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넓은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속 을 비워 쓰라린 배를 문지르고 나른해지는 눈가를 문지르고 따가운 입술을 건드리는 희완이 몸을 일으켰다. 입고 있던 면 티를 벗어 올리니 조금 더 자란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흐트러졌다. 저절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머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거울에 비친 가슴을 쳐다보는 희완이 난감한 얼굴을 하였다. 깨물린 목덜미도 울혈이 남은 다른 곳들도 이렇게 선연한데 오늘밤은 또 얼마나…,
생 각을 멈춘 희완이 고개를 가로젓고 벗은 옷을 다시 뒤집어 입고 침대를 찾아 앉았다. 익숙해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희완은 점점 더 견디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매를 맞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개처럼 기면서 더러운 흙발에 입을 맞추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스스로를 타일러보지만 과연 그 말이 맞는지조차 의문이었다. 자신을 위해 억지로 새긴 변명에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르는 목을 더듬었다. 희완은 남자가 필요했다.
[자 네가 그리 가서 서운하더군. 많이 놀랐나? 과정을 중시하는 로맨틱한 타입인 걸 몰랐어. 다음엔 와인이라도 한 잔 대접하지, 언제든 가방은 찾으러 오게. 사정도 여의치 않다면서 그런 식으로 튕기는 건 몸값 올리는데 썩 영리한 방법이 아니야.]
도 대체 누구한테 무슨 얘길 듣고 온 건지 모르겠는 연출의 타이름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던 희완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표식이라도 남는 걸까, 그런 몸이라는. 연출을 밀어내던 감촉이 생생하게 기억됐다. 성민에게 소개 받은 일이니만큼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다. 민감한 문제라 섣불리 꺼낼 일도 아니고 그럴 입장도 아니다. 그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그리 당당하리라.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허허 웃던 연출의 사람 좋은 얼굴을 떠올리다 눈가를 문질렀다. 손이 닿아 꿰맨 데가 쓰라렸다. 봉합을 풀러가야 하는데,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자연스레 연상되는 병원 냄새에 관자놀이가 더 아파졌다. 그간 발작이 없던 누나에게 전화가 뜸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간혹 곤란할 때도 있었는데, 돌연 뚝 끊기고 만 것이다. 좋은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희완은 먼저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두려웠다. 유일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망가져 있는 걸 보고, 망가져 가는 걸 보고, 혼자 추슬러야만 하는 과정이 지난했다. 원망도 많이 하고 악도 써보고 애걸도 해봤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희완의 옷자락을 꽉 틀어쥐던 그 간절함이 이젠 무엇이 되어 있는지 희완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핸 드폰 액정에 떠오르는 시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나 있었다. 한 번도 시간을 어겨 본 적 없는 남자는 근래 들어 비교적 시간에 여유를 두고 나타났다. 그게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구분할 수 없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항상 같은 객석에 앉아 무대 위를 올려보던 남자의 음영 진 얼굴이 떠올랐다. 밝게 불이 비춰진 관람석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는 눈에 띄는 존재였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커튼콜을 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갔고 의아해졌고 궁금해졌고 이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날에는 저도 모르게 남자를 찾아 박수가 쏟아지는 객석을 멀리 훑어보았고 가끔 남자가 기립박수라도 치는 날에는 심장이 부풀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 열기, 들뜸, 긴장, 환호, 학정의 등에 칼을 꽂고 돌아섰음에도 저는 그 기쁨을 충분히 즐기지 않았던가.
꽉 쥔 핸드폰을 내려놓은 희완이 고개를 들었다. 잘못 들은 건가 했다. 허나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눈썹을 들던 희완이 의문스런 얼굴을 하며 문가로 다가갔다. 여분의 키를 따로 들고 다니는 남자는 스스로 도어락을 해제하고 들어서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방문을 알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아, 연희완 씨 맞으십니까.”
“…네.”
“백 대표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누굴…?
