 됐어?”

“거기까진 모릅니다. 원래도 거리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라 돌려보낼 곳이 없었습니다.”

새틴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옆에서 리타가 기막혀하며 말했다.

“클로버랜드는 아동 복지가 개판이네.”

상당히 현대인스러운 발언이었지만 새틴은 꼬투리 잡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이어 말했다.

“그때 한 아이가 특히 증언을 많이 했습니다. 흑마법사가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데려가고, 관리했는지. 아마도 마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로 아이들 사이에 경쟁 관계를 조성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증언을 많이 한 아이라는 말에서 새틴은 케인을 떠올렸다. 원작에서 케인은 자신을 구해 준 신전 기사단에 감명받아 성기사가 되고자 했다. 결국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존경심은 품었다.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케인이겠지.’

“로저스였어요.”

새틴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크에이지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가물가물하지만 로저스라는 등장인물은 확실히 없었다.

에드워드가 새틴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에드워드는 소설에서 묘사한 그대로의 외모였다. 짧은 다갈색 머리에 약간 각이 진 턱, 인상은 강인하고 덩치는 아주 크다. 신전에서 만났더라면 성기사로 오해했을 만큼 체격이 좋았다.

에드워드도 리타도 이렇게 소설의 주연이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데 대체 케인은 어디로 갔을까.

새틴은 이상해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쓰며 물었다.

“또 다른 아이는 없었어? 그러니까 좀 특이했던…….”

“아, 학교에서 마지막에 나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상황이 다 정리된 후에 정신을 차렸는데 누굴 구해야 한다고 난리를 피웠죠. 이름이 데인이었나?”

‘케인이겠지!’

새틴이 그 애의 종적을 아냐고 물으려는데 리타가 먼저 끼어들었다.

“상황이 다 정리됐다는 게 무슨 말이야? 흑마법사를 잡은 후?”

“흑마법사는 못 잡았습니다.”

“뭐어?”

리타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에드워드는 다소 씁쓸하게 웃었다.

“치안청의 방식이 상당히 극단적이더군요. 아이들을 구조하기 전에 불부터 질렀습니다.”

“제정신이야?”

새틴이 하고 싶은 말을 리타가 먼저 했다. 에드워드는 자기한테는 아무 권한이 없었다며 변명하고 다시 말했다.

“다행히 대부분 아이들이 자력으로 현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데인은 하마터면 빠져나오지 못할 뻔했는데 다행히 문에서 가까운 곳에 쓰러져 있어 무사히 구조했죠.”

케인이 무사히 구조됐다는 부분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새틴은 그 앞의 문장에서 껄끄러운 부분을 발견했다.

“대부분?”

“그게, 한 명이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두 명이군요.”

기억을 회상하느라 내내 먼 데를 보던 에드워드가 돌연 새틴을 쳐다보았다.

“흑마법사와 새틴이란 아이가 화재로 사망했습니다.”

“……나하고 이름이 같네.”

아마 그 새틴이 이 새틴일 거라 생각하면서 새틴은 모른 척했다. 에드워드도 당연히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저 우연히 이름이 같다고 여기는 눈치다.

에드워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흑마법사의 제자였다는데, 그나마 다행인 일이죠. 억울한 희생자는 아닌 셈이니.”

불길 속에서 죽은 흑마법사와 제자.

새틴은 바로 며칠 전 죽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새틴이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늘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침을 흘리고 배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어쩌다 그렇게 됐나 했더니.’

역시 치매가 아니라 사고로 뇌 손상을 입었던 게 분명하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운이 좋았다고 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는 가족이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았겠냐며 새틴을 칭찬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다.

‘재수가 없는 거였네.’

기껏 불길을 빠져나왔는데 그렇게 되다니. 진짜 새틴이 할아버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할아버지의 상태를 고칠 마법을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거기서부터 꼬였나?’

케인은 어딜 갔는지 알 수 없고, 스승의 복수를 위해 마왕을 소환해야 하는 새틴은 지금 엉뚱한 데 와 있다. 그 와중에 리타는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았는데 그건 누구의 흔적이란 말인가.

∞ ∞ ∞

이윽고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고 기묘한 공터였다.

