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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한 소설의 분위기가 위기-58화 (58/139)

58화

“아무것도 아냐.”

새틴은 얼버무리고 다시 눈을 돌렸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뱀은 그 길이가 상당했다. 못해도 10미터는 넘어 보였다. 새틴은 그리 생각하자마자 정정했다.

‘아니, 10미터가 뭐야. 20미터는 되겠네.’

입을 쩍 벌릴 때마다 드러나는 이빨이 주먹만 했다. 사람 허리 정도는 단번에 동강 낼 수 있을 듯했다. 한 마리뿐인데 원숭이 떼보다 위협적이었다.

‘시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이런 뜻이었나?’

일단 일행은 한데로 모였다.

“케인, 그거 빨리 해.”

새틴이 재촉하자 케인은 탐탁잖아 하면서도 불꽃 방벽으로 모두의 앞을 막았다. 리타가 작게 감탄했다. 아까는 원숭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던지.

“내 것보다 뜨거운 거 같은데.”

“사람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태우지.”

딱히 우쭐거리는 기색 없이 케인이 대꾸했다. 새틴은 설마 하며 물었다.

“태운 적 있어?”

“……난 없어.”

어쩐지 모호하게 들리는 대답이었다.

‘없으면 없는 거지 난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새틴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케인에게 다시 묻지 않았다. 괜히 무서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긁어 부스럼이라 한다.

여하튼 시시콜콜한 사담이나 나눌 때가 아니었다. 뱀이 드디어 바닥에 닿았다. 기다란 꼬리가 화로를 감고, 시뻘건 눈은 불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벌어진 입에서 뚝뚝 떨어진 침이 바닥에 닿자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원숭이들이 나았어…….”

리타가 몸서리를 쳤다.

그 순간 뱀이 준비 동작도 없이 달려들었다. 쐐액! 뱀이 입을 벌릴 때마다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가 났다. 원숭이들과 달리 뱀은 불꽃 방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꽃을 가르고 다가오는 뱀 머리를 보며 리타가 괴성을 질렀다.

“으악! 징그러워!”

리타가 다급히 불화살을 만들어 내던졌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더 화가 난 거 같습니다!”

달려드는 뱀을 피해 옆으로 뛰며 에드워드가 외치자 리타가 필사적으로 에드워드를 쫓아 뛰며 한탄했다.

“으악, 내 탓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격할 방법부터 생각하세요!”

두 사람은 정신없이 뛰느라 눈치채지 못했으나 뱀의 낌새가 이상했다. 턱 아래가 불룩거렸다. 십중팔구 뭔가 뿜어내려는 거다. 설마하니 성수는 아니겠지. 침이 산성인데.

새틴은 일단 외쳤다.

“피해!”

다급한 외침은 다행히 리타와 에드워드에게 닿았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좌우로 갈라졌고, 간발의 차로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 무언가 분사되었다.

연기 혹은 증기 같은 형태였는데 무슨 성분인지는 몰라도 위험한 것만은 분명했다. 사라지고 나니 바닥에 시커먼 그을음이 남았다.

“와! 미친 거 아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리타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연기를 연달아 쏘아 내지는 못하는지 뱀은 쇄액, 쇄액 기분 나쁜 소리만 연방 흘려 댔다. 물론 움직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 혀를 날름거리며 다시 리타와 에드워드를 노렸다.

두 사람이 뱀의 머리를 피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케인과 새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뱀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케인은 통하지 않는 불꽃 방벽을 거둬들이고 최대한 안전한 위치를 찾는 데 몰두했다. 뱀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대충 어디로 피해야 할지 짐작이 되는 모양이었다. 새틴은 케인의 옆에 바짝 붙어서 헐떡이며 달렸다.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전에 뭔가 대책을 찾아야 할 텐데.’

새틴도 무언가 해야 했다. 이렇게 케인을 따라 도망만 다녀서야 체면이 서지 않는다. 물론 죽고 나면 체면이고 뭐고 중요치 않겠지만.

필사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나 요동을 치고 있는데.’

생각을 확장할 여유도 없어 일단 말로 뱉었다.

“저거, 이상하지 않아?”

“뭐가?”

여태 뛰었는데 숨도 가쁘지 않은지 케인이 곧장 되물었다. 새틴은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꼬리 말이야. 이상하잖아.”

내내 움직이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던 케인의 시선이 뱀의 꼬리로 향했다. 새틴이 무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네.”

새틴은 살아 움직이는 뱀을 오늘 처음 보았다. 저 거대한 놈을 그저 뱀이라 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간에. 그럼에도 저 뱀이 보통의 뱀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단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뱀 꼬리는 다른 부분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 못이라도 박힌 듯 화로 아래에 달라붙어 있었다. 만약 움직이지 못하는 거라면 저 뱀은 생김이 좀 흉악할 뿐 주유소 바람 인형과 다를 바가 없다.

“가까이서, 확인하자.”

새틴은 제안하는 동시에 꼬리를 향해 달렸다.

“위험한 짓 하지 말라니까!”

케인은 화를 내면서도 곧바로 새틴을 쫓아왔다. 너무 빠른 나머지 앞질러 버렸다.

