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37화 (37/123)

별이 머무는 계절 (Just Smile)

컷-!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촬영장으로 팽팽하게 불어 닥쳤던 긴장감이 일시에 와해되었다. 파인더 앞의 모델을 주시하던 시선들이 풀어지며 적막감이 흐르던 실내로 웅성웅성 쏟아져 나온 소음들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집중을 위해 일부러 음악도 틀어 놓지 않고 작업에 임했던 촬영장엔 찰칵찰칵 셔터가 눌러지는 소리뿐이었다.

수천 장의 스틸 컷을 들여다보던 그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아직 세트장에 남은 모델을 쳐다보았다. 스텝이 건네주는 생수를 받으며 가볍게 목례를 하는 모델이 목을 축이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잡혔다. 균형 잡힌 몸매와 반듯한 이목구비는 여느 모델에 비교해 손색이 없는 정도였지만 그린은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다. 오늘로 촬영 이틀째였지만 원하는 그림이 단 한 장도 나오지 않아 이러다가는 모든 페이지를 B컷으로 채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절로 인상이 써진다.

귀하신 분이라고, 했던 대로 성질부리면 모가지 날리는 건 순간일 거라는 강영희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그린은 모델을 아끼기로 유명한 편이었다. 비록 지랄 같은 성격에 그 편애를 받는 모델이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한번 마음을 주면 끼고 돌기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대체, 저걸 어떻게 다룬다.

온통 예민하거나 한 뼘 쯤 붕붕 떠다니는 인종들 사이에서 저 모델은 희귀한 쪽에 속하긴 했다.

외모를 제하자면 그리 눈에 띄는 구석도 없고 성격도 모나지 않고 서글서글한가 싶으면 또 지나치게 얌전한 구석이 있어, 끼라든가 뭐 그런 걸 부릴 줄도 모르는 것 같고.

심심하단 말이야, 심심해. 저러니 저 나이가 되도록 무명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지.

무명의 근원을 저 조용하고 예의바른 성품에서 찾아낸 그린이 다시 건지지도 못할 컷으로 시선을 돌리며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곧 웃음을 띠우며 가까이 다가온 모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조명이 너무 밝진 않았어요?”

“네, 괜찮습니다.”

예스맨이 따로 없다니까. 또 속으로 불만을 토로해내는 그린이 강영희의 릴렉스만 열 번 외치는 거 잊지 마. 하는 당부를 떠올리곤 곧 모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창가 쪽으로 향하였다. 아직 모니터 직전인 모델에겐 저런 쓰레기를 보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가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타입이라 보통 이런 건 절대 안 묻거든-”

사실 물을 필요도 없지. 몸무게만큼 가벼운 게 모델들 섹스 라이프라 자연스레 묻어 나오는 색기를 감추는 게 일인 경우만 허다했지, 이런 정 반대의 경우는 전혀 생각도 못해봤다. 캐주얼이나 교복 카탈로그라면 또 모를까. 은근히 묻어 나오는 원숙미와 관능미를 기대하기에 이 모델은 지나치게 고적한 데가 있었다. 설마 섹스 한 번 못해본 버진이라던가,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상상에 그린은 속으로 몸서리를 쳤다. 귀하신 분이라기에 어디 대단한 스폰서라도 잡았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정말 귀한 집 도련님이 외유라도 나온 거라면, 아- 그렇다면 정말 최악인데.    

“혹시 연애 해봤어요?”

“…….”

“미안, 내가 커브보다는 직구를 더 선호해서.”

물론 이 정도도 평소에 비하면 커브에 속하지만, 그린은 불쾌감보다는 의아함을 먼저 보이는 모델의 준수한 얼굴과 반듯한 골격을 노골적으로 훑으며 생긋 웃었다.

“나는 좀 미스터 연이 연애를 했으면 하는데.”

이해력은 빠른 편에 속하는 모델이 받아들이는 속도를 가늠한 후 마음 놓고 말을 잇는다. 성질 건드려봤자 목소리 높이는 꼴은 보지 못할게 뻔하니 이런 타입은 직구로 툭툭 던져 넣는 게 맞았다.

“연극판 출신이라며- 그런 연기는 안 해봤어요? 열정적인 사랑에 몸을 던지는 가슴만 뜨거운 바보라든지, 차가운 머리로 몸만 뜨거운 냉담자라든지, 어느 쪽이든 격하게 심신을 굴리는 그런 역할 해본 적 없어?”

존대와 하대를 오가는 말투에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델은 평소처럼 과묵했다. 낯을 가리는가 싶지 않게 흔히 보여주던 미소도 이번엔 타이밍을 잡지 못한 듯 나른한 눈매만 살짝 흐트러져 있다. 그 순간 그린의 눈으로 이채가 스쳤다. 창틀에 기대서서 들고 있는 생수병을 가볍게 흔드는 모델의 흰 뺨으로 잠시 곤란한 기색이 스치는 걸 그린은 놓치지 않았다. 하! 단순히 귀한 집 도련님은 아니라는 말이지. 그렇다면 어려울 것도 없겠는데, 이런 결벽증적이기까지한 모델의 고리타분함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그린의 머릿속이 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키스 해본 적 있지?”

“…….”

“섹스는?”

애꿎은 생수병 뚜껑만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는 모델의 낯빛이 희미하게 굳어져 가는 걸 본 그린이 싱긋 웃었다. 해볼 건 다 해본 얌전한 고양이란 말이지.

“감촉 죽이지?”

모델이 입고 있는 고급 원단의 재킷 상단부를 쓸어내리는 그린이 나직이 속삭였다.

“꽤 공들여 만든 작품인데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건 오로지 모델의 몫이란 말이지.”

진중한 얼굴로 귀를 기울이는 모델의 긴 속눈썹이 희미한 그늘을 드리우며 흰 피부에 질곡을 남겼다. 외모 하나만은 일품이라는 평가엔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로써의 모델은 잘 깎여진 조각품에 지나지 않을 뿐, 훌륭한 모델의 필수불가결 요소인 생명력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섹시했으면 좋겠다. 흥미진진하고 아슬아슬하고 매혹적이며 심지어는 위험하기까지 한 절정의 관능미를 끌어내고 싶다. 단순히 예쁘고 잘생기기만 한 모델이라면 번화가 한 바퀴만 돌아도 발길에 차이는 게 그런 소모품들이다. 모델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 그린의 잣대 하나로 판가름이 될 것이었다. 그저 그런 소모품으로 판명되어 그만큼의 가치만 입고 전달하게 될지, 아니면 정말 뛰어난 모델로서의 희소성을 드러내며 보는 이의 군침을 흘리게 할지는 순전히 눈앞의 모델에게 달려 있다.

