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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장미 꽃 아래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자 노아가 조금 당황해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흡사 눈이 먼 사람 마냥 대뜸 장미꽃 다발(?)부터 내밀었던 남자는 노아의 반응을 보고 더 당황해 얼굴을 시뻘겋게 붉혔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도로 장미 꽃을 화병에 꽂았는데 한 송이는 덜 꽂혀서 노아가 집어 들려던 키시 접시 위에 물을 흩뿌리며 툭 떨어졌다. 노아가 속으로 탄식했고,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남자의 행동을 흥미롭게 주시하기 시작했다.
노아는 귀까지 붉게 물들인 남자에게서 익숙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잘 떠올려 보니 어거스트는 추수 감사절 파티 때 정말 무던히도 노아에게 매우 호감이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줬는데, 그 때는 뽑아 든 게 프리지아였지, 아마. 그 날처럼 똑같이 장미 꽃을 뽑아 드는 걸 보니 이제야 생각이 난다. 여전히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스스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노아 자신이 평소에 인기가 많았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자랑하거나 자화자찬 하는 게 아니라 노아는 정말로 인기가 많았다. 그 프로스트 가의 막내 아들에, 남자 오메가이기까지 하니 수비 범위(?)도 넓은데다가 외모도 수려하고, 게다가 성격도 무난하니 사교성도 괜찮아 인기가 없는 게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프로스트 가문의 배경과 조건을 보고 좋아한다고 말하던, 노아의 외모나 오메가 페르몬에 혹해 좋아한다고 말하던 간에… 노아는 누군가 자신에게 고백하는 상황을 과장 안하고 수십 번도 넘게 겪어 보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대시를 해오는 일은 노아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하자면 스토커도 조금. 물론 스토커 같이 위험한 레벨로 올라가면 즉시 프로스트 가에서 초기에 처리에 나섰다.
그러나 인기가 높았던 건 어디까지나 결혼 전의 이야기다.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이제 노아는 엄연히 임자가 있는 몸이었다. 너무 결혼식을 소박하게(?) 올렸나? 자신이 결혼했단 소식이 사교계에 웬만큼 퍼져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남자는 영 소식이 어두운 모양이었다.
“여, 여기서 뵙게 되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제가…”
노아를 보고 어찌나 반가워 하던지 남자는 반가워 하다 못해 아예 통째로 화병을 엎을 뻔 했다. 노아는 조금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조금 있으면 실연할 예정인 남자를 바라봤다. 그래도 망신은 안 당하게 해줄 모양으로 돌려 말해서 은연중에 자신은 이미 결혼을 한 몸임을 알려 주려는데 미처 말하기도 전에 덥썩 남자가 노아의 손을 잡았다.
“저기, 제가! 여기 유학을 와있는 중이라서… 이 주변 지리는 잘 알거든요, 그래서… 혹시 시간 나시면 내일 저와 함께 식사라도… 함께 해주신다면, 영, 영광이겠습니다.”
어쩐지 소식에 어둡다 했더니 유학을 가있었구나. 아까 화병에서 장미꽃을 뽑아낸 터라 남자의 손이 축축했다. 노아가 미안한 얼굴로 슬그머니 손을 빼냈다. 그리고 자신은 임자가 있는 몸이라 데이트는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사근사근하니 예의 바르게 잘 돌려 말하려는데 뒤에서 갑자기 팔이 뻗어 나와 매우 다정하게 노아의 어깨를 감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언제 다가왔는지 이안이 뒤에 서 있었다.
“노아, 무슨 일이지?”
일부러 힘을 주어 노아의 어깨를 꽉 잡은 이안이 매력적으로 미소 지었다. 이안이 이렇게 매우 다정한 연인인양 굴 때마다 노아는 영 적응이 안 되었다. 안 그래도 취향이 매우 안 맞아서 로맨스 영화나 소설은 잘 못 보는 편이거늘…
“아는 분을 만나서 인사하고 있었어요.”
“아는 분?”