도 어락을 해제하려던 희완이 짐짓 두어 걸음 물러섰다. 이상하다. 이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동시에 애써 저 깊이 가라앉혀 놓았던 지난 기억들이 수면 위로 하나 둘 떠올랐다. 남자가 누군가를 대동했던 적이 있던가. 말없이 혼자만 올려 보낸 적이 있던가. 사무실을 드나들던 때를 제외하고는 남자의 측근을 본 적이 없다. 둑 터진 봇물처럼 마구 쏟아져 나온다. 처음 업자가 찾아왔을 때 희완은 아무 의심 없이 문을 열어 주었었다. 연희완 씨. 연희완 씨. 더 없이 정중하고 친근한 목소리로 문을 열고 들어와 희완의 가슴을 걷어차고 등을 구부린 희완의 머리채를 잡고 좁은 원룸 안을, 건물 복도를 질질 끌고 다녔 다.
“연희완 씨?”
“…….”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백 대표님께서,”
뒷 걸음질을 치던 희완이 몸을 바로 하며 다시 다가가 도어락을 해제하려다 이상한 표정을 짓고 다시 손을 떨어뜨리고 망설이다 문을 열려다 또 다시 떨어져나가기를 반복했다. 내내 형편없는 물건이라던 남자의 거친 음성이 귓바퀴를 타고 울렸다. 남자가 보냈다면, 다른 사람을 알선이라도 해준 걸까. 들어본 적이 있다. 가지고 놀다 질리면 돌려 먹기도 한다고. 뭘 잘못한 거지. 다 한 거 같은데. 원하는 건 다, 불성실 했던 걸 잊었느냐는 남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사주겠다고 했지, 그것이 늘 남자만 상대하게 되리라는 약속은 아니었다.
머 리가 뜨거워진다. 긴 병엔 장사 없다며 낄낄 거리던 업자의 조롱이 귀에 선하다. 얼마나 했지. 이제 일 년? 벌써 일 년. 아아, 그의 흔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제 몸을 내려다보던 희완이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떴다. 뒤로 물린 발을 내딛으며 문고리를 틀어쥐다, 연희완 씨.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저만치 떨어져나간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이 혼란스럽게 엉겨 붙었다. 울 것처럼 일그러지다 본래의 얼굴로 되돌아가길 반복하는 모습이 여러 번 되풀이 되었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내딛으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사 준다고 했는데, 사 준다고 했는데.
희완은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쿵쿵, 울리는 문을 쳐다보았다. 벌컥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여러 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광경이 펼쳐졌다. 움찔움찔 경련을 하는 희완이 곧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너 같이 뭣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한텐 일차원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희완을 집장촌 가장 깊숙한 곳으로 끌고 들어간 업자는 바로 코앞에서 그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장면들을 구경하게 했다. 여러 명의 사내들에게 팔다리를 붙잡혀 구멍이 찢어지도록 윤간을 당하고 입안이 헐도록 좆을 빨고 갈증을 내면 물 대신 소변을 마시게 하고 벌어진 구멍에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하고 탄력 없이 풀리면 요도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 억지로 조여지게 만들었다.
충 격으로 토악질을 하던 희완은 다시 업자에게 끌려 나가 걸쇠에 매달렸다. 기대하쇼. 댁 누이나 매형이나 한 놈이라도 토끼는 날에는 내 황공한 마음으로 연희완 씨를 거기 처박아 던져줄 테니. 협박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희완은 몸부림을 치며 발악하기를 멈추었다. 최후의 의지마저 꺾이던 순간이었 다.
열리지 않는 문밖에 서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윤 박사가 옆을 돌아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남자가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그 역시 여직 문밖인 윤 박사를 의문스런 눈길로 쳐다보았다.
“뭡니까.”
“그게, 안에 기척이 있긴 한데, 문을 열어주진 않는군요.”
굉장히 난처한 기색의 윤 박사를 흘긋 쳐다보던 남자가 카드키를 꺼내어 도어락을 해제했다.
시 계를 보니 윤 박사가 문밖에 서 있어야 했던 시간이 얼추 감이 잡혔다. 자정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보낸 지가 30분이 넘었는데 문 하나 못 열고 들어가는 윤 박사의 융통성에 미간을 찌푸리던 남자가 룸 내부를 살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삼 놀라 다소 긴장된 얼굴로 저를 돌아보던 희완이 보이지 않았다.