그걸 발견하게 해줘. 나를 좀 즐겁게 해줘. 빌어먹을, 제발 날 미치게 해달란 말이야!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지경까지 간 그린이 속으로 릴렉스 열 번을 외치며 강영희의 가터벨트를 떠올렸다. 휴게실에 앉아 그린을 도발이라도 하듯 은근히 짧은 스커트 속의 가터벨트를 보이며 모른 척 시침을 떼던 그 눈 밑의 도드라진 점을 떠올리며 혀를 핥는다.

“섹스를 한다고 생각해.”

빌어먹을,

“예술이 별 거야? 좆나 꼴리는 상상이라도 하면서 끼 좀 부리라고.”

알아들어?

“내 좆을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에 따라서 이 옷이 걸레가 되느냐 명품이 되느냐가 달려 있다고.”

릴렉스는커녕 결국 지 성질만 있는 대로 드러내고 홱 돌아서는 그린을 응시하던 희완이 긴장으로 꼿꼿하게 세운 등을 창에 기대며 시선을 돌렸다. 먼지 낀 창밖으로 때 이른 봄기운이 싸늘하게 휩쓸려나가고 있었다. 변변한 건물 하나 없이 삭막하게 펼쳐져 있는 공터에 홀로 우뚝 선 건물은 페인트 칠만 남겨두고 공사가 중단 된 아파트 펜트하우스 층으로, 이틀 째 출퇴근 중이었지만 희완은 썩 좋지 않은 촬영 분위기를 일찍부터 읽어내고 있었다.

소문이 어떻게 돈 건지 모르겠지만 매니저 하나 없이 혼자 촬영장을 드나드는 희완의 뒤에서 여 들으란 듯이 떠들어대는 소리들이야 이제와 타격을 입을 만큼 악질적이지도 못한 수준이었어도 뜻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 촬영은 과연 스트레스였다. 그린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희완은 좀처럼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처음 제 앞에 내밀어진 브랜드 정장을 받고서 암담한 심정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남성이 끌어낼 수 있는 절정의 관능과 절제의 미를 그린은 끌어내길 원하였다. 그러한 남성성을 희완은 제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조차 희박하다는 생각이었다.

빈틈없이 꽉 짜여진 근육과, 박력적인 문신에 단단히 또아리를 틀고 있는 오래된 흉터로 뒤덮인 남자의 등판을 떠올린 희완이 눈가를 문지른다. 이미 부서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남자와 몸을 섞기 이전에 이미 희완은 업자들의 손에 질질 끌려 다니며 그 안의 남성성을 모조리 캐내어지고 강제로 거세당하고 있었다. 사창가로, 짐승의 열기로 후끈한 골방으로 희완을 밀어 넣으며 그들은 이미 정신적 거세를 일삼았던 것이다. 철저하게 여자를 보는 눈이었고 치밀하게 여자로만 다루겠다는 의지는 곧 완벽한 암캐로써 하향조정 되기 전까지 빈틈없이 실행되었다.

그 직전에 남자에게 건져졌지만 암캐가 여자로 남은 것 외에는 다를 게 없다. 항상 희완의 뒤꽁무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악질적인 소문들, 푸줏간 돼지 이전의 희완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그러나 푸줏간 돼지 이후의 희완에게는 뼈아픈 진실인 것처럼 항상 등골을 쑤시며 내출혈을 일으켰다. 몸을 판다. 몸을 판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남자를 받는 와중에도 희완은 오로지 그 짓에만 집중했다. 그 짓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저를 격렬하게 안아오는 남자가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었다. 차라리 진성 게이였다면, 이러한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제 손안에서 미지근하게 식은 생수병을 내려다보는 희완이 미간을 좁혔다.

틀린 말이다. 희완의 괴로움은 돈을 매개로 한 매춘 행위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상대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이미 업자들에게서 훼손된 남성성의 부재로 인한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고통이었다. 그 이후의 선택은 희완이 한 것이다. 타당한 것을 거론할 새도 없이 희완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기만 한 업자들의,

눈썹을 이지러뜨리는 희완이 메말라 있는 목울대를 울린다.

남자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정말- 조금도 남자의 탓하는 심정이 없어서.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 안에서 출렁이는 물을 들여다보는 희완의 귓가로 묵직하게 울리는 음성이 지난밤의 기억을 끌어왔다.  

비참하지 않겠습니까. 허무하고 허망하여 춥고 시린 마음이 없겠습니까.

스스로 안기겠다 한 희완을 기꺼이 품에 들이며 묻던 남자에게선 어떤 강요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서글프다는 마음이었다. 이 남자는 정말 나를 원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에 새삼 희완은 이제껏 외면해왔던 제 속의 심연을 들여다봐야만 했다. 이대로 안기면 몸과 마음이 편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희완은 제가 발을 들이고서도 선뜻 그의 물음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안길 때마다 수천 번, 수만 번, 제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오는 것만 같던 비참함과, 관계 후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 뼈 시린 허탈감은 희석되었어도 괴로움이었다. 남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희완은 그의 밑에서 다리를 벌릴 때마다 푸줏간 돼지로 육시를 당하면서도 결코 되고 싶지 않았던, 사창가의, 비좁은 골방의, 오직 그 짓만을 위해 힘없이 벌어진 음부 그 자체가 된 것 같아 너무 고통스러웠다. 견뎌도 즐거움을 될 수 없는 짓이었다. 하여 남자는 이제 저와 몸을 섞으면 그러한 것이 없겠느냐 묻는 것이었다.

거짓으로라도 안길 생각이었다. 원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리해서라도 그 품에서 몸을 벌릴 생각이었다. 그로 인해 하염없이 젖어 들어가는 몸이 있으니 수월히 속여 넘길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희완은 마지막에서야 그의 손을 놓았다. 스스로 걸어 들어갔던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날 도와주지 그랬습니까.

아무 사심 없이, 그저 날 도와주지 그랬습니까.

그 바닥을 헤매며 몸부림을 치던 날 건져주는 대신 몸을 바라지 않고, 내 육신을 탐하지 않고, 내 이 보잘것없는 한 줌마저 앗아가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수월했겠는가.

정말, 수월했겠는가.

호의를 호의로만 받아들이고 희완은 애써 그의 욕구를 외면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 관계도 아닌 그의 선심에 보답하기 위해 다리를 벌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뻔뻔스럽게 말로써만 고마움을 표하고 발을 빼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결국 두 손을 벌벌 떨며 연거푸 사과를 하는 희완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남자와 눈을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다.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으면서 그의 호의를 기대하는 희완은 스스로의 이기심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그러나 온전히 줄 수 없는 희완에게 모든 것을 바라는 남자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왜 무조건적일 수는 없는 건지. 그럼에도,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필요해. 필요해.

온몸으로 외치는 희완을 남자는 강제로 취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러기라도 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이제와, 왜 이제와.

출렁이는 물통을 숨을 죽인 채 들여다보던 희완이 시선을 들었다. 촬영을 재개하려는지 느슨해져 있던 현장 분위기로 어둑한 긴장감이 스며들고 있었다. 아득하게 뜬 희완의 시선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린에게로 향하였다.

