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07)

06

 자신의 약혼자인 이안 밀러를 보았을 때 노아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와, 진짜 잘생겼네.’

 장소가 장소인지라 이안 밀러는 전체적으로 빈틈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이안의 머리카락은 검은 색에 가까울 정도로 진한 색이었는데 눈동자는 머리카락보다 명도가 낮았지만 이상하게도 어딘가 음습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잘생기긴 했어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노아는 재빨리 이안 밀러의 스타일을 분석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고가의 명품으로 둘러 감았는데 몸에 딱 맞는 정장과 와이셔츠 기장부터 시작해 세련된 커프스 링크까지 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이제까지 클럽이나 파티를 다니면서 온갖 알파들의 구애를 받아와 어지간한 잘생김에는 눈도 깜박이지 않는 노아가 잘 생겼다고 생각할 정도면 진짜 잘 생긴 것이다. 동시에 노아는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했다. 이례적일 정도로 매우 젊은 나이에 대단한 재력가지, 아버지가 인정할 정도면 굉장히 유능하기도 한데다가 얼굴도 잘생겼으니…

 노아가 굳이 테너에게 자신도 사회적인 활동을 하겠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노아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외모를 제외한다면 딱히 그렇게 별 볼일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도 가족들에게 어여쁨을 받으며 자라온 탓에 자존 감이 낮다거나 열등감을 가지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온통 주변에 유능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자니 자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테너가 대단한 사람인 건 그가 자신의 아버지이니 그렇다 쳐도 벤자민이나 윌리엄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방면으로 매우 우수한 실력을 보여 줬던 터라 노아는 은연 중에 형들에게 조금 주눅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뭐든 가르치면 한 번에 이해하고 받아 들이며 테너를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는 존재였다. 

 반면 노아는 형들에 비하자면 매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그나마 입학한 음대에는 순수한 실력이 아니라 기부금 입학으로 들어갔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취미이긴 하지만 그 것도 어릴 적부터 배워 그저 그럴듯하게 소리를 내는 정도지 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서 음대에 들어간 건 아니다. 

 그러니 예쁘장한 얼굴과 프로스트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걸 제외하면 자신은 놀고 먹는 걸 좋아하는 한량 백수일 뿐… 테너야 노아가 어느 하나 부족한 곳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노아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저 이안 밀러라는 약혼자에 비하자면 매우 딸리는… 아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이번 협약 건으로 밀러 소유의 기업에 퍼붓다시피 한 자금이 아니었다면 이건 어딜 봐도 이건 이안 밀러가 손해 보는 장사인걸.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노아는 이안에게 방긋 웃었다.

 “반갑습니다, 이안 밀러 입니다.”

 “노아 프로스트입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라, 이거…? 환하게 웃으며 이안과 인사를 나눈 노아는 뭔가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이만 앉으시라며 정중하게 권하는 제 잘생긴 약혼자는 더할 나위 없이 호감 가는 인상으로 웃고 있었지만 노아와 테너를 바라보는 눈이 몹시 차가웠다. 타고난 외모와 프로스트 가문의 지위 덕에 오랫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온갖 종류의 시선을 받아본 노아는 재깍 이안 밀러가 자신을 몹시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윌리엄의 말대로 정말 이안 밀러는 테너 때문에 자신과 마지 못해 결혼하는 것이다. 노아가 확신했다. 지금이야 테너가 앞에 있어 사람 좋은 척 하고 있지만 유능하고 잘생기고 돈도 많은 사람이 성격까지 좋을 리가 없었다. 노아가 고럼, 하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성격이 별로일 거야.

 “어떤가? 직접 보니 서로 마음에 들지 않나?”

 이안과 노아야 어떻든, 혼자서만 이 둘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만 보였던 테너가 만족해서 껄껄 웃었고 이안이 매끄럽게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노아도 어떻게든 웃긴 웃었는데… 솔직히 민망했다. 평소 벤자민이 아버지는 완전 구닥다리 마초라고 투덜거릴 때마다 그래도 테너가 그 정도 사람은 아니라고 변호했는데… 이젠 그런 말도 못하겠다.

