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28화 (28/123)

별이 머무는 계절 (Just Smile)

“아이고, 미안하게 됐습니다.”

난감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를 하는 중개업자를 말없이 바라보던 희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고, 손수 문을 열어주는 중개업자의 배웅을 받으며 부동산을 나선 희완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점심시간 막바지였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외출허가를 받아 겨우 나온 건데 일이 또 틀어졌다. 이로써 벌써 네 번째 퇴짜를 맞은 셈이다. 집을 둘러보고 서류 확인을 하고 이사날짜까지 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려고만 하면 임차인 쪽에서 파토를 내기 일쑤였다. 이유도 다양했다. 세입자가 있는 걸 잘못 내보냈다, 비가 새서 보수공사에 들어가야 한다, 보증금이 잘못 책정됐다, 이번엔 다른 세입자가 먼저 선금을 걸어 계약이 완료 됐다는 말이었다. 이중거래를 한 셈인데 이런 일이 네 번이나 연속되니 지치기도 지치고 따질 의욕도 시간도 없어 형식적인 중개인의 사과를 뒤로 한 채 부동산을 나선 것이다.

관자놀이를 문지른다. 동파로 나오게 된 자취집이 긴 보수 공사를 시작하게 되는 통에 예정보다 일찍 임대 계약이 종료되었다.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 신세질 거라 생각했는데 학정에게 신세진 것도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했다. 이렇게 된 김에 아예 눌러 살라는 학정의 진심이 자꾸 희완을 망설이게 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민폐만 끼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극단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닌데 이런 일까지 보탤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 안 풀리는지 극단 총무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경성과 통화를 할 때마다 인상을 쓰며 베란다로 나가는 학정의 뒷모습을 떠올리곤 침울한 기색으로 신호등을 건너 회사로 돌아가는 희완이 목덜미를 문질렀다. 작업 점퍼만 걸치고 나와 훤히 드러난 목 밑으로 찬바람이 파고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전 소장 잘리고 본사에 있던 사람이 새로 부임한다잖아.”

“그런데 정말 뒷주머니 차다 걸린 거 맞대요?”

“해 먹어도 그렇게 해 처먹을 수가 없었다더라. 이 때 아니면 또 언제 해먹겠냐고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똥구멍에 빨판 붙이고 신나게 빨아주다가 박 과장도 같이 잘린 거 아니야. 조용히 처리해서 그렇지 본사에까지 줄이 닿아가지고 아주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했다더라고. 희완이도 알지? 박 과장! 저번에 회식 따라갔다가 아주 곤욕을 치렀다면서?”

휴식시간에 담배를 태우며 잡담을 하는 동료들 틈에 섞여 커피를 마시던 희완이 불쑥 던져진 화살에 쓰고 있던 모자를 누르며 아, 네.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지근한 반응에도 애초 크게 리액션을 바란 것도 아닌 동료들이 흠을 잡지 않고 다시 본래 화제로 되돌아갔다.

“원래도 본사에서 더럽게 놀기로 유명해서 술상무 밑에서 따가리 짓하다 정년퇴임하면서 이쪽으로 밀려난 거 아니야. 본사 부장에서 계열사 과장으로 쫓겨났으니 유식한 말로다가 좌천이지 좌천. 개 버릇 못 준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니까?”

“그래서, 이번에 새로 온다는 소장은 어떤 사람이래요? 까다롭대요? 전 소장이 그래도 널널한 맛은 있어서 일하기 편했는데-.”

“그게 보통이 아니다더라고. 고졸인데도 특채로 입사해서 빽도 없이 초고속승진에 잘 나가다가 어디에 밉보였는지 여기로 밀려나긴 했지만 일 하나 기가 막히게 잘 한다더구만. 고로 우리도 앞으로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는 얘기지.”

“허허, 부임하고 얼마간은 기강 잡는다고 말도 못하게 잡을 텐데, 아주 사람 피곤하게 생겼네요.”

