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아이고, 무사해서 천만다행입니다!”
새틴 일행과 늑대 인간의 전투를 지켜본 사람 중에는 여관 주인도 있었다. 늑대 울음소리가 나기에 바깥을 내다보았다가 늑대 인간을 발견했는데 겁이 나 나오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미안할 게 뭐 있어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리타는 여관 주인의 사과를 대수롭잖게 넘기고 물었다.
“그보다 저 괴물이 지금까지는 정말 한 번도 사람을 습격한 적이 없었어요?”
“예, 소리를 낸 적도 처음입니다. 사람을 보고도 가만히 서 있다가 산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하기야 거짓말을 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우리가 있을 때 공격을 해서 다행이네요.”
맞는 말이긴 하나 다소 미묘하다.
‘왜 하필 지금이었지?’
새틴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여관 주인은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예, 정말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여관 주인은 감사의 의미로 숙박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리타는 돈이 넘쳐나지만 그렇다고 공짜를 사양할 필요는 없다 판단했는지 여관 주인의 호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객실까지의 안내는 사양했다.
2층으로 올라가며 리타가 안내를 사양한 이유를 털어놓았다.
“나 신발 탔어.”
새틴은 반사적으로 리타의 발을 내려다봤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풉…….”
리타의 왼쪽 신발 앞코가 잘라 낸 듯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양말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이 꼴을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는 없지. 그나마 발가락이 무사해서 다행이지 뭐야.”
리타는 케인이 들으란 듯 투덜거렸지만 케인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가 없었는지 리타는 더 말하지 않고 객실 문을 열었다. 2층 첫 번째 방이었다.
“그럼 다들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보자고.”
“내일 보죠.”
곧이어 에드워드가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가고, 새틴은 세 번째 방을 골랐다. 방문을 닫기 전 새틴은 케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째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할 얘기라도 있어?”
“있어.”
새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케인을 올려다봤다. 구태여 리타와 에드워드가 없을 때를 기다린 이유가 뭘까.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고.
새틴은 이내 한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이 뚱한 얼굴로 입을 뗐다.
“우리가 다시 만난 지도 이제 제법 시간이 지났잖아.”
“뭐, 그렇지.”
다시 만난 사람은 사실 케인뿐이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기에 새틴은 그냥 동의했다.
“나한테 도움받지 않는 건 기억이 나지 않아서야?”
“무슨 소리야. 도움 많이 받고 있는데.”
아까의 얘기인 줄 알면서 새틴은 일부러 모른 체 주절거렸다.
“네 덕분에 지낼 곳도 있고 말이야, 어? 여기까지 같이 와 준 것도 고맙고.”
“딴소리하지 마.”
“어…….”
케인이 인상을 쓰자마자 새틴은 저도 모르게 수그러들었다. 케인이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팔짱을 꼈다. 표정 관리를 하며 새틴의 상태를 살피는 걸 보니 금방은 떠나지 않을 기미다. 새틴은 다시금 한숨을 삼키고 말했다.
“아까는 네가 별로 안 내켜 하는 거 같아서 그랬지.”
“내가 왜?”
“보상 얘기를 했잖아. 나서기 싫었던 거 아니야?”
“그건 그냥, 아냐.”
욱한 얼굴로 무언가 말하려던 케인이 혀를 차며 말을 끊었다. 새틴은 케인이 이어 말하기를 기다렸지만 케인은 한참이나 침묵했다.
‘적당히 달래 주는 편이 나으려나.’
새틴은 슬쩍 손을 뻗어 케인의 팔을 건드렸다. 케인은 미세하게 움찔하더니 더 단단히 팔짱을 꼈다. 가슴이 희미하게 부풀어 올랐다. 화난 새 같다는 생각을 하며 새틴은 차분히 얼렀다.
“네가 나를 걱정해서 매번 그러는 걸 알아. 근데 나는 어린애가 아니거든. 모든 일을 다 네가 대신 해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러다 위험해지면?”
“그렇게까지 무모한 짓을 하진 않을 거야.”
“지금은 모르는 거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런 일이 설마 있겠어?”
새틴은 일부러 가볍게 말하며 케인의 표정을 살폈다가 아차 했다. 표정이 아주 좋지 않다. 케인은 일말의 불확실함도 참기 어려운 모양이다.
‘새틴 때문에 이게 뭐람.’
지금 새틴이 탓하는 새틴은 물론 본인이 아니라 예전의 새틴이다. 좋은 놈이었는지 나쁜 놈이었는지 이제 와 알 방도는 없지만 어쨌든 케인의 인격 형성에 어지간히도 영향을 미치고 갔다.
‘내가 바보였어.’
ㅇㅇ는 애초에 생각을 잘못했다. 이 세계를 만든 사람은 누나고, 새틴은 누나가 가장 사랑한 인물이다. 그러나 ㅇㅇ가 새틴이 된 순간 이미 누나가 사랑한 인물은 사라져 버렸다. ㅇㅇ는 결코 누나가 가장 사랑한 인물이 될 수 없었다.
그럼 ㅇㅇ는, 지금의 새틴은 대체 무얼까.
새틴은 우울한 생각을 털어 내려 눈앞의 케인에게 집중했다.
“그렇지. 아까 나한테 받고 싶었던 대가는 뭐였어?”
