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107)

33

“난 입으로 해보라고 했지, 입으로 하면 빼준다고 한 적은 없어.”

 “그, 그런 게 어디 있,… 아으!”

 플러그의 마개가 엉덩이 위에 자국을 남기다 못해 파묻히도록 이안이 엄지 손가락으로 꽉 밀어 누르자 노아가 허리를 들썩이면서 고개를 젖혔다. 

 “뭐라고? 제대로 말해야 알아듣지.”

 “아! 아흐으… 앗, 아…!”

 노아가 뭐라 말하려고 하기만 하면 이안은 마개를 꾹꾹 누르며 괴롭혀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노아가 바르작거리다가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이불만 부여잡자 그제서야 마개를 눌러대던 손을 멈추고는 대신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토실하고 흰 엉덩이를 쥐어 다시 주물렀다. 손자국이 나도록 세게 주무르다가 이안이 다시 노아의 엉덩이를 짝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내리쳤다.

 엉덩이가 주무를 때도 그랬지만, 엉덩이를 맞을 때도 플러그의 자극이 더욱 거세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안이 아프게 엉덩이를 내리치고 주무르면 돌기가 더욱 거세게 내벽을 긁어 내려 노아의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신음 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윽, 윽!”

 핸드 스팽은 스팽킹 도구 중에서는 제일 아프지 않은 종류였지만, 뒤에 뭔가 삽입한 상태에서는 말이 달랐다. 이안은 노아의 엉덩이가 완전히 붉게 달아 오를 때까지 짝 소리가 나도록 세게 때리고, 주무르다 또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세차게 때리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강도가 낮은 매라고 해도 수십 차례를 맞게 되자 엉덩이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안이 따끈거리면서 열이 오르는 엉덩이를 한번 꽉 주무르다가 마침내 노아의 엉덩이 뒤에 물려 있던 플러그를 빼냈다. 

 “흐으, 하…으… 아!”

 이안이 벨트를 풀어낸 뒤 여전히 진동하고 돌아가고 있는 플러그를 빼내자 노아가 이불을 붙잡으며 몸을 들썩였다. 이안이 고의로 반쯤 빼다 말고 덜덜거리며 거세게 진동하는 플러그가 입구를 긁어대며 괴롭히도록 유도한 탓이었다. 일부러 몹시 느리게 꺼내며 이안은 플러그의 돌기 때문에 노아의 뒤가 벌겋게 부어 오르도록 만들었다. 마침내 플러그를 빼냈을 때 노아는 거의 얼얼하게 느껴지는 뒤 때문에 가늘게 신음했다. 

 아직 뒤에 에그가 남아 있었지만 이안은 전혀 개의치 않고 노아의 뒤를 벌려 제 것을 깊이 삽입했다. 노아의 엉덩이 사이로 잔뜩 성난 성기가 삼켜지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이안이 퍽, 퍽 자신의 것을 깊게 때려 박기 시작했다.

 단단하고 굵은 살덩이가 뒤를 휘저으며 안을 찌르는 감각에 노아가 입을 벌려 헐떡거렸다. 철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몸 깊은 곳이 쑤셔지고 범해졌다. 평소에는 그저 플레이일 뿐인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범해진다는 기분이 강했다. 이안의 알파 페르몬 때문일지도 몰랐고, 어쩌면 이안이 자신을 찍어 누른 채 목을 깨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으, 아으… 윽!”

 거칠게 추삽질을 하면서 이안은 목의 연한 피부를 이를 세워 긁기도 하고 아프도록 깨물기도 했다. 흰 피부 위에 붉은 자국들이 남을 때마다 흡족스러운 기분이 들어 거의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 때마다 아픈지 노아가 뒤를 조이는 것도 좋았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부위에 잇자국을 새기면서 이안이 노아의 엉덩이를 벌려 더욱 깊이 삽입했다. 안에 들어가 있던 에그가 밀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는지 노아가 침대를 긁었다.