“그래도 일 잘하면 추천 써서 휴가도 많이 보내주고 승진 길도 열어주고 여러모로 직원들 편의도 많이 봐줘서 평이 아주 박하지는 않다더라고.”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한데요? 하하, 쎄가 빠져도 좋으니 그 승진 길 나도 한번 열어봐줬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농땡이들 그만 까고 일들 하라는 반장의 고함에 플라스틱 의자나 난간에 엉덩이를 깔고 있던 직원들이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반쯤 남은 커피를 한 번에 털어 넣고 일어선 희완도 구긴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어, 완이 왔냐?”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서던 희완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성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소파 놔두고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앉아 뻑뻑 담배만 피워대고 있던 학정이 꽁초로 수북한 재떨이에 비벼 끄며 연달아 희완의 인사를 받았다.  

“새벽같이 나간다면서 이제사 들어오는 거냐? 뭔 놈의 회사가 사람을 그렇게 부려 먹어?”

막 8시가 넘어가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토씨 조금 틀리고 학정과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경성이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재떨이를 쓰레기봉투에 비우는 학정을 힐긋 돌아보았다.

“한 잔 하러 갈 건데, 너도 가자.”

“됐다, 인제 들어와 피곤한 애한테 뭔 소리냐. 씻고 쉬어라, 내일 또 일찍 나가봐야 하잖아.”

“네, 죄송합니다. 경성 선배님. 단장님, 오늘 많이 늦으십니까?”

“모르지 뭐, 애들 만나는데 한두 시간 만에야 들어오겠냐.”

학정 대신 답한 경성이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다 학정에게 도로 빼앗기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저, 미친놈.”

멀쩡한 담배 빼앗은 것으로도 모자라 반으로 분지르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학정의 뒤통수에다 대고 주먹을 휘두르던 경성이 들으라고 한소리에도 별 반응은 없다. 거 담배 냄새 좀 맡는다고 죽냐, 죽어. 열 살짜리 애 보는 것도 아니고, 이 놈이 아예 담배를 안 태우는 것도 아니고, 그 놈의 과보호는, 잠바를 걸쳐 입는 학정의 뒤에다 대고 구시렁거리던 경성이 다시 희완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추우니까 문 너무 오래 열어 놓지 말고 연기 좀 빠지면 언능 닫아라.”

경성이라고 다를 게 없는 게, 샐샐 눈웃음을 치며 하는 말에 멋쩍게 웃는 희완이 걱정 마시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단장부터가 어린 단원들을 하도 싸고도는 탓인지 학정 동기들 대부분이 그런 경향을 보였다. 기강 잡는 군번도 따로 있었지만 학교 동아리나 다른 극단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이기도 했는데 우선 방랑벽이 있을 정도로 혼자 떠도는 학정이 단장인데다 맨 윗줄인 그 동기들도 비슷한 성향이라 각목 들고 애들 잡는 일보다 우르르 깊은 산속 골짜기로 끌고 가 야생 체험에 동참시키는 일이 더 많았다. 내리사랑이라고, 선후배간 우애가 유독 돈독해서 때때로 질 나쁜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외모 특출 난 놈들이라 그런지 우진과 희완이 그런 뒷소문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도 했었다.

낡은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는 학정에게 먼저 가서 덥혀 놓으라며 차 키를 던져주는 경성이 불현듯 이맛살을 찌푸린다. 소문이라니, 영화판으로 들어간 놈한테 엊그제 우연히 주워들은 얘기가 퍼뜩 스쳐 골머리가 다 아파졌다. 어디서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지. 정작 당사자들도 모르는 얘기를 물고 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게 정말이냐, 묻던 놈 뒤통수를 까주며 그게 사실이면 우리가 이러고 지지리 궁상이겠냐, 한소리 퍼부어주긴 했으나 뒷맛이 쓴 건 사실이었다.

