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중간에 두어 번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었는데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화장실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던 대학생 둘의 주머니에서 요란스럽게도 울린 핸드폰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욕설이 가미된 벨소리라 심각해야 할 순간에 산통 다 깨지며 여타 관객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여기저기서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는 성동에게 인사를 하고 연출의 배웅을 받으며 극장을 빠져나온 희완이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100분 내내 꼼짝 않고 앉아 있던 게 곤욕은 아니었는지 살펴보는 눈길에 흘깃 화답하는 승도가 바람결에 흩어지는 머리칼을 대충 넘겨주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끝나고 담배가 당겨 나오자마자 한 대를 물어 피우긴 했으나 승도 역시 연극에 취미가 전무한 편은 아니었다. 희완이 그리 좋아하는 이유를 알 법도 해서 시간낭비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의자가 불편해 좀이 쑤시긴 하였지만 영세 극단이 전전하는 소극장이라니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다닥다닥 붙은 차도를 점령하다시피 줄지어 세워진 승용차와 오가는 사람들을 피해 휘청휘청하는 희완을 제 곁에 끌어다 세워 놓는 승도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연락 오는 법이 없는 철진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정도 와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통화를 하는 그를 보던 희완이 한쪽으로 비켜서서 사람들에게 길을 터주며 저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한동안 핸드폰도 없이 돌아다니던 희완에게 학정이 던져준 것이었다. 남자가 사준 것은 병실 변기통에 처박힌 지 오래였고 그 뒤로는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연락되는 거 하나 없이 떠돌아다녔더니 보다 못한 학정이 알고 다니는 판매상 하나 구워삶아 공짜로 얻어 온 것이었다.
연락 안 되니 그리 애가 타지? 그러니 나는 오죽했겠느냐며 외려 그걸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타박했던 건 바로 핸드폰 없이 곧잘 다니기도 했던 학정 때문에 한참 속을 썩기도 했던 경성이었다. 여전히 그러고저러고 투닥거리며 잘도 지내는 학정과 경성을 보고 실없이 웃기도 했다.
“밥은 나중에 먹어야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승도가 멀찍이 떨어져 있던 희완과 단숨에 거리를 좁혀 오며 묵직한 목소리로 그리 시선을 끌었다. 희완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공연이 끝나니 딱 저녁 먹기 좋은 시간이라 같이 어디라도 가서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온 것도 모르고 그저 남자를 이 거리에서 마주하게 된 것에만 온통 신경을 기울이느라 변변한 말치레 한번 건네지 못한 게 맘에 걸렸던 희완이 먼저 제안했었는데 이리 파토가 났다.
“네, 알겠습니다.”
미안하고 아쉽긴 하였으나 일이 있어 보이는 남자를 붙잡을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은 몇 시에 끝납니까.”
“아, 열한 시쯤 끝날 것 같습니다.”
“데리러 오겠습니다.”
“…….”
대답을 않고 빤히 저를 올려다보는 희완을 마주하던 승도가 흘긋 제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남자를 돌아본다. 부딪쳐 놓고 외려 제가 기우뚱하던 남자가 인상을 쓰다 승도를 발견하곤 제 풀에 기가 질린 얼굴로 꾸벅 죄송하다 사과하고 서둘러 돌아서는 게 보였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그런 대우를 받는 남자를 보던 희완이 슬쩍 시선을 내렸다. 이런 곳에서도 확실히 두드러지는 존재감이었다.
“싫습니까.”
“아닙니다.”
고개를 젓는 희완이 다시 그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정확히 몇 시에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상관없습니다.”
“기다리셔야 할지도,”
“불편합니까.”
즉각 묻는 말에 입을 닫던 희완이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데리러 오면 좋긴 할 것 같습니다.”
남자를 기다리게 하는 게 불편하기는 하지만 또 데리러 오면 좋을 것 같다는, 고작 그 말을 하면서 눈을 못 맞추는 희완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남자가 알았다, 대수롭잖게 답한다.
“차 댄 곳까지는 같이 갑시다.”
하는 남자의 곁으로 곧 희완이 따라붙었다.