이 쯤 되니 남자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척이 있었다고? 사람 밖에 세워두고 모른 척할 주변머리는 아예 없는 녀석이니 뭔가 부자연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으며 응접실을 가로지르는 남자가 윤 박사를 거기에 세워두고 침실과 욕실, 테라스와 휴게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희완을 찾을 수 없어 마지막 남은 드레스 룸을 확인했다. 센서 등이 켜진 곳은 실크 가운과 옷 몇 벌이 걸려 있을 뿐 인기척은 없었다. 문을 닫고 돌아서려던 남자가 다시 문을 열고 안쪽 깊숙한 곳을 살폈다.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한손으로 진열대를 붙잡고 몸을 낮춰 상체를 굽힌 남자가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연희완 씨.”
진열대 밑 공간에 숨어들어간 희완의 몸이 움찔 놀라는 것이 보였다.
“연희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불려 진 이름에 와드득 떠는 희완이 시선을 들었다.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파랗게 질린 얼굴은 와락 구겨졌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불안정한 상태를 말없이 지켜보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희완아.”
내 밀어진 손을 시종일관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던 희완이 눈가를 문질렀다. 이상한 표정을 짓고 아니야, 고개를 젓고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한참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다 울먹울먹 떨리는 얼굴로 두 손을 뻗어 남자의 손을 꼭 붙잡았다.
“혀엉, 하, 학정 형….”
다 른 사람을 부르며 그 손이 구명줄이라도 되는 듯 매달리는 희완을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손에 힘을 주어 밖으로 끌어내었다. 단번에 끌려오는 몸이 그대로 남자의 품에 안겨들었다. 종종 보아 왔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희완은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빠르게 의식을 되찾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게는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희 완의 등을 문지르며 일으켜 세운 남자가 발로 문을 밀어 젖히고 침실로 향하였다. 감싸 안은 어깨로 발발발 떨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언짢다. 침대에 앉혀 놓고 생수를 꺼내러 가는데 옷자락이 붙잡혔다. 재킷 끄트머리가 구겨지도록 움켜 쥔 손에 핏기가 없다. 우뚝 멈춰 서서 동그란 희완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문득 그의 고개가 들렸다.
빠 르게 깜박여지는 눈에서 번들거리는 빛이 서서히 밀려나고 본래의 불 꺼진 잿빛 색깔이 돌아오고 있었다. 희완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눈치 챈 남자가 당혹스런 기색으로 재킷을 쥔 손을 놓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리둥절한 얼굴이었고 동시에 어떤 기억 하나를 되찾았는지 불안하고 의아한 기색도 같이 섞여 들었다.
“학정이 누굽니까.”
“그, 극단….”
그 건방진 이름을 몰라 묻는 게 아니다.
불 시에 묻는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답하던 희완은 혼란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차갑게 식은 손으로 버릇처럼 얼굴을 문대는 희완의 관자놀이를 본 남자가 응접실에 혼자 세워 놓은 윤 박사를 떠올리고 몸을 틀었다. 등에 붙은 시선이 졸졸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미뤄도 되겠습니까.”
“네, 하루 정도야 뭐… 괜찮습니다만.”
출 입문이 따로 없는 침실 통로를 통해서 희완을 흘긋 훔쳐본 윤 박사가 어설프게 말을 맺었다. 밤낚시 가 있던 윤 박사를 대뜸 불러올리는 통에 뭔 일 난 줄 알고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왔더니 기껏 몸살 난 청년이나 돌보게 하고 실밥 푸는 날에 맞춰 어디도 못 가게 만들어 마누라 잔소리나 듣게 만든남자가 이상하기는 했으나 일개 주치의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다만 무슨 용도로 저 청년을 사용하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라 드물게 유난하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내일 같은 시간에 봅시다.”
“아, 네. 그럼.”
속 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윤 박사를 잠자코 내려다보던 남자가 그의 생각을 끊어내듯 냉담하게 말했다. 머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윤 박사가 감히 침실 쪽으론 두 번 시선도 못 돌리고 떠밀리듯 문밖으로 쫓겨나갔다. 그 꼴을 보며 잠시 무언갈 생각하던 남자가 슬쩍 고개를 저었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남자는 현재 그 누구도 상대해줄 기분이 아니었다.