이젠 하다하다 별-. 이미 버린 놈들이야 그렇다 쳐도, 이제 막 파릇파릇 돋기 시작한 놈들 내보낼 때 학정이란 딱지가 독이 되는 건 아닐지 경성도 요즘 들어 생각이 많아졌다. 이 바닥 소문이야 워낙에 더럽고 흥미위주라 알고도 모른 척, 듣고도 아닌 척,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 게 현명한 일이었지만 학정이 유독 구설수가 많은 집구석이었다. 그러게 주제에 안 맞게 보는 눈만 높아서는 데리고 오는 놈들마다 하나 같이 다 하이 퀄리티라 이 사단이 나는 거다.

하다못해 지켜줄 돈이 없으면 다른 재주라도 있던가, 이게 다 단장이란 놈이 비비는 능력이 없어 저러니, 이것도 팔자라면 팔자라,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된 바에야 억울하지라도 않게 우리도 좀 비비자 했더니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사람을 잡는다. 한 번 내주면 그게 어디까지 갈 것 같느냐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김학정 너 아직 안 죽었구나, 너 혼자 기차화통 삶아 먹고 다니니 좋냐, 객쩍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긴, 구질구질한 이놈의 집구석 싫다고 뛰쳐나간 놈들 만신창이 돼서 돌아와도 군말 없이 받아주는 놈한테 뭘 바라겠냐마는. 그게 또 김학정이 장점이자 단점이지. 저 덩치만 큰 곰 새끼.

“그래, 완이 너는 언제까지 그러고 다닐 생각이냐.”

저 있다고 옷도 못 갈아입고 거실에 우두커니 선 희완에게 대뜸 던지는 말에 안색이 굳어진다.

“학정이 놈 속 좀 그만 썩이고 그만 들어앉든가, 그도 아니면 정말 깨끗하게 이 바닥 뜨든가. 왜 그리 미적거려- 우진이 그 놈 속 썩이는 것도 골치 아픈데 너 그만 했으면 오래 한 거다. 스물여섯이면 아주 늦은 것도 아니지만 좋은 청춘 길바닥에서 날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시간 낭비는 그만해. 일 년이면, 많이 헤맸다.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좀 해줘야지. 극단에 애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저 싫다고 뛰쳐나간 느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뒷전에 처박아둔 놈들 불쌍하지도 않냐, 가뜩이나 요즘 돌아가는 사정도 안 좋은데 괜한 놈 마음 어지럽히지 말고 얼른 소속 정해. 정말 관둘 거면 정식으로 얘기하고 니 갈 길 가라고. 알아들었어?”

부러 냉정하게 뱉은 소리에도 서운하다는 기색하나 없이 고개를 숙이는 희완이 죄송합니다. 한다.

아이고, 이 답답한 놈. 우진이 놈은 뭐 대드는 맛이라도 있었지. 쯧, 대들고나서도 지 성질 못 이기고 토악질을 하던 우진이 생각에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정말 교육을 잘못 시켰다는 생각이다. 저리 똑바르게 키울 게 아니라 이리저리 잘 휘는 놈들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 바닥이 휘어 있는데 저 놈들이 똑바로 서겠다고 서지는 팔자겠느냔 말이다. 어설프게 휘어져서 재기불능이 된 놈 보고 온 마당에 이리 또 휘청휘청하는 희완을 보니 감정이 앞선 끝이었다.

“그 때 네 놈 편 못 들어준 건 미안하지만 사과할 생각 없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니 놈이 밉고 야속하고 패주고 싶은데, 그게 너 때문에 그 깡패새끼들한테 당해서인 것 같냐? 니 놈이 보기 좋게 뒤통수 치고 간 배은망덕한 놈이라서? 그렇다 해도 니가 할 말은 없겠지만, 그거 아니다. 응? 그거 아니야. 다른 놈들은 몰라도, 학정은 그런 거 아니다. 돈 칠 천에 하준우 그 새끼한테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꼴로 이 바닥 기고 다녔던 이유, 그것만 말했어도 너한테 돌아설 사람 없었어. 적어도 학정에는 없었다고.”

