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25화 (25/123)

별이 머무는 계절 (Just Smile)

여러 개의 유령계정으로 한 장의 사진이 동시에 수신되었다.

탐욕스런 돼지들의 깔개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우진의 사진 옆에 붙은 희완의 옆모습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얘가 얘랑 놉니다.

안 오면, 얘랑 얘가 계속, 쭈욱 같이 놀게 만들겠다는 협박보다 그 사진에 눈길이 먼저 갔다. 탁월한 외모는 여전했지만 모자를 푹 눌러쓴 옆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을 씹어 먹기라도 할 듯이 집요하게 내려다보던 승도는 별 고민 없이 짐을 꾸렸다. 긴 여행에 최적화 되어 있어 짐이랄 것도 없었다. 간단한 물품 몇 개가 전부인 배낭을 어깨에 메고 싸구려 프린터로 출력한 사진을 또 들여다보았다.

가까이 있으면 자제하기가 힘들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손을 뻗어 동의도 없이 채어 올 것 같았다. 까닭 없이 솟구치는 욕구를 제어하기 어려웠고 그럴 의욕조차 사라져가는 걸 절감했다. 그 길로 짐을 싸들고 국내를 나왔다. 제 귀국 날짜에 맞춰 한국을 뜬 의준을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했으나 승도는 어차피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갈등은 희미해졌고 맞닥뜨린 장면이 피를 거꾸로 솟게 하기 전까진 의준의 수작엔 일절 흥미가 없었다. 오랜 만에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욕실로 얌전히 따라 들어오는 희완을 세워 놓은 승도가 온도를 맞춰 욕조에 물을 받았다.

우두커니 서서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고 승도의 넓은 등을 응시하던 희완이 시선을 들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가 희완의 상의 아래를 붙잡아 올리고 있었다. 훌렁 벗겨진 상의가 구석으로 던져졌고 하의와 팬티 역시 철푸덕 소리를 내며 던져졌다. 돌아서며 제가 입고 있는 것도 단번에 벗어내는 승도의 등 뒤로 사납게 엉켜있는 두 마리의 흑룡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움틀 거렸다.

샤워볼을 당겨다 물을 뿌려주는 승도의 손이 잔뜩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구정물이 쓸려나가며 폭행을 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를 향한 시선이 사나워진 것을 감지한 희완이 눈썹을 들었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손이 뒷덜미를 덮으며 왼쪽 어깨를 강하게 쓸었다. 그로 인해 바짝 맞닿은 가슴이 낯설었는데 귓가에 닿는 숨결은 따뜻해 안정이 되었다.

어깨에 뿌려지던 물이 등허리로 향하였다. 발밑으로 쓸려나가는 불순물들이 물줄기를 타고 하수구로 휩쓸려갔다. 그러는 내내 승도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있던 희완이 늘어뜨렸던 손으로 허벅지께를 문질렀다. 이제야 멀어졌던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고 있었다.

학정에게 아무 말도 않고 왔는데, 연락도 없이 귀가가 늦어지는 희완을 걱정하고 있을 터였다. 흉하게 널브러져있던 우진을 떠올리는 희완의 등허리가 가볍게 굳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어찌하고 여기에 이 남자와 같이 있는지.

“흉이 다 아물었습니다.”

“…….”

젖은 머리칼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손길에 그의 말뜻을 알아챘다.

오래 전 일이다. 이젠 흔적도 없이 그 사라진 흉은 희완이 자각하기로 그가 최초로 돌봐준 상처였다.

“도우진과 놀고 싶습니까.”

논다. 라는 가벼운 언어를 진지하게 묻는 승도를 멀끄러미 올려보던 희완이 습관처럼 눈가를 문지르려 했다. 그런데 뻗어 나온 손이 그러지 못하게 했다. 남자에게 맞아 부은 눈가는 살짝 찢겨 있었다.

꿰매야할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건드리면 아플 정도는 되었다.

“손대면 덧납니다.”

아이를 다루는 듯한 어투에 희완은 머쓱함을 느꼈다. 동시에 이 남자와 마주서니 희석되는 감정들이 의아하게 느껴진다. 걱정도 충격도 괴로움도 모두 완화되어 저만치로 쓸려가는 기분이었다. 안심해야하는데 희완은 그것들이 멀어져가는 것이 이상스럽고 불안했다. 현실감각을 잃는 기분이었다.