입 꼬리를 올려 웃은 이안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선 남자, 음식 위에 떨어진 장미 꽃, 그리고 노아를 천천히 훑어 보았다. 입은 웃고 있는데 이안의 눈은 싸늘했다. 둘이 서로 비슷한 키인데도 어거스트는 이안이 자신을 저 위에서부터 내려 보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그냥 척 봐도 이안이 풀풀 날리고 있는 분위기에서 자신은 상대도 안 되는 걸 느낀 남자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제 짝사랑을 만나 반가웠던 얼굴이 이안과 노아를 번갈아 보고는 차츰 울상으로 변해갔다.
“저, 제가 내일은 돌아가 봐야 해서 식사는 못하겠네요.”
노아가 사근사근 우회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다. 이쯤이면 안 되는 걸 눈치챘을 법도 한데 어거스트는 미약한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 그럼… 제가 다음 달에는 귀국 하는데 그 때라도 괜찮으시다면…”
이안이 풍겨대는 분위기나 노아의 말로 충분히 둘의 사이가 어떠한 가를 예측할 수 있을 법도 한데 어거스트가 무례함에 가까운 수준으로 매달리는 이유가 있었다. 노아야 추수 감사절 파티 때 어거스트를 만났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어거스트가 노아를 처음 본건 2년 전 연말 파티 때다. 어거스트는 연말 파티 때부터 시작해서는 추수 감사절 때 정점을 찍어 제법 오랫동안 노아를 짝사랑해 왔었다. 유학을 와서도 한숨을 쉬면서 그리던, 그런 애틋한 대상이 우연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침 눈 앞에 딱 나타났으니 어거스트는 데이트 신청 말고는 미처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노아에게서는 여전히 오메가 특유의 달콤한 페르몬 냄새가 진하게 났다. 누군가가 알파와 커플인데 알파의 페르몬이 아닌 자신 고유의 향이 난다는 건 노팅을 한 번도 안 했다는 의미다. 즉 최소한 같이 자지 않았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거나... 어거스트는 거기에 혹시나 하는 희미한 희망을 걸고 용기를 냈다. 물론 그 용기는 이안의 표정이 싸늘해지며 눈썹이 꿈틀하는 것 만으로 훅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다음 달에, 노아와 식사를 하겠다? 그건 안 되겠는데.”
이안이 자신을 노아라고 부를 때마다 몸 어딘가가 근지러워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어 노아가 표정 관리를 하느라 무던히 애를 썼다. 그 사이 이안이 완전히 압도 당해 기가 죽은 어거스트를 위 아래로 훑어 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거스트가 주춤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 당신이… 왜 노아 대신… 대답을…”
하시는데… 요… 남자가 완전히 쭈구리가 되면서도 마지막 용기를 잃지 않고 되물었다. 왜 내가 노아 대신 대답하냐고? 이안의 눈에는 이제 완전히 짜증이 가득했다.
“배우자니 그 정도 쯤은 대신 대답해 줄 수 있지. 안 그래?”
어거스트의 눈이 경악으로 커다랗게 떠졌다.
“배, 배, 배… 배우자… 그럼, 그럼 둘이 결혼…을…”
둘이 사귀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 현실을 맞닥트리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어거스트가 비틀거렸다. 완전히 실연 당한 얼굴이 된 어거스트가 입을 벙긋거리며 노아와 이안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난 짝사랑이 결혼까지 했다는 소식까지 더해 이안에게 찍 소리도 못하고 꿈도 희망도 없이 완전히 패배한 어거스트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결혼… 축하 드립니다…”
매우 힘 없이 말을 건넨 어거스트가 애잔한 눈으로 노아를 바라보고는 돌아서서 사람들 사이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그간 남들에게 말은 안 했어도 다른 사람들 고백을 거절하느라 꽤 고생했던 노아는 내심 감탄했다. 결혼을 하니까 오랜 시간 필요 없이 거절이 쉬워진 건 참 좋네.
어거스트를 내쫓아버린 이안이 짐짓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며… 웃는 낯으로 좀 많이 취한 것 같네. 바람 좀 쐴까, 하면서 이끌고 걸었다. 그러면서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하듯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떨거지는 또 뭐야?”
아무리 그래도 어거스트면 제법 하는 기업인데 떨거지라…
“그게, 어거스트 기업의 차남인데요… 아…!”