“…압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런 소리 듣자고 하는 말 아니다, 그 바닥이었는데 누구라도 끌어들이고 싶었었겠냐. 그만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살라는 소리야. 우진이 그 놈 꼴 보니까 우리가 너 붙잡기도 그렇다. 정말 마음 뜬 거면 얼른 마음잡고 너 갈 길 가고, 뜨고 싶지 않은데 잘 몰라서 그러는 거면, 우리 눈치 보지 말고 좋은데 가. 괜찮은 소속사 들어가서 지나치게 깔끔 떨지 말고 적당히 구르면서 연기 생활 해. 그거 흠 아니다. 우진이 자식이야 작정하고 들어가 그런 꼴 난 거지만, 다들 그러고 산다. 대단한 뒷배가 아니고서야 그리 뻣뻣해서 어디 이 바닥 살아남겠냐. 학정처럼 삼류극단으로 가라앉거나 우진이 놈처럼 몸만 버린다. 그러니까 생각 잘 하라는 거야. 그리 굽어질 자신 없으면 미련이 남아도 깨끗이 접고 이 바닥 떠, 아니면 버릴 거 버리고, 영리하게 굴든가. 괜히 아까운 시간 길 위에 버리지 말고, 잘 생각해서 얼른 노선 정해. 그게 학정한테도 좋고, 너한테도 좋은 길이다. 응?”

타이르는 말투에 귀 기울여 듣고 있던 희완이 아무런 답도 못하고 시선만 내렸다.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던 경성이 손을 뻗어 희완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겨내었다. 후줄근한 꼴에도 밝은 조명 아래 훤히 드러나는 얼굴이 절색이긴 했다. 이걸 처음 봤을 때 어찌 그리 심장이 뛰던지. 오디션 본답시고 긴장한 상태에서도 맘껏 뛰노는 걸 보고나선 타고난 게 외모만이 아니라 정말 월척이라고 생각했었지, 이리 애물단지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다.

길을 잘못 든 거다. 연기하고 싶다고 이리 비좁고 편협하고 궁상맞은 곳에 올 게 아니라 진즉에 빵빵한 기획사라도 들어가서 주연부터 꿰차고 한 자리 했어야 할 놈이었다. 긴 얘기 끝에 이놈은 안 되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학정에게 미쳤냐며 달려들었던 게 이제와 후회되었다. 우진이는 되고, 그 놈은 왜 안 돼? 극단 지원 동기에 연기하고 싶다고, 어려서부터 연기하는 게 꿈이었고, 노력했고, 학정의 밑에서 연기를 배우는 게 소원이었다고, 책임져주셔야 한다고. 절절하게도 적어 놓은 글을 들이밀며, 순진한 애 먼저 후린 놈이 누군데 이제 와서 발뺌이야! 쨔샤, 책임지라잖아! 소리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잘난 놈이, 왜 이리 구질구질하게 사냐.”

하는 소리에 떨어지는 얼굴이 음울하다. 어디 저게 이제 스물여섯 먹은 놈이 할 얼굴이란 말이냐.

“웃어본지 얼마나 됐냐.”

묻는 소리에 답은 않고 빤히 쳐다보는 얼굴이 이상스럽다.

“인마, 아무 생각 없이 좋아서 웃어본 게 얼마나 됐냐고.”

“모르, 모르겠습니다.”

“별 그지 같은 농담엔 웃기도 잘 웃던 놈이.”

말을 멈춘 경성이 희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뜨린다.

“이왕이면 이 바닥 벗어나서 사는 쪽으로 생각해라. 너 이 자식, 곧 죽어도 학정 이름에 먹칠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을 것 아냐. 그 놈 곁 떠나지도 못할 테고. 그럼 계속 반복이다. 아님, 네가 부러지든가, 학정이 부러지든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할 거야. 그러는 거, 너도 원치 않지? 정말 미안하다, 능력 없는 놈들이라서.”

“아니, 아닙니다.”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젓는 희완을 말없이 들여다보던 경성이 눈매를 접었다.

어쩌면 극단 일을 접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완이 이렇게 되고, 우진이 놈 그렇게 되고, 며칠 전엔 아무 것도 모르고 깡패 술자리에 기쁨조로 불려갔다가 된통 깨지고 온 석주 놈까지 그렇게 된 꼴을 보니 학정도 영 사람 꼴이 아니었다. 하준우 그 자식은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다고.