“연락을,”

“알아서 합니다.”

그러니 그런 건 더 거론 말라는 단호함이 읽혀진다. 그래서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의 희완이 욕조로 당겨졌다. 어른 서넛이 들어가도 거뜬한 욕조에 희완을 끌어다 앉힌 승도가 제 몸도 대충 씻겨내고 그 안에 들어앉았다. 가득 차오른 물이 멎었다. 욕조 벽에 기대 앉아 얼굴을 마주한 희완을 더욱 가까이 끌어다 엉덩이 뒤로 다리를 길게 감는다. 지척에 있는 빗장뼈로 희완의 시선이 내려앉았다. 굵직굵직한 용머리에 가려진 오래된 흉이 그 시선에 남았다. 희완과는 다른 종류의 폭력이 남긴 잔재였다.

“뭐하고 놀았습니까.”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젖히니 머리칼을 뒤로 넘겨 훤히 드러난 남자의 선 굵은 얼굴이 보였다. 눈에 익은 얼굴인데 무척 낯설기도 해서 희완은 답도 않고 빤히 그 얼굴만 보았다.

“거기서, 뭐하고 놀았냐고 물었습니다.”

“…아무 것도.”

머뭇거리던 희완이 답했다. 왜 자꾸 이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 아무 것도 안 했고,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사이도 아닌데. 욕조 턱에 기대 있던 손이 희완의 머리칼로 파고들었다. 옆머리가 잡혀 고정되었고 붓거나 찢긴 환부로 손가락이 닿았다. 눈썹을 찡그리자 손가락이 턱 선을 따라 입술로 미끄러졌다. 젖은 살갗 역시 터져서 굳은 핏물이 맺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입술이 지척에서 멈췄다. 뱉어지는 숨에 데기라도 하는 듯 조금 커지는 눈으로 바짝 당겨진 남자의 검은 것이 들어찼다.

혀가 입술에 닿았다. 내밀어진 살덩이가 입술에 맺힌 핏물을 빨아 당겨갔다. 눈가에 닿았고, 뺨에 닿았고 콧등에 닿았다. 닿은 모든 것을 그렇게 당겨갔다. 소스라치는 희완의 엉덩이가 뒤늦게 물려지는데 뒤를 다 차지한 다리가 외려 더 가까이 붙여버렸다. 양 무릎이 남자의 허벅지에 닿았다. 단단하다. 온몸이 근육덩어리인 남자는 언제나 희완을 손쉽게 덮어왔다. 화드득 되새겨지는 몸의 열기에 놀라는 희완이 움찔했다. 아무렇지 않게 마주 앉았던 몸에서 야릇한 열기가 번져갔다. 더딘 반응이었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승도가 붉게 물든 귀에 입술을 붙였다. 뜨거운 숨을 흘려 넣었다. 오소소 돋는 소름을 손바닥으로 덮어 문질렀다. 희완에게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렀다.

“이러고 놀았습니까.”

경직되어 있던 희완이 고개를 저었다.

“압니다.”

그럴 주변머리가 있었다면 애초 그 고생도 안했을 것이다. 원해서 거길 가진 않았을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이전부터 모든 게 훨씬 수월했을 터였다. 마음대로 되는 것 같으면서도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녀석이라는 생각을 한다. 얼씬도 하지 말랐더니 제 발로 걸어 들어오질 않나, 연극판으로 돌아가랬더니 오히려 그쪽으로 얼씬도 않으니, 마냥 쉬운 상대가 아니란 건 예나 다르지 않다.

“거긴 왜 갔습니까.”

날갯죽지를 문지르던 손이 등뼈를 타고 아래로 미끄러져갔다.

“붙잡히러 간 겁니까.”

와득 힘이 들어가는 엉덩이에 제법 탄탄한 근육이 잡혔다. 막일을 많이 해 말라서 그렇지 볼품없이 비쩍 꼴은 것만은 아니었다. 반듯한 골격은 타고났고 피부 역시 이만큼 좋은 걸 만져본 기억이 없다. 좀 더 쉽게 가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법도 한데, 체질적으로 그런 것과 맞지 않는 부류가 있고 희완은 그 중에서도 유난한 구석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연극판에 있었다더니 고지식한 면만 뿌리부터 아주 골고루 받아 컸다. 정사를 치르고 바르르 떠는 손으로 화대를 받아가던 희완이 눈에 선하다.