“뭐?”
“아까 도와주는 대신 뭘 줄 거냐고 물어봤잖아. 받고 싶은 거라도 있었어?”
케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인상을 쓰고 있던 사람 같지 않다. 오히려 약간 들뜬 기색까지 보였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새틴은 슬쩍 발을 물렸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새틴이 물러난 만큼 케인이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오히려 더 가까워진 듯도 했다.
케인이 새틴의 어깨 너머를 흘끔 보고 말했다.
“침대 두 개네.”
새틴은 반사적으로 돌아본 후에야 “어, 그러네.” 하고 대꾸했다.
여관 주인은 2층의 방은 전부 비었으니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 일 인실인지 다인실인지, 더블베드인지 트윈베드인지. 그런 설명은 듣지 못했다.
“굳이 다른 방 쓸 필요 없겠네.”
케인의 표정이 묘하다. 새틴은 침을 꼴딱 삼켰다.
‘굳이 같은 방을 쓸 이유도 없지 않나.’
케인이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고 묻는다.
“계속 서 있을 거야?”
아침까지 문을 막고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새틴은 결국 뒤로 물러났다. 케인은 태연히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 옆의 램프에 불을 밝혔다.
“내가 이쪽 침대를 쓸게.”
행여 새틴이 쫓아낼까 봐 걱정이라도 되었는지 케인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로브부터 벗어 바깥쪽 침대에 툭 걸쳤다. 어차피 씻으러 가면 벗어야 할 옷을 여기서 미리 벗는 이유야 뻔했다. 점유 행위다.
새틴은 안쪽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 끈을 풀었다. 케인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불편해하면 케인도 의식할 테니까.’
그러나 신발을 벗으며 고개를 든 순간 케인과 눈이 마주쳤다. 한방에 묵는 것이 처음도 아니면서 케인이 움찔 놀라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럼, 먼저 씻고 올게. 쉬고 있어.”
누가 쫓지도 않는데 케인은 성큼 방을 나가더니 쾅 문을 닫았다.
‘아, 의식하지 말라고…….’
∞ ∞ ∞
마차 내 공간에는 어제보다 여유가 있었다. 새로 탄 승객이 없어 일행 네 사람이 모든 자리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리타는 방만한 자세로 잠을 자고, 에드워드는 편히 몸을 늘어뜨린 채 명상을 하는데 새틴은 구태여 창문에 붙어 앉아 공간을 절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거슬려 케인이 작게 혀를 차자 새틴은 창문에 더 바짝 붙었다.
‘짜증 나.’
예전에 새틴은 케인을 위해 계단에서 몸을 던진 적이 있다. 불길을 뚫고 계단을 거슬러 올라온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새틴은 케인에게 별거 아닌 부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다시 만난 후 함께한 시간이 짧지 않은데 여전히 거리를 둔다. 그것이 케인은 못마땅했다.
‘어젯밤에도 이상했어.’
그동안 케인과 새틴은 여러 차례 한방에 묵었다. 이제 와 새삼 어색해할 이유가 없는데 어제는 이상할 정도로 새틴이 눈치를 봤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난처하게 웃으니 케인까지 덩달아 몸이 굳었다. 지금의 미묘한 거리도 어젯밤의 연장선이었다.
먼저 말을 붙여서 분위기를 풀어야 할까. 하지만 마땅히 할 말은 없는데. 이야깃거리를 찾더라도 새틴이 반응하지 않으면 더 어색해지기만 하겠지. 리타와 에드워드는 왜 오늘따라 조용할까.
불편한 침묵은 마차가 멈췄을 때에야 끊겼다. 어제 그랬듯 일행은 말이 쉬는 사이 마차에서 잠깐 내려 굳은 몸을 풀었다. 케인은 새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목과 어깨를 주물렀다.
“싸웠어?”
불쑥 리타가 묻는 말에 새틴과 케인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케인이 당황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자 새틴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짐짓 태연한 체하며 리타에게 되묻는다.
“안 싸웠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분위기가 이상하잖아.”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새틴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양 웃으며 케인을 쳐다보았다. 케인은 새틴처럼 뻔뻔하게 굴지 못했다. 저절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리타가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저거 봐. 찰거머리가 기분 안 좋다고 티 내는 거 보면 뭐가 있긴 하네.”
새틴은 더 모른 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다. “오늘 볕이 좀 뜨겁네.” 하더니 마차로 쏙 들어가 버렸다.
새틴답지 않게 노골적인 회피에 리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무슨 일이야?”
“네가 알 바 아니야.”
“아니, 그래도 우리가 지금 대업을 함께하고 있는데 좀 알려 줘도 되잖아.”
“대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케인은 혀를 차고 마차에 올랐다.
새틴은 그새 눈을 감고 자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케인은 울컥 짜증이 치밀었지만 참았다. 자는 척하지 말라고 따지는 대신 새틴의 얼굴을 관찰했다.
헤어지기 전과 그리 달라진 데가 없는 얼굴이다. 눈을 뜨고 있을 땐 묘하게 수상쩍은 인상을 주지만 지금처럼 눈을 감으면 지극히 선량해 보인다.
속으로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지도 표정에 드러나면 좋을 텐데.
‘짜증 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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