 식사를 하는 내내 시간이 지날수록 노아는 이 결혼이 성사되지 않으리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안 밀러는 더할 나위 없이 신사적으로 굴었지만 노아는 그의 미묘한 행동에서 자신에 대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은근히 오메가 페르몬을 흘리고 있는 노아와는 다르게 철두철미하게 꼭꼭 감싸고 있는 알파 페르몬이야, 뭐 테너가 있는 자리니 그렇다 쳐도 그는 단 한 번도 먼저 노아에게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오직 테너와만 말을 나누다가 가끔씩 자신에게 식사가 맛있냐는 등의 매우 상투적인 말을 건네기만 할 뿐… 

 아니, 아버지 눈에는 정말 이런 게 보이지 않으시는 건가? 아니면 아버지처럼 이안 밀러도 알파우월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어 사실 둘이 서로 잘 통하거나 하는 걸까? 하긴 평소에도 사업 관련이 아니면 주변에 무관심하기 짝이 없는 테너다. 테너는 잘 일하는 사람 보는 눈은 있어도 그 외로는, 영… 윌리엄과 벤자민이 사실은 형수들에게 잡혀 산다는 걸 고용인들도 다 아는데 아버지 혼자서만 모르시지. 

 마음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노아가 얌전하게 이따금 방긋방긋 웃어나 주면서 식사를 할 때였다. 디저트가 나왔을 무렵 식사 내내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럼 결혼식은 언제가 좋겠습니까?”

 단 것을 몹시 좋아하기에 디저트로 나온 크렘 브륄레의 표면을 파삭 깨트려 보기만해도 달콤한 베이지색 크림을 한 입 수저로 소담하게 퍼 올려 행복하게 냠… 하고 있던 노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결혼한다고? 진짜? 이안의 말에 이 만남을 주선한 테너조차도 놀란 얼굴을 했다. 

 “직접 제 약혼자를 보니 한시라도 빨리 같은 집에서 살고 싶어졌습니다.”

 이게 무슨 소설에서도 안 나올 청혼이야… 노아가 떨떠름해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 동안 내내 결혼을 거절해 왔던 이안이기에 테너는 그 말에 몹시 기뻐했다. 그의 눈에는 제 막내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여뻤기에 어째서 갑자기 마음을 바꿔 결혼을 했는지 의문이 들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간 노아를 보고 한 눈에 반했던 수많은 알파들처럼 이안도 그랬으리라 여긴 것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노아는 당혹스럽기만 했다. 분명히 이안 밀러가 이 결혼을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데… 하긴, 이건 정략 결혼이다. 정략 결혼이 왜 정략 결혼이겠는가. 이안 밀러와 프로스트가 이 결혼식으로 단단히 동맹을 맺게 된다면 밀러에게도, 프로스트에게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흐뭇한 표정을 한 테너가 제 아들의 답을 듣기 위해 노아를 돌아보자 아직 당황스러웠던 노아가 수저를 내려 놓았다.

 “죄송합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시선을 일부러 무시하면서 노아가 화장실에 가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긴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들어선 노아가 푸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하지…”

 사실 노아는 정말이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좋아해서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쳐주겠다는 사람이라도 망설일 텐데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다.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노아는 많이 기대하고 있는 아버지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할 결심을 한 이안 밀러에게는 미안하지만 결혼은 물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혼을 하는 것과 결혼을 하는 건 완전 하늘과 땅 차이로 달랐다. 

이왕 화장실에 들어온 김에 볼일도 보고 손도 깨끗하게 씻은 뒤 노아가 화장실에서 다시 나올 때였다. 객실로 돌아오다가 노아는 문득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사실 하도 나지막한 목소리라 지나가다 알아 차린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쩌란 거야.”

 어째서 객실에 있어야 할 이안 밀러의 목소리가 여기서 들려오지? 노아가 살금살금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어가자 모퉁이를 돌아 조금 떨어진 복도 창가에서 이안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중요한 전화가 걸려와 잠시 나가 전화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노아가 귀를 기울였다.

 “지금 그 머저리 같은 놈이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닐 정도로 무능한 것까지 내가 책임지라고 말하는 건가?”

 아까 테너와 노아 앞에서 몹시도 신사 다우며 정중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서늘한 목소리가 내뱉는 독설에 노아가 입을 딱 벌렸다. 우와…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거야. 돈 많고 외모 좋고 유능하면 꼭 성격이 안 좋다고. 그 뒤로 줄줄이 이어지는 질책을 가장한 신랄한 이안의 독설에 노아가 생각했다. 게다가 이건 성격이 안 좋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성격 파탄자인데.

 음… 아무래도 이 결혼은 아니야. 노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변태적인 취향을 가지긴 했으나 그건 누가 자신을 괴롭혀 주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지 절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가브리엘이 자신을 괴롭히는 교습을 좋아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가브리엘이라는 사람 자체는 싫어하는 것과 똑같았다.