“내가 안 갔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허리를 타고 오르며 갈비뼈를 쓰는 손길에 마냥 등을 오그리고 있던 희완이 더 참지 못하고 그의 팔을 탁 붙잡았다.

“안 갈 수는,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아득하게 무언갈 더듬는 듯 말을 끊던 희완이 괴롭게 고개를 저었다.

“압니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이고.”

기울어진 희완의 목덜미를 감싸 얼굴을 들게 한 승도가 젖은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혼란에 빠져 있는지, 아닌지, 저 멀리 또 달아나는 중인지, 아닌지, 차분하게 가늠하는 눈이었다.

“연희완 씨는 그 선택의 기로에 서서 또, 같은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제대로 제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승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그와 함께 그 진창으로 끌려가겠습니까.”  

다른 선택은 얼마든지 있다. 눈 딱 감고 도우진을 외면하고 제 갈 길만 가면 된다.

희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들은 얼마든지 못 본 척 하고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누구에게도 그것을 욕하고 손가락질 할 권리는 없다. 그들 역시 그 선택을 비난할 만큼의 가치는 없고, 살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은 흠도 아니다. 네가 유난한 거라고,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그리 말하는 승도를 빤히 올려보던 희완이 눈썹을 모으다 결국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꼭 혼을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제 편 들어주는 것 같기도 한 기분에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겨우 뱉어놓는다는 말에 승도가 희미하게 인상을 쓴다.

“이번엔 어디까지 내려갈 것 같습니까.”

“…….”

“도박꾼과 약쟁이 중 어느 쪽이 더 나을 것 같습니까. 가루를 뒤로 받을 정도까지 갔으니 머잖아 재활도 할 수 없을 만큼 뇌가 손상 될 겁니다. 제정신으로 있는 날은 손으로 꼽을 수 있겠고, 그 뒤처리도 다 도맡아 하겠습니까. 도박 빚으로 마약을 운반하던 박성환 씨의 말로가 어땠습니까. 굳이 그게 아니라도 마약을 얻기 위해서라면 공급원이 원하는 짓은 뭐든 할 겁니다. 지금도 도우진은 그러고 있습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치우고 바칠 수 있는 건 제 영혼까지 다 갖다 바칠 지경이 되면 연희완 씨까지 팔아치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있습니까. 그것도 감수하겠습니까. 이번엔 화대가 아닌 마약을 대가로 그 알량한 몸뚱이를 팔아치울 각오가 되어 있기는 한 겁니까. 이번엔 정말 거기까지 가겠습니까. 몇 명한테나 팔아치워질 것 같습니까. 그 값싼 가랑이가 얼마나 버틸 것 같습니까. 대체 어디까지 내려갈지 가늠이나 하고 그 손을 잡고 있었는지나 아는 겁니까. 얼마나 하찮은 물건이기에. 연희완 씨는 그리 본인을 막 굴려대는 겁니까.”

입술을 달싹거리려는 희완의 턱을 꽉 감싸 쥐는 승도의 눈이 무섭게 냉담했다.      

“한번만 더 상관할 일이 아니라느니, 그 딴 소릴 지껄이면 진짜 화냅니다.”

이미 화를 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굳은 어깨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무섭다기보다는 억울하고 답답하고 서럽다는 감정이 앞서 희완은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곳이란 걸 알고 가긴했지만 그렇게까지 망가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렴 밖에 섰을 때 도망쳐야 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 번, 누이를 두고 도망쳤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평생 그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번엔 우진을 두고 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끌고 같이 빠져나가야 한다 생각했다. 그러기 전에 또 혼자 도망치려 했다. 아아, 결국은 같은 선택이다. 이번에도 놓고 달아나려 했다. 그리고 다시 붙잡히고, 끔찍한 꼴을 보고, 무력하게 엎어져 있어야 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희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알았으면 그의 말대로 못 본 척 눈을 감고 외면해야 했다. 모르는 게 아니다.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겠다. 정말 그러면 편해지는지. 정말 그랬으면 이렇게 괴롭지 않고 전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건지. 희완은 정말 모르겠었다. 구멍이란 것은 한 번 발을 디디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늪과도 같았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가라앉고 빨려 들어가고 손이 닿기만 해도 암흑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누구한테 기댈 수 있었겠는가. 누구에게 손을 뻗을 수 있었겠는가. 닿으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리는 회오리처럼 가까이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우진이 그것이었다. 과거에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우진이 바로 그것이었다. 학정의 발밑에 커다란 구멍을 파헤쳐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검은 짐승이었다.