술이 떡이 돼서 야야, 이제 그만 접을 때 됐나보다, 하는 소리에 여느 때와는 달리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털어 넣던 학정이 눈에 어른하다. 희완을 보았다. 학정의 당부대로 석주 일은 말을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든 떠나보낼 놈이었다.

눈을 뜬 희완이 상체를 일으켰다. 식은땀이 배인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고 눈을 감는데 투둑, 뜨거운 것이 떨어졌다. 피였다. 뻗은 손으로 탁자를 더듬어 티슈를 뽑아 코를 꽉 틀어막았다. 숙인 채로 티슈를 흥건히 적시는 핏물에 몇 장을 더 뜯어 콧잔등을 꾹 눌렀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피 묻은 손바닥에 눈에 들었다. 유난이라는 생각을 한다. 티슈가 또 다시 젖는 걸 느끼며 힘없이 깜박이던 눈을 감는 희완이 몇 장을 더 뜯어내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핏물을 새 티슈로 틀어막으며 잘 내쉬어지지 않는 숨을 천천히 들고 내다 작게 기침을 터트린다. 눈앞이 핑 돌았다. 서서히 멎는 듯한 느낌에 다시 티슈를 바꿔 누른 희완이 침대에 몸을 누였다.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밖은 너무 조용했고 사방은 캄캄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학정을 떠올리며 다시 눈을 감는다. 내내 경성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이번엔 아예 매물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통화를 마친 희완이 까맣게 죽은 핸드폰 액정만 쳐다보고 있었다. 점심시간 첫물이라 다들 밥 먹으러 가고 희완만 덩그러니 간이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이제 구형이 된 스마트폰을 보며 남자가 사준 핸드폰이란 것을 새삼 자각한다. 개통이후 요금을 제 손으로 지불해본 적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통장에 쌓여 있던 많은 액수의 돈과 익명으로 지불되었다던 병원비와 장례비용을 생각한다. 남자였을 것이다. 달리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도 화대였던가. 제 모든 빚을 변제해주고 그만 가라했던 남자를 떠올린다. 그렇게 훌륭한 잠자리 상대는 아니었을 텐데. 아무것도 받을 게 없으니 가라했다. 그러면서 했던 말들이 귓가에 남아있다. 변명 같아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중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 나오며 홀가분한 게 아니라 마음이 헛헛하고 허망하기만 했다.

귓가를 문지르는 희완의 귓불이 붉어졌다. 끊임없이 매달렸던 기억이 선연했다. 온몸으로 번지던 불덩이 같던 열기는 남자의 것이 분명했고 희완은 이제 그것을 또렷이 기억했다. 이틀 내내 힘들어 울면서도 매달렸던 건 저였다. 굶주려 탐욕스럽게 매달리던 제 등을 어르듯이 문지르며 다독이던 기억을 멍하니 떠올리던 희완이 턱을 당겼다.

안을 줄 알았는데, 안지 않았다.

클럽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놀자던 남자는 옷을 벗기고 씻겨주었고, 옷을 벗기고 품어주었다.

스스로도 타인의 앞에서 옷을 벗는 게 그리 쉬운 일이 될 줄 몰랐다. 위화감 없이 몸을 맡겼고 거리낌 없이 옷을 벗었다. 원하는 게 있으니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아수라장에서 희완을 꺼내고 우진을 건져주어서 옷을 벗기는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러 갔으니 벗으라는 말에 순순히 따랐다. 무엇을 팔겠느냐고, 팔 게 남아있기나 하느냐고. 남자가 원하지 않으면 이 알량한 몸뚱이도 쓸모가 없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안지도 않을 거면서 제 몸을 벗기는 남자는 희완을 불안하게 했다. 몸을 받지 않고도 아무 대가 없이 호의를 베푸는 남자는 희완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 여기 있었네요?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지금 점심시간이라 어쩌나 했거든요. 희완 씨, 잠깐 도와줄 수 있죠?”