공터에는 구덩이가 하나 있고 그 주변엔 구덩이를 메운 듯 보이는 흔적이 여럿 있었다. 아무래도 구덩이를 팠다가 메우기를 반복한 모양인데 대체 뭘 위해 그랬을까? 새틴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쓰레기 처리장?’

그런 것치곤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요 며칠 날이 꽤 후텁지근했다. 이런 날씨라면 냄새가 나지 않을 리 없는데.

“클로버랜드 화장터래.”

리타의 말에 새틴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여태 그가 지낸 조그만 마을에도 제대로 된 화장 설비가 있었다. 시신을 태우는 가마 주변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기에 부족함 없는 장소였다. 깨끗하고 엄숙했다.

여긴 그곳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다.

‘아니, 초라하다고 하기도 애매해.’

그야말로 공터. 아무것도 없다. 이런 데서 친지의 시신을 태우면 미안하지 않을까.

새틴이 인상을 쓴 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에드워드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정확히 말해 정식 화장터는 아닙니다. 시민들이 이용하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여기는 연고가 없는 시신들을 태우는 곳입니다. 아무래도 공동 화장일 때가 많고 비용을 청구할 데가 없다 보니…….”

자신이 사는 지역의 일이라 그런지 에드워드는 살짝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신관으로서 그런 일을 입에 담기가 민망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정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새틴은 고개를 끄덕이고 리타를 따라 발을 옮겼다.

리타는 구덩이 흔적 사이를 걸으며 말했다.

“나는 추적에 관한 마법을 연구하고 있어.”

“추적이요? 무얼 추적하는 겁니까?”

에드워드가 물으니 리타는 약간 우쭐거렸다.

“다른 사람의 마법을 추적하는 거지.”

새틴과 에드워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를 보았다. 마법에 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두어 걸음 앞에서 걷느라 리타는 그런 반응을 알지 못하고 이어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마법사를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면 정말로 많은 게 달라질 거야.”

“예를 들면요?”

“나쁜 마법사들을 잡을 수 있지.”

나쁜 마법사라는 말은 꼭 어린아이의 표현같이 유치했다. 리타가 말하는 나쁜 마법사가 흑마법사와 무엇이 다른지 새틴은 알지 못했다. 친절하게도 리타는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 답을 알려 주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범죄들이 있거든. 정황상 분명 마법사가 한 짓인데 증거가 없으니 잡을 방법이 없지.”

판타지는 판타지인데 세부 장르가 다소 달라진 느낌이다. 그래도 새틴은 잠자코 들었다.

반면 에드워드의 표정을 보니 조금 놀란 얼굴이다. 설마하니 리타가 저렇게나 공익적인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눈치다.

리타가 슬쩍 돌아보더니 비시시 웃었다.

“사실은 스승님이 하던 연구야. 지금까지 찾아낸 공식으로는 아직 흔적밖에 찾을 수가 없어. 마법을 사용한 사람을 찾는 게 목표고.”

“다른 마법사들은 연구에 관해 떠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리타 씨는.”

에드워드가 말을 하다 말았다. 적절치 못한 표현이 무심코 튀어나오려 해 입을 다문 듯 보였다. 다행히 리타는 에드워드가 실수할 뻔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면 알면서 대수롭잖다 생각해 넘겼거나.

“어차피 공식을 떠드는 게 아니니까 상관없어. 도움을 받으려면 일단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말해야 하잖아.”

리타는 어느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숲과 공터의 경계, 어느 구덩이 흔적 앞이었다. 마른 흙바닥 곳곳에는 거뭇한 그을음이 남아 있고 그 주위엔 또 드문드문 잡초 따위가 솟아 있었다.

리타는 그 자리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바닥에 손을 댔다. 그리고 분명히는 들리지 않지만 무어라 속삭였다.

‘마법이구나.’

처음이 아니기에 새틴은 지금 리타가 마법을 쓰고 있음을 바로 알았다. 에드워드가 새틴에게 뒤로 물러나자며 손짓했다.

신전 앞에서 보았던 그 빛이 다시금 새틴의 눈앞에 나타났다. 리타의 말에 따르면 마력이다. 마력은 머뭇거림 없이 울퉁불퉁한 흙바닥 위로 퍼져 나갔다.

‘꼭 만화 보는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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