 마침내 거의 사정이 임박했을 때, 이안은 평소와 달리 안에 사정하는 대신 제 것을 꺼내 노아의 엉덩이며 등에 흩뿌렸다. 그건 일종의 영역 표시와도 비슷한 행동이었다. 제 등이 뜨듯한 것으로 적셔지는 걸 느끼며 노아가 헐떡거렸다. 오늘 따라 이안의 태도가 평소와 많이 다른데, 대체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노아가 침대에 엎드려 아직도 안에서 진동하고 있는 에그 때문에 몸을 떠는 동안 이안은 다시 느긋하게 상자를 뒤적이다가 똑같은 모양의 플러그를 발견했다. 돌기 모양새까지도 똑같은데 단지 색깔만이 달랐다. 설마 같은 제품을 또 산 건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플러그를 작동시킨 이안이 덜덜 진동하면서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고 피식 웃었다.

 뱃속에서 징징 울리는 에그에 웅크리며 몸을 비틀고 있던 노아는 뒤에 또다시 돌기가 돋은 표면이 닿아 몸을 움찔했다. 입구와 내벽을 긁으며 들어가는 느낌이나 다시 사타구니에 단단히 채워져 마개를 고정하는 벨트까지 동일해 똑같은 플러그라고 생각했는데, 진동이 시작하자 아까 회전하던 것과는 또 달랐다.

 “아! 아, 읏, 읏… 아흑!”

 노아가 몸을 들썩이며 괴로워했다. 이안이 스위치를 올리자 플러그가 진동하면서 예상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플러그 스스로 길이가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드는 걸 반복하는데 마치 추삽질이라도 당하는 것만 같았다. 이안은 노아가 침대 위에서 바르작거리는 걸 지켜 보다가 스위치를 더 올렸다. 플러그가 스스로 펌핑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엉덩이 뒤에 물린 마개도 그 반동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스스로 움직이는 플러그에 당하고 있던 노아는, 눈 앞을 짜릿하게 일구는 쾌감에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질렀다. 플러그가 펌핑 할 때 늘어나던 길이가 더 길어지면서 이제는 흡사 뱃속을 퍽퍽 쳐대는 것 같았다. 늘어났다 줄어들며 돌기가 사정없이 온 내벽을 문지르며 주는 자극에 노아의 다리가 경련하듯 떨렸다.

 “아으읏, 흐아, 이안… 아! 아…!”

 “이것 봐라, 좋아서 정신을 못 차리네.”

 침대를 기며 괴로워하는 노아를 뒤집으며 이안이 조롱했다. 그가 노아의 다리를 벌리게 하며 단단하게 서 프리컴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노아의 것을 구두로 꾹 밟았다. 노아가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자 이안은 숫제 노아의 양 발목을 잡아 벌리며 더 가혹하게 신발로 즈려 밟아댔다. 

 “아으, 으! 그만,… 그만….!”

 “그만 하긴 뭘 그만해. 너 신발로 밟혀서 가는 거 좋아하잖아.”

 “흐윽, 아니, 아니에요… 아니야…”

 오, 아니라고? 어디 정말 아닌가 보자며 이안이 스위치를 한 단계 더 올렸다. 악, 아윽, …아! 노아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터져 나왔고, 플러그가 안에서 얼마나 드세게 움직이던지 이제 엉덩이의 마개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연신 거세게 뒤를 박히는 느낌에 노아는 결국 또 다시 이안의 구두에 밟힌 채 절정에 이르렀다.

 뱃속이 퍽퍽 울리는 괴로움과, 머리 끝까지 달리는 강력한 쾌감에 다리를 발발 떨면서 사정했어도 이제는 뒤를 거의 헤집다시피 하는 플러그에 노아가 흐느끼면서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이안은 도통 강도를 낮춰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제 구두에 묻은 노아의 정액을 허벅지에 묻혀 닦아낼 뿐이었다.