남은 시간이 어중간해 계속 제자리에서 시간을 때우려던 희완이 모퉁이를 돌아 나온 순영의 반색에 눈썹을 들었다. 물량이 얼마 없어 검수원 몇 명만 남기고 식당으로 보냈는데 집하 수량이 잘못 잡힌 모양이었다. 백화점 상품이라 고가 물건만 들였는데 수량 잘못 세면 그대로 덤터기를 쓰게 생겼다며 도와달라는 순영의 부탁에 선뜻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나저나 점심도 안 먹고 여기서 뭐했어요?”

“통화 좀 하느라고요.”

“어머, 애인? 하긴 희완 씨가 애인이 없으면 이 나라 솔로들은 다 죽어야지.”

하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순영이 멈춘 레일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목장갑을 희완에게 던져주었다. 아무리 깨가 쏟아져도 그래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고 해야죠, 먹고! 하는 순영에게 사실을 정정 시켜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 희완이 어설프게 웃으며 장갑을 껴들어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 같은데 저는 못 올라가겠더라구요. 위에 석삼 아저씨 계세요. A부터 C까지는 확인했으니까, 희완 씨는 D부터 E까지만 확인해줘요. 아저씨가 나머진 다 확인해-”

말을 하다말고 눈을 부릅뜨는 순영을 보던 희완도 연이어 터져 나오는 비명에 곧 뒤를 돌아보았다.

7미터 높이만큼 쌓여 있는 물건 꼭대기에 올라 상품번호를 확인하고 있던 석삼이 쿵-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위로 와르르 상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에 몇 명 남지 않던 사람들이 얼어붙어 있는 동안 완전히 파묻힌 석삼은 기절이라도 한 모양인지 비명조차 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이 희완이었다. 들고 있던 바코드기와 차트를 내던지고 사고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장 119를 부르라는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린 누군가 허둥지둥 외선번호를 찾았고 머잖아 몰려들기 시작한 사람들로 인해 작업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진공관에 든 것처럼 모든 소리들이 웅웅거리며 머리를 울렸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소란스런 외래병동 복도에 앉아 발치만 쳐다보고 있던 희완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무렇지 않았는데 점점 두통이 오는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졌다. 멀리서 메아리쳐 들리는 것 같은 소음들에 골이 흔들리고 눈앞이 희어졌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다급하게 말을 뱉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고 걸쭉하게 뱉어내는 욕지기도 들리는데 희완은 점점 그 소리들이 멀어져간다는 생각을 했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머리를 감싸 쥐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로 흥건하게 젖은 손바닥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허리가 뒤틀려 경련을 하던 석삼의 머리에서 연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찢어진 상처를 찾아 지혈을 하고 어서 구급차를 부르라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람의 허리가 그렇게 뒤틀릴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았다. 주위에서 마구 고함을 치는 소리도 자각하지 못하고 눈을 뒤집고 기절한 석삼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었다.

누군지 잘 알지 못한다. 입사한지 이제 겨우 두 달이었고 맡은 구역도 달랐으며 오다가다 몇 마디 나눈 게 전부라 희완은 그의 이름만 겨우 기억하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허옇게 눈을 뒤집고 부들부들 경련을 하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만 한다. 얼마 만에 들이닥친지도 모르는 구급대원들에게 피로 흠뻑 젖은 셔츠를 넘겨주며 희완은 덜덜 떨리는 제 손을 가까스로 움켜쥘 수 있었다.