다행히 뱀은 리타와 에드워드를 상대하느라 뒤편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새틴과 케인은 어렵지 않게 꼬리의 지척에 이르렀다.

가까이서 본 꼬리는 정말로 기이했다. 컴퍼스의 중심축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체의 움직임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저 부분이 약점이라면 우리가 이쪽에서.’

새틴이 미처 묘안을 생각해 내기도 전에 케인이 먼저 말했다.

“잘라 버리자.”

“어?”

“벽에 바짝 붙어 있어.”

조금 전에 새틴더러 위험한 짓 하지 말라던 케인이 혼자 꼬리를 향해 달려갔다. 새틴을 뒤로 밀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케인!”

새틴은 당황해 케인을 불렀지만 쫓아가지는 못했다. 아까는 새틴을 지켜 주던 불꽃 방벽이 이번엔 새틴을 쫓아왔다. 새틴은 기겁해 달아났다. 타 죽기 싫으면 벽에 바짝 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놈이…….”

불꽃에 시야가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리타가 무어라 화내는 소리만 들렸다.

“으악, 나 살려! 공주 살려!”

“헛소리 말고 뛰어요!”

“누가 이런 델 오자고 한 거야!”

“당신입니다! 헛소리 말고 뛰라고요!”

대화 내용으로 유추하건대 아직 별일은 없는 모양이다.

케인이 만들고 간 불꽃 방벽이 어느 순간부터 깜빡였다. 그 탓에 새틴에게는 케인의 움직임이 플립 북처럼 보였다. 새틴은 저도 모르게 욕을 할 뻔했다.

“와, 진짜 미쳤나.”

어느새 케인은 뱀 위에 올라서 있었다. 가판에서 염가에 산 검을 높이 치켜드는 모습이 상당히 그럴듯했다. 타이밍 좋게 로브 자락까지 펄럭이니 그야말로 그림이 따로 없었다.

‘주인공의 비주얼!’

저도 모르게 감탄한 새틴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리타와 에드워드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뱀 머리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케인에게 향했다. 균형을 잡지 못한 케인이 휘청였다.

“위험해!”

새틴이 다급히 외치며 뛰어가려 하자 흐려졌던 불꽃 방벽이 확 치솟았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케인이 화를 내는 듯해서 새틴은 갑갑해졌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돼?’

불꽃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동안 케인의 모습도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벌겋게 번들거리는 뱀의 허리 위를 곡예 하듯 아슬아슬하게 내달린 케인이 검을 치켜들고, 내리찍었다.

쐐애애애액! 뱀이 화가 나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케인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새틴을 가로막고 있던 불꽃이 사라졌다. 새틴은 재빨리 케인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가만히 있으라니깐!”

케인이 몸을 일으키며 성을 냈다. 새틴도 더는 참지 못하고 성질을 냈다.

“너나 가만히 있어!”

그 순간 뱀이 크게 요동쳤다. 새틴은 하마터면 뱀 옆구리에 치일 뻔한 케인을 확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함께 나뒹굴었다.

뱀은 이쪽을 해치웠다 생각했는지 도로 리타와 에드워드가 있는 쪽으로 쇄도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새틴은 소리를 질렀다.

“피해!”

뱀의 턱이 불룩거리고 있었다. 위험한 연기를 아까 본 적이 있어 리타와 에드워드는 빠르게 몸을 피했다.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 또 하나의 검은 그을음이 남았다.

무사한 두 사람을 보고 새틴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배은망덕하게도 케인이 멱살을 잡았다.

“위험한 짓 하지 말랬잖아!”

“야, 방금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다친 데나 봐!”

길을 가다 넘어져도 재수가 없으면 뼈가 부러지는데 케인은 족히 2, 3미터는 되는 데서 떨어졌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새틴이 상처를 보려 하자 케인은 휙 몸을 일으켰다. 바닥을 짚는 걸 보아 뼈는 상하지 않은 듯하지만 그래도 아프긴 할 것이다. 왼쪽 손등이 다 까져 있었다.

케인은 상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틴을 붙잡아 일으키더니 깡패처럼 요구했다.

“검 내놔.”

“뭐?”

“내 건 못 쓰게 됐으니까 네 거 달라고.”

그리 말하며 케인은 새틴의 검을 강탈해 갔다. 그때 리타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으악, 내 칼!”

날뛰는 뱀 머리를 피하다 검을 놓친 모양이었다. 어차피 여태 한 번도 휘두르지 않았으면서 필요 이상으로 당황한 리타에게 에드워드가 급히 조언했다.

“마법, 마법을 써요! 리타 씨는 마법사 아닙니까!”

“안 먹히잖아!”

“다른 거 없어요!”

“다, 다른 거!”

리타는 정신없이 뛰느라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새틴은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외쳤다.

“우박! 우박!”

불 속성이 안 먹히면 얼음 속성은 먹히겠지.

“아! ×귀비, ××, ×셋!”

새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리타가 무어라 외쳤다. 너무 빨라서 다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아무튼 마법은 성공했다. 우박이 거세게 쏟아졌다.

“우와!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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