 “흐으… 으…”

 이안이 수치도 모르고 벌리고 있던 노아의 허벅지를 다물리게 하며 허벅지와 사타구니 사이 틈새에 제 것을 문질렀다. 그리고는 노아의 무릎을 눌러 옆으로 누른 채 그 틈새에 다시 단단해진 제 것을 밀어 넣어 박기 시작했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이안의 허벅지가 엉덩이를 쳐대는 통에 노아가 바르작거리며 이안을 밀어내려 했지만 힘 없는 손짓이었다.

 노아가 괴로워할 때마다 이안은 더 거세게 몰아 붙이며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쳐대다가 마침내 노아의 배며 가슴에 질펀하게 다시 사정했다. 점점 더 농도가 짙어지는 페르몬에 노아가 입을 벌리며 헐떡거렸다. 마치 약하게 술에라도 취한 느낌이었다. 이안은 느릿하게 노아의 허벅지에 제 것을 비비다가 그제서야 노아의 뒤를 무자비하게 들쑤시고 있던 플러그의 벨트를 풀어 주었다.

 “읏, 아…!”

 이안이 그대로 마개를 잡아 빼자 노아가 바들바들 떨며 얼얼하다 못해 욱신거리고 쓰라린 뒤를 조이며 신음했다. 플러그란 게 삽입되는 부분만 두껍지 마개 부분은 굵어 겨우 손가락 정도였기 때문에 한참을 박힌 듯한 느낌과는 별개로 뒤는 돌기에 긁혀 부었을 뿐이었다.

 숨을 할딱거리면서 가슴을 들썩이고 있던 노아는 이안이 움직이는 대로 다시 침대에 엎드려야만 했는데, 몸을 움직이자 몸에 뿌려진 이안의 정액이 서서히 끈적하게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두 세 번의 사정이면 플레이가 종료 되었기에 노아가 이제 끝난 건가, 생각 하는데 이안이 엎드린 노아의 엉덩이 사이로 달랑이던 에그의 스위치를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노아의 몸에 제 것을 문지르며 말했다.

 “손 대지 말고 알아서 꺼내. 꺼낼 때까지 끝내지 않을 거니까.”

 이미 플러그 때문에 몸 속 깊이 들어간 에그다. 손을 안 대고 꺼내는 게 얼마나 힘들지는 안 봐도 훤했기에 노아가 울먹거리며 고개를 저었지만, 이안이 입에 제 것을 쑤셔 박는 바람에 욱욱거리며 뒤에 힘을 주는 수 밖에 없었다.

***

 손을 대지 않고 에그를 꺼내라는 이안의 말에 노아는 한참을 애를 썼지만 이안이 밀어 넣었던 스위치만 겨우 다시 나오며 뒤에서 말간 액만 뚝뚝 떨어져 이불을 적실 뿐이었다. 노아는 턱이 아프도록 이안의 것을 몇 번이고 빨고, 그 횟수만큼 몸에 정액이 흩뿌려진 다음에서야 겨우 손으로 전선을 잡아 당겨 에그를 꺼내는 걸 허락 받을 수 있었다.

 에그를 빼내는 동안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노아는 멍하니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안의 것을 내내 빨아대느라 입술은 잔뜩 부르텄고 페르몬 때문인지 아니면 숨이 막히도록 입 안에 이안의 것을 넣어야 했기 때문인지 머리가 띵했다. 중간 중간 제대로 빨지 못한다며 이안이 박은 탓에 뒤도 몹시 얼얼했다.

 알파의 사정 량이나 사정하고 회복되는 시간이 다른 사람에 비해 유달리 우수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안은 알파 중에서도 거의 탑을 달리는 것만 같았다. 인간이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허벅지와 가슴팍에서 꿉꿉하게 말라 붙어가는 정액을 바라보며 노아가 생각했다. 뭐, 자신이야 이안의 정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지만…

 노아가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동안 이안은 만족스럽게 제가 만든 결과물을 감상했다. 이안도 처음에는 그저 한 두 번 만 몸 위에 사정해 페르몬을 베이게 만들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꼴리는 바람에 아예 뒤집어 씌우다시피 했는데, 노아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제가 한 일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발가벗은 노아의 몸 여기저기 깨문 자국 위에 희끄무레한 사정 액이 느리게 흘러 내리는 걸 보자 다시 음험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안도 오늘 이 이상은 무리였다.