섹스를 하라고? 키스? 그런 것들은 희완에게 무엇보다 쉬운 일이었다.

세상 누구보다, 무엇보다, 천박하게 몸을 굴려온 희완에게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상대를 즐겁게 하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생수를 내려놓고 창틀에서 몸을 떼어내는 희완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약간 낮아진 온도로 목덜미를 훑는 공기에 눈을 내리깔며 세트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맙소사.

렌즈 너머의 모델을 뚫어져라 쏘아보는 그린의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심정과 기가 막히고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심정이 동시에 스쳤다.

뭐, 이런.

도저히 쓸 게 못 된다는 판단이다.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다.

섹스를 하랬더니, 키스를 하랬더니.

내가 연애를 하랬지, 누가 몸을 파는 창부처럼,

빌어먹을.

그래, 너는 스폰서 전용이라는 말이렷다.

관능과 절제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그저 보면 볼수록 상스럽고 음란하기만 한 그림에서 눈을 떼지도 못하고 욕지기를 내뱉던 그린이 파인더 너머의 모델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수더분하고 얌전한 고양이라고? 젠장할, 엿 먹어라 이거지.

태연한 얼굴로, 촬영장을 내내 포르노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낯 뜨겁게 달궈 놓았던 모델은 우두커니 서서 메이크업 교정을 받고 있었다. 아직도 현장을 맴도는 그 기분 나쁜 열기에 넋을 놓고 있던 스텝들이 주춤주춤 정신을 차리고서도 덜 떨어진 행동을 하는 걸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던 그린이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던지며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스텝들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고 다시 생수를 건네받으며 이쪽을 향하는 모델의 담담한 시선도 느껴졌지만 그린은 험악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지금 작정하고 물 먹일 작정이다, 뭐 그겁니까?”

거의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그린의 기세에 옆에서 거들던 스텝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그린의 심기를 읽고 눈치 빠르게 다른 스텝들을 몰아 촬영현장을 빠져나가는 총괄 매니저가 마지막으로 빤한 시선을 대치 상태인 그들에게 던지고 현장을 나섰다. 성깔이 하도 더러워 일명 샤크로도 불리는 그린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인 모델이 불쌍하기야 했지만 낙하산으로 떨어진 모델 따위 크게 감싸고 싶은 마음도, 그래야 할 의무도 없었다. 한번 된통 깨져보라지. 드러운 새끼.

침 뱉듯 탁 악담을 뱉은 총괄 매니저마저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그린에게서 기다렸다는 듯이 욕설이 터져 나왔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끼 부리랬지, 누가 손님 끌어 들이랬냐? 니가 남창이야? 여기가 미아리야? 너 씨발, 싸구려 남창도 너처럼 천박하게는 못 굴겠다! 지금 누굴 엿 먹이려고, 이게 무슨 3류 포르노 잡지 찍자고 새벽부터 나와서 이 지랄하는 줄 알아! 스폰서 줄 타고 내려왔으면 적어도 부끄러운 줄은 알아야지! 씨발, 내가 너 같은 싸구려 남창이나 찍자고 못 먹고 못 입으면서 몇 년 그 개좆같은 양키새끼들 시다바리하며 버텼는 줄 알아!! 이런- 개잡놈 같은-.”

불쑥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며 그린의 팔목을 꽉 붙든 희완이 창백한 낯을 하였다.

“이거 안 놔!!!”

흥분하여 잡힌 팔을 흔드는 그린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순순히 놓아주는 희완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다. 몸을 사리는 느낌은 아닌데 그린이 또 한 번 주먹을 휘두르기라도 하면 가만있지는 않을 것 같은 기색이 읽혀져 열이 뻗친 와중에도 그린은 내심 뜨끔하였다. 저 개잡놈이.

생각보다 힘이 세잖아, 씨발!

“찍기 싫으면 당장 때려치든가!”

“죄송합니다.”

“뭘!”

버럭 하는 소리에 말은 않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서 이상함을 느낀 그린이 왈칵 얼굴을 구기려는 찰나였다.  

“애석하게도, 연애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뭐! 애서억? 지랄! 아예 없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아, 젠장!  

그린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심정이 되었다. 같이 욕지거리를 하고 대거리를 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이 무슨, 뭐 이런 등신 같은-

“다행히, 섹스 경험은 많아서 원하시는 대로 해드렸습니다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건지, 정말 그런 건지, 가늠하는 눈으로 날카롭게 희완을 훑어본 그린의 얼굴로 낭패감이 스쳤다. 이런 빌어먹을. 스물여섯이 되도록, 대체,

“몸만 팔아봤어?”

“…….”

“연애하면서는 한 번도 섹스해본 적 없냐고. 아니, 진짜로 연애 해보긴 했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불쾌감을 표한다기보다는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본능적인 거부감인 듯싶었다.

황당하다. 누군지 참 대차게도 길들여 놨다. 그것도 완전,

카메라 앞에서 닳을 대로 닳은 늙은 창녀처럼 굴던 희완을 떠올리던 그린이 얼굴을 붉히며 또 욕지기를 뱉어냈다. 수위조절, 제기랄 왜 수위조절이 안 되느냔 말이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환경에서 몸뚱이를 굴려왔기에, 이건 뭐 좆을 세우는 수준이 아니라-

울긋불긋한 얼굴을 와락 구겼다 펴는 그린이 한참만에야 겨우 진정이 된 얼굴로 희완을 돌아보았다.

곤란해 하는 얼굴이다. 저라고 왜 촬영장의 분위기를 못 느꼈는가. 정말 작정하고 물 먹이려는 게 아니고서야. 파인더를 들이댔을 때의 집중력과 몰입도만은 발군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봐요, 연희완 씨.”

밝혀 놓으면 화사할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희완이 나직한 부름에 시선을 든다. 저도 혼란스럽고 막막할 것이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저 흰 얼굴은 의외로 드러내는 것이 많았다. 사연 많은 얼굴, 말끔하게 도련님처럼 생겼어도 숨길 수 없는 그늘은 뭐에라도 발을 담갔다 겨우 건져진 얼굴이었다.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린이 머리카락을 마구 쓸어 넘기다 결국 긴 한숨을 내쉰다.