끔찍하다는 생각이다. 왜 그런 것들은 익숙해지지도 않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그 짧은 순간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앞에서 으깨어지고 잘라져나가고 무너져가던 것들이 하나하나 주마등처럼 스쳤다. 손만 대면 모든 것이 부서지는 것 같다. 발 디딘 곳곳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꼼짝을 할 수가 없다. 한참을 굳어 있다 손을 뻗어 콘크리트 바닥을 꾹꾹 눌러본다. 허물어지지 않는 그것을 이상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다시 그것을 눌러보려는데 후두둑, 콧등을 타고 뜨거운 것이 굴러 떨어졌다. 흐린 눈을 홉뜨는데 발치 끝으로 까만 구두가 와 닿았다. 반질반질한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던 희완이 고개를 들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남자가 검게 그늘진 얼굴로 희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의 쏘아보는 듯한 눈이었다. 굽어지는 그림자가 희완을 잡아먹을 듯 덮어왔다. 그것을 의아하게 올려보며 눈을 깜박이는데 투둑, 다시 맺힌 것이 떨어졌다. 동시에 내내 혼란스럽게 떠돌던 것들이 머릿속을 뜨겁게 채웠다. 시큰한 눈알 가득 화득한 운무가 번지고 속이 뜨거워졌다. 희완이 입매를 누그러뜨린다. 맴돌던 목소리가 송곳처럼 날을 세우고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가는 게 옳은 길 같았다. 경성의 말은 틀린 게 없고, 떠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 걸려 내려가지도, 토해내어지지도 않는다. 미련이 하나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학정이 그 미련이었다. 여길 정말 떠나서 다신 학정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콱 조여들고 숨을 쉬기 힘들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대충 훔치며 잘 내쉬어지지 않는 숨을 천천히 들고 내는 희완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작은 울음이 터진다.

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더는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다. 혼자이기 싫었다. 왜 항상 원하는 걸 포기해야만 하는지 수긍할 수 없었다. 학정에 있고 싶었고, 연기를 계속하고 싶었고, 하준우 따위에겐 가고 싶지도 않았고, 몸까지 팔아 누이의 빚을 변제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고 싶어서 한 게 하나도 없었다. 산 채로 매달려 걸쇠로 끌어올려지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고 익숙해지지도 않는 폭력은 무력한 희완을 속수무책으로 짓이겨갔다.

무대 위에서 끌어내려져 야만적인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 된 희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제 몸 하나 건사하고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돼지들의 발밑을 기던 상처 입은 짐승에 불과했다. 제 발밑에 고여 입을 찢으며 울부짖는 누이의, 성환의, 조카의, 앙상한 손이 발목을 꽉 매었다. 악몽은 끝이 없을 것이었다. 도망치려 해봐도 자꾸 발목을 잡혀 끌어내려졌고 때때로 그 발목을 끊어내고 싶은 충동으로 미치게 안달하기도 하였다. 형용할 수 없는 암담함과 사무치는 괴로움으로 나날이 고통이었다. 그 고통을 끝낼 방법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터진 눈물에 당황하여 손등으로, 손바닥으로, 계속해서 그것을 훔쳐낸다. 그러나 닦아내려하면 할수록 그쳐지지 않아 곤혹스러워하는 희완의 울음은 더욱 거세어지기만 했다. 어느덧 축축하게 젖은 뺨 위로 커다란 손바닥이 덮어졌다. 아이처럼 우는 희완의 눈가를 어루만지고 관자놀이를 어루만지고 잔뜩 달아오른 뺨을 어루만져준다. 눈물이 넘쳐 승도의 손가락 마디를 타고 흘렀다. 사납게 어그러져 있던 얼굴이 맥없이 풀리며 헝클어진 머리통을 붙잡고 가슴에 당긴다.

“참… 뜻대로 안 됩니다.”

떨어지는 말에,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희완은 제가 발을 딛고서도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것을 붙들었다. 그것을 알아듣고 당겨 안는 팔에 매달린다. 어디로든 데려가 달라는 몸짓에 힘없이 딸려오는 몸을 틀어 안으며 귓가에 입술을 붙인다.  

“같이 갑시다.”

멍하니 응시하는 눈이 구겨지며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우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어 식혀주며 나직이 속삭인다.

“나랑 살자고.”

휘청하는 희완을 창틀에 붙여 다른 이의 시선이 닿지 않도록 가득 덮어 안으며 지척에서 젖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인내하는 눈길이 끈질기게 희완의 눈동자를 더듬는다. 이윽고 느리게 깜박여지는 눈을 허락으로 간주하며 눈꺼풀에 입술을 붙이는 승도가 확답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 *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