 “내일 손님들 앞에서 험한 꼴 보기 싫으면 오늘은 물로만 씻어. 알겠어?”

 “네…”

 이안이 아무래도 손님들 앞에서 자신과 사이가 좋은 걸 과시해야 하나 보다 하고 여기며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이안 가면 얼른 씻고 자던 잠이나 마저 자야겠다. 그런데 이안이 자리를 떠나기는커녕 노아의 앞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노아가 눈을 깜박거리며 올려다 보자 이안이 둘의 체액에 몸이 온통 끈적하게 적셔진 노아를 위 아래로 훑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이렇게 당하는 게 그렇게나 좋아?”

 “네…?”

 뭔 소린가 싶어 노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데, 이안이 모욕적으로 노아의 다리 사이나 허벅지를 구두로 툭툭 건들며 비아냥거렸다.

 “매일 이렇게 당하는 게 좋지 않은 이상 이렇게 저택에 끈질기게 남아 있을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그…게…”

 순간 노아가 이안이 조롱의 의미에서 묻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묻는 건지 헷갈려 말을 더듬었다. 물론, 이안의 말한 건 당연히 조롱의 의미였다. 하지만 졸리기도 하고 페르몬 때문에 정신도 없어서 찔리는 감이 있었던 노아가 잠시 제대로 대답을 못하자 미심쩍은 기색을 귀신 같이 눈치 챈 이안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왜 대답을 못해?”

 “…전…”

 “…설마 진짜로 좋은 건가?”

 이안의 말투가 다그치는 어조로 변하자 노아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다 즐기지도 못했는데 벌써 들키는 건 절대 노아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결혼까지 했으면 좀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노아의 기색이 미심쩍었던 이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Tear의 사장이다. 당연히, 고통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시간을 끌수록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노아는 이안의 머릿속에서 한 가정이 어렴풋하게 완성되기 직전 당혹스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그게… 좋, 좋으니까요… 이안이…”

 이안이 저한테 이렇게 저렇게 능욕하고 모욕하는 게 좋다는 부분을 교묘하게 흐리면서 노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좋다’ ‘이안’ 이라는 단어만 언급된 데다가 노아의 태도 때문에 영락 없이 ‘난 당신이 좋아서 이 모든 수치를 감내하고 저택에 남아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처럼 들렸다. 노아가 속으로 땀을 뻘뻘 흘렸다. 난… 거짓말 안 했다, 뭐… 사람의 일부분을 좋아하는 것도 어쨌든 좋아하는 거잖아…

 노아의 태도에 조금 미심쩍어 하던 이안의 의심은 곧장 사라졌다. 이안에게 있어 노아는 어디까지나 이런 험한 꼴 모르고 어화둥둥 자라난 프로스트였기에 노아의 말은 매우 신빙성 있게 느껴졌던 탓이다. 이안이 매끄럽게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내가 좋아서 남아 있는 거라… 이거지? 

 이안은 일전에 노아가 ‘결혼한 이상 상대의 성적 취향을 이해해 줘야 한다 어쩌고’ 운운한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도 얼빠지고 순진한 소리라서, 설마 정말 그 이유일까 했는데 생각보다 더 어이없는 이유다. 테너는 자식에게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고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알려 줬었어야 했다.

 “그럼, 어디… 계속 버텨 봐. 꼬박꼬박 뒤만 제대로 내주면 저택에서 나갈 일은 없을 거니까.”

 평소보다 몹시 만족한 이안이 정액이 말라붙어 가는 노아의 뺨을 툭툭 때렸다. 그리고 노아를 범하느라 흐트러진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저벅저벅 걸어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노아가 휴 한숨을 쉬었다. 이안에게 거의 거짓말이나 다름 없는 말을 한 게 좀… 찔렸다. 노아는 이혼을 하더라도 되도록 감정이 얽히거나 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으니까. 