“나라고 뭐 잘 아는 건 아닌데, 연애라는 게- 일방적으로 다 주는 것도, 일방적으로 다 받는 것도 아니에요. 적당히 자신을 지키면서 주고받아야 잘 된 연애라는 건데, 미스터 연은 너무 후하잖아. 속된 말로 헤프다고. 거기서 무슨 관능을 찾고 절제를 찾겠어? 아니, 내가 차라리 꼬까옷 입고 까불라는 캐주얼이나 교복이라면 또 모르겠어. 슈트잖아, 슈트. 남성복의 화룡점정! 거기서 섹시함을 요구하는 게 과한 건가? 아니잖아, 그렇지? 해서 이왕 말 나온 김에 톡 까놓고 얘기하는 거야. 스폰서라는 작자랑 연애 같은 걸 할 리는 없고, 한 눈 팔 주변머리도 못 되는 것 같아서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사실 몸의 대화도 연애와 별반 다를 게 없어. 그렇게 헤프게 몸 굴리다가는 끈 떨어지는 건 순간이니까 오래 해먹고 싶으면 아까처럼 다 줄 것처럼 쉽게 굴지 말라고. 적당히 튕기면서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다 잡아도 잡아먹는 재미가 있지, 원래 남자라는 족속이-,”

신나서 지껄이다 문득 눈앞의 모델도 같은 남자라는 생각에 말을 멈춘 그린이 눈살을 찌푸린다. 어떤 동의도 부인도 없이 가만히 제 얘기를 듣고 있는 모델에게서 어떤 위화감을 읽고서는 더더욱 구긴 인상을 펴지 못한다.

스폰서가 여자였다면 아까 그와 같은 끼는 부리지 못했으리라는 판단 하에 멋대로 스폰서를 남자로 규정짓고 말을 읊던 그린이 쯧, 속으로 혀를 찬다. 부인하지 않는 걸 보니 헛다리짚은 건 아니라는 소린데. 이건 뭐, 설상가상으로 살정이 속정으로까지 갔다는 건 아니겠지. 정작 당사자는 그걸 몰라서 저 모양인거고. 진짜 개판이로구만.

일개 소모품을 두고 계속해서 세뇌라도 시키듯이 귀하신 분, 귀하신 분, 할 리 없는 강영희의 속물근성을 익히 알고 있는 그린으로서는 정말 똥이라도 씹은 기분이었다.

“이봐요, 미스터 연.”

“…네.”

“그 사람 좋아해요?”

왜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이다. 이럴 땐 알 바 없는 일이라고 딱 잘랐어야지. 모자라기는.

“오프 더 레코드로, 내 딱 이 말만 하고 관둘게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좋아서 하는 부류, 마지못해 하는 부류, 죽지 못해 하는 부류.

눈앞의 모델은,

“아까 무슨 생각하면서 찍었어요, 그 작자 생각했지? 보아하니 여러 군데서 굴러먹을 주제도 못되고 경험이라고 해봐야 그 작자가 전부인 것 같은데, 머리 터지게 고민해봤자 나오는 거 쥐뿔도 없어요. 응? 만고의 진리라고. 사실 몸정이라는 것도 정이라는 거예요. 살정이라는 것도 정이라서, 아예 마음 없으면 할 때마다 구토증이 일고 딱 죽고 싶은 심정이지 미스터 연처럼 그 생각하면서 대놓고 다른 사람 후리지는 못한다고. 그 스폰서라는 작자가 미스터 연을 어떻게 굴렸는지는 그것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오긴 하는데, 아까 몸 보니까 깨끗했어. 손 댄 흔적이 없었다고. 그건 미스터 연을 손톱만큼이라도 배려하고 있다거나 흥미가 다 했다는 뜻인데, 안 한 지 얼마나 됐어요?”

“…….”

“이봐요, 그 스폰서라는 작자하고 몸 섞은지 얼마나 된 거냐고 묻잖아.”

그걸 굳이 말해야할 필요가 없음에도 그린의 뻔뻔스러움에 기세가 밀려 선뜻 대답도 불쾌감도 표하지 못하는 희완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아까 말했지? 몸의 대화도 연애하고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요즘 그쪽하고 뭐가 좀 안 되는 모양인데, 가서 좀 풀고 와. 괜히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 낯부끄럽게 하지 말고, 싸구려 남창처럼 굴어서 나 열 받게 하지 말고, 풀 거 있으면 그 작자한테 직접 가서 풀고 오라고. 모르겠으면 알 때까지 몸뚱이 비비고, 정 헷갈리면 다른 사람 상대라도 해서 기준 잡고, 그 안에 줏대 없이 흔들리는 거 좀 바짝 세우고 오라고. 응? 이거 엄청나게 중요한 프로젝튼데 연희완 씨 낙하산 타고 내려온 것도 모자라 이렇게 망쳐서야 쓰겠어? 내가 이렇게 부탁 좀 해요. 백날 머리 굴려봤자 나오는 거 없어. 때로는 몸으로 부딪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진지한 얼굴로, 마치 애원이라도 하듯 타일러오는 그린을 응시하던 희완이 시선을 내렸다.

결국은 몸으로써 풀어야 된다는 이야기였다. 돈을 매개로 몸부터 시작한 관계라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면, 그 수밖에는 없다는 이야긴데. 저를 품안에 들이던 남자의 체취를 떠올린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겠느냐 물어오던 검은 눈을 더듬는다. 모르겠는 걸 답할 수는 없어서 입을 닫았다. 희완조차 모르겠는 것을,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다시 봐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희완이 고개를 들었다. 어딘가 지친 듯한 기색으로 녹색으로 물들인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그린이 눈살을 찌푸린 채로 희완에게 재차 말을 건넨다.

“내일도 이 꼴이면 나 연희완 씨랑 일 못하니까, 알아서 해결 보자고.”

최후통첩이라도 날리 듯 그 한마디 툭 던져놓고 먼저 촬영장을 빠져나가던 그린이 아까 성질대로 던져뒀던 카메라를 찾아 감싸 안고는 철제문을 빠져나갔다. 넓은 폐허에 홀로 남은 희완이 손끝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남자를 생각했다. 움직일 때마다 살아 태동하는 듯한 등을 둘러 안고 다리를 벌리는 상상을 했고 그가 뱉은 음란한 말들을 떠올렸고 어김없이 그에 반응하여 음탕하게 젖어 들어가는 몸뚱이를 생각했다. 그러다 그 속삭임들이 다정한 것으로 바뀌어가고 몸짓들이 뜨거운 것들로 바뀌어갈 때 희완은 무의식적으로 업자들이 보여준 광경들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짐승들이 우짖고 헐떡거리고 광란하던,

도피였다. 남자에게서 달아나 희완은 저도 모르게 업자들이 억지로 머릿속에 쑤셔 넣은 광경들로 숨어든 것이다. 무엇이 두려워서, 무엇이,

손바닥으로 입술을 덮는 희완이 발치를 내려다본다. 까맣고 눅눅하다. 희완의 저 뱃속 깊이 응어리 진 어둠과도 같다.

버려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미쳐버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철저하게 이용당하고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 구덩이로 끌려들어가던 누이를 미쳤다고 생각했다.