정 물화처럼 앉아 침실로 걸어 들어오는 남자를 바라보던 희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 조금 생각을 정리한 건지 혼란스러운 기색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환히 불이 켜진 곳에서 재킷을 벗어젖히고 셔츠 단추를 풀어내는 남자의 등을 쳐다보다 가까이 다가간다. 등 뒤로 다가오는 기척에 돌아보는 남자의 시선이 낮아졌다. 벨트를 풀어내는 손이 떨리지는 않는다.
“연희완.”
부름에 손짓을 멈추고 남자를 올려보는 희완의 머리카락이 뒤로 밀렸다. 메탈 시계를 맨 손이 희완의 관자놀이를 쓸어 머리칼을 넘기며 눈가를 문질렀다.
“내가 누굽니까.”
“…백, 승도.”
“누가 다녀갔는지 알겠습니까.”
“…모르, 모르겠습니다.”
“누가 다녀간 것 같습니까.”
빤히 뜨인 눈이 차츰 불안하게 흔들리는 걸 감지했다. 제 머리를 고정시켜 놓은 남자의 손은 뿌리 칠 생각도 못하고 눈동자만 굴려 무언갈 애써 회피하려는 희완이 끝내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버리지… 말아주세요.”
떨리는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음성이 참담했다.
언제 이런 표정을 보았더라. 남자는 이쪽 한 귀퉁이부터 서서히 무너져내려가는 것 같은 희완의 눈가를 문지르던 손으로 뺨을 문지르며 과거의 편린 한 조각을 떼어 붙여 보았다.
곤란함과 당혹감, 모멸감이 차례로 스쳐지나가던 스무 살의 연희완이 그 중 무엇도 제대로 남지 않은 스물다섯의 연희완과 겹쳐졌다.
이런 표정을 제대로 본 건 업소에서의 조우가 처음이었다.
아 무것도 모르고 끌려온 스무 살의 연희완은 그 자리가 평범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굉장히 충격을 받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종반엔 그 앳된 얼굴 가득 본인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경멸을 띄우고 있었다. 남자는 그 치기어린 자존심에 눈길을 두었다.
그 러나 정답은 아니다. 스무 살의 연희완은 깨져도 다시 자력으로 일어날 힘이 있었다. 이렇게 가벼운 충격에도 귀퉁이가 무너져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자정능력이 고갈된 스물다섯의 연희완은 수행원이 내밀던 사진 속, 그 연희완과 좀 더 비슷하다.
“……다른 사람은, 싫습니다.”
남자는 상황을 이해했다. 예고 없던 윤 박사의 방문이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희완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으리라. 위기감을 느낄 때마다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여력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안 버립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절대 넘기지 않습니다.”
똑바로 저를 내려다보며 내뱉는 남자를 담아내는 눈이 불신으로 가득 찼다.
“듣고 있습니까.”
다 시 혼란으로 빠져드는 희완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남자는 그 눈에 입술을 붙였다. 빠르게 깜빡여지는 속눈썹을 핥아 올리고 희게 질린 뺨을 빨아들이는 남자의 행위에선 해묵은 집착이 읽혀졌다. 그러나 희완은 정신없이 빨려지는 살덩이와 그가 내뱉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에 휩쓸려 또 다시 일시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머릿속에 각인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에게 다리를 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입술을 벌리며 희완은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인지했다. 빈 가슴에 붙은 남자의 체온을 느끼며 오한에 떠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다시 저를 구해주는 남자를 야속하게 생각하는 자신이 이상스럽기만 하다.
필요 없어, 필요해. 도와줘, 내버려 둬. 살고 싶어, 죽고 싶어. 미워, 미워, 미워, 미워.
“희완아.”
깊이 가라앉아 가던 희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연희완.”
품에 당겨 안고 등을 문질러주는 손길에 열이 났다.
“희완아.”
인 상을 쓰던 희완이 제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손을 붙잡아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문질러달라는 손짓에 문질러주는 손이 싸늘하게 식은 가슴에 열을 내어주었다. 감긴 채로 일그러지던 희완의 눈매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는데 꿈이 아니라는 걸 희완은 알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