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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50화 (50/139)

50화

‘보통 친구가 이렇게까지 하나?’

새틴은 일부러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전혀 졸리지 않지만 대화를 피하려면 핑계를 대야 했다. 케인은 새틴을 도통 혼자 두려 하지 않았다. 화장실이나마 보내 주니 다행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벌겠다고 화장실에 틀어박히느니보단 침대에 틀어박히는 편이 단연 낫다.

‘둘도 없는 친구였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새틴은 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이 없다시피 했다. 마을 사람들과 빈번히 교류하긴 했으나 그 사람들을 친구라고 하기는 애매했다. 이웃과 친구는 동의어는 물론 유의어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새틴은 보통의 친구들이 어떤 식으로 교류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사랑을 해 보지 않은 사람도 사랑이 무언지 아예 모르진 않는 법. 감정은 때로 간접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 새틴은 우정의 보편적인 형태를 상상했다.

친구가 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화가 날 거다.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아주 슬플 거다. 친구가 부당하게 죽었다면 화가 나고 슬퍼해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는 생각을 해?’

픽션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다.

‘아니, 이게 픽션 기반의 세계가 맞긴 한데…….’

그래도 개연성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새틴이 세상 사람들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고, 굳이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치안청 때문인데. 복수를 하려면 치안청에만 해야지.

‘세뇌라도 당한 거야?’

그럴듯한 추측이다. 원래의 새틴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케인을 세뇌했다면 지금 저런 태도인 것도 이해가 된다.

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은 종종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이는 정말로 그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당장은 그것이 제일 나아 보였을 따름이다.

어떻게 보면 케인도 그런 상황이었다. 4년 전이라면 겨우 열여섯 살 때 아닌가. 의지할 곳 없는 열여섯 소년이 친절히 대해 주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그리 생각하니 새틴은 케인이 무슨 심정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신히 의지할 사람을 만나서 얼마나 기뻤을까.

그런데 그런 사람을 부지불식간에 잃어버리다니. 그 사람의 실체가 악인이었다 해도 케인이 너무 가엽다.

새틴은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물이라도 한잔 달라고 해야겠어.’

너무 이입했는지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희미하게 손이 떨려 왔다. 뜨끈한 것으로 몸을 데우면 이 불안도 진정될 터.

그러나 새틴은 종업원을 찾으러 가기도 전에 발이 붙들렸다.

“어디 가?”

언제 나왔는지 케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졸음기 없는 눈으로 새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내 케인을 생각하다 나온 탓인지 새틴은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몰래 나쁜 짓을 하려던 참도 아닌데. 어물어물 대꾸했다.

“별건 아니고 물을 마시려고…….”

“물은 방 안에도 있잖아.”

“따뜻한 물을 마시려고 했지.”

“추워?”

“그건 아닌데.”

순순히 대답을 하다 보니 어째 취조라도 받는 듯하다.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넌 왜 나왔어?”

“왜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나와서?”

농담이었는데 케인이 기대한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타박하는 대신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새틴은 식겁했다.

‘진짜야? 진짜냐고.’

아무리 의지하던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새틴은 조심스레 물었다.

“예전에 내가 너하고 그, 아주 가까운 사이였어?”

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기색은 아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생각하는 중일까.

“궁금해서 그래. 네가 나를 너무, 가깝게 여기는 거 같으니까.”

아무래도 집착이나 헌신 같은 단어는 좀 그렇지. 새틴은 신중히 표현을 골랐다.

“내가 너한테 의지가 되었다든지. 내 말은 너와 내가 있던 곳이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었어서.”

“솔직히 괜찮은 환경이었어.”

“어?”

새틴은 생각지 못한 대답에 놀랐다. 케인은 심드렁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제때 먹을 수 있고 지붕 아래서 잘 수 있었으니까.”

“아, 그래?”

“그 미, 늙은이가 거슬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거리에서 지내느니보단 나았어.”

“어…….”

“그래서, 정확히 뭐가 알고 싶은 거야?”

돌려 말한 보람이 없다. 대놓고 묻는 말에 새틴은 몹시 멋쩍어졌다.

“아니, 난 그냥,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 시절이 힘들어서 혹시 나한테 의지를 많이 했나, 싶어서. 힘들 때는 아무래도 이성적으로.”

“의지를 하진 않았어.”

“아, 그래…….”

“솔직히 넌 의지할 만한 인간은 아니야. 그때나 지금이나.”

새틴은 혹평에 조금 상심했다. 동시에 의아해진다. 특별히 힘든 시절도 아니었고, 그다지 의지할 데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면 케인은 예전의 새틴에게 대체 왜 그리 연연하지?

표정에 의문이 드러나기라도 했을까. 케인은 새틴이 무얼 궁금해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

“아니, 그런 식으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잖아.”

“얼버무리는 게 아니야. 지금 우리의 이 관계가.”