혼자도 모자라 희완과 제 자식까지 끌고 들어가던 누이를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왜 그 손을 놓지 못하냐고,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왜 거기까지 가느냐고, 악을 쓰며 외쳐보아도, 누이는 서럽게 울기만 했다. 사랑해서 그랬어. 사랑해서 그랬어. 그이 없으면 못 살아, 희완아, 나 그이 없으면 살수가 없어. 그래서, 그래서 그랬어.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이는 사랑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 지경이 되어서도 미쳐서 버리지 못한다는데, 무서웠다.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그런 걸….

옷을 갈아입고 폐건물을 빠져나온 희완이 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공터를 빠져나가는 차들을 의미 없이 바라보다 길가에 덩그러니 솟아 있는 버스정류장에 몸을 기댄다. 정면으로는 풀포기 하나 없이 흙먼지만 날리는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인적이 드물어 시간에 한 대가 전부인 시외버스는 아직 20분여를 남기고 있었다. 줄지어 지나가던 차 한 대가 희완의 앞에 멈추었다. 총괄 매니저였다. 같이 가자는 권유를 정중히 사양하고 다시 벤치에 앉은 희완이 미련 없이 빠져나가는 차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남자만 생각하면 아랫배가 욱신거리고 밑이 저릿저릿하다.

몸을 섞어서 답을 낼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러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그럴까봐 겁이 나서 선뜻 몸을 맡길 수가 없다. 그냥 안아주었으면 했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낮은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댄 희완이 흐려진 하늘을 올려보았다. 잠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비라도 쏟아질 듯 거뭇거뭇해지는 하늘을 담아내다 외우고 있던 대사들을 나직이 읊조려본다.

이기적인 생각이다. 결정은 희완이 내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둡게 조명을 낮춘 복도를 걸으며 분기 보고서를 들여다보던 철진이 미간을 좁히며 휙 뒤를 돌아보았다. 잘못 본 건가 해서 안력을 돋우니, 역시나 틀리게 보지 않았다. 비에 흠뻑 젖어 이제 막 모퉁이를 돌아서고 있는 인영은 연희완이 분명했다. 정면에서 열렸다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한번 보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철진이 본능적으로 연희완을 쫓으려다가 그가 향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채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저녁 아홉시가 넘어가는 시각, 백승도는 아직 귀가 전이었다. 무슨 일인지 며칠 전부터 심기가 불편해보여 안 그래도 딱 죽을 맛이었는데 연희완의 등장으로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그 이유에 확신을 갖는다. 그러다 비 맞은 생쥐 꼴을 하고 있던 연희완의 뒷모습을 떠올리고 이거, 또 불호령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하고 이마를 긁다 미련 없이 가던 길로 홱 돌아선다. 그렇다고 눈치 없이 끼어들 만큼 아주 돌빡도 아니라 철진은 애꿎은 엘리베이터 버튼만 쿵쿵 눌러대며 분기 보고서를 와득 구겨 쥐었다. 여러모로 성가신 존재라는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 성의준 그 자식 하나만으로 족한데.

험상궂은 얼굴로 내려오는 버튼을 올려보는 철진이 요즘은 거의 대놓고 깽판을 치고 다니는 성의준 생각에 으득 이를 갈며 쿵 가볍게 엘리베이터 문을 걷어찼다. 감방에서 좆물받이로 평생 썩게 놔두는 건데. 필요악이었지만 백승도는 너무 무심한 구석이 있었다. 하준우를 그에게 맡긴 것도 그렇고. 대체 어쩔 생각이신지.

잔뜩 일그러뜨렸던 얼굴을 서서히 원래대로 바꾸는 철진이 열리는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든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사내였다. 의문을 가질 필요도 까닭도 없다. 성의준과 하준우와 도우진. 그리고 연희완. 떡밥으로 사용할지 말지는 결국 백승도의 선택인 것이다.

서류를 검토하던 남자가 시선을 들었다.

문안으로 들어선 희완의 꼴을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린다. 서류를 내려놓고 데스크에 기대앉은 자세 그대로 희완을 응시하는 남자의 시선은 집요하면서도 세심한 구석이 있었다. 닫힌 문을 바로 등 뒤에 두고 섰던 희완이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비에 젖어 질척질척한 제 모습을 내려다보곤 잠시 멈춰 서서 남자를 올려본다.

한 겹, 한 겹, 희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옷가지가 벗겨져나가는 것을 보며 남자는 시선을 당겼다. 파리하게 젖은 흰 피부를 완전히 드러내고서야 다시 멈췄던 걸음을 옮기는 희완의 어깨 위로 후두둑 빗물이 떨어진다. 이번엔 양말까지 벗어 완벽한 나신이었다.

한 뼘의 거리만 남겨두고 멈춘 희완이 손가락을 세워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일시에 떨어지는 빗물이 바닥으로 금세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희완의 목덜미가 창백하다. 추위로 살짝 떠는가 하여 매끄러운 피부를 유심히 더듬어 보는데 하얀 가르마를 내보이고 있던 정수리가 차츰 낮아지기 시작했다.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흰 손을 뻗어 벨트를 건드리는 희완을 아무 제지 없이 내려다보던 남자가 철컥, 걸쇠가 풀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멈칫하던 손으로 연이어 벨트를 풀고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던 희완이 마른 침을 삼킨다.

“갈등,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갈등하고 망설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희완은,

“답을 찾아야하는데,”

반쯤 내린 지퍼를 더 내리지 못하고 차갑게 식은 손끝만 꾹 누르는 희완이 고개를 들었다.

묵묵히 저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얼굴 전체로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캄캄하기만 했다. 이번에도 밀어내면 정말 더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답을 찾아야 하는데, 그래야….

“내가 변할까 두렵습니까.”

“…….”

“연희완이 늦어지면, 더 기다리지 않고 혼자 가버릴까 두려운 겁니까.”

그래서 이렇게 초조하게 구느냐고, 가진 게 몸뚱이 밖에 없어 서둘러 그것마저 던져 버리며 달려드는 거냐고 묻는 남자를 빤히 올려본다. 젖어 있던 속눈썹에서 물방울이 느리게 굴러 떨어졌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훑어 닦아내는 희완이 무방비하게 목덜미를 드러냈다. 희고 매끈한 그것은 한 손에 쥐면 간단히 잡혀 금세 부러뜨릴 수도 있을 만치 나약한 것이었다.

붙이고 있던 무릎을 열어 가랑이를 벌린다. 그리고 다시 남자를 올려보며 상체를 조금 뒤로 젖히는 희완의 목덜미로 물방울이 흐른다. 예민하게 곤두 선 작은 살점 아래, 미끈한 하복부 밑으로 연붉은 살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위로 애처롭게 오그라붙었던 그 살덩이는 어느새 발기하여 연한 속살을 드러내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것을 잠자코 내려다보는 남자의 손으로 희완의 손끝이 닿았다. 차게 식어 얼음장 같은 손이었다.