허리를 감싸는 척 하면서 이안이 콱 오른쪽 엉덩이를 움켜 쥐자 노아가 움찔했다. 어디로 보나 한 없이 다정해 보이는 알파와 오메가 사이라 사람들은 이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기에 이안이 대놓고 말로 나지막하게 윽박질렀다.
“대체 그 동안 얼마나 헤프게 다녔으면 개나 소나 다 이 따위로 굴어?”
“그런 적 없는데…”
노아가 어리둥절해 했다. 무슨 개나 소나 씩인가… 접근해 온 사람은 어거스트 밖에 없는데도 이안은 마치 여러 명이 집적거리기라도 했다는 투였다. 클럽에 계속 다니기 위해서는 누구와 교제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노아 프로스트로 다닐 때는 정말 하늘에 맹세코 절대 단 한번 누구와 사귄 적도, 남들과 한 번 키스 한번 한 적도 없는 순수한(?) 몸이었다. 물론 이안은 노아의 해명은 싹 무시하면서 고압적으로 굴었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여기 가만히 있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과 놀아나는 걸 보였다간 재미 없을 줄 알아. 알겠어?”
사람이 거의 접근하지 않는 한적한 라운지 구석자리에 노아를 몰아 넣으면서 이안이 협박했다. 어거스트를 내쫓은 이후부터 이안의 미간이 구겨져서는 펴질 기미를 도통 보이지 않는다.
“알겠어요…”
노아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이 눈이 반짝거렸다. 다른 사람과 놀아나는 걸 보였다간 재미 없을 거라고? 글쎄, 내 생각엔 되게 재미있어질 거 같은데…
일단 의자에 얌전히 앉은 노아가 이안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멀리 간 건 아니지만 이안이 꽤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힐끔 한번 노아를 쳐다보더니만 이안은 이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까 그 러시아 악센트의 사람이 포함된 무리였고, 이내 대화가 몹시 길어지기 시작했다.
노아는 발을 까딱거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라운지에는 베타보다도 알파와 오메가의 비율이 훨씬 많았는데, 원래 이런 성비의 차이는 각 커뮤니티마다 흔하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스포츠 선수들의 반 수 이상이 알파며, 유아 보육 종사자의 상당수가 오메가인 것과 마찬가지로 상류층은 예전부터 알파와 오메가의 비중이 높았다.
원래 알파란 항상 상대의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특징이 있어 남들을 이끄는 위치를 점령하기 마련인데다가 다른 인종에 비해 오메가와 맺어지는 비율이 높다. 그럼 부모의 유전적 특징을 받아 그 자식들도 알파 내지는 오메가로 태어나고, 또 그게 반복되다 보니 상류층에서는 점차 베타의 비율이 낮아지는 수밖에. 그래도 최근에는 몇 년 전쟁을 기회로 삼아 신흥 부자들의 유입이 늘어남과 동시에 베타의 비중도 많이 증가했다.
여하간 중요한 건 이 라운지에 꽤 젊은 알파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노아는 의자에 앉아 매우 순진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안이 돌아오기 전에 누가 말이라도 좀 걸어라… 그리고 노아의 바람대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오도카니 구석에 앉아 있는 노아를 누군가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이제 막 성인이나 되었나 싶은 청년이었다.
“Sind Sie allein hier?”
헌데 어째 걸어오는 말이 독일어다. 영어와 프랑스어만 알고 있는 노아가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자 그걸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 남자가 활짝 웃으며 노아의 옆에 앉았다. 노아는 청년에게서 알파 특유의 알싸하고 강력한 페르몬 냄새를 감지했는데, 의자에 앉는 순간 그 페르몬이 한층 더욱 짙어졌다.
남자는 노아의 옆에 앉아 매우 친밀한 태도를 취하며 뭐라고 주절주절 떠들었는데 말하는 족족 죄다 독일어였다. 그리고 노아는 독일어는 잘 모른다. 요즘엔 프랑스 어도 조금씩 잊혀져 가는 차인데 독일어를 알 리가 만무했다. 노아가 영어로도, 프랑스어로도 말을 건네 보았지만 남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꿋꿋하게 독일어로만 떠들어 댔다.
힐끔 이안 쪽을 쳐다보니 저 쪽은 아직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기에 노아가 다시 독일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음… 이안 올 때까지 그냥 수다나 들어 줄까.