케인이 말을 멈추고 한 발짝 다가왔다. 그러나 새틴이 움찔 놀라 움츠러들자 한숨을 쉬고 도로 물러났다.

“나에겐 자연스럽다는 거야.”

“하지만 난.”

“너도 기억해 내면 나처럼 생각하게 될걸.”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애초에 새틴은 기억을 잃지 않았고, 케인이 기억하는 사람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새틴은 고개를 숙였다. 케인이 새틴의 머리꼭지에 대고 말했다.

“따뜻한 물이라면 내가 가져다줄 테니 방 안에 있어.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알겠어.”

케인은 손수 문을 닫아 주었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새틴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특수한 상황에 따른 세뇌가 아니라면 정말로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이지. 주인공과 악역이잖아?

고민에 빠진 동안은 시간이 빠르게도 흘렀다. 그새 돌아오는 케인의 발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서 멈추기에 노크를 하겠거니 했는데 침묵이 이어졌다.

‘왜 노크를 안 하지?’

새틴은 잠깐 기다리다 문을 열었다. 케인이 이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까는 뻔뻔하더니 이제 와서 왜 이럴까.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케인은 컵을 건네더니 홱 몸을 돌렸다. 그대로 제 방으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돌아왔다. 그리고 새틴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들여다봤다.

이 기묘한 대치가 민망해서 새틴은 공연히 몸을 꿈질거렸다.

“왜, 할 말이라도 있어?”

“……없어.”

케인은 아주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거짓말을 하더니 이번엔 정말로 제 방으로 돌아갔다.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 생각하며 새틴은 물을 마셨다. 떨림은 이미 가신 지 오래지만 어쨌든 온기는 달가웠다.

3

이튿날, 치안청은 아주 중대한 발표를 했다. 그 발표는 광장의 벽보와 관청에서 발간하는 소식지에 실렸고, 이내 사설 신문에서도 베껴 갔다.

[클로버랜드 치안청이 용사를 기다립니다!]

새틴과 케인, 리타는 여관의 식당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가 그 소식을 알았다. 종업원에게 부탁해 받은 신문의 첫 페이지를 보자마자 리타가 외쳤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클로버랜드의 정의로운 시민과 용감한 여행자 여러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리타가 헤드라인 아래의 내용을 읽는 동안 케인은 종업원에게 주문을 했다.

“수프는 버섯 수프로.”

“야, 지금 수프나 고를 때야?”

리타의 핀잔에도 케인은 민망해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다시 말했다.

“2인분만.”

“나도 먹을 거야! 3인분!”

종업원이 떠난 후 리타가 신문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던 모양이다. 새틴도 내용이 궁금해 신문을 제 쪽으로 가져왔다.

기사라기보다는 공고에 가까운 글이었다. 신문사의 의견은 일절 없고 치안청에서 낸 글을 그대로 옮겼다. 정의로운 시민 어쩌고. 앞부분을 빠르게 읽고 하단으로 내려간 새틴의 눈이 커졌다.

‘마왕을 물리치면 막대한 포상금…….’

공고문 아래에 적힌 포상금의 액수가 정말로 막대했다. 내내 작은 마을에 살며 돈 쓸 일이 없던 새틴은 이렇게 큰돈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지만 아무튼 그래도 대단하다는 것만은 알았다.

‘출발 전 치안청에 등록 필수라고? 마왕성이 국립공원이야?’

정말 치안청 사람들은 마왕을 이런 식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래 봤자 어중이떠중이 현상금 사냥꾼들이나 몰려들 텐데. 차라리 토벌군을 모집하는 편이 옳지 않나. 포상금을 급료로 나눠서 여러 사람에게 지불하면…….

옆에서 곁눈질로 함께 기사를 읽던 케인이 픽 웃었다.

“돈 많이 주네.”

공고의 내용이 이상하지도 않은지 케인의 반응은 싱거웠다. 새틴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아니, 그래도 이런 방법은 좀 아니지 않아? 돈 욕심 때문에 소수로 나섰다가는 죽을 수도 있고.”

“어차피 알 바 아니잖아. 우리가 마왕 잡으러 갈 것도 아닌데.”

케인은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새틴은 그 부분을 지적하려다 말았다. 지그시 웃으며 쳐다보는 케인의 표정이 어딘지 묘했다. 마치 새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했다.

신문을 다시 가져가 읽은 리타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일단은 우리도 가자.”

이번에도 새틴은 우리라는 단어가 영 거슬렸지만 우선 다른 것부터 물었다.

“어디를?”

“마왕성이지 어디긴 어디야. 치안청 놈들이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어. 직접 가서 보고 처리할 수 있으면 처리하자.”

“음, 나는 따라가도 별 도움이 안 되지 않을까?”

“도움이 안 되긴! 네가 적들의 마법을 미리 경고해 주면 내가 한결 편하게 싸울 수 있잖아.”

높게 평가해 주니 참 고맙기는 하나 새틴은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그 정도로 우쭐거릴 마음은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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