당기는 대로 순순히 따라오는 손은 희완보다 배는 더 두껍고 단단하고 억세었다. 그것을 긴장 어린 손길로 말없이 쓰다듬던 희완이 혀를 내어 제 입술을 꼼꼼히 핥았다. 이윽고 남자의 중지를 세워 제 입속으로 깊이 삼켰다.

츄읍. 쩝. 혀가 손가락을 빨 때마다 질척거리는 마찰음이 울렸다. 마치 오럴을 하듯 깊숙이 중지를 밀어 넣고 볼을 홀쭉하게 만들며 살을 빠는 것에 열중하는 희완의 속눈썹이 낮게 가라앉았다가 가만 밀어 올려졌다. 촘촘한 실루엣 아래 검게 고여 있는 눈동자가 오롯이 남자만 담아냈다. 나른하게 뻗어 있는 눈매로 마르지 않은 빗방울이 흐르는 걸 따라 훑으며 손가락을 물려주던 남자의 시선으로 절로 침이 넘어가는 목울대가 잡혔다.

이갈이를 하듯 손가락 마디를 잘게 씹고 쪽쪽 빨고 혀로 부드럽게 굴리며 열심히 남자를 자극하던 희완이 어느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곧 입이 크게 벌어지며 나른하게 뜬 눈동자 역시 서서히 확장되었다. 우두커니 앉았던 남자가 가만히 물려주고 있던 손가락을 입속에서 휘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컥, 크읏. 중지에 이어 검지와 약지가 뒤따라 들어왔다. 커다랗고 긴 손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 중 가장 깊숙이 들어간 중지가 목젖을 건드리며 목구멍까지 긁어내렸고 검지와 약지는 각각 입천장과 요동치는 혀를 누르며 자극했다.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크게 벌어진 입술을 타고 말간 침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것도 모르고 구역질을 참으며 남자가 하는 대로 최대한 페이스를 따라가려 집중하는 희완의 관자놀이를 타고 굵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세 손가락만으로도 느른하게 희완의 입속을 완벽하게 휘저어 놓은 남자가 깊숙이 집어넣었던 것들을 천천히 빼내었다. 이미 턱뿐만 아니라 목 아래쪽은 희완이 흘린 침으로 흥건하였는데 남자 역시 그런 것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손톱까지 다 빠져나온 것을 희완이 혀를 내어 샅샅이 핥았다. 간간히 잔기침을 하면서도 제 것으로 흠뻑 젖은 손을 꼼꼼히 핥아 닦아내는 희완의 속눈썹은 여전히 젖어 있었다.

손가락 사이까지 깨끗이 핥아내길 기다리던 남자가 엄지를 이용해 희완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손등으로 축축이 젖은 턱을 훔쳐 주고 더 벌어지지 않게 입술을 단속하여주고는 미련 없이 손을 떼어낸다. 멍하니 그 손의 궤적을 따라 시선을 올리는 희완이 눈가를 찡그렸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눈으로 흘러들었다. 두어 번 눈을 깜박이다 새삼 한기가 들어 어깨를 떠는데 검게 가라앉은 눈이 희완을 정면으로 내려다보았다.

“정말 이걸 원합니까.”

이대로 실제 행위에 임하게 된다면 희완은 아마 울게 될지도 몰랐다. 부드럽게 대해준다 한들, 남자를 받는 것만으로도 희완에겐 부담이었다. 그보다 남자가 묻는 것은,

“원합니다.”

행위 끝에 오게 될 감정이 무엇이든 그것은 희완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남자의 걱정은 지나친 것이다. 그 감정이 무엇이든 그를 필요로 하는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인데, 아니다. 남자가 묻는 것은, 정말로 이것을 원하느냐는 것이다. 강제나 의무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정말 원해서, 그래서,

남자를 올려보던 희완이 고개를 숙여 아직까지도 발기해 있는 제 것을 내려다보았다.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어도 싸늘하게 식기보다 희미하게 열기를 품은 그것은 희완이 남자를 떠올리는 중에 이리 된 것이었다. 남자의 말대로 초조해하는 것은 희완이었다. 기다리겠다는 남자를 더 믿지 못하고 이리 안달하며 스스로를 채근하는 것이다. 확신이 없어서였다. 이것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남자가 원하는데 까지는 충분하지 못할 것 같아 희완은 불안했다. 계속 이럴 것 같아서.

“밀어내지 않았으면,”

말끝을 흐리는가 하던 희완이 가볍게 눈 끝을 절며 말을 맺었다.                

“좋겠습니다.”

이미 여러 번 거부당하고 사양 당해 희완은 더 끌어 모을 용기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까지 그러면-

“알겠습니다.”

묵직하게 떨어지는 음성에 들리는 시선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남자의 모습이 잡혔다. 반쯤 내려진 지퍼를 올리고 버클과 벨트를 잠가 옷매무새를 추스른 남자가 데스크를 돌아 나간 얼마 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베스트 차림에 재킷을 걸치고 옆구리에 끼고 온 검은 코트를 펼쳐 희완에게 둘러준다. 그에게 잡혀 끌어올려진 희완이 자세를 바로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맨몸에 걸쳐준 코트 단추를 잠가주는 남자의 목울대가 코앞에 있었다. 그 도드라진 굴곡을 아연히 바라보던 희완이 시선을 내리며 창백하게 질린 발등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제 곁을 스쳐 지나가는 남자의 검은 구두를 따라 희완 역시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과 지하주차장으로 곧장 연결되어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오른 희완이 코트 아래로 올라오는 찬 기운에 무의식적으로 허벅지를 붙였다. 약간량 풀이 죽어 달랑거리는 그것이 살갗을 스쳐 거슬리기도 하였지만 희완의 신경은 온통 옆에 선 남자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층수를 내려가는 동안 내내 정면만 응시하고 있는 남자에게선 어떤 초조함도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희완은 내내 침이 마르고 목이 타는 기분이었다.

아직 물기가 남은 발바닥 주위로 번지는 습기를 빤히 내려다보는 동안 멈춰선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에 희완이 고개를 들었다. 앞장 서가는 남자를 쫓아 내리려는데 손이 뻗어 나와 희완의 상체를 밀었다. 거기 있으라는 손짓에 멈칫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임원 전용으로 설계되어 열 대의 주차 공간만이 마련되어 있는 넓은 주차장으로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와 차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연이어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스륵 닫혔다. 그 안에 갇혀 금색 문에 비친 제 꼴만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희완이 다시 열리는 문을 통해 주차장 안쪽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미 대형 세단이 문 앞을 가로 막은 후였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린 남자가 앞으로 돌아 나와 조수석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가 닫히지 않도록 정지버튼을 눌렀다. 한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훌쩍 넘어 희완이 조수석에 올라타자 곧 차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문 역시 아무 방해 없이 닫혔다.