 “괜찮겠지?”

 어차피 자신만 이안을 좋아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데다가, 이안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니 이혼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끙, 하고 노아가 온 몸에 힘이 빠진 터에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욕실로 향했다. 이렇게 농도 짙은 알파 페르몬을 오래도록 맡아본 건 거의 처음이었다.

 보통 제 페르몬은 날 듯 말 듯 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페르몬이 베이면 어떤 오해를 살지 모르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부모들에게 엄격한 주의를 받으며 자라나는 것이다. 

 클럽에 다닐 때도 노아는 파트너가 필요 이상으로 짙은 페르몬을 풍겨대는 거나, 노팅을 하려 드는 걸 피했다. 알파는 특히나 알파의 페르몬에 몹시 예민하고, 제 가족들은 온통 알파들 밖에 없었으니 그럴 수 밖에. 노아는 플레이를 할 때 항상 상대에게 페르몬을 자제할 걸 당부했고, 혹시 몰라 플레이 후에는 꼬박꼬박 샤워도 했다. 그래서 이안이 제게 했던 것처럼 무례에 가까운 수준으로 페르몬에 노출된 게 처음인 것이다..

 페르몬에 대한 생각을 하며 욕실에 들어간 노아가 따뜻한 물을 틀어 샤워를 시작했다. 물이 닿자 미끌미끌하게 이안과 제 사정 액들이 씻겨져 나가며 페르몬이 좀 가라 앉았지만 그래도 이틀은 지속될 것 같았다. 자신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체향이 나자 노아는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노아는 클럽에 다니느라 한번도 누구와 사귀어 본적이 없었다. 당연히… 상대에게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페르몬 마킹(Marking)도 처음이다.

 노아는 거울을 들여다 보며 묘한 얼굴로 제 목덜미에 난 쓰라린 잇자국을 문지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샤워를 마치고 다시 잠을 자기 위해 욕실을 나섰다.

***

 아무래도 헤더와 같은 손님이 아니라, 오늘은 정말 중요한 손님이 오는 것 같아 노아는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일어났다. 프로스트 가에 있을 때도 중요한 손님이 방문 하는 날이면 노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곤 했었으니까. 이안이 어제 일찌감치 자신을 괴롭히고 돌아간 덕에 밤새 푹 자서 오늘은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매우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 노아가 밖에 나가 보니 안 그래도 평소 깨끗하고 고풍스러운 저택을 고용인들이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쓸고 닦으며 단장하고 있었다. 이안은 아무래도 이미 출근한 모양이다. 작게 하품을 하다가 노아는 제 몸에서 풀풀 나는 이안의 알파 페르몬에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웬만한 수치 플레이에는 익숙했지만, 이건 또 나름대로 기분이 묘했던 지라…

 “아침부터 수고가 많네요.”

 “어머, 노아 님.”

 평소와 달리 일찍 일어난 노아에 고용인이 장식품을 닦다 말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 저택의 고용인들은 노아가 늦게 일어나도 게으르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안에게 밤 늦게까지 못 살게 괴롭혀지는 노아를 안쓰럽게 여기는 편이었다. 

 “곧 아침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바쁠 테니 천천히 하세요.”

 평소처럼 포커페이스를 지키며 지극히 공손하기만 한 고용인이었지만, 고용인의 시선이 아주 잠시나마 이안이 낸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목덜미를 스치자 얼굴을 조금 붉히며 노아가 말했다.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노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으음… 이상해… 기분이 되게 좀 그래…

 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은 무엇인가 고민하며 식당에 도착한 노아는 차를 마시며 아침을 기다렸다. 분명 오늘 점심과 저녁 정찬이 있기 때문에 바쁘기 짝이 없을 텐데도 평소와 다름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한 요리가 나온 걸보고 노아가 감탄하며 식기를 들었다. 어떡하지? 요리사가 너무 탐나… 