“어…?”
그런데 남자가 슬금슬금 옆으로 몸을 붙여 오더니 허리를 감싸고 허벅지를 만지려고 하는 등 껄떡거리기 시작했다. 노아가 옆으로 떨어지거나 미간을 찌푸리며 ‘No’라고 말해도 영 들어 먹지를 않았다. 아무리 독일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이라고 해도 ‘No’라는 단어를 모를 리는 없을 테니 이건 분명히 고의로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클럽에서라면 모를까 노아는 이안의 말마따나 ‘사이 좋은 노아 프로스트와 이안 밀러 부부’를 연기하고 있는 이상 독일 남자가 집적거리는 걸 전혀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노아가 고개를 저으며 밀어 내는데도 남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젠 되려 노아의 팔을 잡고 일으키려고 까지 한다.
노아가 반사적으로 이안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고 있더니만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없네…? 이안의 부재를 확인한 노아가 고민했다. 테너는 노아에게 확실하게 호신술도 가르쳐 주었는데, 상당수가 눈알을 찌른다던가 기도가 파열될 정도로 목을 가격한다던가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상해를 입히는 종류라서 이런 상황에서 쓰기엔 영 그렇다. 게다가 여기서 소동을 피울 수는 없으니 라운지 아래로 내려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일단 라운지를 벗어나자고 판단을 마친 노아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세 걸음 끌려갈 때였다.
“이건 또 뭐야?”
싸늘하기 짝이 없는 말투와 함께 누군가가 턱 앞을 가로 막아 고개를 들어보니 아깐 영 보이지 않던 이안이 둘의 앞에 서있었다. 이안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누가 봐도 눈에 불쾌한 기운이 그득했는데, 시시덕거리며 노아를 끌고 가려던 독일 남자가 갑자기 나타난 알파에 멈칫했다.
“아, 이안!”
마침 이안이 나타나자 일석이조라 잘 되었다 싶어서 노아가 반갑게 외쳤다. 성가신 독일남도 치워 버리고 이안에게도 ‘놀아나는 걸’ 보였으니까 오늘 밤도 즐겁겠구나 싶어서... 노아가 손을 비틀어 빠져 나오자 남자가 독일어로 뭐라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이안이 앞으로 다가오자 점차 말이 급격히 줄어 들기 시작한다. 이안은 기분 나쁘게 찍듯이 남자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으르렁거렸다.
“뭐 어쩌라고. 다시 말해봐.”
“……”
“다시 말해 보라니까?”
노아가 봐도 되게 기분 나쁠 것 같았는데 남자는 조금 항의를 하다 말고 아까 어거스트 마냥 쭈그러들었다. 음… 하긴, 이안이 인상 쓰면 되게 성깔 있어 보이긴 하지… 게다가 이 남자는 어거스트 보다도 어렸으니 이안의 기세에 눌리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는 노아에게 집적거리던 때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으로 얼마 안가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남자가 사라진 후 노아가 파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이안의 눈치를 보았다. 되게 기분 안 좋은 것 같네. 왜 그러지? 아까 그 사람들과 이야기가 잘 안 되었나? 노아에게 시선을 돌린 이안의 미간은 아까보다도 더 구깃구깃했는데, 그래도 일단 자신을 도와준 거나 마찬가지이니 좀 고마워서 노아가 베시시 웃었다.
“저기… 고마워요. 도와 줘서…”
노아의 감사에 매우 기분 더러워 보이던 이안의 표정이 바뀌었다. 매우 기분 더러움에서 좀 기분 더럽고 어이 없음으로… 이건 대체 뭐야, 하는 얼굴로 노아를 잠시 빤히 바라보던 이안이 삐뚤게 웃었다. 그리고는 아까 그 남자가 잡았던 팔을 대신 잡아 채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고마우면 갚아야지. 그리고 네가 오늘 고마워할 처지가 아닐 텐데 말이야.”
이안의 말에 노아는 가슴이 몹시 설렜다. 다른 사람들이 고백을 해왔을 때에는 한번도 빨리 뛴 적이 없던 심장이 이안이 매번 이럴 때마다 빠르게 뛰는 걸 느끼며, 노아는 고분고분하게 이안에게 이끌려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