운전을 하는 내내 남자는 말이 없었다. 희완 역시 별달리 나오는 얘기가 없어 시트에 등을 기댄 채 창밖에 시선을 던져두고 있었다. 내부에 유일하게 켜놓은 히터바람과 속력을 낼 때마다 울리는 진공음 외에는 아무런 소음이 없는 공간은 기묘한 긴장감으로 휩싸여 있었다. 시트에 기댔다기 보다는 거의 문 쪽으로 붙어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희완은 사실 차창에 비친 남자의 옆모습만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다. 싸늘하게 식었던 몸이 세게 틀어 놓은 히터로 인해 나른하게 풀리며 아랫배의 열기가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어야 하는데 희완은 그럴 수 없었다. 비록 방향이 바뀔 때마다 흐려지고 일그러지는 모습이라도 좀 더, 계속해서, 그를 보고 싶었다.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창에 비친 그에게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희완이 흠칫 그를 돌아본 건 으슥한 곳에 들어서는가 하였던 세단이 도로를 빠져나와 한적한 갓길에 대어진 후였다. 정차가 아니라 완전히 차를 세운 남자가 희완을 돌아보았다. 굴곡이 없는 시선이 닿은 곳이 제 허벅지 사이라는 것을 깨달은 희완이 더 물러날 곳도 없이 바짝 창틀에 몸을 붙이려는 찰나,

“이쪽으로 옵시다.”

남자의 청유에 희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코트에 가려진 가랑이 사이를 날카롭게 쏘아보던 눈이 그대로 희완에게로 향하였다. 마른 침을 삼키며 그를 마주하다 더 참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려는 순간 뻗어 온 손이 희완의 팔뚝을 움켜잡았다.

“!”

미처 반응을 보일 새도 없이 당겨진 희완의 왼쪽 어깨가 그의 오른쪽 어깨와 맞부딪쳤다. 코앞으로 다가온 그의 목덜미에 시선을 붙인 희완이 짧은 숨을 들이켰다.

“벨트 풀고, 이쪽으로 넘어와.”

말을 할 때마다 움틀 거리는 그의 목 관절이 성이라도 난 것 같았다. 긴장하여 뒤늦게 어깨에 메었던 안전벨트를 의식한 희완이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두어 번 미끄러지고서야 풀린 안전벨트에서 자유로워지자 팔뚝을 잡았던 손을 놓아주는 남자가 운전석의 좌석을 뒤로 밀쳐 넓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보였다. 한 번 더 그가 채근하기 전에 스스로 몸을 움직인 희완이 좌석을 건너 운전대를 등지고 남자의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워낙 차체가 넓고 높은 구조라 운신하기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으나 키가 작지 않은 희완은 최대한 다리를 벌려야 천장에 머리를 박지 않을 수 있었다.

양 무릎을 넓은 좌석 끄트머리에, 엉덩이는 남자의 허벅지에 대고 허리는 꼿꼿이 세운 희완이 절로 남자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크게 벌어진 가랑이로 인해 걸치고 있던 코트 역시 아래가 넓게 벌어져 있었다. 그 사이를 강하게 응시하는 눈빛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축이던 희완이 차게 식은 손끝으로 하나하나 코트 단추를 풀어내려갔다. 드러나는 몸뚱이는 이미 남자의 시선을 받아 서서히 달아올라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단추까지 풀어내자 헐렁한 코트가 어깨를 타고 흐름과 동시에 불긋 발기한 살덩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내내 이 상태였다. 그것을 용케 알아챈 남자의 노골적인 시선은 희미하게 열기를 품은 그것을 점점 더 뜨겁게 만들었다.

흘러내린 코트를 추스르지도 완전히 벗어내지도 않는 희완의 등 뒤로 검은 옷감이 웅덩이처럼 고였다. 엉덩이에 닿은 남자의 단단한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느껴지자 희완은 아래가 더욱 근질거리며 뱃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라면 그의 시선만으로도, 그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완전히 발기하여 설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시 애가 타는 심정으로 마른 침을 삼킨 희완이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손 하나를 움직였다. 남자의 코트가 버릴까, 팔을 빼 밑으로 흘리고 하얗게 드러난 손을 가랑이 사이로 밀어 넣었다. 반쯤 일어선 제 것을 손에 쥐고 한번 꽉 문지르는 희완의 눈매가 붉게 도드라졌다. 약간 뒤로 젖힌 목울대가 드러나며 침이 넘어가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시트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제 위에 올라탄 희완의 몸짓을 빠짐없이 지켜보던 남자가 손을 뻗어 한 손에 잡히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제 것을 잡고 문지르던 손이었다. 의아한 시선이 남자를 쫓았다. 힘을 주어 살덩이를 움켜쥔 손을 떼어 낸 남자가 그 손을 차창에 눌러 고정시킨다. 그리고 다른 손은 맞잡아 아래쪽으로 고정시켰다. 곤란함과 난감함으로 점철된 희완이 눈이 남자를 담아내었다. 이윽고 흘러나오는 소리에 신음이라도 하듯 눈매를 일그러뜨린다.

“흔들어 봐.”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 엉덩이만 흔들어 가보라는 뜻이었다.

종종, 이런 식으로 희완을 궁지로 몰기도 하였으나 오랜만이라 그에 대한 반응이 늦었다.

한참 굳어 있던 희완이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자연히 숙여지는 머리가 남자의 왼쪽 어깨로 쏟아지며 들어 올린 엉덩이는 코트로 뒤덮인 운전대에 가 닿았다.

“내키지 않으면 집에 가서 해도 됩니다.”

실컷 사람 애 닳게 해놓고 하는 소리에 낮게 침음성을 흘리는 희완이 머뭇거리던 걸 관두고 서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트 벗읍시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희완의 뒤 반을 가리고 있는 코트를 완전히 벗겨낸 남자가 어깨 너머로 희게 드러난 엉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운전대에서 뗍시다.”

딱딱한 것에 비비적거려져 발갛게 부어오른 엉덩이가 운전대에서 떨어지며 희완의 상체가 남자의 어깨에 더욱 가까이 붙여졌다.

“선 게 안 보입니다.”

정말로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못한 채 허공에다만 의미 없는 허리짓을 하던 희완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상체를 뒤로 젖히고,”

차마 자세를 잡지 못하던 희완의 가슴이 남자에게 떠밀려져 운전대 뒤로 완전히 넘어갔다. 정수리가 앞 유리 상단에 부딪쳐 미끄러지고 등허리는 운전대에 완전히 밀착되고 풀려난 양 팔은 계기판 위로 짚어졌다.

당겨진 활시위처럼 거꾸로 휘어져 활짝 벌어진 희완의 상체를 집요하게 훑어 내리는 남자의 시선이 발기라도 한 듯 꼿꼿하게 선 젖꼭지에 한참 머물러 있다 미끈한 뱃가죽을 따라 연붉은 속살을 드러낸 살덩이에 가닿았다. 그 주변을 부드럽게 에워싸고 있는 음모 역시 긴장으로 빳빳해져 있었다.