 이안과 결혼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하도 요리사가 음식을 맛있게 잘 만들어서 하이든에게 궁금해 물어보니, 이안도 이 요리사를 고용할 때 꽤 애를 먹은 모양이었다. 듣자 하니 요리사가 고용되어 있던 식당에서 내주려고 하질 않았다던가. 이혼할 때 요리사를 데리고 가는 건 힘들겠지… 조금 시무룩해 하면서 노아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조리 된 계란 요리를 냠 한 입 먹었다.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옷을 제대로 차려 입기 위해 방으로 돌아온 노아는, 아침을 먹는 동안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위에 없던 물건이 생긴 걸 보고 의아해 하며 다가갔다. 가지런히 개여져 있는 옷을 들어보자 제 몸에 딱 사이즈가 맞는 게… 아무래도 이안은 노아가 오늘 이 옷을 입길 바라는 듯 했다.

 옷을 입어 본 노아는 이안이 왜 이 옷을 마련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브이 넥이라 목이 아주 훤하게 드러난다. 노아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오늘 자리가 그렇게 중요한가? 밀러와 프로스트 사이의 동맹이 공고한 건 지난 번 큐브 아일랜드에서의 사교 모임에서 이미 잘 보여준 것 같았는데… 아, 하기 사 생각해 보니 모임 끝 마무리가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는 좀 안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 어울리네.”

 거울에 옷을 입은 모양을 비춰보며 노아가 베시시 웃었다. 옷 발도 잘 받고, 연기도 잘 하고… 어쩌면 나는 배우도 잘 했을 수도 있겠다... 물론, 아버지가 절대 허락할 리가 없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혼하고 독립한 뒤에는 뭔가 새로운 걸 배워 보는 게 어떨까. 노아가 제 장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1시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밖이 소란스러워 손님들이 왔겠구나 싶던 노아가 밖으로 나갔다. 예상대로 고용인들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단정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곧 저택 홀의 문이 열리며 이안이 다섯 명의 동행인과 함께 들어왔고, 노아가 얼굴에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이안도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노아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어깨를 감쌌다. 어딜 보나 다정하고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이었다.

 “지난 번 모임에서 뵈었지요. 노아 프로스트 입니다.”

 “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딜 보나 점잖은 신사들로 보이는 이들이 노아와 인사를 나누었다. 노아는 미소를 지으며 저택의 우아한 풍모를 칭찬하는 이들에게 겸양의 말을 건네면서 지극히 사교적인 멘트를 주고 받았다. 상당수의 사업가들이 그렇듯이 모두 알파 아니면 베타인 이들이었다.

 “그건 그렇고 솔로브요프가 보이지 않는군.”

 남자 한 명이 주위를 훑어보며 의아해 했고, 노아는 순간 이안의 얼굴에서 분명한 짜증의 기색을 알아차렸다.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모양이었다. 솔로브요프… 한번 들어 본적 있는 이름인데… 사교 모임에서였던가? 그날 인사한 사람들이 오죽 많았어야지.

 “일정이 늦어 저녁 때나 도착한다고 하더군요. 자, 다들 식사부터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안이 쾌활하게 말하면서 사람들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손님이 오는 만큼 식당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던 요리사의 정찬은 몹시 훌륭한 수준이라 다들 크게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그 중 남자 한 명이 요리사의 스카우트를 은근하게 제안 하기에 노아의 귀가 솔깃했지만, 이안이 즉시 거절하는 걸 듣고 도로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에이, 안 되나 보다…

 점심 정찬을 마친 뒤 저택은 조용하고 한적했던 평소와는 달리 꽤 많은 손님들로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루었다. 다들 껄껄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 6시가 되었고, 저녁 정찬 때가 다 지나도록 저녁 때 온다던 나머지 손님 한 명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 날, 솔로브요프가 저택에 도착한 건 밤 10시가 다 되어 흡족한 저녁 식사와 후식을 마친 손님들이 손님방으로 하나 둘 돌아가고 난 뒤에서였다.