“그 친구랑 놀지 맙시다.”

어르는 듯한 음성이었다.

“정 안 될 것 같으면 나랑도 놉시다.”

별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하자는 어투였다.

묵묵히 승도의 질책을 듣고 있던 희완이 시선을 들었다. 젖은 눈이 말도 안 된다는 빛을 보인다.

진 빚이 없다고, 가라 했지만 남자는 희완에게 전부를 주었다. 살 수 있게 해주었고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진 빚이 없다했지만, 희완은 처음부터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야 했는데. 열심히 살아야 했는데. 그 근처엔 갈 수도 없었다.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기웃거리기만 해도 사방이 함정이고 곳곳이 낭떠러지일 것 같았다. 동떨어져 살아야만, 동떨어져 살아야만. 학정에게 가는 게 아니었다. 다시 학정에게 가는 게 아니었다. 가지 말라, 가지 말라 붙잡는 학정의 탄식에 이끌려 그의 곁에 남는 게 아니었다. 우진을 보지 말았어야. 제 발목을 붙잡고 시커먼 구멍으로 끌고 들어가던 매형의 얼굴이, 조카의 얼굴이, 누이의 얼굴이, 우진의 것으로 치환되었다. 우진이 학정의 발목을 붙잡고 그 나락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보며 희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가고 싶지 않았던 거잖아.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 때, 누이와 함께 갔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그 이틀이 다시 희완을 살려 놓았다.

몸 안 깊숙이 뭉근하게 남았던 열기를 떠올리는 희완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러는 건 아니다. 그래서 안 돼. 그래서는.

“나를 안았었습니다.”

미끄러지는 손바닥 아래로 희게 드러나는 얼굴이 병적으로 번득였다.  

“그 때, 나를 안았었어.”

누이의 단자를 들고 산속 깊은 곳을 찾아 절곡을 찾아 온 밤을 헤맸다. 행여 저를 놓칠까봐 선잠을 자는 학정을 떼어 두고 나오면서 희완은 그래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기억이 없었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헤매던 곳에서 다시 남자에게 건져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며 통곡을 하는 희완을 안아주고 얼러주면서 잡아주었었다. 추워서 매달리면 등을 문질러주었고 가슴을 문질러주었으며, 허기져 매달리면 끓어오르는 머리가 녹아내릴 때까지 깊이 안아주었다. 벌어진 다리를 오므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도 손을 벌리는 희완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갈라진 곳에서 물처럼 흐르는 점액질들을 손수 받아 내어주며 입을 맞춰주고 눈물을 빨아주고 쉬이 달래주었다. 그래놓고 버렸다. 그 시커먼 구덩이에 희완을 혼자 내려놓고, 죽은 누이와, 매형과, 조카와 희완을 혼자만 남겨놓고, 그렇게 가버렸다. 차라리, 차라리, 그럴 거면. 차라리.  

빠르게 눈을 깜빡이는 희완이 고개를 저었다. 탁 풀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울듯이 일그러지는 얼굴을 감추며, 말도 안 되게 그를 탓하는 스스로를 책망하며, 등을 구부리는 희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연신 곤혹스런 음성을 흘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자 절절매는 그 빈한한 몸짓을 품 안에 두고 내려다보던 승도의 팔이 그에게로 둘러졌다.

“알겠습니다.”

미세하게 떨리는 살갗을 문질러주고 도닥여주며 창백하게 식은 가슴에 품을 내어준다.

“알겠습니다.”

그리 마음이 춥고 외로워 견딜 수가 없다면,    

“알겠습니다.”

그러니 그만합시다.

이렇게 보는 사람 마음 아프게 혼자서 벌벌 떠는 짓은 이제 그만합시다.

내가 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 *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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