“예쁘게 섰습니다.”

“…….”

“빨아줄까.”

으응. 생각만으로도 미치겠는지 바르르 아랫배를 떠는 희완이 몸서리를 치며 활짝 펼쳤던 상체를 도로 굽혔다. 와락 상체가 들러붙으며 목덜미로 다시 축축한 머리칼이 뜨거운 숨과 함께 쏟아졌다. 한 팔로 좌석 채로 남자의 목을 둘러 안고 다른 손을 가랑이로 밀어 넣어 제 것을 붙든 희완이 탁, 탁, 짧고 빠르게 엉덩이를 치기 시작했다.

“싫습니까.”

“읏, 으읏.”

“좆이 헐도록 빨아줄 수도 있습니다.”

“…헉.”

“좆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몇 번이고 빨아서 가게 만들 수도 있고.”

어깨에 눈가를 비비는 희완의 손짓과 허리짓이 더욱 빨라졌다.

“연희완이 싼 것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남김없이 삼킬 수도 있습니다.”

“그, …….”

“밑이 근질거리다 못해 벌름거릴 지경이 되도록,”

“그…마안, 흣.”

“끝내주게 빨아줄게.”

귓바퀴를 타고 훅 밀려들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움찔움찔 등을 떠는 희완이 이마로 쿵 남자의 어깨를 들이 받았다.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간지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귓바퀴를 따라 음성과 숨결만 불어 넣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귓불을 물어 쩝쩝 소리가 나도록 빨아 당기는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벌써 싸려는 겁니까.”

손목이 저리도록 빠르게 제 것을 훑어 올리던 희완이 그 한마디에 콱, 뜨거운 살덩이를 아프도록 움켜쥐었다. 넓게 벌어진 허벅지가 바륵바륵 떨리는 게 확연했다. 그 살결을 무심히 훑어 올리니 자지러지며 엉덩이까지 움찔움찔하는 희완이 그만 하라고 고개를 마구 젓는다.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흐읏.”

“더한 짓은 시작도 안했는데,”

이러면 곤란합니다. 하는 나직한 속삭임이 귓바퀴를 타고 혈관을 타고 돌아 뱃속으로 아득하게 녹아들었다. 그 순간 파득파득 경련을 하며 허리를 들썩이는 희완에서 질척하게 젖은 신음이 억눌려 나왔다. 귀두를 콱 틀어막아도 빈틈없이 새는 점액질이 그새 손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간헐적으로 액이 쏟아질 때마다 진저리를 치듯 몸을 떠는 희완이 일그러진 얼굴을 남자의 어깨에 문대었다.

제법 시간을 들인 사정 끝에 겨우 정신을 추스르는 희완의 등 뒤로 커다란 손바닥이 덮어져 왔다. 목덜미에서부터 도드라진 날갯죽지와 등뼈, 그리고 등허리 아래 움푹 파인 골을 차례로 훑어가는 손길에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몸뚱이로 다시 희미한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또 발기할 생각입니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건드려 놓고 무안을 주는 남자의 목소리에서 진한 성적 질감을 감지한 희완이 바짝 마른 목울대를 울리며 남자와 밀착시켜 놓았던 상체를 일으켰다. 어설프게 시선을 내려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처참한 지경인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는데 짙은 시선이 느껴졌다. 마주볼 자신이 없어 대충 몸을 추스르고 옆 좌석으로 넘어가려는데 손이 잡혔다. 끌려가며 절로 곱아드는 손가락이 억지로 펴짐과 동시에 말캉한 살덩이가 손바닥을 핥았다. 하으. 금세 엉덩이와 하복부 쪽이 조여들며 움찔 거렸다. 직선으로 희완의 옆얼굴을 쏘아보며 점액질이 엉겨있는 손바닥을 구석구석 핥고 빨아내는 남자의 혀놀림에 바르르 전신을 떠는 희완이 무릎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에 다른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작게 애원을 했다.

그만.

쪽. 마지막으로 새끼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빨던 남자가 겨우 희완을 놓아주었다. 손끝을 말아 쥐며 도망치듯이 옆 좌석으로 건너간 희완이 코트를 끌어다 성급하게 몸을 휘감았다. 채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가해진 자극에 완전히 도발 당한 몸이 제어 불가능해지기 직전이었다. 허벅지 안쪽은 벌써 바륵바륵 떨며 시트가 아니었다면 풀썩 주저앉기라도 할 기세였다. 발끝까지 전기가 드는 느낌에 발가락을 구부리며 몸을 웅크리는 희완의 귓가로 다시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귓불에 선연했던 시선도 떨어져나가고 곧이어 차체가 움직이는 게 전신으로 느껴졌다.

안전벨트도 매지 않고 문에 바짝 붙어 있던 희완이 어깨를 조금 떨어뜨려야 했다. 도로에 들어서기 직전 잠시 정차시킨 남자가 팔을 뻗어 벨트를 끝까지 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차창에서 시선을 떼어 남자의 손길을 따라가던 희완의 시선으로 문득 어두운 회색 계열의 넥타이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 점점이 튄 정액 자국을 발견하곤 짧게 호흡을 멈춘다.

곧 티슈를 몇 장 뜯어 그것을 닦아내려는데 이미 말라붙어 잘 되질 않았다. 그래서 닦아낼 때마다 점점 더 난감한 기색으로 이지러져가는 희완의 기다란 눈매를 잠자코 내려다보던 남자가 손을 뻗어 그 눈가를 건드린다. 시선이 저를 따라 오는 걸 보곤 신경 쓸 것 없다는 듯이 흰 뺨을 가볍게 한 번 더 문지르고는 그 손에서 넥타이를 거둬갔다. 차를 출발시키고서도 묵묵히 따라오는 시선을 의식한 건지 한 손으로 넥타이를 풀어 콘솔박스에 던져 넣고는 가만 희완의 목덜미를 문질러왔다.

여전히 시선은 전방과 백미러를 주시하며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는 남자의 손목 관절을 타이트하게 조이고 있는 은색 메탈 시계를 빤히 응시하던 희완이 엉거주춤 세우고 있던 몸을 다시 좌석 깊숙이 파묻었다. 두꺼운 코트 아래 붙이고 앉은 가랑이 사이의 살점이 거추장스러워 허벅지를 넓게 벌리며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흥분을 하여 사정을 한 건 저인데, 이 공간은 온통 남자의 체취로 꽉 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숨을 쉬기가 곤란하다. 때늦은 귀가 차량으로 빽빽한 도로를 내다보며 희완은 어서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 * *

우진이 잘 살아야 학정도 잘 살아지고 희완도 잘 살아지고 더불어 2부 내내 고자공으로 거듭나신 (짐)승도 님도 잘 살아지는 건데 말입니다.

모든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

* 씬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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