 솔로브요프를 기다리느라 응접실에서 매우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안과 함께 눈만 데굴데굴 굴리던 노아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나… 11시에는 자러 가고 싶은데… 벌써 10시인데… 노아가 지루하게 카펫을 발로 득득 긁고 있는 동안 드디어 고용인이 똑똑 노크를 하며 응접실로 들어와 정중하게 마지막 손님의 도착을 알렸다.

 드디어! 가서 잘 수 있겠구나… 지나치게 활짝 웃으며 노아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이안의 뒤를 종종 따랐다. 그리고 홀로 들어오는 손님을 보는 순간 마침내 솔로브요프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렸다. 드미트리 솔로브요프, 사교 모임에서 이안과 함께 뭔가 한참 말하던 러시아 악센트의 남자… 

 “어, 이안. 늦어서 미안하네, 미안해. 사샤가 하도 여기 같이 오겠다고 떼를 써서 말이야.”

 드미트리가 호쾌하게 하하 웃으며 홀에 들어섰고, 드미트리가 적어도 열 댓 살은 차이 날 것 같은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을 끼고 들어오는 걸 본 노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 이런 모임에 다른 사람을 데려와도 되는 건가? 흘깃 이안을 바라본 노아는, 이안이 미소를 짓는 가운데 못마땅하게 눈썹을 꿈틀거리는 걸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드미트리는 노아를 보자 지나치게 몹시 반가워했다.

 “아, 노아. 또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예, 반가워요… 솔로브요프. 그 쪽은…?”

 “이 쪽은 제 아내인 사샤 메르데프입니다.”

 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애인인 줄 알았는데, 아내라고 하자 노아는 깜짝 놀랐다. 되게 어려 보이는데… 성인인 게 맞긴 하는 거겠지? 드미트리의 아내 사샤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늦은 이유를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그 아름답기로 유명한 밀러 가의 저택을 보고 싶어서…”

 누가 봐도 드미트리가 사샤에게 변명하도록 시킨 게 티가 났지만, 어쨌든 이렇게 되었으니 이안은 차마 드미트리의 아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단 예의상 괜찮다고 하며 둘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사교 모임에서는 그저 좀 독특한 러시아 악센트의 영어를 쓰는구나 했는데 응접실에 도착한 드미트리는 굉장히… 무례했다. 이안은 시종일관 웃는 낯을 유지했지만 노아는 그 더러운 성질에 이안이 참으로 애쓴다 싶었다. 날씨가 춥다며 술을 요구한 드미트리는 주당이었는지 연거푸 술을 마시더니만 이안과 노아가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제 아내의 몸을 더듬어댔는데, 가엾게도 사샤의 얼굴은 그만 새빨갛게 변하고 말았다.

 제 딴에는 나름 다른 사람의 저택에 왔으니 자제하는 것 같았지만 노아는 곧 드미트리가 오메가에 대해 늘상 경멸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사샤가 시종일관 주눅든 태도를 가진 것도 이해할 만 했다. 여기서도 그러니 집에서는 얼마나 심하겠는가…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응대를 해야 하는 거야. 벌써 12시가 다되어 가는데 드미트리는 시답지도 않는 잡담이나 시도하면서 이안을 붙잡고 늘어졌다. 둘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노아는 감히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단 디저트에 손도 대지 못하는 사샤에게 슬쩍 먹어 보라고 권했다. 사샤는 수줍게 웃으며 디저트를 받아 들었지만 몇 숟가락 채 먹지 못했다.

 내내 다른 용건이 있는 사람처럼 뭔가 뱅뱅 돌려 말하던 드미트리가 마침내 경악할 만한 권유를 한 건 노아가 자신은 먼저 가보겠다고 막 말하려는 찰나였다.

 “그러니까 말이네, 이안 자네… 혹시 *스와핑 해 볼 생각은 없나?”

 제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든 노아는, 그제서야 드미트리가 내내 자신을 끈적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노아가 눈을 깜박이며 이안을 바라보았다. 드미트리가 도착한 이후부터 몹시 짜증이 치솟았는지 거의 무표정이 되어가던 이안의 입 꼬리가 다시 그린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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