 이안이 통화를 끝내기 전에 자리로 돌아가야 했기에 미련 없이 등을 돌리던 노아가 멈칫했다. 아까와는 달라진 통화 내용에 노아의 귀가 쫑긋했다.

 “내가 주문한 건 처리했겠지. …꼭 구체적으로 말 해야 알아 듣는 거냐? [Tear] 말이야.”

 어…? 뭔가 익숙한 이름에 노아가 다시 모퉁이에 바싹 붙었다. 설마 저 [Tear]가 그 [Tear]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냥… 이안이 상대하는 회사 이름이라거나 그런 거겠지?

 노아의 귀가 이렇게 쫑긋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Tear]는 상류층 고객만을 상대로 하는 고급 성인용품 샵의 이름이었으니까. 그 샵에서 다루는 성인용품이 얼마나 다양하고 기발하던지 생각하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절로 고일 정도였다. 보는 사람 눈이 많은 저택에서 살지만 않았어도 노아가 그 샵에서 파는 물건들을 하나씩 사서 들여 놓았을 텐데… 

 “뭐? 쪽 팔려서 못 사오겠다고? 죽을래? 내가 너 징징거리는 거 들어주려고 비서로 고용한 줄 알아? 그럴 거면 돈은 왜 쳐 받아?”

 혹시나 그 브랜드가 내가 알고 있는 그 브랜드가 맞나 해서 계속 듣고 있긴 했는데 이안은 성격 파탄자 정도가 아니라 입도 제법 걸었다. 프로스트 가의 철저한 교육 덕에 욕이라고는 ‘이 비겁한 자식’ 내지는 플레이에 자주 쓰이는 ‘암캐’ 정도 밖에 못 쓰는 노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왠지 자신의 약혼자는 수치스러운 플레이도 잘할 것만 같았다.

 “시발,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운데 귀찮게… 아무거나 사오라고. …누구한테 쓸 건지 네가 알아서 뭐하게?”

 두통이라도 오는 건지 짜증을 내며 미간을 문지르던 이안의 얼굴에 문득 미소가 떠올랐다. 노아는 모퉁이 너머로 빼꼼 눈만 내민 채 매력적인 남자의 얼굴 옆면에 떠오르는... 굉장히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한쪽 입매가 삐뚜름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아까 친절한 척 지은 미소보다도 더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래, 내 약혼자인 그 노아 프로스트에게 쓸 거야.”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노아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안은 아까 식사를 할 때도 들려 준 적 없는 더없이 상냥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감 하나만 사용해도 아무것도 모를 그 순진한 도련님이…”

 이안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늘어지자 노아는 거의 숨까지 멈춰가며 귀를 기울였다. 엉엉 울면서 도망가겠지. 알파라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겁 먹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빌어먹을 테너 프로스트가 아주 머리 끝까지 열 받아 다시는 소중한 자식 엄한 알파와 결혼시키지 못한다거나 하는 결과로 이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이안이 들고 있는 핸드폰 너머에서 회장님 제발 그러시면 안 되느니 하면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지만 이안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걱정 마, 절대 불법적인 일은 안 할거거든. 결혼한 이상 알파가 오메가에게 무슨 짓을 하던 원래 상관 안 하는 법이잖아? 이안의 입에서 굉장히 비열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노아는 화가 오르기는커녕 뺨이 발갛게 상기 되어 가기만 했다.

 그 후로 통화 내용이 다시 사업과 관련된 것으로 바뀌었을 때에서야 노아가 정신을 차렸다. 얼른 모퉁이에서 멀어져 멍한 정신으로 다시 화장실로 향하면서 노아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달래느라 바빴다. 노아는 방금 이안에게서 엿들은 전화 통화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배신감과 충격이라기 보다는 예상치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놀람과 비슷했다.

 세상에, 지금 내가 똑바로 들은 게 맞아? 이게 꿈이야, 생시야? 지금 내 약혼자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샵에서 성인용품까지 사들일 정도로 공을 들여서 나를 괴롭혀 준다고?

 그건 이제까지 노아가 들어본 그 어떤 사랑 고백보다도 매력적이고 달콤하게 들렸다. 노아는 방금 전까지 이안 밀러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을 싹 바꿨다. 자신에게 별이라도 따다 바쳐 준다는 사람도 별로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도 별로지만 자신을 괴롭혀 준다는 사람이라면 대 환영이다. 

 이 결혼은 해야 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노아가 빠른 걸음으로 다시 테너가 있는 객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혹시 속이 불편한 건 아니냐고 걱정하는 테너에게 달려가 손을 꼭 잡고는 볼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었다.

 “아버지, 저 이 결혼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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